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이 진다. 봄의 허리가 수없이 꺾이고 있다. 땅끝으로 간다. 바다를 향한 아련한 그리움이 묻어 있는 곳 땅 끝으로 간다. “이랴 이랴” 구성지게 들려오는 남녘땅 들노래. 담배를 입에 문 농부가 쟁기를 맨 소를 재촉하고 발목 굵어 보이는 누런 황소 한 마리가 하얀콧김을 내뿜으며 빠알갛게 살이 찐 황토흙을 뒤집고 있다. 땅 깊은 곳에서 흰 김이 모락 모락 솟아오른다. 궁궁 무진한 생명이다. 흙이다. 삶이다.
“봄이 벌써 졌습니다. 햇살로 충만한 날이 영원하지 않듯이 절망 또한 영원하지 않습니다. 먼 나라 이야기지만 그들도 우리의 생명중 일부입니다. 모진바람에 가지가 꺾이고 꽃이 찢겨지고 처참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날들이 이라크 국민들을 우리들을 더욱 깊게 할 것입니다. 슬프지만 피었던 꽃은 반드시 집니다. 그러나 상처와 아픔도 아름다운 삶의 일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출세간에도 세간에 대한 근심스런 걱정거리가 있다. 시공을 초월해 삶과 삶은 서로 연동한다. 급격하게 요동치는 ‘국제정세’를 ‘사해동포’주의적 입장에서 진단하는 도형스님은 남녘 땅 해남에 위치한 대흥사의 주지다. 툇마루에는 세우(細雨)가 내리고 있었다.
노인들만 남아있는 농촌…지역사회 복지 힘쓰는 열린사찰로
서산대사 의발 보관… 호국불교의 정신 성성하게 살아있어
일인데도 불구하고 대흥사 경내가 오랜만에 북적대고 있었다. 서산스님의 뜻과 유업을 기리기 위해 ‘서산대사 탄신 제483주년 기념 제9회 나라사랑 글쓰기 대회’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벌써 9회째로 ‘전국적’으로 ‘꽤 지명도’ 있는 대회로 성장했다.
“대흥사는 조선불교의 중심도량입니다. 서산스님의 의발이 있고 그 이후 만화스님으로부터 범해스님에 이르기까지 13대강사가 배출된 곳이기도 합니다. 또한 경내에 표충각이 있듯 호국불교의 정신이 성성하게 살아있는 도량이기도 합니다. 요즘 중생들은 사랑과 자비에는 크고 작음이 없다는 것을 잘 모릅니다. 나를 자비롭게 사랑하고 타인을 자비롭게 사랑하고 더 나아가 가족과 국가와 민족을 자비롭게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비가 오는 탓인지 전각과 당우들의 처마엔 글을 쓰는 아이들과 그것을 대견한 듯 지켜보는 부모들이 옹기종기 몰려있다. 그런 그들이 안쓰러웠던 탓일까. 하늘을 한참이나 쳐다보던 도형스님이 우산도 쓰지 않은 채 가족과 아이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글이란 마음이 가는데로 쓰는 것입니다. 무엇을 바라고 글을 쓰지 마십시오. 평소에 느꼈던 가족과 국가에 대한 사랑을 그냥 옮겨 적으시면 됩니다. 상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이미 그 상은 물 건너 갑니다. 욕심을 버리고 자신의 마음을 닦는다고 생각하십시오. 글은 저절로 될 것입니다.”라는 위로의 말로 ‘긴장된 마음’들을 쓸어준다.
서산대사 탄신 기념 글쓰기 대회 열려
“많이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다른곳과 다르게 이곳의 불심은 척박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모두다 도시로 나가버렸고 노인들만 땅을 지키고 있습니다. 인구밀도도 낮을 뿐만 아니라 자연과 벗삼아 농사를 짓는 노인들은 종교에 크게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다 자유분방한 예술가적 기질이 깃들어 있는 남도인들의 삶의 정서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농촌사회는 노령사회다. 스님은 지역노령인구와 결합된 복지사업에 관심을 돌리고 싶어한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출가자와 재가자를 가리지 않고 노령화된 사람들을 돌보고 관리하는 교구본사가 될 때 포교는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생각 때문이다. 대흥사는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종합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해남읍내에 불교대학 어린이집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고 지역사회내 각종 현안들을 지역유지들과 함께 논의해 풀어가고 있다. 뿐만 아니다. 거사림회 청년회 어린이회 등 계층별 신행단체들이 ‘여법’하게 조직되어 있다. 산중깊이 자리잡고 있는 교구본사에서 제대로된 신행단체가 활발한 활동을 하는 곳은 극히 드문 경우다. 덕분에 대흥사는 지역 사회내에서 ‘존경’받는 ‘열린사찰’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 수년전부터 실시해온 변화덕이다.
“현대화된 포교에는 많은 투자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재정확충이 절대적입니다. 사단법인 서산대사 호국정신 선양회 해남불교대학 한듬 어린이집 사찰 수련회등 모든 것이 다 포교를 위한 투자입니다. 그렇지만 포교를 포기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어렵지만 차근 차근 해나가야지요.”
대흥사의 자랑 아닌 ‘자랑’은 바로 인터넷 포교다. 지역상 도심과 먼 남쪽 끝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제대로 된 인터넷 홈페이지를 구축하고 있다. 그중 가장눈에 띠는 것은 피로에 지친 현대인들의 정서를 청량하게 하는 ‘산사이야기’ ‘산중한담’. 사찰과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잔잔한 이야기들의 정서와 의문들을 풀어주는 두 코너는 많은 일반대중들의 ‘마음’을 잡고 있다.
“민족의 대 성인으로 추앙 받고 있는 서산선사께서 1605년 묘향산 원적암에서 임종을 앞두고 대흥사를 일컬어 ‘삼재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요, 만세토록 파괴됨이 없는 곳이며, 종통의 귀의처’라고 말씀하시며 의발을 이곳에 두게 하셨습니다. 21세기는 불교의 시대입니다. 선사의 유훈을 계승 선양해 일원주의적 역사관을 벗어나 민족의 자기정체성을 찾는 현실적인 노력에 진력할 것입니다.”
인터넷 홈페이지 일반에 인기
오후가 되자 빗발이 엷어졌다. 장내가 정리되고 쓰여진 작품들은 종무소로 옮겨졌다. 도형스님은 혹시 남아있는 사람이 없는지 도량 이곳저곳을 돌아본다. 종무소로 부지런히 발길을 옮기는 스님의 얼굴에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한다. 30년넘게 대표적인 강사로 활약해온 탓일까. 교학의 깊은 심처(心處)속에 깃든 진중함과 청량함이 돋보인다.
체(體)와 용(用)은 둘이 아니고 교(敎)와 선(禪)이 둘이 아니고 포교(布敎)와 수행(修行)이 둘이 아님이 그대로 느껴진다. 이정표를 잃은 뒤에도 찾아가야 할 땅이 있다. 뜨겁던 날들은 다시 오지 않겠지만 거기서부터 또 시작해야할 사랑이 있다. 정토의 땅 그곳으로 가야한다. 머나먼 황토빛 남녘땅 대흥사에서 ‘안심(安心)의 뱃노래’가 들려온다. “어기어차 어기어차. 마음 낚으러 가세. 어기어차 어기어차. 극락으로 가세…”
해남=이상균 기자 3Dgyun20@ibulgyo.com">gyun20@ibulgyo.com
사진 신재호 기자 3Dair501@ibulgyo.com">air501@ibulgyo.com
/ 대흥사는...
서산대사 등 배출, 초의선사 다도 성지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본사 대흥사(大興寺)는 전남 해남 두륜산의 빼어난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삼국시대에 창건한 고찰 두륜산 대흥사는 전라남도 남해안권의 1개시와 7개군을 관할하는 교구본사로 서산 사명 치영 등 나라를 지키는데 앞장선 성사들의 호국정신과 초의의순선사의 다도정신이 깃들어 있는 민족정신의 성지다. 서산대사 이후 13대종사와 13대강사가 이곳 대흥사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며 조선후기 사상의 발흥지 역할을 하였으며, 초의와 다산이 문화로서 나라의 심성을 바로 세우는 기여한 곳이기도 하다.
주요인물로는 서산대사의 법맥을 이은 풍담의심 취여삼우 월저도안 화악문신 설암추붕 환성지안 벽하대우 설봉회정 상월새봉 호암체정 함월해원 연담유일 초의의순 등 ‘13대종사’ 만화원오 연해광열 영곡영우 나암승제 영파성규 운담정일 퇴암태관 벽담행인 금주복혜 완호윤우 낭암시연 아하혜장 범해각안스님 등 ‘13대강사’가 배출됐다.
산내암자로는 백화암 성도암 북미륵암 남미륵암 일지암 관음암 진불암 등 11개가 있다. 말사로는 미황사 백련사 도갑사 달성사 등 35개 사찰이 있다. 부설기관으로는 사단법인 서산대사 호국정신선양회, 해남불교대학이 있다. 문화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보물 제48호) 탑산사 동종(보물 제88호) 북미륵암 삼층석탑(보물 제301호) 정조친필서산대사화상당명(전남유형문화재 제167호)등 다수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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