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8. 10
오는 대선은 현 정부의 실정을 심판하는 선거가 될 거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같다. 지난 취임 4주년 연설에서 대통령이 부동산 정책의 실패만 인정했지만 더 뼈아파해야 할 것은 사실 일자리 창출의 실패이다. 예산 집행 지연으로 월 30만원 이하의 노인 일자리에 의한 고용 통계 분식 효과가 제거되어 일자리 정책 실패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 금년 1월 고용 통계를 보면 취업자가 98만명이나 줄었고, 실업자는 42만명 늘어서 157만명에 이르렀다. 실업의 문턱에 서 있는 일시 휴직자와 구직 단념자도 167만명에 달했다.
그 이후 분식이 재개되어 통계상 고용은 나아졌지만 국민은 통계를 보고 뭘 아는 것이 아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실시간으로 피부로 느끼는 상황이 코로나 탓을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대통령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걸면서 시작한 정부라면 일자리 정책의 실패를 ‘죽비를 맞고 정신이 번쩍 들 만큼’ 자책하고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일이라면 무슨 짓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집값 안정의 실패는 배 아픈 문제의 성격이 강하지만 일자리 정책의 실패는 배고픈 문제인데 어느 것이 더 중한가? 올해 4% 이상의 성장률을 달성하겠다는데 젊은이들은 “그런데 왜 나는 취직이 안 되느냐?” 하고 더 분개할지도 모른다.
▲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24일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 설치된 대한민국 일자리 상황판을 시연해 보고 있다. / 뉴시스
먼저 노동 규제가 결과적으로 취업의 자유를 제한하고 취업 기회를 줄이는 것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최저 임금은 그보다 낮은 임금의 일자리라도 절박한 사람들이 취업할 자유를 빼앗는 것이고, 노동시간 규제는 더 일하고 싶은 사람들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다. 당신들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좋은지 내가 더 잘 안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근로 조건 개선과 임금 상승은 모든 시대, 모든 정부의 목표다. 일자리를 많이 만들면 저절로 이루어지지만, 힘으로 앞당기려고 하면 일자리의 감소라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기취업자의 과보호는 미취업자의 일자리를 희생시키고 있다.
다음으로 투자를 가로막는 모든 규제를 혁파해야 한다. 재래시장·중소기업을 보호한답시고 더 좋은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 수 있는 대기업의 투자를 제한하고, 청년 창업이나 벤처기업의 육성만으로 일자리가 충분히 만들어지겠는가? 이런 일자리 만들기는 좋고 저런 일자리 만들기는 싫다고 할 처지인가? 어느 정부나 추구해야 할 정책 목표는 여러 가지이지만 한꺼번에 다, 그것도 너무 빨리, 이루려고 하다가 일을 그르친다. 더 중하고 시급한 목표를 위해서 다른 것은 일시 양보하는 정책의 컨트롤 타워가 있어야 한다. 이 세상에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해외 투자가 외국인 투자보다 3배 정도 많게 된 지가 벌써 10년이 넘었다. 일자리는 자본, 즉 돈이 만든다. 돈이 이 나라를 떠나지 않게 해야 일자리가 생긴다.
가장 해악이 큰 것이 토지 이용 규제이다. 이 나라에서 토지는 원칙 사용 금지고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만 규제를 풀어 준 결과 국토의 8% 정도만 도시적 용도로 쓰고 있다. 그 결과 가용 토지는 언제나 공급 부족이고 너무 비싸다. 주택 정책, 투자 유치, 일자리 창출의 실패가 다 이 한 뿌리에서 비롯된다. 어떤 나라나 고용 창출의 대가로 땅을 마련해 주는 것은 기본이다. 지자체가 토지 이용 규제를 선제적으로 풀어서 투자 유치의 수단으로 쓸 수 있게 해야 한다.
코로나 이전에도 역대 정부가 일자리 창출에 실패했고, 나라 돈이 끊어지면 사라지는 일자리로 통계를 분식해 왔다. 사람·돈·땅에 대한 규제도 이 정부에게만 책임이 있는 게 아니다. 말로는 모두 규제 개혁을 외쳤지만 실제로는 규제가 차곡차곡 쌓이기만 했으니 일자리 만들기가 이 정부에서 가장 어려워진 것 뿐이다. 억울하겠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정부는 결과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을.
실리보다 이념이 우선인 사람들의 표 때문에 사람·돈·땅을 더 자유롭게 해 줄 용기가 없는 분들을 위한 대안이 있다. 지방자치를 확대하여 지방이 자유롭게 정하게 하면 된다. 나라 단위로 하나의 결정을 하려면 작은 문제도 크게 되어 결정이 어려워짐은 물론 획일적, 경직적이 될 수밖에 없다. 시도나 시군 단위로 결정하게 하고,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하는 경우가 아니면 지방자치에 맡기라. 지방이 서울에 대항해서 싸울 수 있는 아주 유효한 무기를 주는 효과도 있다.
규제에 짓눌린 사람·돈·땅에 자유를 주지 않고는 일자리 창출도 집값 안정도 어렵다. 아무것도 안 바꾸면 아무것도 안 바뀐다.
박병원 / 안민정책포럼 이사장·前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