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부터 “저 사람 여자야, 남자야?”하는 말을 쉽게 하게 된다. 깜찍한 파마머리에 하얀 피부, 연약한 몸매,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을 할 수 없는 옷차림, 소위 핸드백이라 불리우는 작은 가방을 동반하며 걸음마저 사뿐사뿐 걷고 있는 저 사람. 그 사람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목소리를 듣기 위해 조금 뒤를 밟는다던가(?) 한참을 뚫어져라 바라봐야지만 구분을 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여자처럼 곱상하게 생긴 남자, 남성틱한 여성은 예전에도 많았다. 그러나 적어도 예전엔 그들의 옷차림이나 가방, 액세서리 등의 소지품이 확실한 성별 구별을 가능케 했었다.
요즘은? 정말 언뜻 봐서는 구별이 안 갈 정도다. 그 중에서도 남성의 여성화가 더욱 두드러진다.
몇 해전인가, 남성들의 반바지 차림이 유행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남성들 자체도 그렇고 여성들도 남성들이 다리를 내놓고 거리를 활보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그건 아마도 약간의 권위의식과 쓸데없는 체면(?)같은 허위의식들이 작용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몇 해전 여름, 남성들도 반바지를 입자, 못 입을게 뭐있냐는 의식이 갑자기 팽배해져 남성들의 반바지 차림이 유행이 되었고 이제는 이런 말을 꺼내는 것조차 촌스러울 정도로 당연시됐다.
자꾸 이런 흐름이 만들어진다. 남성과 여성간의 차별성이 더욱 두드러져 가는 것이 아닌 같은 인간으로서의 동질성을 되찾아 가는 그런 흐름. 물론 우리 사회에 여성들에 대한 억압과 그 옛날부터 의식 없이 계속된 각종폭력은 아주 없어진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게 옛 세대들의 아무 의심 없는 체면유지였다면 적어도 지극히 상식적인 가치를 꿈꾸고 있는 요즘 세대들은 이런 상식적인 흐름을 자연스레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매스컴의 위력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탤런트 원빈, 김재원, 배용준, 가수 지오디, 케이팝, 클릭 비, 축구선수 안정환 등을 일컬었던 이른바 ‘꽃미남 신드롬’이 그것이다. 다른 여성연예인보다 오히려 더 짙은 화장, 예쁜 외모를 자랑했던 이들의 선전은 자연스레 ‘남성의 상품화’로 이어졌다. 본래 TV드라마나 각종 쇼프로그램의 주 소비층은 여성이었던 사실을 상기하면 남성의 상품화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현명한(?) 전략인 것이다. 여성의 상품화를 들먹이는 것이 진부해졌다면 남성의 상품화는 그 자체로 신선하다. 적어도 남성들만이 성을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이젠 같이 향유할 수 있게 됐으니까.
요즘 성형외과에 가면 여성들뿐만이 아닌 많은 남성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모 남자연예인의 얼굴은 어디서 고쳤다더라 하는 연예면 가쉽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또 남성 잡지의 계속되는 탄생, 남자 화장법, 남성 누드집의 발간 등 남성의 상품화는 이미 많은 정도 진행된 현상이다.
다시 ‘남성의 여성화’로 돌아와서, 여성처럼 꾸미고 다니는 남성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남성들의 대답은 “그냥 유행이니까”라고 말하는 송모(전북대 과학기술학부 1)군을 비롯 “미 기준이 변화하고 있다”는 의견,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떠나 자신을 꾸미고 멋을 부림으로써 얻어지는 자기 만족감 때문에”라는 의견까지 실로 다양하다. 이러한 흐름이 유행이 됐건 미 기준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건 ‘자기변화’와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등 젊은 세대들이 자기 가치를 지향하고 있는 것은 주지할만한 점이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들이 겉모습, 외양만의 변화가 아닌 의식의 변화까지 수반해 우리사회에 진정한 양성성의 가치가 뿌리내리길 기대해본다.
(글 : 박진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