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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기 교수는 거의 40년이 넘게 일본과 한국 역사와 문화의 연관성을 연구하신 분입니다.
일본의 양심적 사학교수들과 교류하면서 알게된 한일관계역사를 밝혀주는 강의입니다. 정
확한 근거를 가지고 하시는 말씀이니 더욱 신뢰가 갑니다.
강의를 들어보면 일본역사의 뿌리가 우리 단군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라는 것에 놀라고
또 하나는 이런 분이 연구한 연구물이 한국주류사학에 반영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이 생깁니다. 주류사학계가 아니어도 이런 비주류 학계에서 꾸준히 참역사를 연구
하고 발표하시는 분들이 있기에 언젠가 시대상황이 바뀌면 이런분들의 연구물이 빛을 보리라
생각합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hxtzrjR-jQ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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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회 국민강좌] 한국과 일본의 천손문화 비교
- 한국외국어대학교 명예교수 홍윤기님 -
다수의 하나의 민족이 다른 새로운 개척된 지역으로 이동하면, 자연스럽게 그들의 오랜 신화며 설화도 함께 그 곳으로 옮겨간다. 이를테면 한반도의 민족이 배를타고 집단으로 계속할여 일본 섬나라 땅으로 건너 갔던 것은 한일 역사가 입증해주고 있다.
그와 같은 민족의 이동과 동시에 그들이 가지고 가는 것은 자신들의 자랑스러운 역사 이야기며 설화, 특히 신비한 ‘개국신화’ 등이다. 그러한 내용이며 이야기들은 새롭게 정착한 터전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도 널리 퍼지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한국 고대의 개국신화인 [단군 성조의 신화]가 일본땅에도 널리 퍼지게 되었던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일본 역사책에 나오는 일본의 개국신화가 우리의 단군 성조의 신화와 매우 유사기 때문이다.
일본 개국신화는 천신이 외손자인 니니기노미코토에게 ‘3종의 신기’(神器)와 5부신을 거느려 지상으로 내려보냈다는 것.
다행스럽다고 한다면 일본의 저명한 신화학자며 역사학자들은 “고대 한국 신화가 고대 일본신화로 각색되었다” 이렇게 단정한 학자는 한둘이 아니다.
단군 신화가 일본 신화로,
오카 마사오(岡正雄) 교수 주장
더욱 주목되는 것은 일본의 대표적 민족학자 오카 마사오(岡正雄) 교수의 다음 같은 연구다. “단군 신화를 보면 천신인 환인(桓因)이 아들 환웅(桓雄)에게 ‘3종의 보기’(寶器)를 주어 신단수 아래로 내려가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우게 한 한국 신화를 본 뜬 것이, 일본 신화의 ‘3종의 신기’(神器)다”([日本民族文化の源流と日本國家の形成] 1949)라고 단정했다.
우메하라 다케시(梅原 猛) 교수는 “니니기노미코토가 이끄는 천손족은 모름지기 조선반도로부터 일본 규슈땅 남부에 상륙하여 건너와서 다카치호(高千穗) 봉우리로 왔다. 벼농사 기술을 가진 이 조선 사람 집단은 차츰 그 세력을 뻐쳐서 사이토바루(西都原, 지금의 宮崎縣)까지 확대되었다. 1910년대에 발굴된 고분에서는 중국베 모양의 하니와(흙제의 묘지 매장물)며 한국에서 발견된 금동제 마구류가 출토하였다. 수렵 채집으로 먹고살던 토착 조몬인(BC. 3C 이전 시대) 시대로 야요이인(BC. 3C~AD. 3 시대)들이 건너와서 양자의 혼합으로 초기 일본민족이 성립된 것이 아닌가”([뉴스위크] 일어판 2002.3.20.)하는 구체적인 지적은 설득력이 크다고 본다.
견훤의 탄생설화와 대국주신의 신화의 공통성
지렁이의 허리에 꽂힌 바늘과 실
일본 역사의 신화에서 이렇듯 아가씨방에 밤마다 찾아드는 뱀으로 변신했다는 백제신(百濟神)인 대국주신 이야기와 똑같은 역사 이야기에서 독자 여러분은 어쩌면 대뜸 무엇인가를 느꼈을 것이다. 우리나라 고대 역사책인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후백제왕(後百濟王)인 ‘견훤(진훤)’의 탄생 설화가 그것이다.
[삼국유사]에 실린 ‘견훤(진훤)’의 탄생 설화는 다음과 같다.
옛날에 한 부자가 광주(光州) 땅 북촌에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어여쁜 딸이 있었다. 어느 날 딸이 아버지에게 놀라운 사실을 고백했다.
“늘 자줏빛 옷을 입은 남자가 저의 침실에 찾아와서 그 사람과 함께 지내게 되었어요”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처음에는 당황하였으나 남자를 찾아내는 방법을 제시해 주었다.
“그러면 너는 이제부터 기다란 실을 바늘에 꿰어 그 사람의 옷에다 꽂도록 해라”
그 다음 날 아침에 실을 뒤따라서 북쪽 담 밑으로 나가 보니, 실에 달린 바늘이 큰 지렁이의 허리에 꽂혀 있었다. 이로부터 딸에게는 태기가 있었고, 한 사내아이를 낳게 되었다. 이 아이가 자라 15세가 되자, 스스로 자신을 가리켜 ‘견훤’이라 칭했다. 그는 경복 원년인 임자(서기 892년)에 이르자 ‘왕’이라 일컫고, 완산군에다 도읍을 정했다.
이런 후백제왕 ‘견훤(진훤)’의 탄생 설화와 일본의 개국신이라는 백제 대국주신의 설화는 누가 읽어 보든지 똑같은 내용이다. 일본 고대 문화가 한반도 고조선 시대부터 옮겨 간 발자취가 일본 고대 신화책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이 두 설화는 누가 읽어 보든지 똑같은 내용이다. 일본 고대 문화가 한반도 고조선 시대부터 옮겨 간 발자취가 일본 고대 역사책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이 신화만이 아니고 천손강림의 신화 등 여러 가지가 많이 있어서, 앞으로 이모저모 상세하게 비교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중략)
일본천황가의 신 ‘대국주신’은 고구려시조 ‘주몽’이었다
지난 2001년12월23일, 일본 도쿄의 천황궁(황거)에서 지금의 아키히토 일본천황은 “내 몸속에도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일본[아사히신문] 2001.12.23. 보도)고 공언해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잇대어 그 이듬해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2002년 3월20일자호의 기사에서도 아키히토 일본쳔황은 “내 몸속에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말한 사실을 크게 보도했다([뉴스위크]지의 기사 사진 참조).
아키히토 일본쳔황은 그 날(2001년12월23일) 68회 생일을 맞아서, 생일 기념 공식 기자회견 자리에서 “한국의 말(馬) 문화며 문자 문화, 불교 문화 등이 모두 백제로부터 일본에 건너와서 일본 문화를 눈부시게 꽃피어주었다”고도 진솔하게 찬양했다.
한국의 말(馬) 문화를 일으킨 인물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고구려를 세운 동명성왕이 된 고대 한국인 주몽(朱蒙)이었다. 주몽은 본래 하늘에서 내려온 천신인 해모스의 아들이다. 그는 고대 동부여땅(만주 지역) 금와왕의 왕궁에서 어머니 유화부인의 몸에서 커다란 알로 태어나, 장차 금와왕의 왕실 목장에서 말을 잘 키우는 청년이 되었다. 그러나 금와왕의 심술궂은 왕자들의 박해로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주몽은 어머니 유화부인의 권유로 준마를 몰고 부하들과 남쪽으로 멀리 피신하여 졸본부여 국가(고구려)를 세웠다. 어머니 유화부인은 강에 사는 신인 하백신의 딸이었다([삼국유사]).
또하나의 우리 역사책 [삼국사기]의 기사에서는 주몽이 동부여가 아닌 북부여로부터 남쪽으로 피신했다고 한다. 물론 [삼국사기]에서도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은 주몽이다”라고 전한다. 여하간에 이렇듯 주몽으로부터 비로소 우리나라 삼국시대에 본격화된 것이 부여땅(만주 지방)을 바탕으로 하는 한국 기마민족 국가의 형성 과정이었다고 본다.
그런데 매우 흥미로운 것은 일본 신화에서 백제신(百濟神)이라는 ‘대국주신’(大國主神)이다. 즉 주몽(朱蒙)의 고대 부여 지방 역사와 비슷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일본에서는 대국주신(大國主神)의 신화 이야기로 바뀌어서 널리 퍼지게 된 일이다. 어째서 천신의 아들 해모수의 아들 주몽이 일본에서 대국주신의 신화로 각색된 것일까.
일본 역사책 개국 신화의 ‘소호리의 신’은
백제와 신라의 신
이제 우리는 기마 민족으로서 일본을 정복했다는 근거가 되는 역사의 발자취를 일본 학자들의 논술을 통해서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오카 마사오(岡 正雄,1898~1979) 교수는 일본 민족의 기원(起源)의 연구 학자로서 저명했다. 그는 저서 [일본민족의 기원](日本民族の起源)에서 “일본의 개국 신화(開國神話)는 한국 신화의 모방”이라고 단정했다. 오카 씨는 특히 우리나라 고대 가락국의 역사인 [가락국기](駕洛國記)와 연관시켜서 다음과 같이 진솔하게 밝히고 있다.
“천황가의 조상인 호노니니기노미코토(番能邇邇藝命)가 몸이 보자기에 감싸여(眞床覆衾) 하늘나라(高天原)에서 땅위로 내려왔다.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 보면 하늘 나라에서 붉은 보자기에 감싸여서 황금 상자가 구지봉(龜旨峰)으로 내려 왔고, 그 속에 든 여섯 개의 알 중의 하나에서 장차 김수로왕이 되는 왕자도 태어나게 된다. 그런데 ‘구지봉’은 역시 일본 역사책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지명인 ‘구시후루’(久士布流) 등과 똑같은 지명이다. 또한 [고사기]에는 ‘소호리의 신(曾富理神)’이라고 하는 한국신이 등장하고 있다. 이 ‘소호리의 신’이란 다름 아닌 ‘서울의 신’을 뜻한다. 그러니까 한국의 왕도(王都)인 서울의 신이 왜나라에도 강신(降神)해서, 왜나라의 개국을 다스렸다는 점이다(岡 正雄 [日本民族の起源] 中央公論社, 1970)
오카 마사오(岡 正雄) 교수는 ‘소호리의 신’이란 백제의 왕도였던 고대 부여땅인 소부리(所夫里, 소후리)의 신이며, 또한 신라의 왕도 서벌(徐伐, 소호루)의 신이라는 것을 동시에 지적하고 있다. 여하간 고대 한반도 백제와 신라의 ‘서울’(왕도)의 지명이 소호리였다는 것이며 그러한 백제와 신라를 지켜주는 한국신이 다름아닌 일본의 개국신인 ‘소호리의 신(曾富理神)’이 라고 강조했다. 이와 같은 내용의 오카 마사오 교수의 한일 신화의 비교 연구에 의한 풀이는 자못 진지하게 한일 두 나라가 동일 민족이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며, 또한 이것은 어디까지나 한국의 신에 의해서 일본이 지배되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일본의 저명한 역사 학자 미시나 아키히데(三品彰英) 교수 역시 오카 마사오 교수와 유사한 주장을 하고 있다. 이노우에 미츠 사타(井上光貞) 교수도 오카 마사오 교수의 저술을 광범하게 인용하면서 “남한으로부터 한국 신화가 일본에 들어왔다(井上光貞 [日本の歷史](1) 中央公論社, 1970)고 한다. 그런가 하면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 교수는 미시나 아키히데 교수의 한일 양국의 건국 신화의 동질성을 그의 저서 [기마민족국가](騎馬民族國家)에서 인용하면서 다시 다음 과 같이 한일 양국 민족의 동종성(同種性)을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아무래도 남한 특히 가야(伽倻) 지방에서부터 일본 규슈 북쪽 지방으로 건너 간, 천손족(天孫族)인 가야 민족이, 그들의 새 지배의 터전으로 삼은 타카치호 봉우리(高千穗峰)로 건국 신화를 연결시켰다. 일본의 역사책 [고사기]와 [일본서기]가 함께 전해주는 하늘나라에서 천손이 지상으로 내려왔다는 곳이 타카치호 봉우리의 소호리(添)이다. 그런데 이 소호리는 백제의 도읍지를 소후리로 불렀던 것과, 신라의 도읍지를 소후루(蘇伐) 또는 소호루(徐伐)로 불렀으며, 지금의 경성(필자 주: 일제 치하의 서울을 경성<京城>이라고 호칭했다)을 서울(ソウル)이라고 부르듯이, 왕도를 의미하는 한국어이며, 아무래도 일본어로서는 ‘소호리’의 의미가 제대로 통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호리가 한국어로서는 쉽사리 또한 합리적으로 풀어진다고 하는 점도, 고대 일본의 건국 신화가 한국의 개국 신화에서 왔다는 방증이 될 수 있다고 하겠다([騎馬民族國家]). 이와 같은 에가미 교수의 지적은 가야 지방에 살던 한국인들이 말을 타고 일본의 규슈 북쪽 지방에 건너 간 기마 민족임을 밝힌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의 옛터전인 만주 북방의 고조선 시대의 부여족이 만주 남쪽으로 차츰 내려 왔고, 다시 한반도로 계속 내려와서 가야 지방에까지 내려 온 그 부여족이 이번에는 일본 북규슈로까지 건너 갔다는 것이기도 하다. 여하간 모두들 일본 신화의 모체가 한국 고대 신화에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첫댓글 양심적인 학자가 일본에도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겠지요. 우리 강단 사학자보다 낫네요...
잘 시청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천황은 해마다 우리조상께 제사를 드려 일본의 안녕과 발전을 빌고, 우리는 미신이라고 천시하고...
기가 막히는 반간계요, 우리의 현실입니다.
어떻게 무지한 국민들을 계몽해야 됩니까 ?
안타까울 뿐입니다.
서정님 잘 보고 있습니다.
내일 아침이면 마저 다 보겠네요.
심지어는 단군ㄲ 제를 올리는 신사도 존재하지요. 글과 자료 감사합니다.
오늘 모두 시청완료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연말미에 언급되는 이모총재님이 제가 과거에 겪었던 그분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어려서 어머님이 이야기 해준것을 다시듣는 느낌입니다. 좋은자료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