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안 개구리의 날갯짓
“제2019-58호, 상장, 남자 60m(1위), 제6학년 3반 한유진, 위 학생은 육상대회에서 위와 같은 성적을 거두었으므로 이 상장을 수여합니다, 2019년 6월 17일, 마산신월초등학교장 박순점”
손주 유진이가 자기 학교 육상대회의 남자부 60m 달리기에서 1등을 하고 받아온 상장 내용 요지이다. 믿기지 않는 의외의 결과였다. 특별히 육상 연습을 했던 적이 전무한 데 말이다. 이를 미루어 짐작할 때 학교에 육상부를 비롯해 어떤 운동부도 없지 싶다. 왜냐하면 프로를 뺨 칠만큼 체계적으로 체력 단련을 받았던 친구들이 있다면 언감생심으로 그 자리에 설 여지가 전혀 없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할 때 그만큼 건강하다는 징표일터이니 크나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학내 육상대회에서 남자부의 최고라면 대략적으로 추산할 때 7백 여 명의 전교생 중에서 으뜸이라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그 점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쏠쏠한 미쁨이다.
아이가 전하는 얘기이다. 오늘 아침 조회시간에 방송실에서 교장 선생님이 상장을 수여했단다. 그런데 모든 교실에 그 과정이 더덜이 없이 화상으로 실시간 중계되어 전교생이 빠짐없이 시청했다는 자랑이었다. 어쩌면 고만고만한 또래들끼리 도토리 키 재기 식으로 겨룬 결과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물 안 개구리의 날갯짓 중에 찬란히 빛나는 왕좌를 꿰차는 행운을 거머쥔 게 아닐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교생이 부러워 할 지존의 자리에 우뚝 선다는 것은 결코 우연히 이루어지지 않으리라. 그런 이유에서 크게 축하하고 함께 기뻐하며 격려해줘도 흠(欠)이 되지 않으리라.
태어난 직후부터 줄곧 조부모인 우리 내외의 품에 둥지를 튼 아이다. 그동안 세발자전거에서 두발 자전거를 거쳐 성인용 자전거, 씽씽카, 스케이트보드, 인라인 스케이트, 훌라 후프, 줄넘기, 배드민턴, 피구, 야구, 축구, 수영, 등산, 태권도 따위를 골고루 경험토록 이끌어 나름대로 운동 소질을 계발토록 힘을 보태왔다. 이들 중에 등산의 경우는 마산의 무학산(761.4m), 저도의 용두산(202.7m)의 등정을 위시해서 특히 동네 뒷산인 청량산(323m)은 초등학교 입학 이후 100번을 훌쩍 넘겨 오르내렸다. 한편, 수영은 그동안 장단기 강습에 참여했던 경험을 쌓도록 했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 겨울부터는 매주 토요일 전문 강사가 지도하는 반에 등록해 체계적인 훈련을 받도록 할머니가 승용차로 데리고 다닌다. 또한 유치원 시절부터 수련해온 태권도는 현재 공인 3품(No. 21669706)으로 4품을 취득할 때까지 계속 수련토록 할 참이다. 이 같은 일련의 수련에 따른 결과일까. 체육을 전공시킬 예정은 아닐지라도 다양한 유형의 운동에서 또래들과 견줄 때 크게 뒤지지 않아 다행이다.
요즘 체중은 38kg, 신장 150cm 안팎이다. 따라서 체중은 평균에서 조금 빠지는 편이고, 신장은 친구들과 겨우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써 가녀린 편이다. 그래도 활동량이 많은 등산, 태권도, 야구와 축구를 즐긴 때문인지 뼈대가 튼튼하고 행동이 날쌔서 그나마 위안이 된다. 평균을 밑도는 체중을 늘려보려고 안간힘을 쓰는데도 불구하고 편식 습성 때문인지 생각대로 되지 않아 걱정이다. 섭생(攝生)의 문제가 원인임에도 뜻대로 바로잡히지 않음은 대응 상에 문제일까. 도통 그 까닭을 바르게 꿰뚫지 못하고 허둥대 답답할 따름이다.
학교를 마치고 학원을 거쳐 해거름 무렵에 터덜터덜 현관을 들어서는 발걸음이 힘겨워 보였다. 할머니와 함께 반기면서 오늘 상을 받을 때의 기분과 지금의 느낌을 물어봤다. 쑥스러움 때문이었을까. 한 발 물러서며 “그저 그랬다.”며 겸양을 보이는 순진한 모습이 되레 의젓하고 신선했다. 그런 아이에게 격려의 말로 기쁜 마음을 전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네가 상을 받게 되어 무엇보다 기쁘고 보람을 느낀다.”고. 진솔한 맘이 통했음 일까. 실실거리며 평소와 달리 오늘 학교에서 일을 미주알고주알 주워섬기는 꼴이 가관이었다.
곧 죽어도 6학년의 자존심이었을까. 학교에서 아침에 수상을 한 뒤에 5학년에서 1등을 차지한 아이가 직접 겨뤄서 진정한 최고를 가리자는 도전을 해오더란다. 비록 5학년이지만 덩치나 체격 조건은 유진이를 훨씬 능가했지 싶다. 그런 때문에 인정하기 어려웠을 게다. 점심시간에 여러 친구들이 증인이며 응원단 자격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맞서 60m 달리기를 해서 결국 승리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일인자임을 확인시켜 주었다는 사실까지도 넌지시 털어놓아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나는 아무런 축하 이벤트도 준비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축하해 주려고 나름대로 꼼꼼한 준비를 했던가 보다. 딴에는 마냥 흐뭇했는지 격려해주는 의미에서 저녁식사로 짜장면을 먹자며 방방 뛰었다. 그 때 할머니가 특별히 고기를 준비했다는 얘기였다. 그러니 곧바로 고기 파티를 하자는 뜻밖의 제안을 했다. 고작해야 짜장면을 기대했는데 할머니의 허를 찌르는 융숭한 제안에 쾌재를 부르는 모습이 진정 행복하고 흡족하게 비춰졌다. 손주의 수상에 나는 은근슬쩍 곁다리로 끼어 맛있는 고기 파티를 맘껏 즐길 수 있음에 덩달아 신이 났었다. 이런 경우를 ‘원님 덕에 나팔 분다.’고 하는 걸까.
한맥문학, 2019년 9월호, 통권348호, 2019년 8월 25일
(2019년 6월 17일 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