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를 톺아보다
성병조
(여행을 가려는데?) 본란에 글 올린 지 9년 여 된다. 해외여행 때를 제외하면 하루도 빠뜨린 적이 없다. 새벽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살피는 게 바로 이곳이다. 어떤 모습으로 하루를 열어갈 것인가. 가능하면 희망의 메시지, 해학과 긍정 에너지가 듬뿍 담기기를 원한다. 글을 읽고 미소가 번지면 더 바랄 게 없다. 하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비슷한 내용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소재의 다변화를 꾀하려 애쓴다. 여행을 좋아하다 보니 그곳 사연이 자주 등장한다. 글은 필자의 사상과 살아가는 모습에 근접한다. 이 같은 여행지 상황 묘사를 불편하게 여기는 분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며칠 간 강원도 오지 풍경이 나타나더라도 이해 바란다.
(버스 여행도 좋다) 여행은 각자 생각 나름이다. 어떤 게 좋다 나쁘다 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주로 아내와 함께 나서기에 운전석에서 거의 떠나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버스나 기차 여행을 꿈꾸어왔다. 마침 서울 사는 두 아이가 휴가를 받아 강원도로 우리를 초청한 것이다. 아이들 차가 두대여서 우린 동승키로 하였다. 얼마만의 해방인가. 북부 정류장, 그토록 붐비던 곳이 너무도 썰렁하다. 태백까지 가는 손님이 겨우 일곱명. 차가 높으니 바깥 구경하기 딱 좋다. 낯익은 길, 푸른 산하가 무척 아름답다. 2시간 반만에 태백에 도착하니 이곳 역시 한가하기는 마찬가지다. 모처럼 대구, 태백의 버스터미널 체험으로 우리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태백 버스터미널에서)
(파골이 그리운 새벽) 사람의 습관이 이런 것인가. 이른 기상이 생활화된 나는 새벽이면 분주해진다. 서너 시에 일어나면 카페나 페이스북을 살핀 후 여느 때처럼 글을 올린다. 이어 새벽 운동을 시작한다. 그 후 남는 시간에는 신문을 읽거나 글쓰기에 집중한다. 요즘들어 이런 생활에 변화가 생겼다. 파크골프에 심취하면서 운동이 파골장으로 바뀐 거다. 새벽 5시 집을 나서면 9시경 집에 온다. 이젠 새벽 파골러들을 많이 알기에 이르렀다. 반갑게 인사도 한다. 그런 일상이 여행지에서는 무척 부자연스럽게 다가온다. 5시가 가까워지니 마음은 온통 그곳으로 향한다. 파골이 이토록 좋은 것인지 여행하며 더욱 실감하게 된다. (정선 P호텔에서)
(정선군의 절규) 정선 하면 뭐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가. 정선 아리랑, 강원랜드, 민둥산, 오일장? 정선은 평창 영월 태백과 인접한 소읍이다. 이곳이 크게 각광 받는 것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영향이 크다. 당시 정선에도 알파인 스키장이 건설된 것이다. 군민에겐 뜻 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올림픽이 끝나자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시설을 활용할 길이 막막해진 것이다. 스키장, 주 건물과 곤돌라 2기, 고급 호텔 두 곳이 파리를 날릴 지경이다. 이대로 두면 얼마 못 가 폐허가 되고 만다. 정부에서는 시설들을 철거할 모양이다. 보다 못해 정선군민들이 떨쳐 나섰다. 그들은 올림픽 기념시설로 계속 활용할 길을 열어 달라고 절규한다. (정선 알파인 스키장에서)
(남대천의 물고기 사냥) 강릉의 명물이 생각나는가. 경포대, 오죽헌, 커피거리 등? 남대천에 들렀다. 회기성 물고기 연어가 떠오르는 곳이다. 물속을 유심히 살펴본다. 잉어가 유유히 놀고 있다. 놀랍게도 물에서는 악취가 풍긴다. 이럴 수가 있나? 즉시 주변 분을 통해 확인에 들어간다. 연어가 돌아오는 곳은 여기가 아니라 양양의 남대천이란다. 물가에선 갈매기와 백로가 고기 사냥을 하고 있다. 얕은 곳에는 갈매기가, 물이 떨어지는 아래는 백로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짧은 시간 동안 백로는 대여섯 마리를 잡아 삼키지만 갈매기는 허탕 치고 있다. 강릉에서 바라본 물고기 사냥, 귀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강릉 남대천에서)
(우드볼을 만나다) 강릉 남대천 산책 중 멀리 파크골프 하는 듯한 모습이 보인다. 반갑게 다가가 보니 처음 보는 운동이다. 예전 시골 농기구인 곰배와 흡사한 채로 큰 공을 치고 있다. 한참 보고 있으니 한 남성이 다가와 친절히 설명해 준다. 우드볼(Wood ball)이라고 한다. 그의 설명에다 자료를 보탠다. 골프의 재미와 게이트볼의 간편성이라는 장점이 있다. 골프의 단점을 보완한 경기로 잔디 위에서 맥주병 모양의 말렛으로 나무 공을 쳐서 게이트를 통과시킨다. 설명을 듣고 대구의 파크골프를 얘기했더니 재미는 파골 보다는 못하다는 데 공감한다. 곧 강릉에도 파골장이 생길 거라는 설명까지 곁들이는 그가 무척 고맙다. (강릉 우드볼 경기장에서)
(속초 갯배와 아바이 마을) 속초는 동해 북쪽에 위치하며 설악산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피난민이 사는 아바이 마을로도 유명하다. 도심에는 청초호가 있으며 닭강정으로 대표되는 중앙시장도 있다. 이보다 더 많이 알려진 게 바로 갯배이다. 청호동 (아바이 마을)과 중앙동 (중앙시장)을 잇는 100m 넓이의 바다에 쇠줄을 당겨 움직이는 도선이 운행된다. 1988년부터 청호동 개발위원회에서 위탁 경영하며 정원은 32명이다. 속초 연간 관광객 2백만 명을 견인하는 명물이다. 2000년 9월 KBS서 방영한 인기 드라마 ’가을 동화‘와 MBC 1박 2일의 무대가 되면서 더욱 많이 알려졌다. 요금은 편도 기준 어른 500원 소인 300원이다. (속초 갯배 체험장에서)
(여행의 진미는 맛집에서?) 여행하다 보면 구성원의 다양한 취향을 발견한다. 각자의 개성이니 탓할 바는 못 된다. 그렇다면 젊은이나 여성들은 어디를 선호할까? 요즘 ’먹방‘이 유행하듯 맛 기행이 제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3일간의 여행 중 여성이 수적 우위를 차지한다. 나이를 따져도 젊은 사람이 많다. 그래서일까. 이들은 방문지의 관심보다는 전망 좋은 찻집이나 맛집에 더 신경을 쓴다. 유명 찻집, 유명 식당 찾는 데는 도사들이다. 들리는 곳마다 장사진을 친다. 번호표 받는 식당은 예사이고 보통 30분 이상 기다려야 한다. 태백, 정선, 강릉, 속초의 이름난 맛집에 들렀는데 명성에 손색없었다. 여행의 진미는 맛집에서 나오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랜 꿈 좌절되다) 대구 북부 버스터미널에서 시작된 강원도 여행은 출발이 좋았다. 아이들과 합류하기 위해 버스로 태백까지 갔다. 고대하던 버스 여행이 성사된 것이다. 모처럼 운전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운전석에서 바라보는 풍경과 높은 버스에서 보이는 풍경이 어찌 같을 수 있으랴. 원하던 여행이다. 하지만 내 바람이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아이들과 서울 가서 대구로 올 때는 무궁화 열차를 타리라 맘먹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완행열차다. 기차 안에서 유유자적하는 여유, 생각만 해도 즐겁다. 하지만 이를 어쩌랴. 나의 소망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긴 시간 탑승을 모두가 꺼린다. 가족들의 만류로 KTX 열차표가 내 손에 쥐어졌다.
(강원도 여행 2021. 8. 2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