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사는 '''대통령의 하인"'이 아니다.🔺️
1992년 5월 23일 오후 5시 58분, 이탈리아 시칠리아 카파치 인근
고속도로는 평온한 오후의 정적을 깨고 거대한 화염에 휩싸였다.
마피아 조직 코사 노스트라가 도로 밑에 매설한 500kg의 강력한 TNT
폭탄이 터진 것이다.
이 폭발로 고속도로 100m 구간이 형체도 없이 사라졌으며, 그 위를
지나던 방탄차량 세 대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산산조각이 났다.
이것이 바로 현대 사법 역사상 가장 참혹하면서도 숭고한 순교로
기록된 조바니 팔코네 검사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팔코네는 단순히 범죄자를 잡는 검사가 아니었다. 그는 마피아와
결탁하여 국가의 골수를 빨아먹던 부패한 기득권 정계의 거대한 심장을
정조준한 유일한 칼날이었다.
동료 검사들이 길거리에서 사살당하고 "너도 곧 죽을 것"이라는 협박
이 일상이 된 공포 속에서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팔코네는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을 통제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의지다"라는 말을 남기며, 무려 475명의 마피아
조직원을 한꺼번에 기소하는 전무후무한 '대심판(Maxiprocesso)'을
완수해 냈다.
하지만 그를 향한 진짜 칼날은 마피아가 아닌 그가 지키고자 했던 국가
내부, 즉 기득권 정계에서 날아왔다. 팔코네의 수사가 정권 고위층의
추악한 뒷거래를 파헤치기 시작하자 정치권은 일제히 그를 고립시키기
시작했다. 사법부 내 파벌을 이용해 그를 근거 없는 의혹으로 감찰하고,
수사 현장의 야전 사령관이었던 그를 로마의 행정직으로 좌천시켜
수사권조차 박탈했다.
권력과 범죄 조직은 팔코네를 폭탄으로 제거하면 정의의 등불도 영원
히 꺼질 것이라 믿으며 샴페인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들의 환희는 오래가지 않았다. 팔코네의 죽음은 잠자던
이탈리아 시민들의 양심을 깨운 거대한 도화선이 됐다.
시민들은 거리마다 "팔코네는 살아있다!"는 깃발을 내걸고 쏟아져
나왔으며, 이 분노의 물결은 이탈리아 정계의 판도를 완전히 뒤엎은
'마니 풀리테(깨끗한 손)' 운동으로 번졌다.
결국 이어진 선거에서 마피아의 비호를 받으며 수십 년간 권력을
독점해 온 기득권 정당들은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 지도상에서
영원히 지워졌다.
팔코네는 비록 한 줌의 재가 되었으나, 그의 정신은 부패한 정당
체제를 해체하고 이탈리아 사법 체계를 근본적으로 뒤바꾼 불멸의
승리로 남았다.
정의의 칼날이 권력의 심장을 꿰뚫은 사례는 1976년 일본에서도
찬란하게 빛났다.
'컴퓨터 달린 불도저'로 불리며 일본 정계를 발아래 두었던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의 권세는 무소불위였다.
록히드 뇌물 사건이 터졌을 때 검찰 내부조차 거물 정치인의 보복
이 두려워 숨을 죽였으나, 도쿄지검 특수부의 수장 바바 요시노부는
"거악(巨惡)은 결코 잠들게 해서는 안 된다"는 서슬 퍼런 기치 아래
정면 돌파를 선언했다.
다나카 측은 수사팀 검사들의 집 앞에 괴한을 배치해 공포를 조성
하고, 총리 관저를 동원해 수사 기밀을 빼내려 혈안이 되어 압박을
가했다.
하지만 바바 요시노부는 이러한 유무형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미국
과의 사법 공조를 통해 비밀 뇌물 명부를 기어코 확보해 냈다.
전직 총리 소환이라는 일본 헌정사상 전무후무한 결단 앞에 다나카
는 재판 내내 막강한 파벌을 동원해 검찰을 '정치 검찰'이라 비난하며
부활을 꾀했으나 바바가 이끄는 수사팀이 제시한 치밀한 증거와 법리
앞에 권력의 성벽은 무너져 내렸다.
다나카의 유죄 확정은 아무리 높은 권력도 법의 심판대를 피할 수
없다는 성역 없는 정의의 승리였으며, 일본 사회의 부패 구조를 해체
하고 자민당 장기 집권의 폐해를 고발한 위대한 사법 혁명으로 기록
됐다.
미국 민주주의가 가장 치욕적이면서도 고결했던 순간인 1973년
'토요일 밤의 학살' 역시 법의 독립을 지키려 한 특별검사 아치볼드
콕스의 투쟁에서 시작됐다.
콕스는 워터게이트 사건의 핵심 증거인 닉슨 대통령의 백악관 녹음
테이프 제출을 요구하며 정권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
닉슨은 행정권의 특권을 내세워 제출을 거부하며 콕스에게 수사
범위를 제한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콕스는 백악관의 서슬 퍼런 압박에도 TV 카메라 앞에 서서 전 세계
를 향해 준엄하게 외쳤다.
"나는 대통령의 하인이 아니다. 나는 법의 하인이다."
광기에 휩싸인 닉슨은 법무장관 엘리엇 리처드슨에게 콕스의 해임
명령을 내렸으나, 장관은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며 사표를
던졌다.
뒤이어 명령을 받은 차관 윌리엄 러클스하우스 역시 해임안 서명
을 거부하고 연쇄 사임하며 저항했다.
닉슨은 콕스만 제거하면 어둠이 진실을 덮을 것이라 믿었지만,
그것은 오판이었다. 콕스의 해임 소식은 잠자던 미국의 양심을
깨우는 거대한 종소리가 되었고, 시민들은 "대통령도 법 아래에
있다"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결국 연방대법원은 8대 0 전원 일치로 테이프 제출을 명했고,
콕스가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원칙은 닉슨을 미국 역사상 최초로
하야시키며 법치주의의 영원한 승리를 완성했다.
이처럼 역사 속의 정의로운 검사들은 권력의 폭압 앞에서도 결코
무릎 꿇지 않았으며, 그들의 투쟁은 오늘 대한민국 법치주의의
위기 속에서 박상용 검사라는 이름으로 재현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복심 정성호 법무장관이 내린 박 검사 <직무
정지>는 단지 한 검사의 직무를 정지시킨 사건이 아니라 대한
민국 헌법에 대한 <전면적인 선전포고>다.
불과 2년 전, 우리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부인의 수사와 재판을
막으려 버티다 결국 정권이 몰락하는 역사의 선명한 교훈을 목도
했다. 권력으로 재판을 막으려 할수록 그것은 더 큰 업보가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을 온 국민이 지켜봤다.
그런데 지금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은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
는가? 그들은 과거 윤 정권이 걸어갔던 실패의 길을 그대로 답습
하고 있다.
국회의 다수 의석과 정권의 권력을 합쳐 이미 대법원 판결이
확정된 대북송금 사건의 죄를 죄가 아닌 것으로 만들려 한다.
이미 시작된 재판 자체를 무력화하여 없애버리려는 시도는 국민
의 눈에 과거의 오만했던 권력과 결코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거대 집권 세력은 박상용 검사를 전형적인 정치 검사로 규정
하며 죄 없는 이재명 대통령을 표적 삼아 억지 기소를 감행했
다고 주장한다.
민주당은 검찰이 증거를 조작하고 진술을 회유했다며 이를
단죄하기 위한 청문회와 탄핵 추진이 정당한 입법권의 행사
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이러한 치열한 공방의 한복판에서도 <사건의 실체>
는 이미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당시 이재명 경기지사의 평화부지사였던 이화영은 800만
달러 규모의 대북 송금 및 뇌물 수수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7년 8개월의 중형을 최종 확정받았다.
대법원은 대북 송금이 주권 국가의 안보를 뿌리째 뒤흔드
는 중죄임을 판결로써 증명했다.
검찰은 이 판결을 바탕으로 이재명을 공범으로 지목하여
기소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경기도의 스마트팜 사업비 500만 달러와
이재명 당시 지사의 방북 비용 300만 달러가 이재명의 인지
와 승인 아래 북한에 전달됐다.
또한 검찰은 이재명이 당 대표 시절 보좌관 김현지 등을 통해
증거를 조작하거나 진술을 회유하려 했다는 정황을 공소장에
명확히 적시했다.
현재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면서 해당 1심 재판은 멈춰 서 있다.
집권 세력이 압박하는 공소 취소는 법리적으로 1심 판결 선고
전까지만 가능하다는 점을 노린 마지막 방패막이 시도다.
퇴임 후 <감방행 차단 작전>인 셈이다.
박상용 검사가 국회에 낸 소명서는 정의로움이 넘친다.
대통령이라도 <법의 발 아래> 있어야 한다는 40대 검사의
헌법과 법치주의 주장이 탄압받고 또 직무정지 대상이 돼야
하는가?
"검사는 오직 증거와 법리에 따라 말해야 한다. 현재 진행 중
인 청문회는 피고인 이재명을 구하기 위한 보복성 탄압이자
<사법 방해>다.
수사 중인 검사를 국회로 불러내 <인민재판식>으로 몰아세
우는 것은 <삼권분립 위배>다. 나는 끝까지 진실을 수호하겠다."
이 한 마디가 이 시대 양심적인 국민들에게 묻는다.
이 나라에 법치주의가 단 한 뼘이라도 남아 있는가?
어느 권력도 결코 재판을 막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