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고양이에 관한 불편한 진실
나는 고양이와 개, 그리고 다섯 명의 인간과 동거한다. 어느 나른한 오후, 우리는 각자의 공간에서 무료함을 즐기고 있다. 개는 소파 옆 자리에 놓인 푹신한 베개에 턱을 괴고 우울한 얼굴로 엎어져 있다. 고양이는 늘 그랬듯이, 옆으로 길게 소파에 늘어져 있다. 나는 고양이를 피해 소파 한 구석에 앉아 있다. 그들의 무료함을 깨고 싶지 않은 나는 미동도 않고, 가만히 그들을 엿보고 있다. <고양이> 이름을 부르면 잠시 고개를 까닥하더니 이내 옆으로 쓰러져 눕는다. 아무리 불러도 제가 오기 싫으면 그만인 녀석이다. 잠시 소파에 늘어져 있더니 금세 제 몸 구석구석을 핥아대기 시작한다. 거칠거칠한 혓바닥으로 연신 앞발을 핥아 대더니 그 발로 얼굴을 문지르기 시작한다. 고양이 세수의 의미를 알 것 같다. 실은 입안의 미생물들을 온 몸에 묻히고 있다(1). 잠시 후면 털에 묻은 미생물들 중 일부는 소멸할 것이다.그리고 꽤 오래 버티는 녀석도 있을 것이다.
고양이 꼬리가 슬그머니 내 손끝을 스친다. 어느 새 나는 고양이를 쓰담쓰담하고 있다. 고양이 입에서 앞발로, 얼굴 언저리의 털로 순간 이동한 미생물들이 나의 손바닥으로 옮아 온다. " 앗, 손을 씻어야지.." 생각하다 식탁에 놓아 둔 크래커 한쪽이 눈에 띈다. 나는 무심코 손을 뻗다가 잠시 움찔한다. 손을 씻을까, 말까.. 크래커 끝을 살짝 집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집어 든 크래커를 와삭, 씹는다. 고양이 입에서 여행을 시작한 그들이 나의 입으로 옮겨 타는 순간이다.
<개> 끊임없이 나를 졸졸 쫓아다닌다. 잠시라도 앉아있으면, 금세 쪼르르 달려와서 내 무릎에 제 턱을 고이고 빤히 쳐다본다. 쓰다듬어 달라는 것이다. "그래 알았다.. 쓰담쓰담, 됐지?" 잠시 손을 멈추었더니 제 입으로 할짝거리면서 내 손을 밀어서 다시 제 머리에 얹는다. 그래 또 쓰담쓰담..(2) 마침 고양이가 살금살금 다가 온다. 질투의 화신인 개는 늘 고양이를 견제하려고, 펄쩍거린다. 안쓰러운 마음에 고양이를 집어 들어 무릎 위에 올리고는 쓰담쓰담한다. 개 혓바닥에서 내 손으로, 그리고 다시 고양이 털로, 나는 그들의 셔틀 버스가 되었다.
<나> 고양이에게 나는 그저 집사일 뿐... 고양이풀 (cat grass) 한 줌을 손바닥에 놓았다. 그 녀석 폴짝 뛰어와서는 열심히 손바닥을 핥아본다. 조금 거칠한 고양이 혓바닥이 닿는 감촉이 낯설다. 샘이 많은 개는 그 상황을 그냥 넘기지 못하고 쪼르르 달려와 겨드랑이 사이로 제 머리를 쑥 집어 넣는다. 개의 축축한 코가 내 팔뚝을 스쳤다. 장난처럼 손가락을 슬쩍 무는 바람에 나의 손에도 개의 그들이 옮겨왔다. 그들과 뒹굴거리며 노는 시간은 행복하지만, 그들이 나를 핥고, 내가 그들을 쓰다듬는 동안 내 몸에 옮겨졌을 미생물들을 상상하면 조금 찝찝하다 (상상하지 않는 편이 나을 뻔 했다). “손을 씻자.. 씻으면 없어질 거야.. “ 물을 트는 순간 그들은 이미 개수대 손잡이를 점령했다. 열심히 손을 씻어 봐야 이미 그들은 우리 안에 있다는 불편한 현실을 마주한다.
<고양이와 개, 그리고 나 > 일방적인 그들의 나눔이 찜찜하던 참에 마침 그 반대의 경우가 생겼다. 저녁으로 양념 갈비를 굽는 참이다. 잘 구워진 갈비를 맛있게 뜯고 있는데, 눈치 없는 개는 발치에 버티고 앉아 있다. 얼핏 눈물이 그렁그렁한 것 같기도 한 눈으로 빤히 나를 바라보며 침을 뚝뚝 떨구고 있다. 마음이 약해진 나는 고기 없이 앙상한 갈비뼈를 개에게 권한다. 갈비를 뜯는 새에 옮겨진 나의 미생물이 다시 개에게 이동하는 순간이다. 식사가 끝나자 개는 이제 포기한 듯, 제 밥을 먹기 시작한다. 그리고, 제 밥을 다 먹은 녀석은 다시 고양이 밥을 향해 돌진한다. 입이 짧은 고양이가 먹다 남긴 사료도 한 순간에 게 눈 감추듯 꿀꺽하는 개... 고양이가 남긴 미생물들이 또 그에게로 갔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 부부가 오래 살면 닮는다고 한다. 물론 서로를 오래 마주 보면서 웃고 싸우고 하는 동안 서로의 인상을 저절로 닮아가는 지도 모른다. 그보다 더 가까이 마주하는 동안, 우리는 서로의 미생물을 나누면서, 체취와 숨결도 닮게 되지 않을까?(3)
그리고 우리의 아기, 거의 무균 상태인 양수에서 아홉 달을 편하게 잘 지냈다. 세상에 나오려는 순간, 힘겹게 비좁은 산도를 빠져나온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엄마의 그들을 흠뻑 묻히게 되었다. 조금 먹기도 한 것 같다. 흑..
꼬물꼬물 엄마 품에 안겨 힘차게 젖을 빨면서, 엄마 피부에 살고 있던 그들을 또 만난다. 자연스럽게 아이 입속으로 옮겨가는 엄마의 그들... 엄마의 초유를 양분 삼아 열심히 분열하고 성장하더니, 목구멍에서 위로, 다시 장으로, 그리고 대장으로, 그리고 세상으로 다시 나온다. 그리고 자라면서, 여기저기 기어 다니고 주워먹고 하는 동안 아기는 더 많은 그들을 만날 것이다. 내 안의 그들 -미생물군 (microbiota)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은 다양한 미생물들과 접촉하고 교감하면서 진화해 왔다. 어쩌면, 미생물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삶의 터전이 되는 큰 개체들의 대사와 생리를 조절해 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사는 개체들의 진화에도 영향을 끼쳤으리라 짐작한다. 어떤 녀석들은 우리의 대사를 돕기도 했고, 또 어떤 녀석들은 한 마을에 사는 가족 전체를 멸절하는 지독한 병을 옮기기도 했을 것이다. 어느 때부터 인가 우리는 자연 상태와 매우 다른 거주 환경을 만들기 시작했다.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미생물군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우리가 만들어낸“문명" 이라는 주거환경을 좋아하지 않는 녀석들도 있었다. 너무 깨끗해진 우리의 환경은 미생물의 삶을 위협하기도 하고, 이미 사라져 버린 녀석들도 있을 것이다(4). 그리고 그들의 달라진 삶은 다시 우리의 삶을 바꾼다. 끊을 수 없는 사슬에 묶여 있다. 어쩌면, 이들과 우리의 피드백 (feedback) 관계가 우리의 건강과 질병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정체성 -마이크로바이옴 (Microbiome)
우리 안에 어떤 녀석들이 살고 있을까? 내가 사는 모습이 그들의 사는 모양에 영향을 주었을까? 그들이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이런 물음들에 대한 답을 찾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바로 요즘 뜨는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이다(5). 우리 몸에 사는 미생물의 유전정보 전체를 분석하고, 그들의 정체성을 밝히려고 한다. 발효음식을 많이 먹는 사람은 왜 건강할까? 대장미생물상이 달라졌나?
혹시 미생물이 치매나 암 같은 무서운 질병에도 영향을 주는 건 아닐까?
심지어 “우울증과 미생물의 관계” 라는 연구도??
불과 십여 년 전만해도 홀대받던 그들이 이제는 연구자들의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했다(오바마 대통령이 2016년 “내셔널 마이크로비옴 프로젝트 (National Microbiome Initiative)” 의 시작을 대대적으로 공표한 날을 기억하시는지..). 언젠가는(혹은 조만간) 우리의 가열찬 연구는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 내고, 그들과 우리의 관계에 대한 답에 좀더 가까워질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뭐가 엄청나게 달라질까? 미생물학을 공부하면서, 나는 보이지 않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다. 어쨌든 나는 여전히 그들과 함께 하고 있고, 나의 몸은 그들의 든든한 삶의 터전이다. 그리고, 내가 매일 만나는 이웃들과 함께 뒹구는 시간은 우리 만의 어울림 뿐 아니라, 미생물들의 어울림을 만든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그들의 여행은 계속 되고 우리는 또 그들 덕분에 새로운 삶을 만나게 될 것이다. 내 안의 그들을 잊지 말자. References 1. A. Sturgeon, , S.L. Pinder, M.C. Costa, and J.S. Weese. 2014. Characterization of the oral microbiota of healthy cats using next-generation sequencing. https://doi.org/10.1016/j.tvjl.2014.01.024. 건강한 고양이 입속에는 어떤 미생물이 살고 있을까 궁금한 연구 그룹에서 요즘 한창 뜨는 Next generation sequencing 방법으로 타액에서 추출한 DNA의 염기 서열을 조사했다. 박테리아 18 문에 속하는 273 속의 다른 미생물이 살고 있었다. 11 마리의 고양이에서 모두 검출된 미생물들도 있지만, 어떤 미생물들은 고양이들마다 확연히 다른 분포를 보이는 것도 있다는… 집집마다 다른 사료를 먹이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일 듯… 1.Sujata Gupta. Microbiome: Puppy power. Nature 543, S48–S49 (30 March 2017) doi:10.1038/543S48a. What Happens to Your Microbiome If You Own a Dog? 3. Remco KortEmail, Martien Caspers, Astrid van de Graaf, Wim van Egmond, Bart Keijser and Guus Roeselers. Shaping the oral microbiota through intimate kissing. Microbiome 2:41, 2014. DOI: 10.1186/2049-2618-2-41 10초의 찐~한 입맞춤이 8000만 마리의 미생물을 옮긴다는 아찔한(?) 연구 결과… 4. https://www.nature.com/news/2009/091202/full/462558a.html. 더러운 돼지가 더 건강하다.. https://www.nature.com/news/dirty-room-mates-make-lab-mice-more-useful-1.19768. 혹은 더러운 쥐가 더 유용하다.. 더럽게 키운 아이가 더 건강하다는 연구결과도.. ㅋㅋ 5. NIH Human Microbiome Project (http://hmpdacc.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