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산천정(山泉亭)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삼매리(매곡마을) 1072번지에 위치한 산천정(일명:谷口精舍)은 조선 후기 영천 지역의 학자였던 곡구(谷口) 정 봉휴(鄭鳳休,1782~1854)께서 학문 연구와 후학양성의 목적으로 세운 정자이다. 현재의 건물은 이후 퇴락하여 터만 남아 있던 것을 오래전에 세상을 떠나신 후손 정동헌, 정돈식, 정광식 , 정극식, 정홍식 등께서 단기 4298년(1965년) 음력 2월 10일에 새롭게 지은 것이다.
처음 지은 산천정의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중국 진나라 죽림칠현(竹林七賢)을 앙모하였는지 자신의 살림집 뒤 대나무 숲속과 접한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었으나 습한 기후 탓인지 오래도록 존속하지 못하였는데, 정자의 마지막 모습을 바라본 목격자의 진술에 의하면 초창기의 정자는 방2칸과 부엌 그리고 마루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숙제(叔弟:셋째 아우) 정귀휴(鄭龜休,1786~1852)의 학구지소인 향양정(向陽亭)이 1844년에 건립된 것을 고려한다면 산천정은 그 이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곡구 정봉휴는 매산(梅山) 정중기(鄭重器:1685~1757, 문과급제, 영조 때 형조참의) 선생의 증손으로서 경북 의성, 사촌마을에 세거했던 안동 김씨로서 의금부 도사에 제수된 천사(川沙) 김종덕(金鍾德)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김종덕의 외아들 김경진(金慶進)의 따님과 혼인하였다고 한다. 전주 이씨 효령대군 후손이신 중재(中齋) 이호대(李好大, 1901~1981) 선생께서 1973년도에 글을 지어 산천정 처마에 걸려있는 편액인『산천정기(山泉亭記) 』를 소개하고자 한다.
『기룡산(영천시 자양면 성곡리 하천재 뒤편에 있는 산)은 영천의 진산(鎭山:고을의 큰 산)이다. 동남 방향으로 수십 리를 달려 자양(紫陽) 과 임고(臨皐) 사이에 이르면 굽이돌아 마구 뒤섞인 기운을 모으고 신령스러움을 길러, 이따금 저명한 가문이 대대로 세거하도록 하였으니 매곡(梅谷) 마을이 그 가운데 하나이다.
매곡 마을에는 정자(亭子) 3개가 있는데, “산천정(山泉亭)”이라고 명명한 곳은 옛날 곡구(谷口) 정 봉휴 공(鄭鳳休公)께서 기거하며 장수(藏修:은거하며 학문을 연마함)하던 장소를 이름한 것이다. 공(公)께서는 일찍이 집 뒤에 작은 정자를 짓고 숙제(叔弟:셋째 아우), 향양(向陽:정 귀휴의 호)과 더불어 대나무밭을 개간하여 길을 열었다.
때때로 벗을 맞이하여 술을 내오라 명하시면서 경사(經史:경서와 사기)를 강론하거나 바람과 안개를 읊조렸다(자연을 벗삼아 시를 읊음). 세상 사람들이 즐기는 것(부귀영화)에 뜻을 두지 않고 유연(油然:생각이 왕성함)하게 여기면서 호수의 물고기와 언덕에 깃든 학의 정취(진리탐구에 전념하는 학자의 풍모)를 지녔다.
마을에 가서 보니 사방은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 가운데 맑은 샘물이 자하봉(紫霞峰:비취빛과 자색의 영롱한 기운이 피어오르는 봉우리)앞, 오록(梧麓:오동나무가 있는 산기슭)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동호(桐湖:오동나무가 서 있는 산호수)와 용추(龍湫:폭포바위와 물웅덩이)를 이루었도다. 공(公)께서 이 정자에 기거할 당시를 생각해 보면 혹은 물을 보며 그 소리를 듣기도 하였을 것이며 혹은 물을 거슬러 그 근원을 찾기도(사물의 이치와 근원을 밝힘) 하면서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심신을 체득(體得:몸소 체험하여 이치를 깨달음)하지 않는 바가 없었을 것이다.
과단성 있는 행동은 샘물이 급하게 흘러 가는지라 휴식은 없는 듯하였고, 덕(德:큰 가르침)은 마치, 샘물 구덩이를 채운 기름이 외부로 흘러 나아가는 듯했을 것이다. 마음껏 노닐면서(유유자적함) 덕(德:능력)을 길러 느긋한 마음으로 도(道)를 즐기며 늙음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런 연유로 공의 심적(心迹:마음의 흔적)과 영향(影響:작용이 다른 사물에 미침)이 이곳에 깃들어 있다고 하는 것 또한 가능하지 않겠는가.』
*위에 소개된 산천정기(山泉亭記) 번역문의 출처는 영천문화원 ‘영천의 누정’에 소개된 글을 어느 교수가 인터넷에 올린 것인데, 내용의 변동이 없는 한도 내에서 문맥이 통하도록 서술어를 변형하거나 어려운 용어나 문장에 대하여 설명을 추가하였음.
*“자하봉과 동호, 용추” 등은 산천정기를 쓴 중재 이호대 선생께서 직접 목격한 풍경이 아니라 매산 정중기 선생의 문집에 수록된 오록서당(梧麓書堂:매곡서당) 옛터의 풍광을 상상하면서 묘사한 것임.
*“덕(德:큰 가르침)은 마치, 샘물 구덩이를 채운 기름이 외부로 흘러 나아가는 듯했을 것이다.”라는 구절에 담긴 뜻은 곡구 정 봉휴 선조께서는 휴식하지 않고 과감하게 한평생 학문을 연마하고 진리를 탐구함으로써 외관상 보이는 허상(웅덩이를 가득 덮은 기름)은 저절로 밖으로 밀려 나가 제거되면서 본래의 진정한 맑은 샘물이 드러나듯이 곡구 정 봉휴 선조의 학문이 '본래의 자연 이치에 지극히 근접하는 심오한 경지에 진입’하였음을 우회적으로 묘사한 것임.
1965년에 중건된 산천정, 1차 중수를 거친 후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