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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초도 불섬 부두에서 도보로 한시간 김해김씨 문중산을 돌아 용당산 중허리에 위치한 만년사는 1948년 문 귀녀 여사가 서른 아홉되던 해에 그의 지극한 불심과 신도들의 협조로 지어진 절로서 대지 400평에 건평 45평(7동), 신도수 약160여명 정도의 비교적 큰 사찰이다. 1962년 10월 29일 문공부에 등록하였으며, 노만사와 함께 조계종에 속한다. 이 절이 들어서기 전에 길을 지나던 한 노인이 이르기를 "산새로 보아서 이 터에 절을 지으면 만년동안 번영할 수 있고 큰 가뭄에도 물이 마르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 후 이 노인의 예언에 따라 그곳에 절을 짓고 이름을 만년사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최근에 흙속에서 혜각스님이 파냈다는 신기한 목불은 좌상득도의 혜안으로 근처 야산에 모셔져 있으며, 산사에는 산새들이 노래하고 골짜기 실개천에서는 맑고 고운 물소리가 끊어질 듯 이어지는 조용하고 아담한 사찰이다. (신안군립도서관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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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권일은 가야국 김수로왕의 70대 손으로 이름은 석임이며 자는 노악이다. 1836년 도초면 만년리 태생으로 어렸을 때부터 남달리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다. 머리도 총명하여 지략이 뛰어나고 해서 훈장으로부터 지극한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향리에 있을 때 웃어른들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정중히 허리를 구부리고 뒤로 돌아다녔으며 어린 아이들에게까지도 좀체로 비켜서 달라는 말도 하지 않고 무리보다는 순리를 생활 신조로 했다고 한다. 키는 작아 오척 단신이었지만 힘도 세고 대인관계 또한 뛰어나 그와 같이 앉아 대화하면 그의 역설도 진실로 알아 듣게하는 화술을 가졌다고 한다. 책을 많이 읽어서 풍수지리설을 터득해 사람의 길흉화복을 예견했고, 산세를 읽어 인물의 가치를 예측했다고도 한다. 그에게는 일화가 있다. 객지 생활이 잦은 그가 한번은 집에 오니까 어머님께서 중병으로 몸져누워 계시매 정성들여 모시지 못한 죄책감에 어찌할바를 몰랐다. 먹고 싶으시다는 것은 모두 구해다 드렸지만 너무 늦게 손을 씀인지 별다른 효험이 없었다. 어떤 다른 동네 잔치에 가서 중병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도 인고기를 먹으면 금방 살아난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허벅지 살을 도려내어 잡수시게 했고,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어머니 입에 넣어 드렸다. 신기하게도 그의 어머니는 소생하여 얼마만큼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이러한 효성은 널리 알려져 그의 이야기를 귀감 삼고져 마을 건너편에 효자비를 세웠으니 이것이 곧 지금의 도초면 만년리에 있는 김권일의 효자비이다. (신안군립도서관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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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초면 고란리(都草面 孤蘭里) 마을 앞에는 높이 5.5m의 장석이 서있는데 이 바위를 일컬어 장군석(將軍石)이라 부르며 장군석이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구실을 한다는 전설이 있다. 옛날 고란리에서는 갑자기 괴질이 번져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가는 사람이 속출했다. 마을은 쑥대밭으로 변해가고 사람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속에 떨고 있었다. 이 때 한 선비가 마을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흉사를 전해 듣고 재앙을 막으려면 마을앞에 장군의 형상을 한 바위를 세우면 된다고 일러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서둘러서 장군형상의 바위를 만들어 마을 앞에 세웠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흉사가 잠잠해졌다고 하며 이때부터 장군석은 마을의 수호신으로 상징되고 있다. (신안군립도서관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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