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녀와 꼬맹이/김 필로
고향에 갈 명분이 뚜렷한 추석
그날을 위해 일하는 사람처럼
도시에 몰두하는 숙녀
푸른 하늘에 눈부신 교복
그것과 견주어 이길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
산업 전선에 뛰어들고 주눅들은
자존감이 밤송이처럼 벌어지는
그 찰나 그건 필경
놀라 자빠질 도시녀라
하얀 블라우스
빨강 골덴 조끼와 나팔바지
적당한 높이의 구두
길이가 짧은 가방속엔 시집 한 권
코스모스처럼 날리는 바람머리
그날 그들은
납작 꼬맹이가 되었다
송편처럼 말랑한 꼬맹이들이
웃동네에서도 몰려온다
서울 가서 멋쟁이 됐다고
서울 가서 돈 많이 벌었냐고
보름달 같은 눈동자는
어리숙하지만 꽤 똑똑하다
숙녀의 자랑거리가
사기처럼 시들해지고
으쓱하던 자존심도
허물처럼 벗어놓는다
학교생활은 어떠냐고
공부는 재미있냐고
난 니들이 젤 부러워
지금 그 꼬맹이들은
어디서 무엇을 할까
지금 그 숙녀는
낮은 하늘 아래 시를 만드는데
첫댓글 그 바쁜 일상에도 미성남 마음은 벌써 고향에 가 계시네요. 누구에게나 주어진 똑같은 시간을 남 보다 더 늘여 쓰시고 알차게 쓰시는 비타민 같은 미성님 . 넘치는 시심이 그 원천이라 여겨집니다. 파이팅 하세요.
네~감사합니다.
늘 바쁘지만 그 바쁨으로 할 일이 많아 좋습니다.
이제 조금씩 비우는 삶을 선택해야겠죠.
깊은 애정 감사합니다.
70-80년대 산업화 물결로 도시로 나간 농촌출신 숙녀는 방방곡곡 넘쳤지요.
바로 "도시에 몰두하는 숙녀"
명절이면 고향에 돌아와, 호기심으로 마주하는 꼬맹이들과의 대화 속에서
서로의 동경과 아픔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서울 가서 멋쟁이 됐다고
서울 가서 돈 많이 벌었냐고" (꼬맹이들 말)
"학교생활은 어떠냐고
공부는 재미있냐고
꼬맹이 같은 너희들이 젤 부럽다고"(숙녀의 말)
다행히 숙녀는 '시집 한 권'을 품고 살아와서
세상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늘 풍요로웠을 같습니다.
이젠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꼬맹이들의 안부를 묻는 숙녀의 마음은
고향에 대한 사랑과 인정이 식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옛 공동체 의식이 가뭇가뭇 그리운 시절입니다.
필로님 수고하셨습니다.
공사다망하신 가운데 따뜻한 피드백을 주시니 감개무량합니다.
사실 고향에 가기 싫은 이유를 뛰어넘어야 했어요. 멈추지 않은 학구열은 그 꼬맹이들보다 우선화 되어야 했기에 빛나던 시절 시절이 더 그립습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