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4. 13. 08;00
객산(客山)을 지나가는 버스가 예정보다 20분 늦게 도착하고,
운전기사의 밝은 표정을 보며 버스에 오른다.
"어서 오세요"라는 인사를 받으며 나 또한 "안녕 하세요"라며 인사를 나눈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서로를 모르면 인사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깨끗하고 잘된 공중변소만큼 대중교통의 서비스도 좋아졌기에
운전기사들은 표정도 밝고 인사를 잘한다.
고객만족(customer satisfaction) 교육이 잘된 기사를 생각하며 객산을 오른다.
한 무리의 여성 등산객이 뒤를 따라오며 시끄럽기에 먼저 올라가라고 길을 비켜준다.
바깥 세상에서는 서로 인사를 하지 않지만 산에서는 몰라도 서로 인사를 잘하니
산(山)이라는 사유(思惟)의 공간은 마음을 열리게 하는 모양이다.
소나무 아래에 있는 공간은 연분홍색 진달래가 다 차지를 했다.
진달래는 지난번에 충분히 찍었기에 오늘은 '처녀치마'나 '현호색'을 찍으려 두리번거려도
보이지를 않는다.
소나무숲에서 목쉰 까마귀의 울음이 들린다.
날카로운 소리가 아니고 느려터지면서도 애절한 비명이 들리는데,
노쇠한 까마귀가 자기의 죽음을 예고하는 모양이다.
까마귀는 흉조(凶鳥)가 아닌 보기 드문 반효조(伴孝鳥)라,
부모가 죽을 때까지 부모 곁을 떠나지 않는 효자새인데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죽음과 불길을 연상케 하는 늙은 까마귀의 울음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09;00
2010년 2월 검단산을 오르며 고인(故人)이 된 친구의 마지막 목소리를 들었는데,
최근 나이가 아홉수에 걸린 탓인지 아픈 친구들이 부쩍 늘어났다.
주변에 췌장암, 신우암, 난소암, 전립선암 등으로 투병생활을 하는 지인들이 여럿이다.
호스피스 병동으로 들어간 친구의 안위(安危)를 걱정하고 위로하는 톡 메시지가 쉴 새 없이
비명을 지른다.
조용한 산중에서 "카톡"을 알리는 소리가 심장을 더욱 예민하게 만들기에 서둘러
채팅방 알림 해제 모드로 바꾼다.
사람의 인생에 있어 9라는 숫자는 인생의 전환점에서 하나의 기점을 형성하는 시기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이 나이가 되면 다른 시기보다 어려운 일도 많이 생기고, 사고도 많이 나기에
각별히 주의해서 잘 넘기라는 뜻으로 아홉수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흔히들 아홉수 삼재(三災)라 한다.
들삼재, 눌삼재, 날삼재의 3년을 특히 조심하라는 건데,
이중 들삼재인 첫해를 재앙, 재난이 가장 강하며 신체적 정신적으로 화를 당할 수 있는
삼재 중의 가장 악삼재로 본다.
다음으로 눌삼재인 두 번째 해에는 사고보다는 병으로 신체에 위협을 많이 받는다 하며,
마지막인 날삼재는 앞에 있는 두삼재보다는 재난의 정도가 약하다고 한다.
10;40
어느 친구는 말한다.
인생 80에서 10년을 덜 살면 겨우 10% 정도를 못사는 건데 너무 슬퍼말라고 말이다.
나도 생사의 기로(岐路)에 서봤다.
생(生)과 사(死)의 고비를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당사자의 절박한 심정을 모른다.
조금 이해를 해주고 위로를 하지만 아프고 생사(生死)의 갈림길에 선 경계인은 철저히
이방인일 뿐이다.
지나고 보면 누구나 다 뜬 인생이다.
환화(幻花)와 같은 세계 속에서 인생이란 잠깐 만에 쏜살같이 지나가 버린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환하게 핀 이 벚꽃도 순식간에 사라진다.
내일 태풍급 비바람이 불면 꽃잎이 다 떨어진다는 기상청 예보에 금년의 마지막이 될
벚꽃을 바라본다.
아프면 쓸쓸하고 외롭다.
치유가 불가능하고 임종(臨終)이 임박하면 더 힘들다.
그래도 수십 통의 위로와 안부 메시지는 작은 힘이라도 보태주기에 나도 몇 줄 졸필을
써서 보내면서도 마음이 무겁다.
세상에 신(神)이 있다면 기적(奇蹟)은 분명히 있을 거다.
예수님, 부처님, 칠성신, 단군신, 해신이든 어느 신도 좋으니,
아픈 친구에게 살아있는, 살아날 수 있는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졸필을 끄적거리며 간절히 빌어본다.
2019. 4. 13. 까마귀 울음이 서글픈 날
객산에서 석천 흥만 졸필
첫댓글 지지난 주....
이웃 골자기 사는 친한 친구를 보냈는데
임종이 임박한 친구의 병상 옆에서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어서 그저 쓸쓸히 웃으며
바싹 마른 친구의 손만 만지락 거렸다네.
명복을 빈다는 말도 그저 허울일 분이고
그 친구와의 좋았던 시절만 다시 생각해볼 뿐이라네.....
다 서글픈 일일쎄.
그냥 9988234만 기대할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