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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으로의 여행 크로아티아, 발칸을 걷다]
Slovenia
13 발칸의 알프스, 슬로베니아
발칸 반도의 서북쪽 끝에 위치한 슬로베니아. 이곳은 지리적인 위치로 인해 게르만 문화, 라틴 문화 그리고 슬라브 문화의 복합적인 문화를 갖게 되었다. 이 나라에서 유일하게 내륙에 있는 섬 블레드는 티토의 개인 별장이 있고 합스부르크 왕가의 별장이 있는 곳으로 와인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블레드 호에서 바라보이는 130미터 높이의 블레드 성은 호수와 더불어 그림처럼 느껴지는 곳이다.
엘레나와 나는 블레드로 향하였다. 슬로베니아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목적지로 향하는 도로는 봄 한적한 느낌이 들었다.
엘레나가 나에게 말했다.
“슬로베니아는 특히 근대에 들어 짧은 기간 내에 많은 아픔과 변화를 겪은 나라인 것 같습니다. 이 나라는 1918년 12월 이래 다민족 국가인 베오그라드 왕국의 하나였는데 그 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한 공화국으로 지내오다가 1991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해체와 함께 내전을 거쳐 독립하였습니다. 정식명칭은 슬로베니아 공화국이고 발칸 반도 북서부에 위치해 있으며 면적은 20,273평방킬로미터 입니다. 정치형태는 공화제입니다. 알프스 산을 기준으로 보자면 슬로베니아는 그 동쪽에 자리 잡고 있는 산이 많은 고산 국가입니다. 이탈리아 및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접하는 알프스 산맥의 동쪽 끝에 해당하므로 국토의 대부분은 알프스 산지이고 그것은 스위스, 오스트리아와 비슷합니다. 오스트리아 짤츠부르크에서 슬로베니아 블레드로 가는 도로는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답니다. 그리고 슬로베니아는 동, 서, 남, 북 사방으로 다른 나라와 접해 있는데 북동쪽으로 헝가리와 크로아티아, 서쪽으로 이탈리아, 북쪽으로는 오스트리아, 남쪽으로는 크로아티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국토의 일부가 남서쪽으로 아드리아 해와 면해 있는데 이는 또한 크로아티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 연안 출구를 두고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트리글라브 봉(2864m)에서 발원하는 사바 강과 오스트리아에서 발원한 드라바 강이 슬로베니아의 북동부를 지나가는데 이 두 강은 모두 도나우 강의 상류에 해당됩니다. 한편 2004년 나토(NATO)와 EU에 가입하였습니다. 행정구연은 182개 주와 11개의 시로 되어있습니다. 대체로 슬러베니아의 기후는 서안 해양성 기후입니다. 자원을 보면 석탁, 갈탄, 납, 아연, 석유, 천연가스 등이 매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슬로베니아 국민은 6세기부터 이주해 온 남 슬라브족이며 슬라비아인의 83퍼센트 정도, 세르비아인과 크로아티아인이 약 4퍼센트 정도이며 기타 민족이 13퍼센트를 차지합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모두 남 슬라브족인데 언어는 슬로베니아인은 남 슬라브어군에 속하는 슬로베니아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크로아티아인과 세르비아인들은 세르보 크로아티아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종교를 보면 가톨릭교도가 58퍼센트, 이슬람교와 정교회가 합쳐서 5퍼센트 정도, 그리고 기타 종교가 37퍼센트 정도 된다고 합니다.”
엘레나는 이야기를 하다가 갈증이 난 듯하였다. 나는 엘레나에게 휴게소에서 커피나 아니면 다른 마실 것이라도 한잔하고 가자고 하였다. 엘레나도 갈증이 났는지 쉬어 가자고 하였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눈에 띄는 휴게소에 섰다. 엘레나는 물을 사서 마셨다. 나는 진한 에스프레소 더블을 마셨다. 테이블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는데 서로 눈이 마주치자 둘은 겸연쩍은 듯 웃었다. 한 15분 정도 흐른 후 나는 엘레나에게 그만 출발하자고 하였다. 차는 다시 고속도로에 들어서서 달렸다.
나는 차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 엘레나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지금 가고 있는 지역이 카르스트 지형으로 잘 알려진 곳인 거 아시죠? 특히 우리가 볼 포스토이나 동굴은 24킬로미터에 달하는 석회 동굴이라는 것도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실 그 동굴이 기대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엘레나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어느 장소를 가든지 역사나 문화를 이해해야만 그곳을 바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우에 따라 그런 것과는 상관없는 여행도 있지만요. 슬로베니아는 발칸에 있는 아주 조그만 나라입니다. 이곳의 역사를 이야기하자면 6세기에 게르만 민족의 이동과 함께 이동 남하한 남 슬라브족 중 일부가 사바 강 유역을 중심으로 627년 슬로베니아 왕국을 건설하였습니다. 바로 우리가 슬로베니아인이라고 부르는 민족이 바로 이들의 후손입니다. 이들은 8세기에는 바이에른과 프랑켄에 복속되고 그 후에는 카롤링거 왕조의 프랑크 왕국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합니다. 그리고 서유럽 문화권에 편입됩니다. 그리고 10세기에는 신성로마제국, 14세기에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 후 슬로베니아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하에 있었는데 그들이 전쟁에서 패하자 그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임을 알아차리고 남 슬라브족임을 내세워 오스트리아에 대항하는 민족해방운동에 가담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같은 남 슬라브족인 세르비아, 크로아티아와 함께 종교적 다민족국가인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1918년 12월 베오그라드에서 정식으로 건국을 선포합니다. 이른바 베오그라드 왕국의 영토에는 과거 오스트리아로부터 독립해 있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를 비롯하여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크로아티아, 보이보디나, 달마티아, 마케도니아와 함께 슬로베니아도 편입되었습니다.”
나는 엘레나의 말을 이어서 이야기하였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엘레나와 나는 서로의 말을 이어받아 이야기를 하곤 했다.
“베오그라드 왕국은 1929년에는 유고슬라비아로 불렸습니다.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독일에 점령됩니다. 하지만 대전 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이 성립되고 그 일원이 됩니다. 그러다가 1990년 7월에는 주권선언을 하며 12월에는 국민투표를 하였는데 90퍼센트가 독립을 지지하는 결과가 나옵니다. 그래서 1991년 6월 독립을 선언했지만 연방을 유지하려는 세르비아와의 대립이 격화되어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군이 슬로베니아를 침공하고 격렬한 전투가 벌어집니다. 그러나 곧 휴전으로 10월에 연방군이 철수합니다. 그러한 전투가 있고 난 후 독일이 1991년 12월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승인하였고 1992년 1월에 EU도 독립은 승인하였습니다. 같은 해 5월에는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함께 UN에 가입하고, 8월 신 유고슬라비아연방이 슬로베니아의 독립을 승인하여 12월에는 독립 후 최초의 대통령 및 국회의원 선거를 실시하였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슬로베니아는 현재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엘레나는 나에게 슬로베니아의 지리적 위치는 슬로베니아 문화에 아주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중요하다고 하였다. 나는 왜 그런지를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발칸 반도의 서북쪽 끝이라는 지리적 위치로 인해 슬로베니아는 복합적인 문화를 가지게 됩니다. 게르만 문화, 라틴 문화, 슬라브 문화 요소가 서로 혼재됩니다. 그래서 이들은 민족의식과 더불어 학문과 문화의 수준도 높아지게 됩니다.” 하고 엘레나는 나에게 말하였다.
나는 엘레나에게 그러한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러한 예를 들자면, 먼저 16세기에 종교개혁 운동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슬로베니아인들의 문자 해독 능력과 문화에 대한 인식을 향상시킵니다. 그리고 16세기에는 슬로베니아어에 아주 큰 변화가 일어나는데 우선 첫 번째는 1518년에 주리즈 달마틴(Jurij Dalmatin)이 성경을 슬로베니아어로 최초로 번역한 것이고 또 다른 사건은 아담 보히릭(Adam Bohiric)이 슬로베니아 문법서를 저술하여 문화적 기초를 세운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 슬로베니아에서는 과학이 크게 발전합니다. 예를 들면 상크토리오 상크토리(Sanctorio Sanctori)는 체온을 재는 정밀한 측정 수단을 발명하였으며, 19세기 초반 슬로베니아는 최초로 증기 에너지를 소개하였는데, 1819년에는 최초의 산업용 증기엔진이 만들어졌습니다. 1897년 물리학 교수인 알빈 벨라(Albin Belar)는 세계 최초로 현대 유럽 지진관찰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엔지니어인 프랭크 웰스(Franc Wels)는 세계 최초로 비행 날개를 개발하여 1906년 오스트리아 헝가리 간 무동력 비행에 성공하였습니다. 1923년 물리학자 프리츠 프레글(Fritz Pregl)은 유기화학 분야의 미세분석 기술로 슬로베니아 과학자로는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하고 엘레나는 작지만 아름다운 나라인 슬로베니아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이렇게 이야기하다 보니 우리는 블레드에 거의 다 도착하였다. 고속도로를 빠져 나오니 블레드 호수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이곳이 티토와 합스부르크 가문의 여름 별장이 있었던 곳이다.
화이트 와인이 유명한 곳 블레드. 율리안 알프스의 작은 호수, 슬로베니아의 유일한 섬 그리고 호수에서 올려다 보이는,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성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호수와 섬에 나는 엘레나와 함께 도착하였다. 엘레나와 나는 우선 예약한 호텔에 가서 체크인을 하고 걸어 나왔다. 호텔은 호수와 5분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걸어 나오면서 나는 엘레나에게 슬로베니아의 상징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엘레나는 모른다고 하였다.
“슬로베니아의 상징은 율리안 알프스 산맥의 최고봉인 트리글라브(Triglav) 산입니다. 높이가 2,864미터인데 슬라브인들은 이 산을 하늘, 땅 그리고 지하세계를 다스리는 머리가 셋 달린 신의 집이라고 믿었다고 합니다. 그 신의 이름이 트라글라브이고 거기서 산의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합니다.”
블레드
130미터 높이의 절벽에 있는 블레드 성, 잔잔한 호수와 아흔아홉 개의 계단, 16세기에 지어진 50미터 높이의 하얀 종루가 있는 성당, 그 성당의 ‘소원의 종’ 그리고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타야만 하는 사공이 노 젖는 전통 배 ‘플레트나’. 이것이 블레드의 이미지다.
호텔에서 나와 천천히 블레드 호숫가를 거닐었다. 호수에서부터 약 130미터 높이의 바위 절벽 위에 세워진 블레드 성은 호수와 더불어 그림같이 느껴졌다. 엘레나와 나는 호수가 보이는 의자에 앉아 블레드 호수와 산을 바라보며 말 그대로 평화로움을 느꼈다.
나는 엘레나에게 이 호수에 관하여 이야기해 주었다.
“호수의 최대 길이는 2,120미터, 최대 너비는 1,380미터, 그리고 깊이는 30.6미터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호수는 보히니 빙하가 후퇴하면서 생겼다는군요. 또한 1966년, 1979년, 1989년 그리고 2011년에 세계 조정선수권대회가 열렸던 곳이랍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동안 엘레나는 정면에 있는 섬을 바라보고 있었다.
호수 정면에 있는 블레드 섬에는 전설 속의 소원의 종이 있다고 한다. 나는 엘레나에게 섬에 가보자고 하였다. 나는 아래쪽에 정박해 있는 배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 사공과 가격을 흥정하고 배를 탔다. 사공이 노 젓는 ‘플레트나’라는 배였다. 이 배는 이곳의 전통 배로 나룻배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배를 타는 것이 수영을 해서 가지 않는 이상 섬에 가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 호수에서는 동력을 사용한 배를 이용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18세기부터 이어진 뱃사공일은 오직 남자만이 할 수 있다고 한다.
사공은 배를 열심히 저었다.
나는 엘레나에게 ‘소원의 종’에 얽힌 이야기를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엘레나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블레드 섬에 있는 성당은 전설 속 소원의 종이 있어 많은 이들이 꼭 찾는 곳이라고 합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서기 약 1500년쯤 이곳의 성주는 크레이그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주 사악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폭정을 일삼았던 그는 어느 날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 후 영주의 젊은 과부인 플록세나라는 여자가 새 성주가 되었으나 그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녀는 사재를 털어 그녀의 남편을 애도하기 위해 커다란 종을 만들었답니다. 그리고 그 종을 성당에 매달려고 했다는군요. 하지만 풍랑이 전혀 있을 것 같지 않은 이 호수에서 나룻배를 타고 가던 중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그녀가 만든 종과 사공이 호수에 빠졌고 사공은 죽었습니다. 그 후 그녀는 모든 것을 포기, 정리한 후 로마에 가서 수녀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교황이 블레드 섬에 종을 달았고 그때부터 그 종은 소원의 종이 되었다고 합니다. 소원이 있든 없든 블레드에 오면 누구든지 종을 쳐볼 생각으로 찾아가는 곳이 되었다는군요. 그리고 이러한 전설은 매일 저녁부터 다음날 해가 뜰 때까지 재현이 된다고 합니다. 날이 저물면 블레드 성 아래 암반에 비춰진 조명은 플록세나의 얼굴을 만드는데 이것은 젊은 여인의 얼굴부터 할머니의 얼굴가지 여러 모습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동안 엘레나는 손으로 섬을 가리켰다. 섬에서는 결혼식이 있는 것 같았다. 블레드 섬의 성당은 주말에 신혼부부들이 결혼식을 올리는 장소로 이용하기도 한다. 배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블레드 성과 알프스가 어우러지는 경관이 무척이나 아름답게 느껴졌다.
배가 거의 도착할 무렵 내가 엘레나에게 말하였다.
“배가 도착하면 아흔아홉 개의 계단을 올라갑니다. 16세기에 지어진 50미터 높이의 하얀 종루가 보이죠. 종루가 있는 성당에 바로 소원의 종이 있습니다. 원래 이 성당이 있는 자리는 슬라브인들이 지바 여신을 모셨던 곳이랍니다. 8세기에 들어서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개종하면서 성당이 들어선 것이죠.”
우리는 성당으로 가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가 소원의 종을 울렸다. 생각보다 종을 치는 게 쉽지는 않았다. 밖으로 나와 천천히 섬을 걸었다. 잔잔한 호수, 벤치 그리고 멀리 보이는 성과 어울리는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섬에서 차를 한잔하자고 하였다. 엘레나는 이곳에서 차를 마시는 것보다 블레드 성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와인을 한잔하자고 하였다. 엘레나와 나는 섬을 한 바퀴 돌고 나서 다시 배를 타고 그곳을 나왔다.
배에서 내린 엘레나와 나는 걸어서 성에 가기로 하였다. 생각보다는 멀었다. 차가 다니는 길을 따라 걸어서 성 입구에 올라가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언덕을 올라가는 게 좀 힘들었던 것 같다. 언덕에 올라 주차장을 조금 더 걸어 올라가 입구를 지나 입장권을 구매한 후 고딕 아치로 된 성 안으로 들어가면서 이 성이 경사진 언덕에 있는 이유를 알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올라가는 길에는 와이너리가 있었다. 카프치노 수사복을 입고 있는 수사가 한 분 있었다.
나는 엘레나에게 이 성의 유래에 관하여 이야기해 주었다.
“이 성은 11세기경 독일 황제 하인리히 2세가 블레드 지역을 브릭센(Brixen)의 엘부인 대주교에게 선물로 주면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로마네스크 탑 하나만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중세 말에는 많은 탑들이 만들어졌고 성벽은 더 견고해졌습니다. 입구의 아치는 고딕 양식으로 만들었지만 전체적으로 다른 부분은 바로크 양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성은 성벽이 방어할 수 있는 아주 적합한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엘레나와 나는 성 안으로 들어갔다. 성 안은 몇 개의 계단을 통해 두 개의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아래쪽에 있는 마당은 바깥쪽 건물을 포함하고 있었으며 기념품 가게와 레스토랑이 있었다. 위쪽에 있는 아쪽 마당에는 이곳 블레드 지역에서 발굴한 유물과 역사적인 기록, 그리고 이 성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가구들을 전시해 놓고 있는 박물관과 그리고 성당이 있었다. 엘레나와 나는 박물관과 성당을 둘러보았다.
엘레나는 나에게 조그마한 이 성당에 관하여 물어보았다. 얼핏보면 성당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성당은 16세기에 만들어진 것이고 18세기경 바로크 양식으로 개조되었습니다. 성당 안의 벽면에는 퇴색된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제단 뒷면에 그려진 그림은 블레드 지역 땅을 기부한 독일 황제 하인리히 2세와 그의 아내 쿠니군다입니다.”
엘레나와 나는 박물관을 보고 성당에서 나온 다음 성벽으로 가서 호수를 내려다보았다. 호수는 정말 한 폭의 그림처럼 느껴졌다. 엘레나와 나는 마당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엘레나에게 와인을 마시자고 하였다.
“이곳에선 로마인들보다도 더 오래전에 와인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로마에 와인을 공급하는 포도원이 있었던 곳이 슬로베니아이기도 합니다.”
엘레나와 나는 화이트 와인을 한 잔 시켰다. 그리고 나는 호수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해 질 무렵의 풍경이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