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한국산하 300대 명산(271m)
0. 최단코스 : 회현역 4번 출구 - 남산공원- 안내선터-남산타워(원점회귀)
0. 산행거리 및 시간 : 4km, 01시간 50분.
남산
1. 남산공원 소개
서울특별시에 있는 산. 산 전체가 매우 단단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중구와 용산구의 경계에 있다.
높이는 해발 270m. 남산의 한자 표기는 南山. 그 뜻은 앞산을 뜻하는 것으로 유래는 조선 시대의 궁궐인 경복궁에서 바라보면 바로 앞이 남산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의 한양 시가지는 사대문 안만 포함되었다. 현재 위치가 서울의 남쪽이 아닌데도 남산이라 불리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옛 이름으로 목멱산(木覓山), 인경산(引慶山)이 있다. 아무튼 남산은 옛 한성부의 안산(案山)이기도 하다.
남산에 올라가 보면 송신타워인 남산서울타워(舊 서울타워)가 있으며 팔각정, 남산 봉화대 등 몇몇 볼거리가 있다. 정상에 오르면 서울의 모든 풍경이 다 보인다.
그러나 서울타워에 올라가지 않는 이상은 서울타워에서 보는 광경과 남산 봉화대에서 보는 광경이 둘 다 다르다. (봉화대에선 경복궁과 저 멀리 청와대가 보인다) 야경이 대단하다고 한다.
정상에서는 매일 오후 3시부터 사물놀이, 무예 시범 등 관광객들을 위한 전통 공연이 열린다. 개화 시기에는 야외식물원 또는 산책로를 따라 꽃구경 하기에도 좋은 곳인데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엄연히 산이지만 험한 코스가 없고 야간에는 가로등이 곳곳에서 밝혀주기에 24시간 아무런 제재 없이 출입이 가능하다.
뉴스(특히 YTN)에서 서울의 대기 상태를 보여줄 때 단골로 선정되는 장소다. 산 위의 탑 같은 게 보이면 십중팔구 여기라고 보면 된다.
서울의 중심이어서 대부분의 지역에서 쉽게 눈에 띄는 데다가, 여기서 주변을 찍어도 시가지의 모습이 잘 담기기 때문. 또한, 추석, 설날, 대보름 등 명절에도 방송국에서 심심찮게 다녀간다.
특히 팔각정은 만남의 장소중 하나로 취급되며, 무한도전 추격전에서 중요한 시작장소나 모임장소처럼 쓰이기도 한다.
서울 토박이는 남산이 대한민국에서 서울에만 있는 걸로 아는 사람도 있는데, 위에서 언급된 대로 남산이란 한자 지명이 '남쪽의 산'이라는 흔한 뜻이기 때문에 남산으로 불리는 산은 한둘이 아니다. 이 산 이외에 유명한 남산으로는 경주의 남산이 있다.
2. 역사
역사가 굉장히 파란만장한 산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재위 4년(1395년) 음력 12월 29일 백악을 진국백(鎭國伯)으로, 남산을 목멱대왕(木覓大王)으로 삼아 일반인이 제사를 올리지 못하게 했다.
태조실록 태조 4년 12월 29일 기사 왕의 등 뒤에 있는 북악산은 백작으로 대우한 반면 왕이 남면(南面)하는 남산은 왕과 동격으로 대우했다.
원래 남산의 북면 일대는 조선시대 때 도성을 수비하는 군대가 무예를 닦던 '무예장'이 있던 곳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무예장 터에 일본군이 성을 지어 '왜성대(倭城臺)' 또는 '왜장대(倭將臺)'라고 불렸다. 구한말 시기부터 경복궁에 조선총독부 신청사가 건립되기 전까지 왜성대 일대에 통감부 건물[7]과 통감 관저(구 주한일본공사관)가 있었고, 그 주변에는 경성에서 사는 일본인들의 집단 거주지를 이루어 살았다.
왜성대에 사는 일본인들은 광무 2년(1898) 오늘날 리라아트고등학교 자리에 경성신사(京城神社)를 창건하기도 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남산대신궁'이라는 명칭이었으나 1916년 조선총독부로부터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경성신사'라고
개칭했다. 1929년에는 경성신사가 서쪽으로 약간 이전해서 숭의여자대학 터에 자리를 잡았다.
경성신사는 조선신궁 창건 이전까지는 식민지 조선의 일본 신사들을 대표하는 역할도 하였다.
경성신사의 동쪽 근처, 오늘날 사회복지시설 남산원 근처에는 노기 마레스케를 위한 노기신사도 세웠는데, 경성신사의 부속시설로 취급받았다.
조선총독부는 1925년 현 남산도서관, 안중근 의사 기념관, 백범광장, 분수대 위치에 조선신궁을 세웠다. 대단한 규모였다. 조선신궁 건설과정에서 남산은 크게 훼손되었다.
역사책에서 등장하는 '조선인에게 일년에 두 차례씩 신사참배를 강요하던 곳'으로 상징되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심지어 남산 꼭대기에 있었던 국사당이 조선신궁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다는 이유로 인왕산으로 강제 이전되기도 했다.
해방 이후에야 비로소 조선신궁은 없어졌고 그 자리에 만들어진 것이 남산식물원, 분수대, 백범공원 등의 시설이다. 이승만 정권 당시에는 일본을 극복하겠다는 뜻으로 조선신궁 터에 대한민국 국회의사당을 세우려고 했으나 1960년 4.19 혁명으로 백지화되었다. 조선신궁과 그 터의 변천에 대해서는 조선신궁 항목 참조.
1961년 중앙정보부가 들어서면서 남산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붙었다. 이후 남산 외인아파트, 숭의초/숭의여중/숭의여고/숭의여대, 남산아파트, 리라초등학교 등이 들어서면서 남산은 거의 인간의 놀이터가 되어갔고, 이에 따라 경관 파괴라는 지적이 나오자 서울시는 1991년부터 '남산 제모습 갖추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남산 살리기를 본격화한다.
그 성과로 1994년 남산 외인아파트가 철거됐고 남산의 이미지를 어둡게 만들었던 국가안전기획부 본청을 1995년 서초구 내곡동으로 옮기고 별관 건물도 1996년 철거했으며 필동에 있던 수도방위사령부를 관악구 남현동으로 이전해 남산골 한옥마을을 조성하는 등 남산 본연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3. 남산으로 가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