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25일 주일예배 설교문 / 마가복음 14:1-9 / 내 마음의 옥합 깨뜨리기
할렐루야! 사랑하고 축복하고 존경합니다.
인류구원의 대업을 위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예수님은 출애굽기 12장에 근거하여 총 나흘에 걸쳐서 유월절 어린양으로 합당한지를 검사받으셨습니다(11-12장). 이 검사에서 예수님은 ①우리의 생명을 살리실 생명의 주관자, ②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통치자, ③부활로서 사망 권세를 이기실 실제적으로 영원한 생명되시는 분이심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13장에서 주 예수님은 말세에 있어서 모든 구원과 심판을 이루실 왕중왕이심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14장 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미 공생애 때 생명을 살리신 모든 사역을 통하여서, 그리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셔서 모든 시험 과정을 통과하시고 말세에 관한 모든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것이 명확히 증거되었지만 오히려 종교, 정치, 문화 세력들은(요 19:20) 예수님을 흉계로 잡아 죽이려고 방도를 구하고 모의하였습니다. 저들은 선악과를 먹은 혼의 생명이요, 사망의 세력이기 때문에 ‘생명’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오늘 본문과 같이 베다니 마리아의 옥합을 깬 행위를 칭찬하시면서 사람이 세상에서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지 잘 보여주셨습니다.
1. 사람은 하나님의 영 안에서 영의 생명으로 살아야 합니다.
스가랴 12:1 이스라엘에 관한 여호와의 경고의 말씀이라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이가 이르시되
이 구절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늘은 땅을 위해 있으며, 땅은 사람을 위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땅에서 복을 받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며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고 하나님과 하나 될 수 있도록 영적 존재로 지음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심령’ 즉 사람은 하나님의 영 안에서 영의 생명으로 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2. 생명과 권위에서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스가랴 12:10上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사람이 영으로 산다는 것을 스가랴 12장 10절에서는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은총이란 생명의 문제입니다. 창세기 3장 이후 뱀의 생명(요 8:44)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 하나님과 교통을 얻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려면 생명이 바뀌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은 이를 거듭남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어머니의 뱃속에 다시 들어가는 것도 아니요, 내가 스스로 목매달아 죽는 것도 아닙니다.
요한복음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물은 죽음을 상징하고 성령은 생명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에 나도 죽고,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에 나도 참여해야 합니다. 이 모든 일이 가능한 것이 영안에서 즉,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20: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ex1)아침에 일어나 생명을 주신 것을 감사하라. 그러나 우리는 생명으로만 살 수 없다. 능력으로 이기면서 살아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성령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의 능력의 권능을 말합니다. 그래서 스가랴 12:10 말씀처럼 ①은총과 ②간구하는 심령이 필요한 것입니다.
3. 땅에서는 교회의 건축자로 사는 것이 가장 큰 영광입니다.
성경의 핵심은 에베소서 5:32 말씀처럼 그리스도와 교회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핵심되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경륜을 깨달아 알 것입니다.
에베소서 5:32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에베소서 1: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그리스도는 예수님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우리 자신이 교회됨을 말합니다.
여기 예수님의 말씀처럼 기념비적으로 교회를 세우신 분이 있습니다. 베다니 마리아. 9절. 오늘 말씀을 통하여 베다니 마리아처럼 온 천하에서 기억될 교회의 건축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먼저 마리아에 대한 오해부터 풀고 기념비적인 신앙생활은 어떤 것인지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보통 옥합을 깬 마리아 하면 막달라 마리아로 알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찬송가 211장에 “값비싼 향유를 주께 드린 막달라 마리아 본 받아서”라고 이미 찬송가 가사에 나와 있습니다. 이를 어쩌란 말입니까? 무조건 막달라 마리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찬찬히 읽어보면 누가복음 7장만 막달라 마리아와 연관된 것 같고요, 요한복음 12장, 마태복음 26장, 그리고 오늘 마가복음 14장의 마리아는 베다니 마리아라고 분명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설은 로마교황인 그레고리 1세가 591년 막달라 마리아는 창녀였고 예수님의 발 앞에 향유를 부었다고 강론한 것에 기인한 것뿐입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일곱 귀신을 쫓아낸 여인이고, 나이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보다 더 연배이며, 일찍 과부가 된 귀족 부인으로 예수님을 재력으로 도와준 여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눅 8장 참조) 그러니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다, 예수님과 연애를 했다, 이렇게는 전혀 볼 수 없는 일이고요 예수님의 마지막 가는 길을 자기가 가진 옥합을 깨어 예비한 여자도 막달라 마리아라고는 전혀 볼 수 없습니다. 3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분명히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시몬이 집 이웃에 위치한 사람이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 자녀들이 살고 있는 집인 것입니다.
1. 액수로 계산하지 말고 기쁨으로 드리십시오.
베다니 마리아가 깬 옥합(알라바스트론)은 희고 매끄러운 설화석고로 만든 병으로서 몸체가 둥글고 넓으며 입구와 목이 가늘고 긴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안에는 순전한 나드가 들어있었다고 하는데 ‘순전한’이란 믿을 만한 즉, 정품이라는 뜻이고요 나드란 히말라야산 감송향의 뿌리에서 추출한 향료랍니다. 그러니까 최고급 정품 향수병을 깨어서 예수님의 발을 적셨다는 것입니다. 가격은 약 3백데나리온 정도. 우리나라 돈으로 시가 약 3천 만원 정도 됩니다. 이분들은 사막기후에 사는 사람들이라 잘 씻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주 중요한 시간에 한 방울씩 쓰는 것이 이 향유(향수)입니다. 여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결혼 첫날밤. 그리고 죽을 때까지 가장 고귀한 시간에 이렇게 값비싼 향수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기념교회라 하면 어떤 분들이 거액을 헌금해서 교회를 지었을 때 이름을 높이면서 기념교회를 짓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을 칭찬하셨습니다. 생활비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베다니 마리아가 깨뜨린 향유는 마리아의 존재 전부였던 것입니다. 저들은 돈의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헌금을 계산하지 아니하고 기쁨으로 드린 것입니다. 전혀 아깝지 않은 기쁨으로 드리십시오. 반드시 주님께서 드려진 모든 것에 축사하셔서 5천명이 먹고도 12광주리가 남는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2. 기회가 주어질 때 합당한 곳에서 감당하십시오.
전도서 3장 말씀을 보면 모든 것은 때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1달란트 받은 자는 1달란트 받은 기회에 충성을 다하면 됩니다. 기회를 놓치면 받은 달란트도 무용지물이 될 때가 많습니다. 1달란트는 현재 시가로 8억 정도 됩니다. 작은 돈이 아닙니다. 그런데 2달란트보다, 5달란트보다 작다고 섬길 기회를 놓치면 영광을 빼앗기게 됩니다. 1달란트 받은 자가 오히려 충성을 다했다면 주님은 이렇게 칭찬하셨을 것입니다. “남들보다 훨씬 적게 주었는데 불평 하나 하지 않고 감사히 감당했으니 잘했다 충성된 종아. 면류관의 상급을 받으라.”
장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 데서나 옥합을 깨어서는 안 됩니다. 옥합은 3천만원. 작은 돈이 아닙니다. 주님의 일이라고 아무 데서나 펑펑 써서는 안 됩니다. 주님이 마음을 주실 때에 아까워하지 아니하고 이 일은 내게 주신 사명이라 여기고 기쁨으로 기꺼이 합당하게 감당하십시오. 마르다가 감히 주님의 죽음을 예비했겠습니까? 주님이 마음을 주실 때에 합당히 섬기다보니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즉 마음이 하나님께 열리고 아멘으로 순종하며 합당히 감당한다면 영적으로도 더욱 주님의 뜻을 알아가는 깊이 있는 능력의 신앙생활이 될 것입니다.
3. 멀리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의 지경을 넓히시고, 시간도 영원까지 보게 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예언자들은 당장의 일에 급해서 기도하는데 하나님은 5백년 천년 후에 있을 일들을 가르쳐주고, 심지어 스가랴 같은 경우는 말세까지 가르쳐주셨습니다. 베다니 마리아의 섬김은 예수님의 승천과 복음이 땅끝까지 이르는 모든 일들과 연결된다는 것을 예수님이 가르쳐주셨습니다. 당장에, 지금 이 순간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섬김이 오래도록 영원히 빛나도록 영과 관계된 일이 되기를 소망하며 섬겨야 합니다. 그렇다면 대대로 증거될 복된 섬김이 될 것이요 사람들을 멀리, 천국까지 이르도록 인도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베다니 마리아를 기억합니다. 그녀는 돈의 액수를 계산하지 아니하고 기쁨으로 얼마든지 드렸습니다. 남들은 알지 못하지만 영의 눈이 뜨여서 합당한 섬김이 필요할 때에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나의 섬김을 멀리 멀리 보십시오. 내가 죽고 나서도 주님이 기뻐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섬기는 자는 장래에 소망있는 자입니다. 내가 베다니 마리아가 되리라. 내 마음의 옥합을 깨뜨리어 이기는 자, 열매맺는 자, 교회의 건축자의 영광 가운데 거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동문교회 강순욱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