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의 누명을 쓰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던
헨리 8세의 왕비 앤 여왕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아, 오월이군요"였다고 한다.
계절의 여왕 5월..
길을 나서면 산하는 온통 갖가지의 꽃들과 초록의 푸르름으로
싱그러운 봄을 맞이하고 있다
햇살이 너무 따사로워서
살가운 바람이 너무 부드러워서,
나뭇잎이 너무 푸르러서, 꽃이 너무 흐드러져서,
그래서 세상살이가 더욱 버겁게 느껴지는 이 아름다운 오월에,
본능으로 사는 내가 아닌
여유로움을 지닌 향기로운 삶이길 바라며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을 떠나
잠시 그 한가로움을 찾아 길을 떠난다
어제부터 내리던 내마음 같은 봄비는
오늘도 추적추적 하염없이 내리는데
유일사가 있는 태백산매표소를 지나는 31번국도는
하얀 자작나무 가로수가 풍치를 더한다.
월정사의 말사인 태백산(太白山) 정암사(淨岩寺)는 본래는 함백산인데
태백산 줄기에 있다 하여 태백산 정암사라 한다.
정암사는 선덕여왕 5년(636) 자장율사가 당나라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와 가사를 전수받아 643년 귀국 창건한 사찰로
보물 제410호인 수마노탑과,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우리나라 5대 보궁 중 하나인 적멸보궁 등
범종각, 육화정사, 요사채, 삼성각, 자장각, 관음전, 자장율사의 주장자 등이
고찰의 품위를 더해주는데
이곳은 천연기념물 제73호인 열목어의 서식지로 청정지역이며,
드라마 "다모" 촬영지로도 명성이 있다
이곳엔 옛부터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자장율사의 열반지인 이곳 정암사는 자장율사가 말년에
강릉군(지금의 명주)에 수다사(水多寺)를 세우고 그곳에서 머물렀는데
어느날 중국 오대산 북대에서 꿈에 본 이승(異僧)이 다시 나타나
"내일 대송정에서 그대를 만날 것이다" 하였다.
놀라서 일어난 자장율사는 일찍 송정에 가니 문수보살(文殊菩薩)이 감응하여 와서
"태백산 갈반지에서 다시 만나자" 하고는 자취를 감추었다.
자장 율사는 태백산 탑동에서 하룻밤 자고 사리(舍利)를 모시려 하자
하룻밤새 칡넝쿨이 세갈래로 뻗어 나 있어 기이하게 여기고 칡넝쿨을 따라갔다.
그런데 그곳 나무 밑에 큰 구렁이가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율사는 "이곳이 바로 `갈반지"이다" 하며 갈래사(葛來寺, 지금의 정암사)를 세우니
지금도 인근 마을 주민들은 정암사를 갈래사라 부른다.
태백산 입구 화방재에서
환상의 드라이브길이라 이름난 414번 도로를 달리니
계곡 계곡마다 비단결처럼 피어오르는 운무는 가히 절경이다
백두대간이 지나는 태백산과 백운산을 가로질러
굽이굽이 산길을 휘돌아 내려오면
우측으로 솟아난 함백산 골짜기에 정암사가 있다
정암사의 첫 관문인 일주문(一柱門)에 들어서면,
왼편으로는 육화정사(六和精寺),
오른편으로 낮은 담장을 꺾어 돌면 범종각(梵種閣)이 보이고,
계류 너머로 적멸보궁이 자리한다
고개를 들면
높은 곳 팔부능선에 보이는 하얀 수마노탑..
탑은 저렇듯 저 자리에 서서 천삼백년을 지키고 있지만
마노석으로 쌓았기에 그러한가
아니면 부처님 진신사리의 은덕인가
탑은 새로 조성된 듯 지치지 않은 자태로
이 아래 중생들을 굽어보고 있다
요사채를 지나고
열목어 서식지인 작은 돌다리를 건너면
산 밑 가파른 곳엔 작은 돌계단이 있는데
이 돌계단을 오르면 수마노탑에 이른다
보물 제410호 수마노탑(水瑪瑙塔)은 분황사 모전탑과 같은 양식으로
643년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서해 용왕이 자장율사의 불도에 감화되어 하사받은 마노석(瑪瑙石)인데
이 돌을 배에 싣고 동해 울진포를 지나
신력(神力)으로 갈래산(葛來山)에 비장(秘藏)하여 두었다가
절을 창건할 때 수마노탑을 건조하였다 한다
이 마노석은 지구표면상에는 없는 준보석의 돌로
지질학자들에 의하면 바다가 육지로 되었을 때
지각변동으로 생긴 것으로 추정한다
세계에서 중국의 어느 한 지역에서만 난다는 이 마노석은
바다 밑 3,000미터 이상 들어가야 있기 때문에
용왕이 자장율사에게 마노석을 주었다는 설과 일치한다
지그재그로 조성된 돌계단을 오르면
조금씩 드러나는 수마노탑의 장대함..
적멸보궁 뒷산 전망좋은 곳, 급경사진 터에 자리잡아
축대를 쌓아 조성한 이 탑은
모를 죽인 화강석을 체감(遞減)되게 6단으로 쌓아 지대석을 마련하고
그 위에 다시 2단을 쌓아 탑신을 받쳤다
전체 높이가 9m인 수마노탑은
마노석을 벽돌모양으로 깎아 쌓아올린 7층 전탑계 모전석탑으로
회녹색을 띤 석회암 재질로서
정교하게 가공 질서 정연하게 쌓아올려
마치 벽돌을 이용한 것처럼 보이는데
물길에 따라 마노석을 반입하여 만든 탑이라 하여
물 수(水)자를 앞에 붙여 수마노탑이라 부른다
1972년 해체 복원과정에서 탑을 세운 이유를 담은 5개의 탑지석(塔誌石)과
청동합(靑銅盒), 은제외합(銀製外盒), 금제외합(金製外盒) 등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
그 후 광산개발이 본격화 되면서 지반이 침하되고 탑의 균열이 심화되어
"96년 전면 해체 보수 및 탑 진입로를 정비하였다.
1층 몸돌 남쪽면 중앙에는 감형을 설치하였는데
화강암으로 틀을 짜서 감형방광을 만들고 1매의 판석(板石)을 끼웠으며
중앙에 종선(縱線)을 음각하여 2매의 문비(門扉)임을 표시하였고,
중심에 철제 문고리를 달았다
자장 율사는 수마노탑을 세우고 금탑과 은탑도 같이 세웠다 한다
신라 사적기(史蹟記)에 의하면
태백산(현 함백산) 삼갈반지(三葛盤地)에 삼봉이 있으니
동은 천의봉, 남은 은탑봉, 북은 금탑봉이며 그 가운데 3탑이 있으니
첫째 금탑, 둘째 은탑, 셋째 마노탑 인데
후세에 중생들의 욕심으로 신심(信心)이 약해진다하여
금,은, 두 탑은 숨어서 나타나지 않고 마노탑만 나타나서 전한다고 하는데
그렇지만 지금도 기도(祈禱)를 열심히 한 이에게는
금탑과 은탑이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그러한가
정암사는 여느 사찰과는 다르게
"지심귀 명례 불타야중 산갈반지 금탑 은탑 수마노탑"이라 예불한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광채를 발하듯 하얀 자태로 서있는 회녹색 수마노탑의 위용과
추녀와 태백준령들의 어울림이..
그리고 심금을 울리듯 은은히 퍼지는 풍경소리가..
옥개는 전탑의 전통적 형식으로 조성되어
추녀의 폭이 좁으며
전각에서 살짝 들린 듯 하고
각층 전각 끝 추녀에는 풍경을 매달아 흔들리고 있다.
옥개의 체감 현상도 옥신과 마찬가지로 크지 않아 부드러운 느낌을 주며,
옥개 받침은 1층 7단부터 시작하여 올라가면서 1단씩 줄여
7층에서는 1단이 되었고 윗면의 층단도 1층의 9단부터 시작하여
올라가면서 1단씩 줄여 7층에서 3단이 되었다.
상륜부(相輪部)는 화강암으로 조성한 노반(露盤)이 있어
얼른보기에 8층으로도 보이는데
그 위에 모전석재 2매를 얹고
다시 오륜(五輪)과 수연형(水煙形)을 얹었으며
쇠사슬이 4층 옥개까지 내려와 유연한 곡선을 이루니.. 아름답다.
봄비 내려 고즈넉한 날
바람만 슬쩍 불어도
풍경(風磬)은
결 따라 흔들리며
그 맑고 은은한 소리가
공중에 가득 찬다
풍경소리 하나에 시정(詩情)을 돋우고
풍경소리 하나에 길손의 여정(旅情)을 달래며
풍경소리 하나에 경세(警世)의 의미를 지닌 불구(佛具)의 수행자처럼
방일(放逸)과 나태함을 깨우친다
돌처럼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정암사의 가람이 한 눈에 들어온다
자비하신 부처님은 이곳에 천년을 서서
속세의 중생들을 굽어보고 계신다
적멸보궁으로 진입하는 길목엔
"자장율사 주장자"라는 주목나무가 있다
약 1300년전 자장율사가 정암사를 창건하고
평소 사용하던 주장자(柱杖子)를 꽃아 신표로 남기니
나무는 회생되고 성장되어 천년의 맥을 이어와
자장율사의 옛모습을 보는듯 감회가 새롭다
적멸보궁이란 법당에 해당하는 건물로서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찰의 당우 중 하나인데
석가모니가 화엄경을 설(說)한
중인도의 적멸도량(寂滅道場)을 뜻하는 전각으로,
불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함으로써
법신불(法身佛)로서의 석가모니 진신이 상주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때문에 불전(佛殿)에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불단(佛壇)만 있는 것이 특징인데
적멸보궁 바깥쪽에 사리탑을 세우거나 계단(戒壇)을 만들기도 한다.
정암사는 자장율사의 열반지이며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적멸보궁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사리가 들어온 것은
신라 진흥왕 10년(549) 양(梁)나라에서 사신편에 불사리를 보내와
왕이 백관과 함께 경주 사정동에 있는 신라 최초로 세워진 절
흥륜사(興輪寺)에서 맞이하였다는 것이
사리 전래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나
사리신앙(舍利信仰)과 불교 발전에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 것은
자장율사였다.
자장율사는 중국에서
사리, 불경, 번당화개(幡幢花蓋) 등 많은 것을 가져왔는데,
이때 자장율사에 의해 모셔진 사리는
양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 오대산 상원사, 영월 사자산 법흥사
그리고 태백산 정암사이며, 이를 "5대 적멸보궁"이라 한다.
자장율사가 사리를 수마노보탑에 봉안하고 건립한 이곳 적멸보궁에는
선덕여왕(善德女王)이 하사하였다는 금(金) 가사(袈裟)가 보관되어 있었으나
1975년 11월 도난 당하였다.
마치 가는 금 철사 같은 것이 얽혀 있는듯 신비롭다는 금란가사는
누런 봉투에 넣어져 보궁(寶宮)에 보관해 놓은 것을
많은 사람들이 보았다는데..
정암사 주변을 흐르는 계곡은 물이 맑아
식수로 사용할 정도이며
산소함량이 높아 1급수에만 자란다는 열목어가 서식한다.
하지만,
한창 진행중인 보수작업으로 열목어의 서식지엔 황토물로 가득하다
열목어(熱目魚)는 극지송어과(極地松魚科)에 속하는 종(種)으로
담수어(淡水魚) 중에서는 대형종(大形種)이어서 몸길이가 70∼100cm에 달한다.
입은 작고, 머리, 몸의 옆면, 등지느러미, 기름 지느러미 등에는
눈동자보다 작은 자갈색의 반점(班點)이 흩어져 있다.
열목어는 북방계의 어종으로
한여름에도 수온이 섭씨 20도 이하를 유지하는 곳이 아니면 살지 못하고,
물이 얕으면서도 월동할 수 있는 깊은 소가 있어야 하며,
유속이 완만하고 바닥에 자갈이 깔리어 산란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이와 같은 조건으로 정암사 일대는 열목어 서식 요건을 아주 적절하게 갖춘
세계 최남단에 속한 곳이라 한다.
열목어는 한국 토종은 아니나 희귀종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열목어가 아니고 남방한계선이라는 서식지가 천연기념물이라 한다.
오래된 목재는 제멋대로의 성깔이 사라져
부드럽고 좋은 향기를 지닌 나무가 된다고 한다
산에서 느끼는 비속(非俗)의 느낌.
일상을 떠나
굽이굽이 태백의 준령들을 돌아보려니
가슴 한켠 응어리진 번뇌는 어디로 갔을까
가슴속으로 바람이 지나간다
테크놀러지가 아무리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쏟아낸다 할지라도
나는 계속
오래된 우리의 것들을 찾아 길을 떠날 것이며
천천히 돌아볼 것이다
♬비목...바이올린 연주곡
첫댓글 날씨 따듯해지면 번개로 한번 가자구요...^^
아..좋다~~~♪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길목에 가면 좋을 것 같네요...사진으로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