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수의 약초산책 45>
“공황장애·사회공포증·범불안장애” - 애기풀(遠志)
사람이 간혹 당황스러운 공간에 떠밀리거나 공포스러운 상황에 놓이면 갑자기 기가 치밀어 가슴이 두근거리고 맥박이 빨라지며 혈압이 오른다. 반사적으로 식은땀이 흐르고 손발이 떨리기도 하는데 이것은 위험에 대응하는 신경계의 정상적인 반응이므로 병이라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황장애는 어떤 장소와 상황에서 예기치 못한 불안이 삽화적(揷話的)으로 일어나 한동안 숨 막히는 압박과 극심한 공포감에 휩싸이게 한다.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행동반응이 발작이다. 첫 발작은 영문을 모르다가 공황장애 진단을 받으면 이번에는 예기불안까지 겹쳐 발작과 연관된 상황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뚜렷해진다. 아는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대한 공포증인 광장공포증의 2/3에서 공황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주 증상은 호흡곤란, 심계항진, 비현실감, 근육경련, 발한, 진전(震顫) 등이다.
사회공포증 또는 특정공포증은 임상양상이 비슷하다. 사회적 상황, 특정 대상에 대해 비합리적인 감정(창피, 비웃음, 모멸감)이 생겨나 강박적으로 회피하려는 경향의 정서장애를 말하며, 공포증 소인을 가진 사람이 환경적으로 스트레스가 잦거나 유년기에 겪은 이별, 학대, 방임, 과잉보호 같은 것이 병이 되어 성인이 되어서도 대인관계가 어려운 경우를 말한다. 두 질환은 역시 불안한 상황에서 공포반응을 나타내며 발작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혼자서는 외출하기 어려워지고 공공장소를 두려워하며 무대, 폐쇄공간, 식사대화, 동물, 시체, 비행기, 벼락 등 공포증을 일으키는 장소나 대상이 다양하다. 보통 사춘기 전후에 시작해서 만성적 경과를 거치는 신경쇠약증의 하나이다. 범불안장애는 이보다 덜하지만 만성적인 걱정과 불안, 신경과민, 불면 등으로 시달리거나 자율신경계의 과 긴장으로 발한, 수족냉증, 근육통, 매핵기 등을 겪는다. 다분히 민감한 정서, 강박적 완결성, 대칭적 추구, 소심, 자책, 우울이 있는 성품에서 많다. 불안장애에 대한 양방의 대표적인 약물은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수면제·항불안제이다. 공포상황에 노출되기 전에 투약하여 예기불안을 감소시킬 수 있지만 장기복용은 의존성을 일으키고 갑자기 복약을 중지하면 불안, 질식, 구토, 환각, 섬망 등 심각한 금단증상이 나타난다.
동의학에서 이러한 증상은 심계(心悸)와 정충(怔忡)의 범주이다. 둘은 하나이면서 경중의 구별이 있고 발병의 정황도 차별이 있다. 심계는 사람이 지치고 자주 불안하여 가슴이 급하게 두근거리는 증을 말하는데 일회성·기능성에 가깝고, 정충은 내부원인(선천적 소인, 환경적 내상)이 일으키는 것으로, 밖으로 놀라기보다 속으로 몹시 허겁한 것을 자각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못하는, 지속성·기질성을 갖는다. 한의학은 정신작용을 실질 장기인 심장에 연결 지어 생각하는 독특한 인체관을 가지고 있다. 몸과 마음을 분리할 수 없듯 둘이면서 하나인 심(心)과 신(神)이 사유의식 및 지체활동을 발현시키고 정서 및 혼(魂)·백(魄)·의(意)·지(志)·신(神)의 정신작용을 일으킨다고 본다. 심기(心氣)가 허약해지면 담화(痰火)가 발생하여 심장을 수호하는 심포락(心包絡, 심장의 겉을 둘러싸고 있는 막과 그에 얽힌 낙맥)을 어지럽힘으로써 정신이 정상궤도를 이탈하는 것인데, 심장에 생명활동의 기본물질인 기·혈·진액이 부족하고 음양이 고르지 못하면 곧 정신적 허약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공황장애, 사회공포증, 범불안장애의 약초치료는 심장의 허를 보하고(補心), 정신을 안정시키며(安神), 담을 다스리는(導痰)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
약초 『원지(遠志)』는 원지과에 속한 다년생초본으로 동속의 애기풀, 난엽원지, 가는잎원지의 뿌리를 건조한 것이다. 원지는 한반도 중북부 지역에 주로 분포하고 남한에서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애기풀을 쓰는데 뿌리만으로는 양이 적어 전초를 판매하거나 수입에 의존한다. 신경정신계에 작용하는 약성이 영험하다는 뜻에서 애기풀을 영신초(靈神草)라 부르기도 한다. 약성은 맵고 쓰며 따뜻하고, 심·폐·신경으로 들어가 영심안신(寧心安神, 심과 신을 편안히 함), 거담개규(祛痰開竅, 담을 없애 막힌 것을 열어줌), 소옹종(消癰腫, 종창을 삭임)으로 정리된다. 심장에 맺힌 화나 울기를 풀어 막힘없이 통하게 하며, 심과 신을 교통하고 정신을 안정하여 지혜롭게 한다. 마음으로 통하는 구멍(心竅)을 열어 심신불안, 정신착란, 경간을 치료하며, 기가 체한 것과 담습으로 인한 악성종기를 다스린다. 원지에 감초를 넣고, 안신(安神)효능의 용골·산조인·백자인·복령을 추가하며, 개규(開竅)작용의 석창포·단향, 청심(淸心)효능의 황련·울금, 평간(平肝)의 모려, 거담(祛痰)의 반하, 이기(理氣)의 진피, 보기(補氣)의 황기, 강심(强心)의 인삼을 더한다.
임상에서 다용하는 계지가용골모려탕(계지, 용골, 모려 각 등분)은 몸이 허하여 기가 위로 치미는 증상이 있는 사람이 주 대상이며, 공황장애를 비롯하여 기분장애, 적면공포증을 목표로 한다. 중추신경계에 대한 진정작용이 있어 경련을 감소시키고 만성스트레스를 완화시킨다. 시호가용골모려탕(시호 5, 반하 4, 계지·복령 각 3, 황금·인삼·대조·용골·모려 각 2.5, 생강·대황 각 1)은 실증(實證)의 불안 초조감이 강한 화병, 기분장애, 강박장애, 신체형장애 등에 적응한다. 시호와 황금의 결합은 가슴의 열을 풀고, 용골과 모려의 배합은 진정작용을 가지며, 계지는 기가 위로 치미는 것을 다스린다. ‘원지’란 사람의 의지를 크고 넓게 열어준다는 의미이다. 원지(애기풀)에 영지, 계지, 진피, 감초, 대추를 각 등분하여 늘 차로 이용할 것을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