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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로메오는 1910년 6월 24일 창업했다. 회사명은 ‘Anonima Lombarda Fabbrica Automobili’의 약자를 딴 알파와 창업자인 니콜라 로메오의 이름을 합한 것이다. 니콜라 로메오는 1876년 네이플즈 지역에서 가까운 안티모에서 태어났으며 1900년부터 외국에 나가 사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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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로메오의 시작은 1906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의 다라크를 생산하던 ‘Societa Italiana Automobili Darracq’가 알파로메오의 전신이다. SIAD는 당시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자동차 수요를 맞추지 못해 경영에 어려움을 격고 있었고 니콜라 로메오에 의해 ‘Accomandita Ing. Nicola Romeo e Co.’로 다시 태어난다. 다라크 이외로 생산한 첫 모델은 1910년 쥬세페 메로시가 디자인한 24 HP이다.
알파로메오는 1915년 포르텔로의 소규모 자동차 회사를 인수한 후 정부의 요청에 의해 군용 트럭의 엔진을 생산한다. 이 엔진은 1차 세계 대전에 쓰이게 된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회사명이 ‘Societa Anonima Ing. Nicola Romeo & Co.’로 바뀌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자동차 생산이 시작된다. 오늘날 쓰이고 있는 알파로메오라는 이름은 1918년부터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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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로메오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첫 모델은 당시 인기 있었던 그랜드 투어링으로 3리터 6기통 엔진을 얹었다. 그리고 20년대와 30년대에는 알파로메오의 명차로 불리는 6C1750, 6C2300, 8C2300, 8C2900 시리즈가 연속으로 발표된다. 이 모델들은 반구형 연소실, DOHC 헤드, 수퍼차저 등 앞선 기술들이 적용되었으며 아름다운 스타일링으로 인해 수집가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
2. 모터스포츠에서의 성공
알파로메오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스포츠카 메이커였고 레이싱에서도 혁혁한 성적을 올렸다. 페라리의 창업자인 엔초 페라리도 알파로메오 팀에서 활약했다. 알파로메오는 2번의 F1 월드 챔피언과 밀레밀리아 11회, 타르가 플로리오 9회, 르망 24시 5회, 월드 스포츠카 챔피언십 3회 우승이라는 빛나는 역사를 갖고 있다.
물론 모터스포츠의 성공은 1950년 이전에 집중돼 있다. 그 시작은 1차 대전 이후에 시작된다. 부가티에 대항키 위해 결정된 알파로메오의 팀에는 안토니오 아스카리, 우고 시보치, 그리고 무명 드라이버 엔초 페라리도 참여했다. 엔초는 레이싱 드라이버로서보다는 경영인으로서의 재능이 뛰어났고 곧 스쿠데리아 페라리를 결성해 알파의 모터레이스 황금시대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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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의 재능이 최초로 발휘된 것은 1923년 피아트사의 유능한 기술자 비토리오 야노를 영입하면서부터다. 야노 영입 이후 알파로메오는 수많은 명차를 토해냈고 그 첫 작품은 1924년 나온 P2 GP 머신이다. P2 GP로 인해 피아트를 왕좌에서 끌어내리고 30년대 중반까지 GP 레이스를 독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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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를 대표하는 명차 8C2300은 1931년부터 34년까지 르망 24시 4연패, 밀레밀리아에서는 3승을 거두는 무적의 성능을 과시했다. 130마력의 직렬 8기통 DOHC 수퍼차저를 얹은 8C2300의 상대는 없었다. 그리고 2300 몬자는 타르가 플로리오에서 3연승, 이탈리아 GP에서도 3승을 따냈다. 포드의 창업자 헨리 포드는 당시 “나는 알파로메오가 지나갈 때마다 머리 숙여 인사한다”는 최고의 찬사를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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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 로메오는 1933년 회사를 국영 회사인 IRI(Istituto per la Ricostruzione Industriale)로 넘기고 알파로메오를 떠나게 된다. 알파로메오는 경영권이 넘어간 후 주 생산을 네이플즈로 옮기며 전쟁 중에는 공장이 3번이나 파괴되는 어려움을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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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야노와 페라리가 차례로 알파로메오를 떠나면서 어려움을 맞게 된다. 하지만 죠아키노 콜롬보에 의해 개발된 타입 158GP 머신으로 전후의 레이스에서도 무적의 힘을 보여주며 50년에는 G. 파리나가, 51년도에는 M. 판지오가 왕좌에 올랐다. 하지만 새롭게 태어난 페라리에게 밀리면서 1952년의 타이틀을 넘기고 만다. 알파로메오는 페라리에게 밀리자 1952년을 끝으로 모터스포츠에서 철수한다.
3. 줄리에타 | ||||||||||||
고성능 알파로메오를 상징하는 GTA는 줄리아가 시작이다. 줄리아의 스페셜 버전 스프린트 GTA는 4기통 1.6리터라는 작은 엔진을 얹었지만 차체 중량이 820kg에 불과했다. 그리고 모터스포츠에서는 ETCC 3연패를 달성해 알파로메오의 이름을 드높였다. GTA는 오늘날에도 알파로메오의 고성능 버전에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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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줄리아GTA
1964년, 알파로메오는 한동안 끊었던 모터스포츠에 다시 뛰어든다. 이를 위해 오토델타 팀을 새롭게 조직하고 그 첫 작품이 암스테르담 모터쇼에 나온 줄리아 GTA이다. GTA는 스프린트 GT와 같이 알루미늄 보디를 채용해 차체를 최대한 경량화 시켜 차체 중량이 270kg이나 가벼웠다. 또 컴팩트한 차체를 갖고 있었지만 뒷바퀴굴림, 세로 배치 엔진 레이아웃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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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은 진보적인 트윈 스파크 시스템과 고압축비, 트윈 45DCOE 캬뷰레터를 적용해 출력이 기본 115마력에서 170마력/7,500rpm까지 뛰어올랐다. 캠샤프트 커버와 섬프, 벨 하우징은 요즘에도 쉽게 보기 힘든 마그네슘까지 적용해 무게 증가를 철저히 막았다. 가속형 기어비와 오일 쿨러가 더해진 5단 MT와도 궁합이 잘 맞았다.
투어링 카 레이스에는 500대의 GTA가 투입되어 1966년부터 68년까지 ETCC(European Touring Car Championship)를 3연패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또 단 10대만 만들어진 220마력 수퍼차저 엔진의 GTA는 67, 68년에 그룹 5에 투입되기도 했다. 이 모델은 GTA-SA(Sovralimentato)로 알려져 있다. GT 벨로체와 GT 주니어, GTA, GTAm은 전후 알파로메오의 레이싱 전성 시대를 이끈 주역들이었다. 데뷔해인 65년의 세브링 4시간, 뉘르부르크링 6시간 내구 레이스에서도 우승을 거둬 성공을 예감케 했다.
GTA의 초기 파생 모델 중 하나인 1300 GTA는 GT 1300과 배기량은 같았지만 보다 고회전에 적합한 보어×스트로크를 갖고 있었으며, 트윈 스파크 시스템까지 적용해 출력이 160~165마력에 달했다. 1300 GTA는 447대만 만들어졌다.
FIA의 투어링 카 레이싱 규정에 따라 GTA와 GTA 주니어는 각각 일반 도로용 모델이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다. GTA와 GTA 주니어는 각각 1966~69년, 69~75년까지 생산되었다. 이 두 모델은 알파로메오 소유의 팩토리 레이싱팀에서 쉽게 레이스 버전으로 개조가 가능했고,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 SCCA(Sports Car Club of America)와 트랜스 앰 시리즈에서도 맹활약했다.
전후 알파로메오는 그랑프리에서 손을 떼고 일반 도로용 스포츠카와 투어링 카 레이싱에 힘을 기울인다. 줄리아 스프린트 GTA는 당시 주력인 줄리아의 많은 가지치기 모델 중 가장 돋보이는 모델이며, 고성능 알파로메오의 시작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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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에 선보인 1750 시리즈는 길이를 늘인 보디에 2.6리터 엔진을 탑재했으며 이 엔진은 같은 해 몬트리올 박람회에서 발표된 2+2 형태의 몬트리올에도 탑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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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로메오는 1987년 피아트로 합병되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됐지만 결코 쉽지는 않았다. 90년대 들어서야 비로써 고객에게 어필할 만한 신차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합병 후에도 판매가 도통 살아나지 않아 브랜드 폐쇄의 위기까지도 몰렸었다. 하지만 155와 164, 145, 146 등이 연속으로 히트하면서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현재 알파로메오의 본사는 이탈리아 토리노에 자리 잡고 있으며 헤럴드 J. 웨스터가 CEO를 맡고 있다. 2005년에는 마세라티와 알파로메오를 묶어 럭셔리 디비전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때부터 알파로메오는 마세라티와 플랫폼은 물론 파워트레인까지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판매 네트워크도 공유한다.
알파로메오는 피아트 산하로 들어오면서 몇몇 신차에 힘입어 어느 정도는 회생에 성공했다. 1998년부터는 연간 판매가 20만대에 근접했고 2001년에는 21만대를 넘기도 했다. 하지만 2002년 이후부터는 연간 판매가 꾸준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2008년의 연간 판매는 10만대를 조금 넘을 뿐이다. 알파로메오 연간 판매 (1998~200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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