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팔순의 어머니께서 아들의 시집를 읽으시네
이용호
시가 뭐 별거겠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면
그게 시겠지
하루 세 끼 잘 챙겨 먹고 술 좀 줄여라
시도 먼저 사람이 있고 그 다음인 거지
뭐 별거 겠니
나는 어두워 오는 산사(山寺)에 앉아
어머니 말씀을 전화기로 듣네
하루를 아들 걱정으로 공양하시는 분의 음성이
풍경 소리에 얹혀 이승을 날아가고 있었네
아들의 시집을 서점에서 몇 권 사
동네 경로당과 복지센터에 갖다 주셨다지
이게 내 아들의 시집이라며
읽을 만하다며 자랑하셨다는 말씀 너머에도
하루해가 지나가고
꽃잎들 하나 둘 하염없이 피었다가 졌을 텐데
독경 소리에 번져 오르는 어머님 말씀을
눈로 닦고 닦으며 듣고 있네
부처님 말씀처럼
알아듣게 써봐라
대체 무슨 소린지 모르게 쓴다면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지
나뭇잎 하나에도 말씀을 전하는 게
풀 한 포기에도 가슴을 얹어 두는 거
그게 시가 아니겠니
뭐 시가 별거겠어
다 사람 사는 일이지
2.
회룡포
이용호
근원을 알 수 없는 곳에서 바람을 타고 온 것들은
이곳에 모두 모였다, 직선도 머리를 숙이고 휘돌아나가는 곳
누군가는 서쪽이라지만
그건 아무도 해독할 수 없는 암호와 같은 것
태초에 불어온 조상의 숨결들이 긴긴 강물에 몸을 의탁하면
어느새 가까워지는 모래사장 그 어디쯤에
다가갈수록 커져만 가는 언덕에서 하룻밤 유숙을 하고
나그네는 서둘러 발목을 꺼내 잠시 햇빛에 말려 본다
부르튼 채 젖어 있는 강가에선 속수무책
노송 아래 묻어 있던 추억들 샛별처럼 떠오르는데
두고 온 소백산맥의 계곡 그 어디쯤엔
첫사랑의 소쩍새들이 과거의 한 굴레를 관통해 가고 있었다
직선을 잃은 것들은 여지없이 쓰러지기만 할 때에도
그대는 한동안 정신을 잃었는지 모르지만
단 한 번의 순례로 언덕을 만나 사랑을 하고
기러기의 발을 잡고 울기도 했을 날들엔
서둘러 결별을 각오한 물길들이 서슬처럼 번져 나갔다
그대는 근원을 알 수 없는 곳에서
겸손하게도 두 손을 모으기만 한다
누군가는 곧 떠나겠지, 저 언덕을 넘어가겠지
우리들 삶의 강둑에는 항상 슬픔이 존재하지만
나는 이제 하나도 뉘우치지 않고 싶다
발목이 시리도록 모래바람이 휘몰아쳐 온대도
바짓가랑이를 조금 걷고 섬세한 모래 언덕에 청춘을 묻고 싶다
바람을 만나 더욱 아름다워진 것들이 바람에 제 몸들을 씻고
정착할 수 없는 벗들은 기어이 뼈를 묻는 곳
노을이 닿을 수 없는 곳에서 갈대의 묵시록을 읽는 동안
여울들은 밤새 철야 작업을 하며
쉬지 않고 제 몸의 때를 벗겨 공양하는데
이제 나는 어디에서건 함부로 무릎을 굽히지 않으리라
저 언덕으로 해가 진다, 서둘러 물결이 휘돌아오는 결정의 입자들
환하게 웃으며 이제 한 생이 이루어진다
※회룡포 :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회룡포는 예천읍으로부터 약 17km 서쪽에 위치하며 문경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과 금천이 남쪽과 서쪽으로 흐르고 비옥한 농경지가 잘 형성되어 농산물을 생산하는 데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
3.
통영 시락국
이용호
그녀를 만나고 올 때마다
한 편의 시를 쓰던 밤이 있었지
창밖의 바다는 기를 쓰고 밀려오고
마음을 내버릴 때마다 울리던 내 자명고는
미륵산 정상에서 제 몸을 찢으며 울기만 했었네
너에게 다쳤던 지난 추억들
이곳 통영에서
파도의 기운처럼 저렇게 부서지고 있을까
어떻게 변하지 않는 바위처럼
그렇게 스스로 울고 있을까
시락국에 밥을 말아 한 입 두 입 뜰 때마다
통영의 햇살은 시장 한 귀퉁이에서 부서져 갔었네
너를 사랑하는 것은
단지 살아 있을 때 이렇게 만나
구석진 시장 골목에서 시락국에 밥을 말아 먹으며
숟가락질하는 너의 소리를 귀로 헤아리는 것
댕댕댕 쩝쩝쩝 소리 하나하나에
통영의 바다를 얹어 두고
이렇게 그리웠다고
시락국에 얹혀진 시래기만큼이나 기다렸다고
고백해 보는 대낮의 서호시장
통영 시락국 한 그릇
※ ‘시락’은 시래기를 가리키는 통영 사투리로 시락국은 시래기로 만든 통영 지방의 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