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은 왜 한국역사에 집착하는가>
-홍성화 지음/시여비 2023년판/435page
가깝고도 먼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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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다. 공동체로 치면 이웃과도 같은데 그 누구보다 가깝게 지내야 할 이웃이지만 도무지 가까워지지 않는 이웃인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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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한 번 돌아보자.
우선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일본은 삼국시대 한반도 남부에 위치한 가야와 먼저 교류했고 이어서 백제와는 동맹을 맺고 서로 문화교류를 할 정도로 가깝게 지냈다.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멸망시키던 즈음에는 일본에서 동맹군을 보내올 정도였고, 사료에 의하면 백제의 무령왕을 비롯한 일부 왕족들은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한다. 그리고 백제가 멸망한 이후 일부 왕족들과 유민들은 일본으로 건너가 자리를 잡았으며 그 중 일부는 정치권에도 진출, 유력한 집안을 이루기도 했다. 지금도 일본에는 백제와 관련된 지명이 도처에 남아있다.
고려시대로 접어들며 일본은 정국이 안정되지 않은 탓에 일본 왕조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왜구가 창궐하며 고려 남부지방을 수시로 침입해서 약탈을 해갔다. 물론 왜구는 삼국시대에도 백제와 신라 남부 지방을 수시로 침입, 약탈을 함으로서 재산은 물론이고 선량한 양민들을 붙들어가 국제시장에 노예로 팔기도 했다 한다. (왜구는 중국 산동성까지 진출해서 당시 중국 왕조도 어지간히 골머리를 앓았다고 한다) 해서 고려 말엽에는 최영과 이성계 장군이 왜구를 격멸하기 위해 남부지방까지 군사를 동원하여 격퇴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 들면 이 땅의 사람이면 제대로 배우지 않아도 잘 아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일어난다. 오랜 전란의 전국시대를 끝내고 막 일본을 통일한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전후 남은 많은 군사들을 조선 침략으로 이끌어 국내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했던 것인데, 무방비 상태의 조선은 이 두 번의 전쟁으로 쑥대밭이 되고 만다.
그리고 조선 말엽인 20세기 초에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꾸며까지 왕조회복을 노렸던 조선은 이른 서구화에 따른 제국주의 기치를 내건 일본에 의해 침탈되면서 36년이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식민지로 전락하고 만다.
한반도에서 일본을 침입한 적도 있다.
고려가 몽골의 후손이 중국에 세운 원나라의 강압에 이끌려 두 번이나 쓰시마 해협을 지나 일본 본토까지 원정한 일이 있다. 대규모 선단에 병사를 가득 태우고 나선 원정길이었지만 일본 권역에 자주 오는 여름 태풍으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많은 병력과 선단의 손실을 입은 채 발길을 돌리고 만다. 참고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공군 ‘가미가제’ 특공대는 이때 만들어진 신풍(神風)이라는 말을 그대로 썼는데, 이는 신이 일본을 도우기 위해 일으킨 바람이라는 뜻이다.
조선시대에 들면서는 남부 삼남지방에 왜구가 수시로 침입해 약탈을 해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하자 세종대왕때 이종무 장군을 시켜 쓰시마를 정벌한 사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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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 던졌던 질문에 대한 답으로서 단도직입적으로 저자의 시각을 옮겨보자면 그것은 한일 양국간의 역사자료에 대한 시각(인식)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역사 자료로서 각종 유적지, 유물, 기록물 등을 보고 해석할 때 명확하지 원출처로부터 상호 유리한 쪽으로만 해석하려는 경향이 아직도 양국의 역사 이해에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자라나는 세대들은 각국의 입장이 담긴 역사를 배우다 보니 오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논지다.
예를 들자면 본 책에도 실려있지만 일본 어느 신사에서 보관중인 백제인이 만든 ‘칠지도’와 관련된 것으로 칼에 새겨진 명문의 해석을 놓고 ‘하사설’인지, ‘헌상설’인지로 양국 간에 의견이 양분되어 있다고 한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사항으로 ‘헌상설’로 굳어질 경우 일본이 주장하는 삼국시대 남부에 있었던 ‘임라일본부’설이 정설화되면서 임진왜란, 정유재란뿐만 아니라 일제 식민지에 까지 그들이 주장하는 ‘정한론’의 명분을 실어주기 때문이다.
다른 예로는 이 책에는 소개되지 않지만 중국에 있는 고구려 ‘광개토대왕비문’에 새겨진 명문을 놓고도 보이지 않는 몇 글자의 해석 차이에 따라 조금 전 위에 언급한 ‘임라일본부’설에 무게가 실릴 정도다.
한일 양국 간에는 국가간 관계 정상화 이전에 이런 역사의 학술적 문제부터 제대로 규명되지 않으면 자라나는 양국 후손들은 통일되지 않은 채 영원한 평행선처럼 좁혀지지 않는 양국 간의 적대적(혹은 안하무인격) 인식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이면서 가장 먼 나라로 남을 수밖에 없게 된다. 이것은 양국 간의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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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홍성화 교수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오랜 시간 수많은 발품을 팔며 한국 역사와 관련되는 곳이면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전국 각지를 한 곳도 빠뜨리는 일 없이 방문하고 걸었다고 한다.
고대 국가의 왕릉, 삼국시대의 세 나라와 일본의 문화 교류 흔적, 삼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꽃 피운 문물들의 유적지, 고구려와 백제의 멸망으로 유민이 되어 일본으로 건너가 터전을 잡은 도래인들의 흔적들, 조선 통신사가 일본을 방문할 때 지나갔던 여정 등을 직접 발로 뛰며 조사하고, 사진을 찍어 책을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오늘의 일본을 있게 한 일본의 전통 종교와 외래 종교의 문화적 발자취와 현상, 근대 일본을 이룬 사상 등에 대해서도 이해를 구할 수 있는 정도의 해설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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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도래한 사람들이 힘들게 살았던 곳에는 안타까운 심경으로 돌아보았고, 전쟁으로 포로로 잡혀와 노예로 팔려가거나 하인으로 살아야 했던 조선인들에 대해서는 동정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 통신사일행이 다녀가며 일본인들에게 남겼던 한시(漢詩)나 편액 등을 자부심 가득한 마음으로 지켜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말대로 과거 일본에서 부초처럼 살다간 조상들의 흔적을 그들과 동일인의 심경으로 걷고 방문했다.
그리고
그는 이제 한일간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고자 쓰게 된 것이 바로 <일본은 왜 한국역사에 집착하는가>라는 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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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 한국도 한일 간의 역사 인식에 대한 기존의 시각에서 많이 벗어나고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정치, 경제, 사회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개인의 문화 향유와도 직접 관련되는 문제로서 무조건적 적대적 시각이 아니라 상호존중의 기본적 의식아래에서 서로를 차츰 이해해가는, 그러기 위해서는 이런 역사 교양 분야의 책뿐만 아니라 관련되는 기본 서적들의 이해를 통해 인식과 교류의 차원을 한 단계 성숙시켜 도모해 가야 한다.
국가와 관련 단체는 그들대로 관계를 정상화시키기 위해서 노력해야겠지만 결국 그들도 국가의 주체인 국민들의 시각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런 국민들의 인식 토대가 기존 정부에서 국가권력의 이념으로 논리화된 서적을 정부가 운영하는 의무교육 학교에서 배운 지식으로 모든 걸 판단하겠다고 한다면 이건 역시 상당한 무리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가의 위정자들은 국민 여론을 몰아 권력획득에 이용하고, 국민은 위정자들의 단순한 논리에 휘말려 제대로 된 시각을 갖추고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한일 양국 간의 관계 회복은커녕 양국의 영원한 평행선을 그으며 다른 먼 나라들과의 관계보다 못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엄청난 불행이다.
지난 천사백 여년의 불행했던 역사를 근대의 짧은 시간에 극복하기란 힘들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히 회복시켜 나가지 않으면 양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불행한 이웃으로 계속 남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우리들은 자발적으로 자신을 위해서라도 양 국가간의 관계정상화를 위해서라도 이런 교양서를 읽으며 인식의 바탕을 새롭게 다질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을 것 같다.
국가의 구성원이 먼저 인식의 토대를 달리한다면 국가를 이끌어가는 각 주체들은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2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