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결혼 풍속도를 보면 참 아슬아슬하다.
어떤 유명 아나운서와 뜨는 배우 간의 20년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에 성공하여 아주 행복에 겨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매체에 나온다.
그러나 결혼 생활이 파탄에 이르고 울고불고 하는 사정으로 세인을 놀라게 한
많은 유명인들의 불행한 모습의 초장은 다 요즘 흔히 하는 표현대로
'꿀 뚝뚝'이었다.
결혼이란 시도 환상도 아니며 현실이며 산문이다.
부부가 노력하지 않으면,
어느 일방이 손놓고 있으면서 상대가 자신을 왕비처럼 받들어 주기만을 바란다면,
자신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은 범속하기 이를 데 없으면서 마냥 상대가 존경할 줄로 착각한다면,
그 결혼은 가문날 연못 물이 줄 듯이 파탄은 기정 사실이다.
옛날 작곡가 길옥윤이 마지막 결혼에서 신부와의 나이 차이가 많이 났는데
얼핏 장인이 자기 보다 어리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난다.
장인이 자기 보다 어리다면 신부는 도대체 몇 살이나 차이가 난다는 말인가.
막내 딸이나 막내 손녀 같은 여자와 결혼식을 올렸다는 말이 아닌가.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신고를 하였으니 부부임에는 틀림없다.
나이 차이 때문에 법적으로 혼인이 불가하다는 것도 있을 수 없으니 혼인신고를 통한,
법에서 보장한 부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법도 사회도 두 사람의 사랑도 현실을 피할 수는 없는 일이다.
부인은 피어 오르는 꽃과 같다면 남편은 가을 언덕에 선 고목이다.
여자가 비로소 환상에서 깨어나 침팬지처럼 가슴을 쾅쾅 쳐댄들 이미 때는 늦으리이다.
어느 유명 인사의 부부는 그들이 한창 죽고 못산다더니
어느날은 또 혼인이 파탄나 서로 공격하는 장면이 티부이 브라운관을 탔다.
그때 여자가 그랬다. 섹스를 "십년에 열두 번도 안했다."라든가.
아마도 요즘 사람의 결혼관이란
잠깐 앉아서 둘이 한 잔 하다가 시간이 되면 서로 갈길을 가는 '술자리' 정도로 생각하는 것일까.
남편을 버리고 부인을 버리고 가정을 박차는 일을 데리고 사는 강아지 버리는 일보다 더 쉽게 생각한다.
티부이에서 한 여자가 나와 자신의 아이 셋이 각각 성이 다르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그렇게 되기까지의
곡절을 이야기하자 사람들이 격려의 박수를 쳐주는 경우도 보았다.
'20년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사랑에 성공한....' 부부가 인터넷에 보이면 나는 그들이 과연 어떤 삶을 영위해 나갈지
상상이 된다. 남자가 파파 노인이 되었을 때 여자는 한창 인생의 진미를 알 때이다. 누가 봐도 탐스런 수밀도 같은
부인을 세상이 가만두지 않을 테고, 그런 경우 남편은 또 의심암귀, 모든 것이 의심스럽다. 팔랑거리는 치마폭도 의심스럽고
폰으로 대화하며 웃는 소리도 불안하다. 내가 비록 앞날을 훤히 꿰뚫는 도인이 아니라도 그들 부부의 불행이 다 보인다.
세상의 남녀들이여, 부디 서로의 나이 차이가 5살이 넘거든 맺으려고 하지 말라. 그리고 나이가 걸맞고 모든 것이 걸맞다고 해도
결혼 결심은 신중히 할지어다. 그렇게 하여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거든 그 아이를 위해서라도 절대 헤어질 생각은 말라.
어른인 너그들이야 너그 배짱으로 헤어진다손 치더라도 아이들이야 무슨 죄인가.
부부가 싸우고 헤어지려 하자 아이가 매달리며 '엄마 아빠 헤어지지 마. 우리 함께 행복하게 살아요.' 했다든가.
남녀가 만나 서로 이해하며 자식을 낳고 사는 것, 그게 그렇게도 어려운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