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02.金. 맑음
괴각乖角.
팔월 한가위 연휴에 국수라도 삶아 함께 저녁을 들자며 연락을 했더니 홍성에서 경보스님이, 서산에서 무구스님과 선담 사미니스님이, 그리고 당진에서 선광스님이 시간을 맞추어 절에 오셨다. 오후 일찍 오셨던 경보스님은 다른 일로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셨고 우리들은 주지스님과 세 분 스님을 모시고 저녁공양을 하고 차실에서 차담을 나누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행자스님이었던 선담 사미니스님은 이제 사미니계를 수지하여 당당한 스님이 되었다고 무구스님께서 우리들에게 알려주었다. 우리들은 선담 사미니스님이 청정계행淸淨戒行을 지키고 가열찬 수행정진修行精進으로 이생에 꼭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시라고 격려와 응원의 박수를 힘껏 쳐드렸다. 앞으로 비구니계를 받으시고, 강원에 가서 경을 공부하시고, 또 선방에서 여러 철을 나면서 수행자로서의 품격品格과 법성法性을 쌓아갈 일이 첩첩이 쌓여있지만 어느 것 하나 만만하거나 소중하지 않은 일이 없다는 것을 선담 사미니스님께서 더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자 그 순간 예산 관음암 주지스님 생각이 머릿속에서 문득 떠올랐다. “아, 생각해보면 행자 때가 제일 좋았어요. 그때야 시키는 대로 하고 가르치는 대로 배우면 되었으니까요.” 관음암의 주지스님이자 부전이고 공양주보살이라는 일인삼역一人三役을 홀로 하고 계시는 선혜스님은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를 섞어가면서 건강한 미소와 함께 쾌활하게 자신의 기억들을 말씀해주셨다. 스님들께 행자行者시절과 학인學人시절은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할 체험이자 추억일 것이다. 아무렴, 그때가 초발심初發心의 시기이고, 과거는 현재를 통해서 볼 때는 언제나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이다.
차담자리에서도 어제 순례 길의 토굴이야기가 새삼 화제로 떠올랐다. 그만큼 그 자리의 그 스님의 행적行跡이 강렬하고 파격적이었다는 이야기다. 조선시대 서산대사西山大師의 문하이자 사명대사四溟大師의 고제였던 청매선사靑梅禪師의 십무익송十無益頌 중 7연과 10연을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심비신실心非信實 교언무익巧言無益 : 마음이 진실하지 못하면 아무리 말을 잘 해도 이익 이 없음이요
일생괴각一生乖角 처중무익處衆無益 : 일생동안 괴팍한 행동을 하면 대중과 함께 하여도 이익이 없다.
괴각乖角이라는 말은 소의 뿔이 두 개가 가지런히 나지 않고 두 뿔의 방향이 서로 다르게 뻗는 것을 말한다. 이렇듯 괴각이란 사람들과 더불어 살면서 언제나 옳지도 않은 괴팍한 성정性情을 함부로 휘두른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를 주고 자신에게도 이익이 없다는 말을 뜻하고 있다. 출가수행자의 교단敎團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상가’를 한자로 음역音譯한 것이 승가僧伽이고, ‘상가’를 의역意譯한 것이 화합중和合衆이다. 그래서 화합중이란 ‘한 마음 한 뜻으로 수행정진을 하며 이끌어가는 무리’ 라는 뜻이라고 보면 된다. 괴각이 괴팍하고 이상한 행동이라고 본다면 스스로를 복성거사卜性居士라고 칭하고 속인행세를 하며 이상한 모양의 표주박을 들고 저자거리에서 춤을 추면서 무애가無碍歌를 불렀다는 원효스님이나 어머니 앞에서 나체법문을 했던 경허스님과 곡차를 사랑했던 진묵대사震黙大師의 일화를 빼놓을 수 없겠지만 괴각에 매어있는지 괴각을 나투고 있는 지는 스스로를 제외한다면 그 누가 알까보냐?
(- 괴각乖角.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