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天上)의 향기 337(용나호척(龍拏虎擲))-6
손님들이 모두 돌아가고 사마(四魔)와 혁린강이 마주 앉았다. 혁린강은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 술잔을 기울인다.
“공자님! 마수마랑을 만나신 소감은 어때요? 무척 궁금해 하셨잖아요?”
“시세(時勢)를 판단하는 냉철한 이성(理性)과 두려움을 모르는 두둑한 배짱,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습니다.”
“공자님께서 감탄할 만큼 대단한 놈이란 말씀인가요?”
“사실 저는 영이나 무의 실패(失敗)가 자만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상대가 강했기 때문에 폐(敗)한 겁니다.”
“마수마랑을 그렇게 높게 평가하시는 이유가 뭐죠? 그놈의 무공이 고강(高强)하다는 것은 인정해요. 주위에 우수한 인재들이 많다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공자님의 능력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지 않나요?”
“사마(四魔)님께서 저를 과대평가(過大評價)하시는 군요. 그는 이미 인간의 경지를 초월한 절대자(絶對者)입니다. 방금 무공을 말씀하셨는데, 무공만 놓고 보면 그는 제가 범접(犯接)할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한 존재입니다.”
“말도 안 돼? 공자님께서 이미 약관의 나이에 본교 십대 마공을 통달(通達)하셨어요. 그 뿐인가요? 삼공자가 마안마공을 익히고 이공자가 불사마공을 익히신 것처럼 공자께서도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특별한 무공을 익히고 계시지 않나요?”
“사마(四魔)님은 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계시는 군요. 맞습니다. 말씀대로 십대마공 외의 약간 특이한 무공을 익히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가 아무리 파괴적이고 고강(高强)한 무공을 익히고 있다고 해도 마수마랑의 상대가 될 수는 없어요. 왜냐하면 저는 마수마랑과 같은 풍부한 실전(實戰)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마(四魔)의 눈초리가 올라간다. 그녀도 실전경험이 얼마나 중요하지 알고 있다. 싸움터에서는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상대의 숨통을 끊어 놓느냐가 중요하지 멋지고 화려한 무공 따위는 필요 없다.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은 인정해요. 하지만 그게 절대기준은 될 수 없어요. 더구나 절대자라니요? 공자님이야말로 마수마랑을 너무 과대평가(過大評價)하시고 계세요.”
“사마(四魔)님! 마수마랑이 정말 무서운 점이 뭔지 아세요? 그는 약관(弱冠)도 넘지 않은 나이에 극마(克魔)의 단계를 넘었습니다. 남들이 평생을 노력해도 도달하기 어려운 극마(克魔)의 단계를 약관(弱冠)도 되지 않아 넘어 지금은 더 높은 곳으로 가고 있어요. 그가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사마(四魔)는 입술을 깨물고 혁린강을 살펴본다. 평소와 다르다. 술을 마셨기 때문일까? 아니다. 이정도 술에 취할 사람이 아니다. 그럼 뭘까? 오랜 세월을 같이하진 않았지만 지금처럼 상기되어 있는 것은 처음 본다.
“좋아요. 공자님 말씀대로 마수마랑이 무서운 상대라면 심각해야 정상 아닌가요? 그런데 공자님은 왜 기뻐하시는 거죠?”
“제가 그렇게 보이나요?”
“예! 지금처럼 즐거워 보이시는 것은 처음 봤어요.”
“사마(四魔)님은 속일 수가 없군요. 그래요. 기뻐요. 즐거워요.”
“뭐가 즐겁다는 거죠?”
“절망이라는 어둠에서 희망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희망? 방금 희망이라고 하셨나요? 무엇에 대한 희망이죠?”
“인간의 역사는 인간에 의해 쓰여 져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 어떤 절대자(絶對者)가 인간의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제가 무엇 때문에 대공자라는 신분까지 버리려 했는지 아세요.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내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마(四魔)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변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설마 태상교주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단 말인가?
“그만.........그만하세요. 공자님께서 어디까지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지만 그분에 대한 것은 절대 입에 올리시면 안 됩니다.”
사마(四魔)가 부들부들 떨고 있다. 혁린강은 피식 웃으며 술잔을 기울인다.
“여긴 저와 사마(四魔)님 밖에 없어요. 무엇을 두려워하시는 겁니까?”
“공자님! 제발..........본교가 소멸(消滅)하길 원하세요?”
“소멸(消滅)? 그건 신(神)의 영역에서나 쓰는 말입니다. 지상(地上)에 있는 존재가 신(神)이 될 수는 없습니다.”
사마(四魔)는 입술을 깨물고 혁린강을 노려본다.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일까? 태상교주의 존재정도만 알고 저런 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마(四魔)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하고 최대한 차분해지려 노력했다. 혁린강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그의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
“마수마랑이 그분의 영역에 범접(犯接)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래서 희망을 발견했다고 하시는 겁니까?”
“그건 모르죠? 다만 가망성을 발견했다고 할까?”
“가망성?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죠?”
“천마성, 천강성, 천귀성..........혹시 들어보셨나요?”
“중원에 떠도는 허황된 전설이라고 알고 있어요.”
“허황된 전설이 아닙니다. 한때 본교에서도 천귀성과 천강성을 찾기 위해 중원 전역을 이 잡듯이 흩은 적이 있습니다.”
“그건 잠마동에서 필요한 아이들을 잡아들이기 위한 핑계였습니다. 만일 그게 아니었다면 중간에 그만두지 않았겠죠?”
“사마(四魔)님은 저보다 모르시는 군요. 그건 무료(無聊)함을 달래기 위해서였습니다. 혹은 절대자의 고독(孤獨)이 싫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죠?”
사마(四魔)는 답답해서 앞에 있는 술을 마신다. 혁린강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있다. 그는 태상교주의 심중까지 뚫어 볼 수 있을 정도로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희망이라고 하셨죠? 공자님께서는 마수마랑이 천강성이라도 된다고 생각하세요.”
“아직은 몰라요. 하지만 저를 밟고 도약한다면 확률이 더 높아지겠죠?”
“그건 또 무슨 말씀이죠?”
“현 시점에서 마수마랑이 승리할 확률은 극히 희박합니다. 저도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가 끝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승리를 쟁취하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죠?”
“공자님의 심중을 모르겠어요. 도대체 공자님께서는 무엇을 원하시는 거죠?”
“당연히 본교의 승리를 원합니다.”
사마(四魔)는 고개를 흔들었다.
“제가 사마(四魔)님을 힘들게 한 겁니다. 그럼 그냥 지금까지 했던 이야기는 잊어버리세요. 우린 우리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만 입니다. 다만 희망을 보았다는 정도만 기억하고 있으면 되겠죠.”
“휴~ 언제부터 알고 계셨죠?”
사마(四魔)의 목소리가 차분하다. 이젠 숨길 것도, 조심할 것도 없지 않는가?
“오래됐어요. 제가 겉돌기 시작했을 때라고 보시면 됩니다.”
“왜 계속 모른척하지 않으셨죠?”
“희망이 생겼잖아요.”
“제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사마(四魔)님을 믿기 때문에 말씀드린 겁니다.”
“그럼 저도 공자님을 믿어야 하는 건가요?”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사마(四魔)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가 천천히 눈을 뜬다.
“이미 공자님께 목숨을 바치기로 했는데 제가 쓸데없는 고민을 했군요. 믿어야죠. 공자님을 믿지 않으면 누굴 믿겠어요.”
“........”
“우리 이런 이야기 그만해요. 공자님 말씀대로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죠. 자~ 이제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이제 어떻게 하실 거죠?”
사마(四魔)가 밝게 웃으며 질문한다. 태상교주에 대한 두려움보다 혁린강에 대한 믿음이 강한 모양이다. 혁린강도 밝게 웃는다.
“중원지부로 돌아가야죠.”
“마수마랑 일행을 추적하는 것은 포기하는 건가요?”
“이 시간이면 그들은 천진에 들어갔을 겁니다. 추적하긴 늦었어요?”
“이대로 포기하면 놈들의 기세(氣勢)만 올려주는 꼴이 되지 않나요.”
“오늘 만남에 대한 선물이라고 치죠. 그리고 사실 우리 무사들도 너무 지쳤어요. 휴식이 필요합니다.”
“하긴 계속 강행군을 했으니 휴식이 필요할 때가 됐죠. 빙궁은 어떻게 하실 거죠?”
“우리가 철수하면 마수마랑일행도 군산으로 철수할 것이고 당연히 궁주도 악양으로 돌아갈 겁니다.”
“그럼 모두 정해졌군요. 그럼 바로 본진에 전서구를 날리겠습니다. 오늘은 공자님도 편하게 쉬세요.”
“그래요. 사마(四魔)님도 편히 쉬세요.”
사마(四魔)가 자리를 떠나고도 혁린강은 달을 벗 삼아 술을 마신다.
“전설이 이루어질까? 후후후~ 아니라면 또 어떠리. 희망이 생겼다는 것만 해도 커다란 소득이겠지. 그래 자네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나도 최선을 다해주지. 나를 밟고 비상(飛上)해서 더 높이 날아올라 보게.”
혁린강은 밤이 깊도록 술을 마셨다. 중원에 들어와서 혁린강이 이렇게 많은 술을 마신 것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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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린강의 말대로 마수일행은 이미 천진 중심가를 앞에 두고 있었다. 새벽녘에 풍운과 이희린이 돌아왔다.
“돌아오셨습니까? 걱정 많이 했습니다.”
마수가 풍운에게 한달음에 달려왔다.
“별일 없었죠?”
“예! 모두들 지치기는 했지만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다.”
“다행입니다.”
“가신 일은 어떻게 됐습니까? 대공자는 만나보셨습니까?”
“만났어요. 빙궁주와 함께 있더군요.”
“대공자와 빙궁주가 함께 있었다는 말씀입니까?”
“예!”
“정말 위험했군요. 그래 무슨 일로 보자고 한 겁니까?”
“중원 무림의 운명은 이미 정해졌으니 쓸데없는 저항을 포기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풍운은 어제 있었던 이야기를 간략하게 설명했다.
“잘 하셨습니다. 그런 협박에 넘어갈 우리가 아니죠. 그런데 생각해 보니 좀 이상한 부분이 있습니다.”
“뭐가 이상하다는 겁니까?”
“대공자는 누구보다 영특한 사람입니다. 그런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는 것은 미리 짐작하고 있었을 건데..........잠깐 궁주도 함께 있었다고 하셨죠.”
“예! 함께 있었습니다.”
“이제야 알겠군. 빙궁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그런 자리를 마련했군.”
“그게 무슨 말씀이죠?”
“대공자는 우리와 배화교 사이에서 방황하는 빙궁에게 누가 적(敵)이고 누가 아군(我軍)인지 확실하게 각인(刻印)시켜 주기 위해 그런 자리를 마련한 겁니다.”
“음~~ 그럴 수도 있겠군요. 뭐~ 오히려 잘 됐네요. 우리도 빙궁과의 관계정립이 필요했어요.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해 놓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일사(一死)님께서는 빙궁을 포기하시는 겁니까?”
“선택은 빙궁이 하는 겁니다. 처음부터 우리에겐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노력은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지금까지의 노력으로 충분해요. 이젠 빙궁의 선택을 기다려야 합니다.”
마수는 무슨 말인가 하려다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마수도 풍운 말에 동의한다. 다만 다정화가 생각나 마음이 무거운 것이다.
“날이 밝았어요. 모두 멈추라고 하세요. 아침 식사를 해야죠.”
마수의 지시에 따라 행군이 멈추고 아침준비를 시작했다. 풍운은 밤사이 계속된 행군에 지친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모두들 지친 기색은 역역하다. 이젠 조금만 더 가면 개방 총타가 있는 중심가에 도착한다. 당산과도 멀지 않은 거리다. 식사를 하고 있는 중에 두통의 서찰이 도착했다. 한통은 당산에 대한 소식이다. 당산에서 새로운 백도맹이 탄생했고, 맹주로 선출된 화원명이 직접 무사들을 이끌고 천진으로 진군하고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소식은 배화교에 대한 것으로 산동성을 지나고 있던 배화교 본진이 하남성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소식이다.
“일사(一死)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대륙상회의 연락이니 믿어야죠.”
“의외의 전개군요. 배화교가 이렇게 쉽게 포기 할 줄은 몰랐습니다.”
“놈들도 많이 지쳤을 겁니다.”
“하긴 놈들도 철인(鐵人)은 아니겠죠. 그나저나 이제 우리 역할은 끝난 것 같군요. 그만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유종의 미를 거둬야죠. 우리 눈으로 안전이 확인될 때까지 안심하긴 이릅니다.”
“그것도 맞는 말씀이네요.”
“하루정도만 더 고생하면 될 겁니다. 그건 그렇고 잠시 다녀올 때가 있습니다.”
“또 어딜 가신다는 겁니까?”
“다독마의(多毒魔醫)가 천서(遷西)에 있다고 합니다. 그분을 만나야 합니다.”
“저.........정말입니까? 그럼 가셔야죠. 우린 걱정하지 마시고 빨리 다녀오세요.”
“다른 분들께는 비밀로 해주세요.”
“왜요? 기쁜 소식이잖아요.”
“아가씨와 누님은 빙궁의 손에 있습니다. 제가 그분들을 구하기 위해 움직인다는 것을 알면 빙궁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경계를 늦추지 마세요. 다녀올게요.”
풍운은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음양비를 날아올랐다. 전력(全力)을 다한다면 하루 정도면 다녀올 수 있을 것이다. 풍운은 품속에서 명옥의 서찰을 꼼꼼하게 읽어본다. 멀리 넓은 호수를 사이에 두고 넓게 펼쳐진 갈대숲이 보인다. 다독마의는 호수 가장자리에 있는 초옥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호수 근처에 곧이라도 쓰려질 정도로 허름한 초옥이 보인다. 초옥 앞에 착지하자 진한 살기(殺氣)가 느껴진다. 풍운은 수라기를 끌어올리고 초옥을 향해 한발 다가섰다.
“더 이상 접근하면 죽는다. 몰라가라.”
갈대를 가르고 금빛장삼을 걸친 두 명의 사내가 나타났다. 복장으로 보아 대륙금위들로 보인다. 풍운은 품속에서 막사검을 꺼냈다.
“태상장로님께 인사드립니다.”
“마의님은 안에 계십니까?”
“예! 계십니다.”
“명옥이에게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들은 이만 물려가겠습니다.”
대륙금위들이 바람처럼 사라진다. 풍운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하고 문을 두드린다.
“마의님 계십니까?”
“들어와~ 어떤 놈인지 상판대기라도 좀 보자.”
목소리가 걸걸하다. 안으로 들어가자 얼굴에 혹이 가득한 마의가 팔짱을 끼고 기다리고 있다가 풍운의 위아래를 살펴본다.
“저를 기억하시겠습니까?”
“죽일 놈! 어떤 잡것이 대륙상회까지 동원해서 발목을 붙잡나 했더니 또 네놈이구나!”
역용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의는 풍운을 한눈에 알아보는 모양이다.
“저번에는 냄새는 천상루 가시나들을 이용해서 내 발목을 붙잡더니 이번에는 대륙상회라.........도대체 네놈 정체가 뭐냐?”
“죄송합니다. 마의님이 워낙 바람 같은 분이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됐다. 됐어. 네놈처럼 골치 아픈 놈과 역인 것부터가 잘못이지. 그래 오늘은 무슨 일로 보자고 했느냐? 보아하니 이제 극마(克魔)의 단계를 넘어 탈마(脫魔)의 단계에 접어든 것 같은데........그 정도 능력이면 대부분의 일은 나 같은 늙은이 도움 없이도 네놈 스스로 해결할 수 있지 않느냐?”
“아가씨와 누님 때문에 왔습니다.”
“빙궁으로 갔던 그년들?”
“예! 맞습니다.”
“그래! 그년들은 천려빙백강시가 된 거냐?”
“다행히........문제는 과거의 모든 기억을 잃어버렸다는 겁니다.”
“그거야 예상했던 거잖아. 내가 말하지 않았나?”
풍운은 마의 앞에 앉으며 천려실의 열매가 담긴 상자를 내려놓았다.
“이게 뭐냐?”
“천려실의 열매입니다.”
“뭐~ 천려실의 열매?”
마의는 얼른 상자를 얼어보더니 천려실의 열매를 요리저리 살펴본다.
“죽기 전에 천려실의 열매를 다 보는군. 어디서 구했냐?”
“황궁무고에서 구했습니다.”
“황.........황궁무고? 거길 어떻게?”
“운이 좋았습니다. 마의님! 이제 천려실의 열매가 있으니 아가씨와 누님을 구할 수 있는 거죠. 그렇죠.”
마의는 대답도 없이 한참 열매를 살펴보다가 상자에 내려놓았다.
“방금 뭐라고 했지?”
“천려실에 열매가 있으니 아가씨와 누님을 구할 수 있는 거죠?”
“그거야 모르지.”
갑자기 온몸에 기운이 빠진다. 이건 또 말인가?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천려실의 열매만 있으면 구할 수 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이놈아! 그거야 천려빙백강시가 되기 전의 일이지. 하지만 이제 그년들이 천려빙백강시가 됐다며........”
“무슨 말씀이지 모르겠습니다. 알아듣게 설명해 주세요.”
“독(毒)만 쳐 넣는다고 강시가 될 것 같아? 더구나 살아있는 생강시를.............강시는 독(毒)과 영약(靈藥) 그리고 특별한 대법에 의해 만들어 진다. 다시 말해 천려실의 열매로 몸에 축척된 독(毒)은 제거할 수 있지만 영약(靈藥)은 독(毒)이 아니니까 제거가 불가능해. 더구나 빙궁년들이 심어 놓은 대법 또한 풀리지 않아.”
“그럼 천려실의 열매가 있어도 방법이 없다는 겁니까?”
고독마의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한참동안 말이 없다. 초초하다. 불안하다. 미친 것 같다. 방법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마의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고 왔다.
“그년들의 상태를 보지 않고는 뭐라 말하기 힘들다. 하지만 아직까지 강시가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물론 생강시라는 특수한 경우니 방법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웬만하면 포기하는 편이 좋을 거야.”
불가능하다고 하지 않았다. 방법없다고 하지 않았다. 전설의 영약(靈藥)인 천려실의 열매도 구했는데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희망은 있는 거죠. 그렇죠.”
“이놈아. 내가 점쟁이냐? 환자의 상태를 봐야 알지, 환자도 안 보고 내가 어떻게 알겠어.”
“알겠습니다. 누님과 아가씨를 데려오면 되는 거죠? 그럼 고칠 수 있는 거죠?”
“나도 신(神)이 아니니 크게 기대하지는 마라. 잠깐, 신(神)이라? 그래 네놈이 신(神)이 되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시.........신(神)이요? 제가요?”
“네놈은 배꼽이 없지. 어미의 자궁을 통해서가 아니라 알에서 태어났을 거야. 다시 말해 네놈은 인간이 아닌 신(神)의 혈통(血統)을 타고 난 거야.”
어의가 없다. 신(神)이라니, 이게 말이 되는가? 그런데 갑자기 예전에 들었던 정령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정령은 자신이 제석천주의 아들이라고 했다. 제석천은 불법을 수호하는 하늘의 신(神)이다. 그때는 의미 없는 이야기였다. 부모가 신(神)이든 인간이든 무슨 상관인가? 그들은 자식을 버린 비정한 부모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젠 아니다.
“제가 과연 신(神)이 될 수 있을까요? 신(神)이 되면 아가씨와 누님을 구할 수 있는 건가요?”
“극마(克魔), 탈마(脫魔)의 단계를 지나면 선(仙) 또는 생사경(生死境)이라고 부르는 단계에 도달한다. 무(武)를 익히는 놈들 말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고 하더구나. 하지만 너는 신(神)의 혈통(血統)을 타고 났으니 몸속에 잠든 잠재능력을 모두 끓어낸다면 생사경(生死境)을 넘어 신(神)의 경지에 도달 할 수 있을 것이다.”
“....................”
“신(神)이란 말 그대로 신(神)이다. 신(神)이 못하는 일은 없다.”
아득하게 멀게만 느껴지는 이야기다. 운 좋게 극마(克魔)의 단계를 넘었다고 하지만 탈마(脫魔), 생사경(生死境)을 넘어 언제 신(神)이 된단 말인가?
“그게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겁니까?”
“이놈아. 몇 번을 이야기해. 환자를 봐야 알지. 환자부터 데려와서 이야기 해.”
“아.........알겠습니다. 마의님은 또 어디로 가실 겁니까? 이곳에 계속 계실 겁니까?”
“그걸 뭐하려 물어. 어디 있던 잘만 찾잖아.”
“되도록 빠른 시간내에 두 분을 모시고 오겠습니다.”
“쩝~ 크게 기대하지는 마라.”
마의가 자신이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풍운은 희망을 버릴 수는 없다.
“마의님께 향상 신세만 지는 군요. 나중에 이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됐다. 네놈이 안 찾아오는 것이 도와주는 거야. 볼일 끝났으면 그만 가봐~”
풍운은 마의에게 인사하고 밖으로 나왔다.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직접 확인하니 힘이 빠진다. 신(神)이 되면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은 의미 없다. 마의 말대로 신(神)의 혈통이라고 치자. 언제 신(神)이 될 수 있을까? 백년 후, 천년 후,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 일을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다. 마의는 환자의 상태를 보아야 알 수 있다고 했다. 궁주로부터 아가씨와 누님을 훔쳐(?)와야 한다. 풍운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마수일행을 향해 출발했다.
<<계속>>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드립니다
즐독 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