주사파는 김영환님이 1985년 10월 경부터 민주주의 횃불, 해방서시등의 팸플렛을 돌리면서
퍼졌습니다.. 그전에는 일본미국의 막스주의 서적을 공부하기 위해 외국어 까지 공부해야 했으며
특히 막스레닌 이론은 학생들이 이해하기는 너무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주사파는 민족감정에 반미 주장을 도입하여 감상적인 젊은 이들에게 잘먹혔으며
1986년 부터 약 5건의 강철서신이 돌면서 NLPDR(민족해방민중민주) 파가 형성되었습니다...
그해에 서울대운동권의 구호는 학원자율화등에서 반전반핵양키고홈 이라 바뀌었으며 주위 다른
운동권들을 깜짝놀라게 했답니다...
87년 6월 이들은 제헌의회를 주장하는 CA(PD민중민주의 한분파) 의 주장보다 좀더 현실적인
직선제 개헌 주장을 하였으며 김대중 후보를 지지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근거는 우태영저 82들의
혁명놀음)
증거자료
(근거는 NL창시자격 김영환님의 ☞클릭 반성문 1 반성문2 반성문3 반성문4 반성문5 반성문6
반성문7 반성문8 현재는 북한민주화운동을 하고있음 )
트로츠키파 다함께의 클릭 ☞기본입장
오직 노동자들 자신의 대중 투쟁으로써만 자본주의 착취·억압 체제를 없애고
그러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 |
당시 CA그룹은 백기완씨를 지지하였습니다...
6월항쟁 이후 NL의 수는 급격히 증가하여 전체운동권의 약 90%를 차지 하게 되었으며
PD계열은 10%도 차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박근 한국보수주의의 위기 에 인용된 설문조사에는 사회주의지지자가 10%대 중반 공산주의 지지자가
1% 라고합니다 계산해보면
대한민국 전체인구에서의 비율로 약 300~400만에 달하며 그중 90%가 NL 입니다
실제로 민주노동당의 전신 국민승리21의 97년 총선에서
당시국민승리21은 PD가 주류였음 전체 PD숫자와 비슷한 30만표를 얻었습니다...
더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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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님의 전향은 이미90년대 중반부터 전향했습니다 그증거는 말지 인터뷰에서 주체사상을 비판했습니다. 그전향당시는 과거동지들이 정계진출하지 않았을 시기입니다 개네들이 정계에 진출하니 문제아닙니까?
문제는 지금 이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전쟁과 대결이 아니라 민족간의 화해와 신뢰라는 것이지 .누구보다 과격한 주사이론을 대학가에 전파한 자가 평양 한번 갖다 오고나서(북한 실태가 그런 줄 가 본 다음에 알았나!) 북한 해방론자로 전향?( 이 공안적인 용어 정말 맘에 안듬). 신뢰하기 힘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