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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의 충동에서 자유로워 지는 절제수업, Discipline is destiny
조선일보 책 소개 칼럼에서 우연히 읽게되어 제목이 좋고 일상생활 하는 가운데 우리는 얼마나 정신적으로 절제에 취약한지 평소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 구해 읽게되었다. 3분야로 나누어서 편집된 저자의 의도, 육체, 기질 , 영혼으로 되어 있다.
고대세계에서 미덕은 용기, 절제, 정의 , 지혜등 4가지 핵심요소로 이루어져 있다.스토아 철학에 기반을 두고 이책은 서술되고 있다.네가지 미덕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고 한다. 정의롭게 행동하려면 언제나 용기를 내야하고 무엇을 고르는 것이 가치있는 선택인지를 판달할 지혜가 없다면 절제할 수도 없다. 정의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용기가 무슨 소용이며, 우리가 절제할 수 있게 돕지 않는다면 지혜는 또 무슨 소용이겠는가 ?
1부 육체
육체는 우리의 영광이자 장애물이며 근심거리다.
성경에서 성 바울은 코린토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자 편지를 썼는데 그 편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자신의 육신을 통제하고 지배해야 삶에서 난파하지 않는다."
스토아 철학자들에 따르면 로마는 전통적으로 인내,검소한 식사, 그리고 무질적 소유물의 소박한 사용을 중시했다고 한다.
풍요로운 세계에 사는 우리는 각자 자기 욕망 및 충동과 씨름해야 하며 , 삶의 우여곡절에 대비해 자신을 단련하고자 끝없이 전투를 치러야 한다.
우리가 선택한 길을 가려면 반드시 있어야 할 굳건함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먼 길이라도 갈 수 있는 능력, 길을 걷다가 만나는 막다른 골목이나 신기루를 피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우리가 자기 육체를 장악하지 못한다면,누가 그리고 무엇이 우리 육체를 장악하게 되겠는가? 외부 셁이 게으름이 역경이 불확실성이 그리고 쇠퇴가 잠식하고 말 것이다.지금뿐 안라 앞으로도 계속 우리가 우리 몸을 지배하고자 하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 세상에 온 까닭이기 때문이다. 쉬엄쉬엄하는 것이 편해 보이고 쾌락에 빠져드는 것이 더 즐거워 보이더라도, 길게 보면 쾌락을 좇는 것이 훨씬 더 고통스럽다.
빨리하는 것은 쉽다. 그것이 항상 최고는 아닐 뿐이다. 군대에서는 느린 것이 순조로운 것이고, 순조로운 것이 빠른 것이라는 말을 즐겨한다. 제대로 하면 빨리된다. 너무 빨리 하려 하면 제대로 안 된다. '늙고 걸음이 느린 경주마'는 바위였다. 루르기 시작하면 그 무엇도 막아설 수 없는 바위 말이다. 그것이 바로 천천히 서두르는 것이다.에너지에 절도를 다하고, 노력을 장확히 계산하며 , 열의에 통제력을 더한다. '천천히 하면 모든 것을 장확하게 하게 된다' 이 말은 지도자의 임무뿐 아니라 근력 운동에도 , 달리기와 글쓰기에도 적용된다.
우리가 어떤 일에 전념할 때 , 강한 추진력으로 돌진할 때,이기고 싶을 때,자기 절제는 주로 일찍 일어나 더 많은 일을 하는 방식으로 발휘된다. 그러나 때로는 휴식하는 것이 더 어려운 선택이자 더 휼륭한 자제의 실천이다. 이책은 스토아 학파의 창시제 클레안테스를 비롯해서 카토 세네카 에픽테투스 소크라테스 등 수많은 인물을 통해서 증거한다. 그리고 야구선수 루게릭 정치인 루스벨트 대통령 ,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2세 처칠 등 실화를 통해서 이야기를 전개해서 교훈을 주는 것이 감동적이다.
우리를 더 취약하게 하고, 우리 경력을 짧게 단절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휴식하고 회복하는 데 규율이 없고, 자시을 너무 힘들게 하고 너무 빠르게 몰아 붙이고,과도하게 훈련하고, 과로하여 잘못된 경제 활동을 하는 것이다.우리는 자신을 위해 일의 과부하를 경계해야 한다. 절제는 '쾌락 없는 삶'을 의미하지 않는다.우리가 자기 절제를 실천해야 하는 주된 이유는 더 오래 살려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가 죽는 존재다. 이 말이 중요한 것은 누구나 죽는다는 뜻이어서만이 아니라 살려면 먹고, 자고,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그리고 우리가 이런 일을 더 잘하고 몸을 잘 보살필수록 우리는 더 건강해진다.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에 대가를 치른다.그리고 자신이 방치하고 살아간 결과, 도달하게 된 상태에 대해서는 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대가를 치르는 방식은 단순하다. 바로 자신이 살아가는 싦으로써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절제, 자제는 자신을 통제하는 일을 뜻한다.
그 여정의 첫 단계가 바로 육체다. 우리는 육체를 엄ㅁ격히 다루고, 억제하며, 장악하고, 하나의 사원처럼 여긴다. 왜 그렇까 ? 육체가 정신을 장악해서 지배하지 않도록, 정신을 고갈시키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 육체를 억제하는 것은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자신을 자유롭게 하려는 것이다.
절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수단이며, 쇠사슬을 푸는 열쇠다. 즉 자신으 ㄹ구원하느 ㄴ방법이다. 우리는 어려운 길을 선택해야한다. 길게 보면 그것이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2부 기질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건강한 육체와 기지 넘치는 정신,유순한 성질을 지닌 사람이다.
육제는 자기 절제를 싱행하는 여러 매체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역사를 살펴보면 경영자,예술가,운동선수 등 자기 육체는 완전히 통제했지만 다른 모든 면은 엉망진창이었던 재능 있는 사람이 넘쳐난다. 식생활과 기상 시간의 규율을 아무리 잘 세웠다고 해도 ㅈ의가 산만하거나 편건이나 부정적인 기분에 휘둘리거나 유혹이나 충동, 본능에 탐닉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무절제는 잠재려을 온전히 실현하지 못하게 하고, 가능성을 좇아도 영원히 이뤄지지 않는 비참한 운명의 저주를 내린다.
진정한 자기 통제는 행동 방식의 절제뿐 아니라 이 혼란스러운 세계에서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처신하는 방식의 절제도 의미한다. 후자의 절제가 더 중요하다. 미국 격사상 유일한 4선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지켜본 한 사람은 언젠가 루스벨트를 두고 " 이류의 지능과 일류의 기질"을 지닌 사람이라고 했다. 병이 루스벨트의 몸에서 무엇을 앗아갔느지 생각해보면, 그말의 진실은 더욱 분명이 드러나다.기질이 모든 것이다.우리의 머리와 심장이 한데 모여 삶을 관장하는 일종의 명령 체계를 이룬다. 수백만 년의 진화가 쌓이고 쌓여 우리에게 이런 선물을 전해 주었다.이 선물을 도구로써 잘 활용할 것인가 아니면 꼭두각시처럼 흐느적 대면서 낭비할 것인가? 결정은 우리의 몫이다.
어쨌거나 직장으 ㄹ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둘 수 있을 정도의 자산이 정말 그렇게 휼륭한 목표일까 ? 누구에 대새서도 무엇에 대해서도 신경 씆 않아도 될 만큼 많은 돈을 갖는 것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 그것은 미덕이 아니라 유치함이다.우리에게 정마로 필요한것은 " 고맙지만 사양합니다. 그 일은 안 하는 것이 낫겠꾼요" 라고 정중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적당히 편안하게 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이다. 돈 때문에 자기 가치관과 상반되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을 계속 할 수있을 만큼의 돈이 있다면 충분하다.
엘리자 베스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그녀가 지킨것은 경계였다.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 자기가 할 수 없는 범위 그 한계를 명확히 하고 접근을 했던 것이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 변화는 하나의 상수가 되었어요. 절제의 범위를 점점 확장하는 게 변화를 관리하는 일이 되었지요"" 상황이 또같이 유지될 것 같다면, 상활을 바꿔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자제는 적응하는 능력, 어떤 상황이든 잘 활용하는 능력, 어떤 상화에서나 성장과 향상의 기회를 찿아내는 능력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든 자극과 반응, 모든 정보와 결정 사이에 공간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것은 작으 ㄴ틈이지만, 우리 철학으 ㄹ집어넣을 여지는 충분한 공간이다. 그 공간을 사용할 것인가?사고하고, 검토하고,더 많은 정보를 기다리는 데 그 공간을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제일 처음 받은 인상,해로운 본능, 오래된 관습에 굴복할 것인가? 이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멈추는 것이다.
성경에 따르면 우리는 인내로써 다름 아닌 우리 영혼을 얻는다고 한다. 완벽하게 해내려는 강박은 나무만 보늘 숲을 놓치게 한다. 결국 가장 큰 손실은 해야 활 일을 끝내 실행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분이 상했을 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잔인한 말을 하려고 하거나 몇 초 동안의 유혹 때문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신뢰를 배신하려고 하는 자신을 저지하라는 것이다. 우리도 화가 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화에서 촉발된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좋은 기분을 느끼거나 적당히 괜찮은 사람이 되는데 꼭 성취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 사실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약간의 음식과 물, 우리가 도전해볼 만한 일, 역경속에서도 차분한 마음, 잠, 단단한 일상, 우리가 헌신할 대의,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어떤 일 정도만 있으면 된다. 나머지는 모두 곁가지일 뿐이다.
3부 영혼
자신을 지배할 때 우리는 백성이 아닌 주권자의 책임이 주어진다.
삶이라는 혼돈 속에서 평온과 균형을 이룰 수 있겠는가 ? 온갖 유혹에 둘러싸인 채로도 그럴 수 있겠는가 ? 군중이 환호하든 조올하든 상관없이 할 수 있겠는가 ? 참아야 할 것이 무엇이든, 요인되는 것이 무엇이든,사람들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든 상환없이 말이다.
이 희소하고 초월적인 상태는 주인의 차원이다ㅣ.이는 정신적으로 윷체적으로,온갖 형태로 늘 자신을 지배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든 그 자신마저 넘어서는 도구를 발견하고, 세상에 내 놓을 수 있는 더 많은 것을 찿아내며, 자기 자신에게서 더 많은 것을 끌어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영혼의 위대함이다.
운명의 순간이나 거대한 난관이 닥쳐서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때 ,인생에서 가장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에서 육첼와 마음과 정신은 바로 이 위대함의 영역에 집결한다.이 위대함은 모든 희생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우리가 무엇으로 만들어진 존재인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세상을 소유하면서도 우리 영혼을 지키는 일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절제라는 단어ㅡ이 어원은 학생을 뜻하는 라틴어 디스키풀루스앋. 이 단어는 학생의 존재뿐 아니라 스승의 존재도 내포한다.이것이 바로 안토니누스와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의 관계에 담긴 아름다움이다.전자는 사리사욕에 휘둘리지 낳고 자기 통제와 친절로 스승이자 조언자가 되었따.후자는 배루려는 의지와 겸손으로 그러한 자기 절제와 덕성이 있는 스승의 제자가 되었고 ,그 결과 세상을 떠난 뒤에는 신같은 존재로 숭상받았다.
마르쿠스가 추구했던 운명은 무엇일까 ? 물론 불가능한 이상이겠지만, 마르쿠스가 평생에 걸쳐 한 일은 "쾌락이나 고통에 전혀 흔들리지 낳고, 분면한 목적에 따라 행동하며, 언제나 정직하고 가장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이 하거나 하지 않는 행동에 연연하지 않는"상태 또는 그가 다른 글에서 묘사한 것처럼 " 자신을 전적으로 신회하고 운명의 주사위 굴리기 앞에서도 굳건히 흔들리지 않는 " 상태를 향해 나아가려는 움직임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나 자족하는 마음, 목적의식,명료함, 강인함이야말로 바로 절제다. 거기 도달하는 길은 하나 뿐이며,그것은 순간적 통찰로 이를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자존심을 옆으로 밀어놓고 패배를 인정할 수 있는가? 타협 할 수 없는 차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 때가 되면 떠날 수 있는가 ? 떠나지 않는 방법이 더 유혹적일 때조차 그럴 수 있는가?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을 때, 우리도 그와 더불어 무너지기를 모두가 지켜보며 기다리고 있을 때, 그때도 자신을 온전히 유지 할 수 있는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어떤 경주에서 뛸 것인가 ? 그 경주에서 누구에게 이기려고 노력할 것인가 / 그리고 그것이 최선인가 ? 우리가 마음속에 두고 항상 생각해야 하는 질문이다.
자기절제가 없다면,자신이 어느 정도나 이룰 수 있을지,자기 성공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을지,용기와 정의는 물론 심지어 지혜까지도 도가 지나칠때 얼마난 빨리 악덕으로 변질될 수 있을지 생각해보라. 유일한 길은 자기 절제다. 그것은 모든 충동에 맞서 조절하는 힘이다. 키케로는 말했다."자기 통체로써 용기를 보완하라. 그러면 행복한 삶을 위한 모든 재료가 네 것이 도리니, 그러면 용기가 괴로움과 두려움을 막아주고, 자기 통제가 쾌락과 무절제한 갈망으로 부터 너를 자유롭게 한다."
자기통제는 물리적으로 실현해야만 하고, 정신적으로 구현해야한 한다. 그리고 중요한 순간이 닥쳐왔을 때 당당하게 나타내야 한다. 그것이 어떤 모습이 될지는 우리의 결정에 달렸다. 단 한 번이 아니라 평생 수천 번에 걸쳐 그 순간이 찿아올 것이다. 과거와 미래만이 아니라 오늘 , 바로 지금도 말이다. 어떻게 하겠는가 ? 의존할 것인가, 독립할 것인가 ? 위대해 질 것인가 , 몰락할 것인가 ? 절제는 운명이다. 절제가 모든 것으 ㄹ결정하낟.그렇다면 절제를 선택할 것인가 ?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스토아 학자들 뿐만이 아니라 정치인 들을 소개시키며 절제가 어떤 상황에서 나와야 되는지 왜 해야 되는지 우리의 운명은 절제에 달려있다고 한다. 이 책은 작가가 시기를 정해놓고 출발한 마음이 어떻게 시작되고 탈고를 했는지 그 마음을 적라하게 솔직하게 표현함으로써 작가의 심적인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한지 표현하는 말미의 글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여름휴가를 가면서 두권의 책중에 같이 가지고 갔던 책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