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봄이 그저 꽃치마나 두르고 아지랑이 따라 일렁이는 것만은 아니다
쳐다보고만 있어도 동공에 샛노란 물이 들것만 같은 개나리
하지만 그 뒷등은 모두 타버린 어떤 어미의 가슴같은 잿빛이다
절세미인 왕소군이 아니더라도 소중한 것들을 떠나보낸 사람들에겐
여전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봄은 맑고도 흐린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있다
엘리엇의 황무지에서 처럼 잔인한 달 4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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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체험관에 거나한 상이 차려졌다
개미도 한 점 먹고 바람도 한 술 뜨고
잡귀도 먹고 신도 마시고
죽은자와 산 자가 함께하는 겸상이다
굿은 이렇게 삼라만상 모두가 같이하는 축제다
궂은 굿 날
누구의 서러운 혼인가
아침 일찍부터 추적거리는 봄비도 자리를 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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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고,피리,바라,북,징,꽹과리로 이루어진 서울 가무악단의 비나리가 흐느끼면
신성한 불의 기운으로 굿판과 관객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정화의식이 시작된다
그 어떤 기원 혹은 기복이라도 몸과 마음부터 깨끗이 닦지 않으면 안된다
그 맑은 정신이야 말로 굿의 발원이요 새벽에 정화수 한 그릇 담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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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모시기 위한 기도가 시작된다
보통은 성주굿이라 하여 집안의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집안의 최고 신령 성주를 모시는 의식이다
지신밟기 등으로 행해지는 이 굿에 부르는 노래를 성주풀이라 부르며 지방마다 각기 다른 가락을 가지고 있다
접신을 하는 시간은 사무(師巫)에 따라 다르나 그 정점에 흐르는 휘모리 장단으로 몰아치는 무속음악은
정신을 쏙 빼 놓을만큼 화려하다 굿판의 바로 이 음악이 오늘날 시나위라는 위대한 음악을 탄생시켰지 않는가
성주신을 모시고 나면 부엌에 조왕신을 모시는 조왕굿, 우물에 신을 모시는 샘굿,장독대에 신을 모시는 철룡굿
등으로 이어지지만 무녀 한영애는 단호하게 말한다
누구든 부르고 싶은 신을 모시세요 부처님이든 하나님이든 마리아님이든 상관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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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를 무속에서는 상주막대로 쓴다
대나무가 굿에 등장한 것은 아주 오래된 일로 보인다
어느 당집에서나 대나무에 걸린 붉은 깃발 하나쯤은 쉽게 볼 수 있는데
이는 대나무의 영험으로 신을 부르고 또 잡귀를 물리치기 위해 붉은색을 깃발로 쓰는 까닭이다
무속에 대나무에 얽힌 오랜 설화 하나가 전해오고 있다
당나라시절 비단처럼 귀한 아기인 ‘당금(唐錦) 아기’의 이야기이다.
당금 아기는 승려와 통정하여 삼형제를 낳는데, 이들이 장성하여 아버지를 찾는다.
그러자 당금 아기는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않고,
“건너편 대밭에서 오줌을 누었더니 너희들이 태어났다” 고 둘러댄다.
이에 삼형제는 대밭으로 찾아가 아버지를 찾는다. 그러자 대나무들은 이들에게
“우리는 너희의 아버지가 아니지만 너희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 우리를 베어다 상주 막대를 삼으면
너희의 아버지가 되어 주겠다”고 말한다.
이후 부모상을 당한 상주들은 모두 대나무 지팡이를 만들어 짚게 되었다.
이처럼 대나무는 우리의 대부(代父)가 되어 우리의 삶을 지켜 주고 후원해 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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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이렇게 자기의 신을 부르고자 하는 이가 있으면 대나무와 붉은 천을 건네준다
그녀가 신을 만나 살(煞)을 풀어내기를 무녀와 관객은 빌고 또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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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풀이와 함께 칠성굿이 시작된다
칠성신앙은 도교의 영향을 받은 오랜 민간신앙인데 그 흔적이 고인돌군에서 까지
나타나 있다고 한다 또한 천불천탑으로 유명한 화순 운주사에도 그 흔적이 뚜렷하다
북두칠성의 모양과 각도를 정확히 파악해 신석을 배치해 놓은 걸 보면 우리 조상들의 천문학적 우수성을
알고도 남음이 있다 칠성굿에서는 칠성부채와 함께 방자로 만든 칠성도(七星刀)를 사용하는데
특이하게도 이 날 마루바닥에 내려친 칠성도가 두 동강이가 났다
무녀 스스로도 한 번도 없었던 일이란다
살을 풀어준 한 여인의 그것이 너무 무겁고 큰 액운이여서 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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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누구나 나고 늙고 아프고 죽는다(生老病死)
단지 시기가 다를 뿐 이제 태어난 자와 오늘 죽어가는 자 둘이 아니다
건강한 자 고통에 신음하는 자 역시 다른이가 아니다
겪는 시간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우린 늘 누구에게 기도한다
신이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바라고 원하고 또 조아린다
기원이나 기복은 사실 신통한 결과를 얻자는게 아닌 걸 누구나 알고있다
기도를 한다고 어떤신이 바로 들어줄 수 있을까
천만에 말씀이다
오히러 그런 욕심이 기도를 흐리게 하기도 한다
기도는 원래 내가 아닌 남을 위해 하는 것이요
나를 위해 하는 기도는 내 마음(五慾)을 다스리기 위함이다
마음다스림이 기도의 시작이요 끝이 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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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은 잔치다
무릇 잔치는 모두가 같이 참여하고 같이 즐겨야 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가진 아름다운 전통 대동(大同)이 아니던가
각자의 쓰림과 아픔 그리고 회와 한을 풀어놓고 발복한다
그 순간 만큼은 모두가 천진한 아이의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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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무인(巫人)이나 자기가 모시는 신이 따로 있다
무녀 한영애가 모시는 장군신을 모시는 장군굿이다
그 어느 굿보다 발놀림이 빠르고 춤사위가 화려하다
춤을 추던 무녀가 갑자기 굵고 위엄있는 목소리로 호령한다
그 분이 오셨다
얼굴엔 환한 미소가
또 걸음걸이엔 호연지기가 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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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祭主)와 함께하는 조상굿이다
한(恨)을 안고 구천을 떠도는 조상이나 가족의 혼을 불러 한을 풀어내는 작업이다
망자의 유물을 하나하나 풀어 헤쳐 망자의 혼을 부른다
아주 어린 동자의 혼이 나와 배고프다며 엄마를 부르기도 하고
스무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청년의 혼이 나와 힘겨웠던 그 상황을 읍소하기도 한다
첩에 등살에 못이겨 세상을 등진 어느 여인의 혼이 첩의 영혼과 주인영감의 영혼을 동시에 만나
너무도 극적으로 용서와 화해의 장을 만들기도 하고 어린아들을 두고 일찍 세상을 등진 엄마는
무녀의 몸을 빌려 (빙의/憑依) 아들을 만나 통곡으로 사죄한다
만나고 헤어짐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몫 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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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살 꼬마의 목소리다
"엄마 ! 엄마 나 엄마 미워하는거 아니야
엄마 너무 보고 싶어 진짜 힘들었지만 그래도 엄마 품에 있을 때 생각하면서 참았어
엄마 울지마
이렇게 내가 엄마보러 왔잖아
나두 이제 엄마 보고싶다고 떼 쓰지 않고 울지도 않을테니까
엄마두 이제 그만 울고 잘 살어
다음에 다시 태어나도 꼭 엄마 찾아갈께
그때까지 내 얼굴 잊어버리면 안돼 엄마
꼭 다시 엄마 찾아 갈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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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나이에 세상을 하직한 제주의 아비 혼은
노래를 좋아하셨다
문득 '얼굴' 이라는 노래를 듣고 싶다 했다
가수 유성운이 영매(靈媒)의 주문에 따라 노래를 부른다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
그 눈물로 진폐증처럼 녹아붙은 한(恨) 들이 모두 쓸려 내려가길 빌고 또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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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녀가 주저앉아 하염없이 운다
하지만 무녀만 우는 건 아니다
피리도 울고 징도 울고 하늘마저 운다
눈물이 부족한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사람들이 다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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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남아있는 지꺼분한 것들을 모아 안고 베를 가르는 해원굿이다
이제 이 베를 다 가르고 나면 모두의 엉어리가 봄 눈 처럼 녹아내릴 것이다
그리하여 따스한 참 봄이 될 것이다
이제야 꽃을 꽃이라 부를 수 있는 꽃 이름 봄이 올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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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교방무를 하는 김정원이 해원(解怨)의 길에 같이 나섰다
발 끝에서 손가락 끝까지 굽이치는 춤사위로 원(怨)을 풀어낸다
그녀의 복사꽃빛 볼우물에도 신이 강림했다
문 밖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봄 날 꽃같이 귀한 그분들이 납시었다
신들의 향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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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지창에 돼지 머리를 꽂아 세우는 일은 굿을 무사히 마쳤다는 신의 계시다
머리가 작은 쌀자루 위에 서지 않으면 굿은 끝날 수 없다
신이 허락하지 않는 굿판이란 의미다
며칠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머리가 서야만 굿을 끝낼 수 있는 이유다
이 날 꽤 오랜시간을 무녀는 신음했다
조왕신을 다시 모시고 잡귀를 대접해 보낸 뒤에야 머리는 반듯이 앞을 보고 선다
볼기짝이 예쁜 통돼지도 삼지창 하나에 거뜬히 선다
이는 신의 영역이라 촬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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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려하지만 더 없이 진지하고 큰 강물처럼 울어대다가도 금방 다시 웃을 수 있는
온 몸을 내 던지고 영혼까지 버리지 못 하면 풀어낼 수 없는
굿 그 화려한 천형(天刑)
굿이 끝나고 갑자기 눈에 띄는 종이한 장
한지에 예쁜글씨로 직접 쓴 한옥체험관 안내문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세살박이 늦둥이 아이를 보는 것 처럼 즐겁다
![](https://t1.daumcdn.net/cafefile/pds65/5_cafe_2008_04_12_16_53_480069ba7267c)
한국이 낳은 천재 작곡가 윤이상이 '생의 한 가운데'로 유명한
세계적 문호 루이제 린저를 만났을때 그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내 고향 통영 앞바다에서 듣던 무녀들의 노랫소리가 가슴 밑바닥에서
아직도 쟁쟁하게 울리고 있다"
이제 굿은 종교가 아니다
더욱 미신도 아니며 사이비도 아니다
굿은 전통이요 문화이고 또 정신이다
우리가 지키고 간직해야 할 소중한 유산이다
한영애의 모노드라마 제목처럼
굿은 삶이요 인생은 굿(GOOD)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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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전공한 한영애는 젊디젊은 어느 날 신내림을 받아 무녀가 된다
수 없이 많은 날을 앓아오면서 그녀는 신을 받아 들였지만
기복이나 해원을 구실로 소위 돈 되는 굿판을 벌이기 보다는
같이 즐길 수 있는 대동 굿판들을 고집 해 왔다
또한 굿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작품으로 승화한 퍼포먼스를 공연해 감동을 주기도 한다
이 봄날 그녀의 상생의 굿판이 모두에게 희망의 불씨로 남길....
![](https://t1.daumcdn.net/cafefile/pds65/5_cafe_2008_04_21_11_12_480bf7fcbabdd)
20080420 별*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