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의 외전(外典) 「유디트서」
홀로페르네스가 만취한 상태로 유디트와 단 둘이 남았고 자다가 침대에서 참수당했다는 상황이 미인에게 유혹당해 즐기고 퍼자다가 살해당한 것 아닌가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유대의 산악도시 베툴리아에 살았던 아름답고 정숙한 과부였는데,
홀로페르네스가 지휘하는 아시리아 군대가
베툴리아를 침략하자 아름다운 치장을 하고 아시리아 군에 거짓으로 투항하여 연회를 즐긴다.
그리고 홀로페르네스와 단 둘이 남게 된 유디트는 만취한 홀로페르네스가 잠들자 그의 칼로 목을 베어 하녀와 함께 수급을 거두어 달아난다.
아무리 홀로페르네스가
방심했다는 점을 감안한다 해도 엄청난 활약이다.
민간인 두 명이 적진 한가운데 잠입하여
야전 지휘관을 죽이고 증거까지 챙겨서
무사히 탈출한 것이다! 유디트의 활약으로 용기를 얻은 유대의 군대가, 어이없이 대장을 잃은 아시리아 군대를 물리친 것은 당연한 전개.
성경에서는 그냥 위의 서술 이상의 묘사는
나오지 않지만,
홀로페르네스가 만취한 상태로 유디트와 단 둘이 남았고 자다가 침대에서 참수당했다는 상황이 미인에게 유혹당해 즐기고 퍼자다가 살해당한 것 아닌가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유딧기를 봐도 홀로페르네스가 유디트와 동침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는내용이 있다.
유딧 본인은 이를 부정한다.
총사령관이 끔찍하게 살해당하고
그 수급까지 빼앗기는 상황에서 그것을 저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은, 어떠한 비밀스러운 이유로 호위를 물렸다는 의미이다.
성경에 나오는 유디트는 자신의 조국을 구한 영웅이며 성녀이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차 영웅의 이미지보다는 성적 매력을 이용하여 남자를 파멸시킨 팜므 파탈(요부)의 이미지가 씌워진다.
다만 이는 지나치게 성적 판타지가 씌워진
해석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사실 진짜로 거사를 치렀는지 아닌지는 모르는 상황이고,
홀로페르네스는 그럴 의도가 있었어도 유디트가 그 전에 술을 꽐라가 되도록 퍼먹이거나 술에 약을 타 재워버린 후 쓱싹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또한 유디트가 하녀를 대동할 정도의 부유한 여성이라는 점을 미루어 볼 때 뇌물 등을 미끼로 던지며 단독 면담을 요구했을 수도 있다.
홀로페르네스가 유디트를 어떻게 생각했던
투항자에게 뇌물을 받아먹는 상황이었다면
호위를 물릴 만하다.
유디트의 이야기는 여러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작품을 탄생시켰다. 대부분이 살해당한 남성의 목을 들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다.
그러나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의 작품은 하녀와 함께 홀로페르네스를 짓누르고 단호한 표정으로 목을 베고 있는 생생하고 현실적인 살해 현장을 묘사하였다.
여기서 유디트는 미인이기 전에 건장한 남성을 능히 살해할 수 있는 억센 팔뚝을 지닌 여성이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장면을 묘사한 남성 화가 카라바조(Caravaggio)가 가녀린 소녀가 인상을 쓰며 목을 베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과는 대조적.
유디트의 조력자도 카라바조의 그림에서는
늙은 노파로 유디트를 재촉하는 등의 역할에 그치지만, 젠틸레스키의 경우는 동년배 내지는 약간 연상의 여인으로 홀로페르네스를 짓누르는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사실 따져보자면 젠틸레스키의 작품이 훨씬 더 말이 되기는 하다
사람 목을 한번에 벤다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홀로페르네스가 아무리 자고 있었다지만 칼로 목 따이는 상황이면 정신을 차렸을 가능성이 농후하며, 유디트 혼자서는 힘으로 상대가 안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하녀와 2대 1로 짓누르고 목을 베는 쪽이 더 현실적이다.
게다가 표정 묘사만 해도 마찬가지.
적진에 목숨 걸고 칼 들고 들어가 사생결단 내는 상황이라면 필사적이고 단호한 표정이 좀더 어울릴 것이다. 물론 예술 작품이니만큼 현실성만 가지고 평가할 수는 없지만 생생한 현실 묘사도 작품을 두드러지게 하는 요소라는 점은 잊지 말아야 할 것.
여성 화가인 젠틸레스키는 성폭행 피해 경험이 있었는데, 가해 남성 '아고스티노 타시'를 고발했다가 오히려 거짓말을 한다며 손가락을 조이는 고문을 받는 적반하장의 상황에 처했던 경험이 있다.
타시는 젠틸레스키를 강간 후 결혼하겠다고 해서,
두 사람은 사건 뒤 3년 간 결혼을 전제로 한 애인 관계였다.
이건 당시 시대상 흔했던 강간 후 해결 방법이었다. 그러나 타시는 이미 다른 데에서 마누라도 있었고,
전 전과자에 처제(14세)와 근친상간죄로 고발된 상태였다
해당 사건에서 유죄로 반 년 징역을 산 이후 두 번이나 체포되었는데 그 중 한 번은 매춘부 폭행 후 금품절도. 쓰레기의 클라스는 영원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그림이 발표되자 사람들은 그림 속
유디트의 얼굴과 젠틸레스키의 얼굴이 너무나도 흡사한 것에 놀랐다고 한다.
서양 중세를 통해 프루덴티우스
(Aurelius ClemensPrudentius, 348~410년경)의 장시 Psychomachia (프슈코마키아 영(靈)의 싸움, 4세기 후반) 삽화 등에 의해,
유디트는 ‘겸양’과 ‘자제’,
홀로페르네스는 ‘오만’과 ‘음란’의 미덕과 악덕을 나타내며 전자는 에스테르, 시바의 여왕과 더불어 『에크레시아』까지도 상징했다.
(예 : 샤르트르 대성당 북쪽 문짝 아치볼트 부조, 1220). 르네상스 시대에는 살로메와 크레티아와 나란히, 영웅적인 형태를 취하는 이 주제가 널리 애호되었다. 도나텔로에 의한 피렌체의
팔라초 베키오 앞의 샘 중앙주(中央柱)를
위한 브론즈 군상(1455)은,
홀로페르네스의 뒤에 서서 칼을 쥐고 있는
유디투를 배치하고 있다.
실내의 정장한 부인 반신상 앞쪽에 잘린 머리를 탁상에 놓는 모습(1530년경의 빈 미술사미술관),
천막 앞에서 시녀와 함께 목을 부대에 넣는 모습
목을 머리에 인 시녀를 데리고 귀로에 들어서는 모습(예 : 보티첼리, 1470년경 우피치 미술관),
잘린 목을 두 손으로 들고있는 모습
(예 : 베로네제, 빈 미술사미술관) 등 여러 표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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