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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 주(客主) 김주영
줄거리 임오군란이 일어나기 이태 전인 고종 17년 광주(廣州)송파장(送波場)의 으뜸가는 쇠살주였전 조성준은 천봉삼(千峰三)과 최들이와 깍정이 몇 사람을 데리고 문경의 새재로 도망간 아내를 찾아 나선다. 그곳의 상푸실이란 뜸마을에 숨어 사는 아내를 찾아 분풀이를 했으나 데리고 갔던 깍정이들의 분탕질로 천봉삼과 최돌이는 조성준과 헤어지게 된다. 부상당한 천봉삼은 새재에서 숫막을 경영하고 있던 매월이란 무녀(巫女)의 간병으로 기력을 되찾게 된다. 사형(私刑)을 저지른 죄로 쫓기는 신세가 된 그들은 송파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경상도 내륙으로 내려가다가 안동에 당도했다. 안동에서 천봉삼은 그곳의 포목도가의 고명딸인 망문과부 조소사와 인연을 맺는다. 조소사는 서울시전의 대행수인 신석주(申錫周)의 첩실로 내약이 되어 서울로 떠나게 되었으나 쫓기는 입장이면서 장돌림의 선길장수 신분인 천봉삼으로서는 달리 궁리를 터볼 수 없었다. 밑천을 털어서 포목을 거둔 일행은 발길을 옮겨 경상도 남쪽 지방으로, 하동포구에서 다시 전라도 지방으로 나가면서 그 지방의 토산물을 환매하여 약간의 길미를 보게 된다. 천봉삼 일행은 내륙과 연안의 민간들이 주림과 핍박을 겪고 벼슬아치와 토호들의 학정과 횡포에 시달리고 있는 것을 직접 목도하게 되고 의리를 중하게 여기는 황해도 사람 선돌이라는 선길장수를 만나 의기투합한다. 전라도 내륙을 거친 그들은 파시(波市)로 이름난 강경포구에서 강경파시의 실권을 잡고 이는 김학준과 충돌하게 되면서 많은 타격을 받게 된다. 천봉삼은 강경에서 어릴 때 헤어졌던 누이 천소례를 만나게 되지만 그는 김학준의 첩실이 되어 있었다. 거기서 거의 회생이 어려운 조성준을 다시 만나게 되고 서울시전의 대행수인 신석주와 다시 충돌한다. 상리와 정의에 얽혀 난전꾼들과 시전 상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모략은 강경에서부터 시작된다. 송파로 돌아온 그들은 마방(馬房)을 재건하면서 다락원과 송우점, 철원, 원산 사이를 잇는 상로(商路)를 개척하고 서울 성 내의 시전과 첨예하게 대립된다. 그 사이에 최돌이 등 동료 보부상들은 천봉삼과 유명을 다리하게 되고 천봉삼은 신석주의 첩실이 된 조소사와 애틋한 정분이 쌓여 간다. 그 동안 천봉삼에게 정분을 거졌던 매월은 민비(閔妃)와 교분을 두게 되고, 조성준과 강경에서 사귀게 되었던 이용익(李容翊) 역시 임오군란을 계기로 해서 민비와 가까운 사이가 된다. 궁궐의 내탕금 사용의 실권을 쥐게 된 이용익은 시전과 향시의 난전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충돌과 모략을 조정하고 화해시키려고 애쓰지만 여의치가 않다. 일본의 내륙 침투로 향시 상권을 위협받게 된 나전꾼들은 쇄국을 고수하는 흥선대원군의 정책에 자연 동조하게 되고, 조정과 그에 따르는 시전 상인들과는 대립의 조짐이 조금도 수그러들 줄 모른다. 그러한 와중에 천봉삼은 시시각각으로 자신의 신변에 위협을 느끼게 되면서 애석하게도 결국 그를 찾아온 조소사를 잃게 된다. 그러나 천봉삼은 조소사의 몸종이었던 월이의 헌신적인 사랑을 얻게 되고 조소사가 낳은 자신의 피붙이 역시 월이에 의해 양육된다. 그러나 천봉삼은 애첩을 빼앗긴 신석주의 추적을 뿌리치지 못하고 결국은 효수를 당해야 할 처지에 이른다. 이용익과 천소례가 나서서 구명운동을 벌이고 사랑의 참뜻을 깨닫게 된 진령군(매월이)이 또한 민비를 통해서 사면의 길을 터주게 됨에 따라 천봉삼은 구명된다.
소설 첫부분 <간혹 탈자나 오자가 있을 수 있음을 감안하시고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제 1 부 外 場 (上) 제 1 장 숙초행로(宿草行露) 샛바람 사이를 긋던 빗방울이 멎자 금방교교한 달빛이 계곡의 새밭으로 쏟아져내렸다. 계곡에 널린 돌과 바위들이 차갑게빛났다. 이경(二更)이나 되었을까, 신선봉(神仙峯)의 협곡을 내려쏟는 바람사이에 간간이 여우 울음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계곡을 끼고 새재[鳥嶺]로 기어오르는 에움길을 봉산 수숫대같이 키가 멀쩡한 불상놈 하나가 봉발(蓬髮)을 하고 열고나게 기어오르고 있었다. 보아하니 행색의 초라함은 양주골 홀아비 꼴이었지만 행전(行纏) 하나는 단단히 쳐져 있었고, 어디서 잡았는지 어깨엔 토끼 한 마리가 밀치끈에 꽁꽁 묶여 매달려 있었다. 사내는 부지런히 길을 줄이다가 문득 개천으로 내려가는 자드락길로 바꾸어 잡았다. 개천에는 낡은 복찻다리가 가로놓여 있었고, 복찻다리 건너 기슭에는 박달나무숲이 무성했다. 멀리 들리던 여우 울음소리가 퍽 가까워졌는데도 봉발의 사내는 개의치 않는 듯 다리를 성큼성큼 건너가더니 어깨에 메었던 토끼를 내려놓고 바윗등걸에 풀썩 걸터앉았다. 북두갈고리 같은 손을 동저고리 속으로 시작했다. 곰방대를 피워 물고 사내는 달빛이 하얗게 내려앉는 계곡의 돌밭으로 눈길을 주었다. 여우 울음소리가 금방 사내가 건너왔던 계곡 건너편 여울목 어름에 와 있었다. 앉은 자리에서 곰방대를 털고 사내는 신들메를 고쳐 매었다. 박달나무숲을 헤치고 나가자 다시 잡목숲이 나타났다. 잡목 가지들이 사내의 발길에 휘어져 눕혔다간 다시 떨리며 일어났다. 산새가 놀라 밤하늘로 날아올랐다. 잡목숲 저쪽엔 밤에 봐도 시커먼 큰 바위 하나가 산자락 옆으로 불거져나와 있었고, 그 바윗등걸 뒤로부터 사람들의 말소리가 바람결을 타고 두런두런 들려왔다. 낌새를 챈 사내가 일어서더니 금방 잡목숲을 헤치고 나오는 사내 앞으로 잘똑거리며 걸어왔다. "봉삼인가?" "예." "늦었네그랴." "예." 둘은 잠시 동행이 되어 바윗등걸 뒤에 있는 숯막까지 걸었다. 봉삼은 어깨에 메었던 토끼를 숯막 앞 모닥불가에다 풀썩 내려놓았다. 모닥불가에는 역시 동저고릿바람에 패랭이를 쓴 장한(壯漢) 셋이 삿자리를 깔고 앉아 어한(禦寒)을 하고 있었다. "객쩍은 소리들 그만 하고 어서 서두르게." 그중 건장하게 보이는 불혹(不惑)의 목에 걸린 밀치끈을 풀기 시작했다. 숯막 옆에 있는 다복솔에다 대고 소피를 끝낸 봉삼(奉三)이가 어깨를 으스스 떨며 모닥불로 다가오자, 앉았던 축들이 삿자리 한곁을 내주었다. 불혹의 사내가 넌지시 물었다. "어떻던가?" "내왕은 벌써 끊긴 지 오랩니다." "워낙 산중이니까." 옆에 있던 장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옆에 앉았던 축이 느닷없이 샅으로 손을 집어넣더니 수퉁니 한 마리를 꺼내 모닥불로 던졌다. 금방 탁 터지는 소리가 들리고 엷은 누린내가 풍겼다. "담장은 역시 그대로지?" "예." "글쎄, 그게 좀 마음에 걸립니다." "뭐가?" "집 근방에 외주물집들이 많아요." 모닥불가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행수(行首)로 보이는 사내가 곰방대를 모닥불에 깊숙이 꽂아 불을 당겨 물었다. "축시(丑時) 어름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네." 봉삼이가 삭정이로 모닥불을 거두고 있다가 행수를 쳐다보며 말했다. "마을에서 곧장 샛길로 들어서지 말고 샛길 못미처 안돌잇길로만 올라오면 감쪽같지요." "그렇게 하세." "쌩이질은 없을 거구요." "요기하고 한잠 자두세." "인시(寅時)까지는 추달을 마치고 여길 뜨세." 모닥불엔 금방 고기 굽는 누린내가 낭자하게 피어올랐다. 소싯적엔 송파(松坡) 객줏집의 감상칼자[熟手]였던 자춤발이 최돌이(崔乭伊)가 육편(肉片)을 일매지게 발라내는 솜씨가 보통 아니었지만 어지간히들 허기가 들었던 모양으로 제법 중강아지만한 토끼 한 마리가 다섯 사람의 장한들에겐 요기(療飢)랬자 언 발에 오줌누기였다. "옴오른 덕분에 그것 긁는다고 그놈 때문에 고기맛은 봤어." 패랭이를 벗어 삿자리에 던지며 자춤발이 최가(崔哥)가 짧은 혀로 잇몸을 핥았다. 봉삼이를 따라 개천을 건너왔던 여우 한 올라선 숯막께를 내려다보며 몇번인가 길게 목놓아 울었다. "저것들이 어디서부터 따라왔던가?" "마을 초입에서 만났지요." "잉걸불을 덮게." 일행이 모닥불을 덮는 사이, 행수는 행전을 풀어 속에 넣어둔 쇠좆매를 어름하여 만져보았다. 그리고 다시 행전을 단단히 치고 숯막으로 들어갔다. 봉삼이 혼자만 불가에 남기고 넷은 행수를 따라 숯막으로 기어들어 잠을 청하기로 한다. 그러나 밖에 있는 봉삼이는 물론이거니와 자리를 봐서 숯막에 누운 행수 조성준(趙成俊)을 비롯한 세 사람의 장한들도 잠들을 청할 수가 없었다. 모두들 삼경(三更)을 넘고 있었는데도 남모르게 뜬눈들이었다. 가슴들이 두근거렸고 그 두근거림이 자정을 넘어가선 더욱 심사를 괴롭혔다. 만약 이번 일이 만에 하나 송도 오이장수 꼴이 되다면 고을 관아로 끌려갈 것은 뻔한 일일 테고, 주리압슬에 단근질로 모진 닦달을 겪으며 섭산적이 되도록 맞아야 할 판국이었다. 아니 단근질은 고사하고 세상 다시 볼 가망조차 없어질지도 몰랐다. 이 거사를 맡아 나선 게 크게 일을 저지른다는 후회도 감돌았지만 삼경을 넘어 사경에 이르자, 밖을 지키던 봉삼이가 서리 맞은 동저고리를 후줄근하게 늘어뜨리고 숯막 안으로 기어들었다. 봉삼이 말이 떨어지자, 잠든 줄 알았던 네 사람은 뱀 만난 여치들처럼 화들짝 놀라 일어나 앉았다. 숯막 속은 찝찔한 냉기가 감돌았고 온새미 통나무로 떠다 붙인 문짝은 습기로 젖어 빽빽하였다. 밖으로 나오니, 달은 구름에 싸여 보이지 않았고 모닥불은 다시 환하게 피어 있었다. 일행은 모닥불 주변에 둘러앉아 용집이 밴 버선들을 세코짚신에 꿰고 신들메를 죄었다. 그리고 행전들을 다시 단단히 고쳐 쳤다. 다섯 사람의 얼굴들엔 전에 없이 새하얀 살기(殺氣)조차 감돌았다. "우렁이도 집이 있는 판국에 이런 행색으로 석삼년이니 젠장." 발에 난 육자(肉刺) 때문에 고생이 모두들 말이 없었다. 행수 조성준이 외질멜빵의 괴나리봇짐을 풀어 입매거리로 섣달받이 북어 다섯 마리를 삿자리에 던졌다. "가세." 일행은 다시 잉걸불을 껐다. 처음 계획은, 행수와 최가가 숯막에 그대로 남고 봉삼을 비롯한 장한들만이 마을로 올라가 일을 벌이기로 작정한 터였으나 워낙 앞일을 예측할 수 없었으므로 중론에 따라 일행 다섯이 함께 행동하기로 작정한 것이었다. 일행은 곧장 숯막을 떴다. 봉삼이가 길라잡이가 되어 앞장서고 최가가 맨 뒤로 처져서 소한테 물린 놈처럼 자국없이 비틀거렸다. 수잠이 덜 깬 앞서 이경쯤에 봉삼이가 건너왔던 개천의 복찻다리를 다시 건너오는데, 씨양이질이라면 이골이 난 최가가 수젓집을 놓고 왔다고 안달복달이었다. 봉삼이가 다시 되돌아가서 모닥불더미에 꽂힌 수젓집을 찾아 들고 왔다. "그 사람 수월찮이 사람 속을 썩이누만." 아기똥거리며 걷던 최가가 헤헤 웃었다. 행수가 한마디 나무랐을 뿐 모두들 입이 뜬지 말들이 없었다. 숙수(熟手) 출신답게 붙임성이 있어 조성준을 따라다닌 지 이제 3년이었다. 일행은 개천을 얼른 건너 다시 수목이 자옥한 에움길로 숨어들었다. 계곡의 물소리만 지천일 뿐 숲속길은 적막하기 이를 데 없었다. 겨드랑이로 훨씬 가깝게 다가서자 그토록 낭자하던 계곡의 물소리가 문득 숨죽은 듯 귀에 멀었다. 옷은 안개를 먹어 금방 몸에 착 달라붙었고, 숯막을 나설 때 느꼈던 한기는 가시고 목덜미에 땀이 후줄근하게 배어왔다. 앞에 선 봉삼에겐 숙로(熟路)였는지라 일행은 지체없이 걸어 축시가 다할 즈음 마을 어귀가 희미하게 올려다보이는 노송(老松)숲에 이르렀다. 이제 고사리(古寺里)에 이른 것이다. "이놈이 여기까지 와 있구나." 노송등걸에 손을 얹으며 행수 조성준이 혼자소리로 탄식했다. "어찌하렵니까?" 땀을 닦던 한 장한이 물었다. "저 골목으로 쑥 들어간 상두받잇집입니다." 벽항궁촌(僻巷窮村)이었다. 얼추잡아 20여 호나 될까, 그런 동네가 추녀들을 산자락에 내리고 납작 엎드려 있었다. "가세." 이제부턴 행수가 앞장을 선다. 일행은 노송숲 앞에 있는 채전밭을 지나 마을을 멀찌감치 두고 우로(迂路)로 접어들었다. 일행은 걸음을 빨리하였다. 역병을 앓는 마을처럼 사위(四圍)는 쥐죽은듯 적막하였다. 일행은 내쳐 걸어 봉삼이가 가리킨 마을 뒤켠 상두받잇집 뒤꼍에 도착했다. 바자가 쳐져 있었고, 감나무 아래엔 버캐가 허옇게 낀 오줌장군 하나가 휑뎅그렁하게 놓여 있었다. 조성준과 최가만 뒤꼍 봉창 아래에 남고 세 장골(壯骨)들은 울바자를 돌아 지체없이 사립짝문으로 갔다. 문은 쉽게 열렸고 집 안은 쥐죽은듯 적막했다. 안방과 건넌방 앞에는 제법 반듯한 쪽마루가 있었고, 정지 옆에는 마구간이 있었다. 세 사람은 손바닥만함 남새밭이 곁들인 뜨락을 얼른 건너 곧장 안방문을 열고 방안으로 숨어들었다.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이닥쳐도 방안에서는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홑이불자락이 활딱 제쳐지면서 위통을 벗은 봉발의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며 소리질렀다. "웬놈들이냐?" 때를 같이하여 장골 하나가 달려들어 연놈들이 덮고 있던 홑이불 자락을 홱 걷어제쳤다. 그리고 두 사람은 달려들어 알몸의 사내를 끌어내어선 밀치끈으로 포박(捕縛)을 지우고 매듭에다 대추나무 조리개를 끼워서 요동없도록 꽉 죄어놓았다. "이게 무슨 해코지여?" 사내가 포박을 받으면서 겁먹은 소리로 없었다. 초저녁참 요분질에 고초깨나 겪었던지 한참 부산을 떤 그때서야 계집이 파르르 떨며 일어났다. 처음엔 어수선함이 남편의 잠투세로 알았으나 방안의 새물내와 찬 기운에 놀라 잠이 깬 것이었다. 계집 또한 알몸이었다. 오목주발을 엎어놓은 듯 흐벅진 젖통을 수습키 위해 웃저고리 찾느라고 어두운 방바닥에 손을 내어 휘저으니 아랫도리의 허연 비역살이 또한 드러났다. 그러나 이 난장판에 그것이 찾아질 리 만무였다. 초저녁 횃대[衣桁]에 걸어둔 옷을 잊어버린 것이었다. 계집이 젖통을 감싸쥐고 체머리[風頭旋]를 앓고 있듯 떠는데 "그년 사당년답게 육덕(肉德)은 한번 흐벅지구나!" 계집은 밑도끝도없이 제쳐놓은 홑이불자락으로 머리를 처박고 모질게 파고들었으나 봉삼이가 홑이불을 걷어 뜨락으로 내던져 버렸다. 재갈이 물린 사내는 그런 꼬락서니를 뻔히 눈뜨고 바라보고 있었으나 지금 당장 어찌할 도리가 없어 염천 학질에 걸린 몰골로 떨고만 있었다. "그놈을 끌어내게." 뒤꼍 봉창 밑에서 기다리고 있던 조성준이 어느새 뜨락으로 돌아와 서서 나직이 일렀다. 포박진 사내를 밖으로 끌어내며 봉삼이가 물었다. "재갈을 물렸으면 싸게. 복물같이 보이게 하게." 장한 셋이 사내를 밖으로 끌어내는 동안 뜨락에 섰던 조성준이 엇바뀌어 방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횃대에 걸려 있는 계집의 옷을 걷어 한쪽 벽 아래 붙어앉아 바들바들 떨고 있는 계집에게 던져주었다. "오색잡년인들 앞은 가려라." 그러나 계집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년, 목소리로도 내가 누군지 이제 알았느냐?" 던진 홑저고리를 황급히 끌어안던 계집이 그 순간 까빡 죽는 시늉을 하였다. 홑저고리로 가슴을 채 수습하지도 못하고 계집은 벽을 기대고 그만 기절해버렸다. "요절을 낼 년." "다 됐습니다요." 뜨락에 선 봉삼이가 일렀다. "잠깐 이리 들어오게." 봉삼이 얼른 방으로 들어왔다. "저년을 벽 쪽으로 돌려앉히게." 계집에게 다가갔던 봉삼이가 난감한 낯빛이 되어 뒤돌아보며 말했다. "기절했습니다요." "과히 걱정할 게 못 되네." 조성준이 벽 쪽으로 앉혀진 계집에게 다가가서 치렁치렁 늘어진 머리채를 왼손으로 감아올려 쥐고 행전 속에서 장도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머리채를 싹독싹독 잘라나갔다. 기절에서 깨어난 건지 아닌지 계집은 이렇다 할 아무 반응이 없었다. 끼워넣고 잘라낸 달비는 똘똘 말아서 괴나리봇짐 속에다 쑤셔박았다. 그리고 다시 봉삼에게 일렀다. "마구간으로 가서 작두를 들고 오게." "작두요?" 봉삼이 어둠 속에서 눈이 휘둥그래져서 되물었다. "그러게." 조성준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봉삼은 한참이나 마구간 옆에 있는 헛간을 헤매다가 작두를 찾아가지고 방안으로 들고 들어왔다. "재갈을 물리게."
소설 끝부분 <간혹 탈자나 오자가 있을 수 있음을 감안하시고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제 6 장 동병상련(同病相燐) 5 한규직이 돌아가는 길로 매월은 서사를 송파로 보내었다. 송파로 간 서사는 조성준을 만나서 천소례와 월이가 시구문 밖 석쇠의 집에 거접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쉴참도 없이 곧장 뗏배를 얻어 타고 세철리로 건너갔다. 시구문 밖에 당도하였을 때에는 늦봄의 긴긴 해도 일색이 다해서 해질녘이 되었다. 석쇠의 집에서 두 여자를 안동해서 북묘에 당도한 것이 초경(初更) 술시(戌時)가 넘어서였다. 매월이 방으로 들어섰으나 매월은 사람을 불러놓고도 크게 반기는 기색도 없이 손짓으로만 앉으라는 시늉이었다. "요사이 어떤가? 천행수가 금부 남간에 갇혀 있다는 소식은 진작 들었네만 어찌 내겐 소식들을 끊고 지내게 되었는가." "마님 죄만스럽습니다. 더 이상 마님께 폐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심정으로 하루에도 골백번 찾아뵙고 하소연하고는 싶었습니다. 그러나 뵙지 못했던 쇤네들의 심회도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그야 내가 모를 턱이 있겠나. 그러나 우리들 사이란 촌내(寸內)와 다를 바 없는 처지들인데 그리하면 못쓰네. 마침 오늘 새벽 소식 듣자 하니 놀랍게도 부대시수로 바꾸라는 전교가 내렸다 하니 이런 낭패들이 어디 있겠나." 두 여인이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아이가 벌벌 기어서 보료에 앉아 있는 매월이에게로 다가가더니 덥석 안기는 것이었다. 매월이가 아이를 번쩍 안아올리자 아이는 갸륵갸륵 웃는 것이었다. "이젠 제법 숙성하구나." 그것을 바라보던 월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매월은 시선을 아이에게서 떼지 않으면서 혼자소리로, "하늘도 무심하시지. 이런 낭패가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내가 수차게 긍하여 내전으로 달려들어 불문곡직하고 천행수를 살려달라고 넋두리에 간청을 하였다네. 그러나 곤전께서는 그때마다 귀여겨 듣는 체하시고 심지어는 요사이 그만한 사내가 없다 하시고 은근히 천행수를 보비위까지 하셨다네. 그러나 나를 물리친 다음에는 천행수가 하루빨리 처참이 되도록 주선하시곤 하였던가 보이. 신하 된 도리로 곤전을 원망할 수가 없는 것은 일본국의 공사가 대전에 들 적이나 우리의 조정 사람 만날 때마다 으름장을 놓아 성려가 보통 아니었기 때문일세." 망연자실로 앉아 있는 두 여인에게 매월은 우정 목소리를 낮추어서, "내가 자네들에게 한 가지 당부할 일이 없지 않다네." "보잘것없는 것들에게 당부하실 것이 있다니요." "천행수의 일이 천연(遷延)되어 대엿새 안으로는 당장 참수되지 않을 것 같으니 그 동안 내 곁에서 전접해달라는 것일세." 야료하고 훼방놓을 것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천행으로 살아날 구멍을 찾아낼 심산에서인지 그 속내를 꿰뚫어볼 수 있는 처지의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심정으로 매달릴 사람이라고는 매월이밖엔 없었다. "마님께서 어떤 궁량을 가지고 계신지는 쇤네들이 알 길이 없습니다만 이런 북새통에 쇤네들이 북묘에 전접하시기를 권유까지 하시니 그런 생광이 없습니다." "장차 일의 귀추가 어찌 되든 내게 맡겨들 주게나. 자네들이 이판사판이라면 손톱여물을 썰기는 나 역시 매한가지가 아니겠나." 천소례와 월이를 북묘에 잡아둔 매월은 당장 채비하고 일어나서 가마를 몰아 이용익의 집으로 갔다. 전전긍긍하던 이용익은 매월이가 기별도 없이 자기 집으로 찾아온 것을 보고 적잖이 놀라 댓돌 아래까지 내려와서 맞아들이었다. 좌정하고 난 뒤 이용익은 천행수가 살아날 방도라도 생겼는가 하여 상기된 얼굴로 묻는 것이었다. "손수 저의 누추한 와실(蝸室)에 다급히 행차하신 것을 보면 무슨 방도가 생겨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성급하게 좌단할 일은 아닙니다. 내가 찾아온 것은 부사께 한가지 물어볼 일이 있어서입니다." "제게 무슨 헌책(獻策)이 있겠다고 하문하십니까." "헌책을 빌리자는 것이 아니라 부사의 짐작되는 바를 묻자는 것입니다. 부사는 왜 주상 전하께서 천행수를 대시수로 두었다가 요지간에 와서 갑자기 부대시수로 바꾸어서 참형에 처하라는 하교까지 내리시게 되었는지 짐작되는 바가 없습니까?" "그것이야 일본국의 공사가 참없이 탑전으로 나아가서 천행수를 처참시켜야 한다고 짓조르고 있기 때문이겠으니 주상께서도 이번의 옥사로 더 이상의 번거로움을 겪고 싶지 않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물론이오. 그런데 한 가지 지나쳐 보아서는 안 될 일이 있다는 것이오. 그것은 불간사전(不揀赦前)으로 죄를 탈면시키지는 않았지만 길소개란 사람을 방면하시게 두었다는 사실이오. 이것이 곰곰 되씹어볼 일이 아니겠소. 국법이 엄중하니 궐자를 탈면시킬 수는 없었지만 몰래 방면할 수 있도록 은근히 주선하셨던 것은 바로 주상 전하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를 짐작해볼 수 있는 것이란 점입니다. 바로 말해서 주상 전하께서는 천행수도 방면해버리고 싶으시되 조정 현직들의 눈이 없지 아니하고 또한 왜국 공사란 자가 불난 집에 개 뛰듯 하니 천행수만은 그리 할 수 없었던 것이오." "사정이 그러하심에 부대시수로 돌려버린 것이 아닙니까." "옳은 말이오. 바로 그 점에 주상 전하의 본심이 엿보인다는 것입니다." "주상 전하의 본심으로서야 왜국 상선을 욕보인 천행수만은 대명률로 다루고 싶으시지는 않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곤전의 권유를 받으셨든 아니면 주상 전하께서 단옥(斷獄)하시기로 작정하시었든 천행수란 사람을 구명하고자 하는 나와 이부사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내리신 조처란 것입니다." "아니,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것입니까?" "내 말을 귀여겨 들으시오. 이번의 조처는 천행수가 참형되기 전에 천행수를 조옥에서 끌어내라는 밀유(密諭)의 뜻이 숨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하께서가 아니면 곤전께서 저희들을 불러 은근히 귀띔이라도 해주셔야 할 것이 아닙니까?" "그럴듯한 말이오. 그러나 만약 일이 뒤틀리어서 북새통이 나고 야단이 생겨진다 할 적에 그 욕됨이 되돌아가실 것이 걱정되셨기 때문입니다." "듣고 보니 그럴듯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전하의 성려가 반드시 그러하다고 좌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럴듯한 게 아니라 바로 그렇다오. 주상 전하께서 아무리 왜국 공사의 으름장에 시달림을 받는다 할지라도 국법에 따라 삼개(三開)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말씀조차 못하실 리는 만무입니다. 그런데 국문의 절차도 밟지 않고 단옥시켜버린 근저를 곰곰 되새겨볼 때 이는 뒷일을 우리에게 맡기신다는 밀유가 아닙니까. 그러하니 굳이 탑전에 나아가서 연주해볼 처지의 일도 아니라는 것이지요."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천행수를 멀쩡한 채로 조옥에서 업어낼 방도야 없지 않습니까?" "있다오." "영험하신 큰만신인 것을 시생도 알고 있습니다만 무력(巫力)이 설마 거기에까지 미친다는 것은 아니시겠지요." "무력(巫力)인지 무력(無力)이 될지 모르겠소만 내게 한 가지 방도가 없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말씀입니까?" "이제까지 앞에서 주선하던 그 옥사장을 다시 한번 만날 수 있겠소?" "그야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궐자의 심덕이 어떠합디까?" "시생이 몇번 상종해보았으나 읽은 것은 없는 사람이나 신실해 보이고 마음을 자주 바꿔칠 사람 같게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궐자가 선뜻 나서려 할지 그것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궐자의 주지는 어디고 견디는 모양은 어떠하다 합디까?" "왕십리 주막거리에서 협호를 하나 얻어 살고 있는데 위로 노모를 부양하고 소생은 흥부 자식과 같아서 내리 아홉 남매를 낳아 기르는데 방에 들어가면 돼지우리와 같다는 말을 지껄이는 말을 들었습지요." "그러면 궐자의 주지를 자세하게 알아서 쌀 두 섬만 궐자의 집에다가 내려주십시오. 그태여 궐자를 방자 놓아 부를 것도 없이 제발로 부사를 찾아올 것이오. 그때 내게로 데리고 오면 내가 다시 조처하겠소." 그 이튿날 꼭두새벽에 매월이가 예견하고 있었던 대로 이용익이 북묘로 쫓아들어오는데 뒤에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옥사장이 뒤따르고 있었다. 이용익과 옥사장이 건넌방에 좌정한 뒤에도 한참 만에 매월이가 건너오는데 난데없는 화각함 하나를 안고 있었다. 매월이 좌정한 뒤에 옥사장을 가까이 불러앉힌 뒤에 화각함을 열어 어음표 한 장을 꺼내 드는데 만냥짜리였다. "이것으로써 자네의 궁박한 가계에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네." 두 누깔이 화등잔만하게 커진 옥사장이란 위인은 제 평생에 만냥 금어치의 재물이 굴러들어왔던 적은 물론 없었지만 만냥짜리 어음을 봤던 것만도 처음이라 놀라고 가슴 뛰어 어음을 냉큼 받아들지를 못했다. 또한 그 어음이 장안에서 뒹군다는 사대부들도 뵙기가 어려운 진령군 매월의 손에서 건네지고 있다는 것에 덜컥 겁이 났던 것이었다. 더군다나 어떤 연유로 주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고 있는 판국에 도저히 냉큼 주워들 수가 없었다. 그 눈치를 매월이가 모를 턱이 없었다. "자네의 수중에 만 냥이 들어간다면 그것은 바늘 구멍으로 소 몰아넣는 것이나 진배없는 일일걸세. 물론 이것은 자네를 어여쁘게 여겨서 건네는 것은 아닐세. 사람의 한평생에 한두 번은 팔자를 고칠 수 있는 덕화를 만나게 되나 안맹한 사람들은 그것을 마냥 지나쳐버리기 일쑤라네. 자넨 설마 그런 실수를 저지를 사람 같지는 않다네. 이것을 자네가 받는다면 나와 저기 앉은 부사와 자네가 한동아리가 되는 것일세. 그러나 자네가 거북해서 이것을 내친다면 자넨 우리와 앙숙이 되겠지. 자네가 우리와 앙숙이 되면 앞날이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겠지만 한동아라기 되면 그 칠칠찮은 관직이야 뗐다 붙였다 마음대로 할 수 있네. 설령 파직을 당한다 하더라도 이만한 돈이면 자네 열한 사람 식솔이 입에 풀칠이야 하지 않겠는가." 옥사장이 고개를 깊숙이 숙이고 앉았다가 결연히 쳐들면서 대꾸하였다. "마님 분부대로 거행해 올리겠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소생이 부지를 하겠습니까." "자넨 내가 사람 해코지하는 데는 이골난 사람이란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구만." "사람을 해코지하시다니요. 이것은 죽어가는 사람 살리자는 분부가 아니겠습니까?" "눈치가 있네그려. 바로 부대시수 천봉삼을 살리고자 하는 짓이네. 자네에게 딱 부러지는 방도라도 있는가?" "쇤네 같은 하리에게 무슨 묘책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분부 내리신다면 여축없이 거행은 해올립지요." "대책은 일러줄 것인즉 우선 조속전(曹贖錢:형조 관할에 속한 사람에 대한 여러 형태의 속전)이나 챙겨 넣게나." 옥사장이 매월이가 밀어주는 어음표를 상전 약사발 떠받듯이 해서 줌치에다 단단히 접어 넣었다. 그 손이 떨리는가 하였더니 자세히 바라보니 온 전신을 같이 떨고 있었다. 매월이가 다시 화각함에서 꿰미돈 이백 냥을 꺼내었다. "지금 자네가 금부로 사진하면 만나야 할 사람이 네 사람이 있네. 바로 정시처(停屍處:문제가 있는 시체를 임시로 보관하는 처소)에서 수직하고 있는 오작인(오作人:시체를 임검할 때 부리는 하인)일세. 궐한에게 행하돈을 수월찮게 건네주고는 야밤 죄수들이 잠든 틈을 타서 정시처에 금방 죽은 목내이(木乃尹:썩지 않은 시체) 한 구를 전체하여다가 간옥으로 넣어달라 하게. 그 다음으로 만나야 할 사람은 수계(囚械:죄수들에게 씌우거나 채우는 형구)의 일을 맡아보는 옥리일세. 그 옥리가 송장에다가 용수만 씌워놓는다면 그 다음 자네가 만나야 할 사람은 형장까지 함거를 끌고 갈 압해인(押解人:압송인)이 아닌가." "말씀 대강 짐작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자네가 만나야 할 사람은 대시수들 가운데서 뽑아낸다는 회자수일세. 그 회자수에게 숙공을 잘 대접한 다음 속참행하를 내려서 참수가 시작되면 천행수로 지목된 송장의 목을 맨처음 쳐달라고 이르게. 그리고 나머지 감참관(監斬官)의 일은 내가 따로 조처하도록 할 것이네. 이러한 일은 다급하더라도 순서에 따라 조처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화근이 생겨나게 마련일세. 만약 우환이 뒤따른다 하면 자네 또한 온전하리란 보장도 없다는 것일세." "그러면 천행수란 사람 언제 밖으로 끌어내는 것입니까?" "참형이 내일 새벽에 있을 것이 아닌가. 죄수들을 함거에 옮기기 직전에 해야 할 것이네. 그러나 한 가지 자네가 손수 치러야 할 일이 없지 않네." "무엇입니까?" "오늘 조옥으로 들어가거든 무슨 일을 빌미잡든간에 천행수를 족쳐서 다른 죄수들이 보이지 않는 한갓진 간옥으로 옮긴 뒤 나중에 옥리들이 천행수 된 송장을 업고 나간다 하여도 다른 죄수들이나 옥리들이 수상쩍게 보지 않도록 사전에 조처를 해둬야겠네." "기신을 차리지 못하도록 실컷 몰매를 내리란 것입니까." "그 수단을 쓰지 않는다면 함거에 옮길 제 멀쩡한 죄수를 업고 나갈 수야 없지 않은가. 또한 죽은 송장을 걸릴 수 있는 별난 재간이라도 있겠는가." "분부대로 여축없이 거행해올립지요." "자네, 금부에서 몇해나 살았는가?" "이제 9년째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더 자상하게 일러주지 않는다 하여도 거행 소홀하게 처분치는 않겠구만. 여기 있는 이부사가 내일 새벽 사경(四更) 축시말(丑時末)에 의금부 앞에서 기다릴 것이네. 자네는 사진할 제 옥리들이 입는 더그레 한 벌을 구처해가지고 들어가서 천행수가 혹여 혼자 나오더라도 숙위하던 옥리로 알아서 기찰에 걸리지 않도록 조처하게." 무당이 사설 풀듯이 거침없이 풀어내리는 매월의 말에 이용익은 다만 말문이 막힐 뿐이었다. 옥사장이 서둘러 하직하고 난 뒤 매월의 입에서 난데없는 한숨이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한숨 끝에 매월의 입가에 미묘한 웃음이 지나가는 듯하더니 한마디 불쑥 내뱉는 것이었다. "내 평생은 이렇게 여귀에 씌어 살아야 하는가 봅니다." "아니 난데없이 무슨 말씀입니까. 만신에게 여귀가 씌다니요. 부정거리라도 벌여야겠군요." "내가 천행수에게 정분 두고 있다는 것이야 부사께서도 알고 있는 일이 아닙니까. 그러나 그 사람을 연모하고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나는 일년에 한두 번씩 세상이 깜짝 놀랄 만한 일을 저지르지 않고서는 흡사 무병을 앓을 때처럼 온 삭신이 떨리고 진땀나고 한기들고 잡귀의 희롱에 시달리는 것입니다." "공연하신 말씀입니다. 이번의 일은 여귀 씐 분이 하는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정녕 천행수를 위한 일이라기보다는 내 스스로르러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시생은 내일 새벽 금부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천행수를 맞이하면 안동해서 내 집으로 데리고 가겠습니다." 이용익이 고개를 깊숙이 숙이고 난 다음 물러났다. 의금부 조옥으로 돌아온 옥사장은 먼저 정시처(停屍處)로 찾아갔다. 수하의 오작인이 정시처 문 앞에서 졸고 있었다. "시방 이곳에 지체된 시신들이 몇이나 되는가?" "임자 없는 시체가 셋이나 있습지요." "언제 죽은 것들인가?" "사흘쨋날이 되는 것이 맨 나중입죠. 벌써 냄새가 쿡쿡 한답니다." 오작인이 무심코 내뱉는 말에 옥사장은 속으로 아차 하였다. 시신이 썩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선 미처 생각 못한 일이었다. 시체를 천행수 대신 새남터 형장까지 운반하는 것은 어렵사리 해낼 수 있다 하나 냄새가 난다면 그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조옥의 대시수들 중에서 조발된 회자수(회子手)들은 벌써 내일의 참형을 위해 칼을 갈고 있었다. 밤중 안으로 시구문(光熙門)이나 애우개(阿峴) 밖으로 나가서 버린 목내이를 업어온다는 것도 당장 손쉬운 일이 아니었다. 옥사장은 무턱대고 오작인에게 서른 냥을 건네었다. 우두망찰 쳐다보는 궐자에게 에멜무지로, "그 시신을 냄새만 나지 않게 조처할 수 없겠나?" "염려 놓으십시오. 조협(조莢)나무를 끓여 우린 물로 시신을 닦아준다면 하루 동안은 냄새를 막을 수 있습지요. 그런데 그걸 어디다 쓰시려구요." "그 시신을 새벽 신시(申時)쯤에 몰래 남간으로 업어다줄 수 있겠나?" "정시처에서 남간 사이는 빨랫줄 서너 개 길이 상거이니 그것이야 못하려구요." "그리고 자넨 그 일을 잊어버리도록 하게." "죽은 개라도 한 마리 구처해다가 충수를 채우고 구색을 맞추면 별 탈이야 없겠지요만, 척간에 용천병을 앓고 있는 분이라도 있는 겝니까?" "자넨 그런 것까지야 알 것 없네." 오작인을 조처한 다음 옥사장은 남간으로 돌아왔다. 밤이 깊기를 기다렸다가 공덕리 소주막에서 구처해온 소주를 남간 죄수들에 한 방구리씩 안기었다. 허기에 주린 창자에 술이 들어갔으니 남간 죄수들 모두가 술에 감기어 쓰러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벌써 시각은 신시에 가까웠다. 오작인이 사체 한 구를 업고 간옥으로 나타났다. 사체를 천행수를 옮겨 앉힌 외진 간옥으로 밀어넣는데, 천행수는 잠들지 않고 좌불(坐佛)처럼 앉아 있었다. 옥사장이 옥졸들이 입는 더그레 한 벌을 칸살 사이로 디밀었다. 그리고 우정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오래 지체할 겨를이 없소. 어서 보자기를 끌러 더그레로 갈아 입으시오. 오래 지체하면 여러 목숨이 요정난다오." "여러 목숨이 요정난다니, 그것이 무슨 말이며 이 더그레는 무슨 일 때문이오." "시방 천행수를 밖으로 끌어내고자 가담한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니외다. 보부상들 중에는 단 한 사람도 가담하지 않았다 하나 위로는 대내(大內)를 비롯해서 아래로는 남간의 시체 지키는 오작인에까지 가담이 되었다는 말이오. 사리를 따지고 경위를 따질 경황이 없소이다. 그 더그레를 입고, 입고 있던 옷은 사체에 입히시오. 그리고 내가 군호를 보내거든 밖으로 나오시오." 천봉삼은 옥사장의 말에 적잖이 놀랐다. 지금 당장 경위를 따질 수는 없으나, 대전의 밀유나 상신들의 분부가 없고서는 옥사장이 저토록 당당하게 굴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행수는 옥사장이 칸살 사이로 떨어뜨린 옷보퉁이를 집어들었다. 살고 싶다는 욕망이 불끈 가슴을 찔렀다. 생각을 고쳐 할 겨를도 경위를 따지고 들 겨를도 없이 채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옥사장이 다가와 손짓하는 것이었다. 옥문은 닫혀만 있을뿐 채워놓지는 않았다. "내 뒤를 한 발짝쯤 뒤따르시오. 혹여 순라(巡邏)의 기찰을 당하더라도 숙위(宿衛)하던 중 번(番)을 바꾸고 나간다고만 말하시오. 그외의 일은 내가 도맡으리다." "바깥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소?" "단천부사 이공(李公)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행보를 빠르게도 말고 노량으로 걷지도 말고 의연하게 거동하시오." 옥문을 나서니 하늘의 새벽별이 쏟아질 듯하였다. 코끝에 스치는 바람으로 천봉삼은 문득 옥 밖으로 나와 있는 자신을 깨달았다. 금부 조옥의 옥뜰이 대천 한바다처럼 드넓게 보였다. 곳곳에 켜둔 홰가 하나둘 사그라져 가고 있었다. 순라하는 상직꾼들이 없지 않았지만 가까이 다가와서는 옥사장의 얼굴을 알아보고 꾸뻑 관디목을 지르고는 사라지는 것이었다. 천봉삼이가 옥사장과 같이 의금부를 나설 즈음인 신시말(申時末)쯤 매월은 숙수간 동자치들을 들깨워 아침동자를 짓게 하는 일변 건넌방에서 잠자고 있던 천소례와 월이를 깨웠다. 선잠에서 깨어난 두 여인이 새벽동자를 차려가지고 들어오는 반빗아치를 보고 놀랐다. 바깥에 여명이 깔려 있었지만 방안에서는 황촛불을 밝혀야 할 때였다. "어서들 요기하고 떠나게." "마님 어디로 가란 말씀입니까?" "자넨 송파루 가야 하지 않겠나." "그래얍지요." "어제 소식 듣자 하니 광주 계방의 아전들이 길생원 풀려난 것을 보고 송파 마방에는 더 이상 덧들이지 않게 되었다더구만. 조행수가 워낙 드세게 대처하였는데다가, 유생원이란 사람이 또한 내려와서 광주 계방 아전들의 횡포를 낱낱이 들어 그들을 아주 혼찌검을 내었다고 다녀온 청지기가 전하더군." "그것이 모두 마님께서 덕화를 베풀어주신 덕분입죠." "아이어멈을 자네가 마포나루까지만 안동하고 거기서 송파로 가는 뗏배를 타도 오늘 하루 노정이 그렇게 늦지는 않을 것이네." "분부대로 따르지요." 요기를 든든히 하고 밖으로 나섰으나 아직 해뜰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바깥 신방돌 아래에는 낯익은 청지기가 부복한 채 서 있었다. "자넨 이 사람들 마포나루까지만 안동하고 돌아오게." 이상했다. 응당 문을 열어제치고 바깥의 청지기에게 분부를 내려야 할 것인데도 매월은 방안에 앉아서 청지기에게 분부를 내리는 것이었다. 천소례는 문득 매월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렴풋이 왜 두 사람을 마포나루까지 보내려 하는지 짐작이 갔다. 두 여자는 청지기를 따라서 북묘를 나섰다. 혜화문(惠化門) 어름을 나서서 광교(廣橋)에서 왼쪽으로 돌아 타락산(駝駱山) 기슭을 따라서 양사골(兩舍洞)을 지나 흥인문 앞 초교(初橋)에 이르러서야 열댓 칸 앞의 행인들이 바라보일 지경이 되었다. 등에 업힌 아이는 아직도 한잠이 든 채로 깨어날 줄 몰랐다. 그들은 이교(二橋)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배우개(梨峴)르러 넘어 좌포청(左捕廳) 앞에 이르렀고, 좌포청에서 다시 철물다리(鐵橋)를 지나니 견평방(堅平坊) 의금부(義禁府) 앞에 당도하였다. 의금부와 전옥서(典獄署) 사이의 종가는 전병이나 수수떡을 파는 좌고(坐賈)들이 새벽부터 붐비는 곳이었다. 간옥을 드나드는 죄수들이나 옥 수발하는 가족들과 번(番)을 들고나는 순라군(巡邏軍)들을 겨냥하기 위한 떡장수들이었다. 수수떡을 한 덩어라 산 천소례는 그것을 아이가 잠들어 있는 차렵이불 속으로 집어넣었다. "이 수수떡 두었다가 저녁요기라도 하시게." 월이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의금부 앞에서 잠시 지체했던 그들은 곧장 광통교(大廣橋)를 건너서 쭉 곧은길로 낙동(駱洞) 지나고 호현골(好賢洞) 지나서 수교(水橋) 건너 숭례문(崇禮門)에 당도하였다. 그때 비로소 해가 뜨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양동(羊洞) 지나서 우수재(牛首峴)를 바라보며 걸을 제 우수재 계곡 아래에 있는 복숭아밭에서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왔다. 바로 그때였다. 그들은 숭례문 밖 양도 어름에서 먼지가 뽀오얗게 일고 있는 것을 보았다. 상거가 멀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으나 더그레 차림의 사령들에 휩싸여 먼지를 일으키며 끌려가는 것은 분명 간혹 보아도 새남터로 나가는 참수죄인(斬首罪人)들의 함기(檻機)들이었다. 행렬의 맨 앞에 마상(馬上)의 사람은 감참관(監斬官)이 틀림이 없으리라.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가는 더그레짜리의 호령에 놀라 허겁지겁 흩어지곤 하는 것이었다. 그때 월이가 외치는 것이었다. "안 됩니다. 저는 저 함기를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곁에 서 있는 청지기가 나직하게, "저 함기들은 의금부를 나서서 새남터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하니 제가 뒤따르려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체할 겨를이 없습니다. 천행수는 저 함기에 타고 있지 않습니다. 어서 가십시다." 월이도 북묘를 떠날 때 그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멀리 굴러가는 함기 행렬을 보자 하니 그 함기에 천봉삼이가 휘진 몸뚱이로 피칠갑이 된 채 묶여 실려가고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 정녕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월이의 뇌리를 못박는 것처럼 꾹꾹 찌르는 것이었다. "어서들 가십시다. 중화 전에 한수(漢水)를 건너셔야 합니다. 마포나루에서 지체하시다간 또 무슨 변고가 날지 모르겠소." 천소례는 차렵이불에 싸여 지금은 잠이 깬 아이를 등뒤에서 추슬렀다. "어멈, 지금은 아무 말 말게." 천소례는 문득 생각했다. 자기는 천봉삼의 피붙이로서 마포나루 어느 으슥한 객점에 당도한다면 그곳에 천봉삼이가 앉아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어서 지나가는 함기 행렬이 심상하게 보였건만 어째서 월이에겐 그것이 믿기지가 않아 함기 행렬을 따라가야 한다고 소스라쳐 놀랐던 것일까. 그것이 월이란 여자가 견문이 없고 경망스러웠던 탓일까. 아니었을 게다. 그것은 적어도 천소례보다는 월이가 천행수를 더 깊이 사모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었다. 이 여자와 함께 천행수를 어디일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이 한수(漢水)를 넘어오지 못할 먼 곳으로 떠나 보낸다 할지라도 안심할 수 있으리란 생각을 자꾸만 되씹었다. 저만치 청파(靑坡) 고갯마루가 바라보이기 시작했다.
등장인물 * 길소개: 45세. 근본이 없는 사람. 처음엔 젓갈장수였다가 조성준의 재물을 가로채고 그를 궁지에 몰아 넣는다. 모사와 계략에 능하고 자신의 출세라면 불에라도 뛰어들 인물 * 조성준: 50세. 쇠살주로 한때 송파의 우전(牛廛) 상권을 쥐고 있던 사람으로 송만치에게 아내를 빼앗기고 김학준과 길소개에게 재물을 털린다. 한 번 작정한 일은 이루고야 마는 사람 * 매월이: 30세. 들병이로 송만치의 외사촌 누이. 천봉삼에게 각별한 연정을 품고 있는 여인. 사내 이상으로 술수가 있음 * 천봉삼: 25세. 송도 사람. 천소례의 동생이며 조성준을 행수로 모심. 정의감이 투철하고 의협심이 강하다. 신석주의 첩실인 아름다운 조소사(22세)를 연모함 * 선돌이: 27세. 황해도 황주 사람. 근본이 갯바닥 왈짜 출신이나 의리와 정의에 살며 팔방미인. 언행이 일치. 천봉삼과 동업자.
김주영 1939년 1월 26일 경상북도 청송군 출생. 1960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1970년 〈여름사냥〉이라는 소설이 《월간문학》에 가작으로 뽑히고, 1971년 10월 〈휴면기〉로 《월간문학》 신인상을 받으면서 문단에 데뷔하였다. 이후 《월간문학》을 비롯하여 《현대문학》 《한국문학》 《문학사상》 《신동아》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 등에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1980년부터 《서울신문》에 역사소설 《객주》를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역사 인식의 틀을 제시하였다는 호평을 받았다. 1983년에는 구한말 충청도 내포 지방에서 활동했던 활빈당이라는 의적들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 《활빈도》를 《중앙일보》에 연재하였고, 1988년에는 《한국일보》에 《화척》을 연재하는 등 주로 역사·대하소설을 집필하였다. 1989년 절필(絶筆) 선언을 하면서 잠시 활동을 쉬기도 하였으나 1년 뒤 문단에 복귀하면서 다시 작품 활동에 전념하였다. 1998년 북한 아태평화위원회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하였고, 같은 해 10월에는 제2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에서 활동하였다. 1984년 《객주》로 제1회 유주현문학상, 1993년 제25회 대한민국문화예술상을 수상하였다. 이밖에 1996년 《화척》으로 제8회 이산문학상, 1998년 《홍어》로 제6회 대산문학상, 2002년 《멸치》로 제5회 김동리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그밖의 주요 작품에 《천둥소리》(1986),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1988), 《아리랑 난장》(2000) 등이 있다.
작가의 말 긴 소설로 일컫는 `객주'가 신문에 연재되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20년전 1979년 6월부터였다. 당시는 서울신문사에 재직하고 있었던 김주연씨의 권유로 이루어진 연재였다. 역량은 미치지 못했으면서 의욕만 앞서 연재를 결정해버렸지만, 불과 40세 나이에 처음 역사소설 집필에 도전해야 한다는 과부하에 혼란과 두려움은 컸다. 나의 작가적 기량은 보잘 것이 없었고, 조선후기의 역사를 건성으로나마 공부했다는 흔적도 나에겐 없었다.
가장 큰 당혹감을 느꼈던 것은, 두루 섭렵해 보았으나 조선후기 상업사를 속시원하게 관통했거나 천착한 자료들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드디어 밤을 새우기 시작했다. 아침이 되면, 충혈된 눈으로 짐을 싸들고 사라져가기 시작하는 전국의 장터를 찾아 나섰다. 장터를 순례하는 틈틈이 산간오지로 들어가 오랫동안 대처의 문명과 등지고 살아온 사람들의 옛스런 말을 채집했다. 객주에 등장하는 보부상들의 여로와 흡사했던 유랑생활이 5년 이상 계속되었다.
그 소설의 많은 분량은 시골의 여인숙 골방에서 쓰여진 것들이었다. 옛 사람들이 항용 사용했음직한 낱말 하나를 찾아내기 위해 우리말 사전의 첫 장부터 뒤지며 밤새우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낱말 하나를 찾아내기 위해 밤을 새워야하는 서툴고 미욱한 작가의 애꿎은 처지, 그리고 내 자신에 대한 무지와 배신감으로 새벽의 한강을 먼 빛으로 바라보며 몇 번인가 혼자 섧게 울었었다. 어쨌든 나는 깨알같은 글씨로 조선후기 상업사의 소설적 서술과 복원을 시도했었고, 사라졌거나 손상되었던 우리의 전통 풍속과 옛길, 맛깔스럽고 오묘한 우리말을 되찾아 제 자리에 박아주는 작업도 소홀하지 않았다. 문장을 다듬고 다시 다듬었다.
그래선지 이 소설이 발간된 지 20년이 가까워오는 지금까지 책의 판형은 세 번이나 바뀌었지만, 단 한 줄도 문장을 고친 적은 없다. 그로써 조선후기 상업사를 기술한 역사학자들의 논문에 `객주'가 참고자료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말 갈래사전이 나오기 훨씬 전부터 나는 벌써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12권의 노트에 채집된 우리말 갈래사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객주의 문학적 완성도는 앞으로도 혹독한 비평적 평가를 거치게 되겠지만, 이 소설은 자칫 나태와 좌절에 빠지기 쉬었던 나의 삼십대 후반과 사십대 초반의 금쪽 같은 인생 황금기를 더없이 열정적인 모습으로 살 수 있게 만들었고, 궁핍의 때를 한꺼풀씩 벗겨주기 시작했으며, 문학적 성취감을 오랜 동안 간직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 성취감에는 역사소설이라면, 으레껏 왕조사나 궁궐사를 다루었던 상투성에서 과감하게 벗어난 것과, 살고 싶었던 만큼 죽고 싶었던 애옥살이를 견뎌온 민초들의 생활사에서도 씻어내려 들면 오히려 부피가 커지는 맵고 짠 역사의 진국들이 배어 있다는 확인을 소설을 읽은 독자들도 함께 증거해 주었다는 사실도 포함되어 있다. 그로써 용기를 얻었던 나는 고려시대 압록강 부근에서 살았던 유랑 천민들의 배신과 증오, 그리고 절망과 애환을 다룬 소설인 '화척'과, 한말에 만주로 불법 월경하여 농사지을 땅을 찾아 헤맸던 상민들의 험난한 여정을 다룬 소설인 '야정'을 집필했었다.
그처럼 지난 한 세기가 나에겐 현실적인 구원이었고, 나로 하여금 많은 분량의 소설을 쓸 수 있도록 지탱시켜준 것은, 객주를 쓸 수 있었던 열정과 고통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그릇을 만들어 주었던 사랑하는 이웃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가오는 21세기 역시 나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한다. 다만 오만하지 말며, 편견에 길들여지지 말며, 떠들지 말며, 조용히 침잠하기를 내 자신에게 다독거릴 일이 남아 있다.
신문서평 객주, 보부상 활동상 실감묘사 김주영의 장편역사소설 '객주`는 조선후기 객주로 호칭되는 사상도고, 관상도고와 그 하부조직인 보부상들의 충돌과 결합을 그리고 있다. 79년 신문에 연재된 이래 창작과 비평사에서 81년부터 84까지 전 9권이 순차적으로 초판인쇄 중판인쇄를 거듭하며 발간됐다. 창비사는 92년 개정판을 낸 이후 97년 9쇄를 발행했다.
17세기부터 시전상인이 금란전권을 행사하게 된 데에는 사상도고의 상업활동이 위협이 되었던 사정이 작용했다. 그럼에도 상평통보의 전국적인 유통과 대동법의 시행으로 매점을 통한 자본축적이 가능했던 사상도고의 등장은 피할 수 없었다. 관상이나 사상을 막론하고 도고상업은 17세기경부터 19세기까지 중세사회가 무너지고 근대적인 상업으로 발전해 가는 과정의 상업형태였다. 그런 성격의 자본이 당시의 세도정치와 유착했던 것은 물론이었고, 개항 이후에는 외국자본의 침입에 저항하기도 했지만 결탁이나 예속으로 기운 것은 이미 알려져 있다. '객주`의 무대가 되는 송파일원은 시전상인과 사상도고의 분쟁이 끊이지 않던 곳이었다.
영조때 어전회의가 열려 시전을 관장하던 평시서와 관할 지방관인 광주유수 사이에 송파장시의 존폐를 두고 논란이 있었지만 이를 폐지하지 않기로 결정되었고 그 후에도 계속 번항하였다. `객주` 1,2,3부는 송파의 쇠살주 조성준과 강경의 거상 김학준의 원한, 시전의 대행수 신석주와 보부상 출신 천봉삼의 반목을 중심으로 주변부 인물들이 벌이는 이야기다.
근대적인 자본형성의 과정이라는 드라이한 사회경제적 분석은 구체적인 인물들의 삶이 겪는 고통을 담아내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이 들어설 자리가 있게 되는데 '객주`가 널리 읽혀진 것은 2백년전의 역사가 서글프게도 70,80년대 한국사회의 실감나는 메타퍼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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