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밤. 잘 준비를 한다고 세수를 하는데 갑자기 이상한 냄새가 났다. 플라스틱이 녹는 듯도 하고 과열된 전기 히터에서 나는 것도 같은 냄새. 화장실부터 시작해서, 부엌, 방마다 돌아다녔지만 아무데서도 냄새의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 혹시나 싶어서 아래층 보일러룸으로 가 봤지만 기계치인 내가 본다고 뭐 알아낼 수가 있을까. 이제 온 식구가 킁킁거리며 냄새의 근원을 찾아 나섰고 결국 더운 바람이 나오는 통풍구라는 결론을 내렸는데 확인하기 위해 온도를 올려 보일러를 돌리려 하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제서야 냄새와 함께 보일러가 고장이 난 거라는 걸 알았다. 시간은 이미 열 시가 넘어 있었고, 주말이라 기술자를 부르기도 어려운 상황. 다행히 겨울치고는 무척 포근한 날씨 (바깥 온도가 영하 6도 쯤)여서 일단 전기 히터를 몇 군데 틀어 놓고, 아주 추울 때를 대비해서 침대마다 깔아 놓았던 전기 요를 틀어 놓고 버텨보자고 결론을 내렸다.
아이들 둘을 같이 자게 하고 히터 하나, 안방에 히터 하나를 틀어 놓고 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밤 사이 집안은 정말 썰렁해져 있었다. 온도계를 보니 13도 정도. 아침을 먹고 서둘러 교회로 향했었다. 한낮에 햇볕이라도 쏟아져 들어오면 집안 온도가 꽤 올라갔을텐데 하루종일 비가 올 듯 흐렸던 탓에 시간이 지날수록 집안 온도는 점점 떨어지고, 두군데 틀어 놓은 전기 히터로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또 하루를 보내고, 월요일 아침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자마자 수리 센터에 전화를 했다. 다행히 한시간 남짓 후에 기술자들이 도착했고, 오전 열 시가 되기 전에 집안에는 다시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겨우 이틀 밤을 보일러를 틀지 않고 지낸 것 뿐인데, 게다가 영하 20도의 추위도 아니었는데,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그동안 참 따뜻하게 살았었구나, 하는 생각. 에너지를 절약한다고 한낮에는 온도를 내려 놓기도 했지만 그래도 식구들이 모두 집에 있는 동안에는 거의 20도 정도를 유지했었으니까. 지금 우리집 온도는? 18도에 맞춰져 있다. (그래도 아래층은 조금 더 춥다)
또 한가지. 어느 새 우리의 삶이 전기, 가스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됐구나, 하는 생각. 보일러가 고장났어도 전기가 있었기에 그나마 모든 게 정상적이었지만 만일 어떤 이유로든 전기가 하루 이상 끊겼다면 어땠을까? 만일 수도가 끊겼다면 어땠을까? 일단 바깥에 있는 프로판 가스 그릴 외에 우리 집 안에는 물조차 끓일 방법이 없다. 전기 오븐, 전기 포트, 전기 밥솥.... 전기가 없이는 그냥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물건들이 온 집안에 가득하다. 아, 대책이 필요하구나.
어디가 아파야 건강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진부해도 어쩔 수 없이 옳은 얘기이듯, 당연히 여기던 많은 것들이 갑자기 (잠시라도) 사라졌을 때 진정 그것의 가치를 알게 되는 것 같다. 이런 문명의 이기의 경우, 그것들의 가치와 함께 의존도 역시 깨닫게 되고.
첫댓글 횡여고에 근무할 당시, 너희들도 기억에 있겠지만 수도가 한 일주일 안 나온적이 있었지. 물 하나 안나오는데, 참 힘들었다. 특히 아파트의 수세식 화장실의 경우는 생각하기도 싫다. 우린 참 문명의 이기에 너무 익숙해 있지? 큰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