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동유럽의 정교회화
정교회의 선교사들은 새로운 무대를 찾아 동쪽으로 선교를 떠났고, 동유럽과 러시아의 광활한 대지에 그들의 종교와 문명을 전파했는데, 그들의 고유문화와 융합하면서 새로운 슬라브 문화를 탄생시켰다.
850년에서 1100년까지 로마 제국은 흑해 북부 해안에서 발생한 키예프 루시와 이런저런 관계를 맺는다. 양국의 관계는 슬라브 역사에 오래도록 영향을 끼쳤다. 제국은 빠르게 키예프 공국의 주요 무역과 문화 교류 상대가 되었으나 늘 사이가 좋지만은 않았다. 양 세력은 968년에서 971년에 불가리아에서 전쟁을 벌렸고, 러시아인은 흑해 해안과 콘스탄티노플을 침략하기도 했다. 제국은 이 침입을 격퇴했으나 러시아인은 보통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무역 조약을 맺을 수 있었다.
콘스탄티노플 대주교학교의 철학교수였던 키릴로스(본명은 콘스탄티누스)는 860년 그리스의 한 수도원장이었던 메토디오스와 함께 흑해 북동부의 카자르족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기 위해 일했다.
862년 대(大)모라비아의 로스티슬라프 왕자가 콘스탄티노플 선교사 파견을 요청하자 황제 미카일 3세와 포티우스 총대주교는 키릴로스와 동료 메토디오스를 임명했다. 863년 그들은 슬라브족에게 가서 선교했으며, 미사도 슬라브어로 올렸다. 그들은 성서를 고대 불가리아어로 번역했고, 그리스 문자에 기초하여 슬라브 알파벳을 만들었는데, 최종 확정된 키릴 문자는 아직도 현대 러시아어와 많은 다른 슬라브 언어의 알파벳으로 쓰이고 있다.
포르피로예니타 안나 공주와 키예프의 블라디미르 대공이 혼인하고 뒤이어 러시아가 기독교화하면서 관계는 돈독해졌다. 동로마제국의 성직자, 건축가, 예술가가 러시아의 수많은 성당과 교회 건축에 초빙되면서 비잔티움의 문화가 전파되었다. 수많은 러시아 사람들이 동로마 군대에 용병으로 복무했고 그 중에는 유명한 바랑인 근위대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