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누구?
“대머리와 흰 다리에 눈썹은 서로 맞닿고 코는 매부리에 단신의 다부진 체구를 가진 호감에 찬 사나이, 그는 인간의 모습에 천사의 얼굴을 가진 자다.”
이것은 2세기 ‘바울과 테크라의 행적’이라는 한 외경에 묘사된 바울의 인물 스케치다.
바울은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의 의미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공헌을 한 신약시대의 인물이다.
한때는 기독교의 핍박 자였던 그가 다메섹에서 회심을 통해 신약성경의 방대한 부분을 기록한 성경의 저자요, 위대한 신학자요, 노련한 목회자요, 설교자요, 또 유대인 공동체의 울타리를 넘어 이방 세계로 나아간 선교사가 된 그의 삶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다. 바울에 대한 이해는 그가 활동했던 AD 1세기 유대-헬라의 문화적 배경을 이해함으로써 더 잘 이해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자랑스럽게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히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빌립보서 3장 5,6절)고 소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바리새인이 되기 위해서는 율법을 공부해야만 했는데, 바울은 당시 가장 유명했던 힐렐 학파의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했다.
바울 자신이 “나는 내 동족 가운데서, 나와 나이가 같은 또래의 많은 사람보다 유대교 신앙에 앞서 있었으며, 내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는 일에도 훨씬 더 열성이었습니다.”(갈라디아서 1:14, 새 번역)라고 한 것을 보면 그가 유대교에 얼마나 열심이었는지를 짐작 할 수 있다.
□ 기독교 박해자로서의 사울
누가는 스데반 집사가 순교하던 현장에 있었던 사울(바울이 되기 전 이름)을 ‘청년’으로 묘사하고 있다(행 7:58).
사울은 교회를 잔멸할 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겼을 뿐만 아니라(행 8:3) 회당에서 그들을 때렸으며(행 22:19), 심지어 그들을 죽이기까지 했다(행 22:4, 26:10).
사울은 회심한 이후 그의 서신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박해했다고 고백했다(갈 1:13).
사울은 예루살렘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것만으로 부족해 다메섹으로 도망간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기 위해 예루살렘 대제사장으로부터 공문을 받아 다메섹으로 내려가기까지 했다(행 9:1).
□ 다메섹에서 회심한 바울
사울은 교회를 핍박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 ‘회심’하게 된다. 그의 회심을 다루고 있는 세 본문(행 9:1~9, 22:6~16, 26:12~18))에서 공통적인 것은 사울이 하늘로부터 온 밝은 빛을 보았다는 것과 그가 땅에 엎드려졌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밝히는 음성을 들었으며, 눈이 멀었다는 사실이다. 이를 계기로 그의 삶은 전적으로 변화됐다.
□ 회심직후 바울과 초기사역
바울은 회심한 즉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아로 증거했다(행 9:19~22).
이로 인해 회개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를 반대하는 유대인들도 있었으므로 다메섹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행 9:25).
바울의 아라비아 생활이 사도행전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갈라디아서에서는 언급되어 있다(갈 1:17).
□ 바울의 1차 전도여행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전파되던 복음이 땅 끝까지로 확산되는 분수령을 이루는 곳이 사도행전 13장이다. 바나바와 함께 바울이 안디옥교회로부터 파송 받음으로 시작된다. 그들을 따라 세우라고 하신 분은 성령님이신데(행 13:2) 그들에게 손을 얹은 후에 떠나보낸 것은 교회였다(행 13:3). 바나바와 바울은 안디옥교회에서 파송한 첫 선교사다.
□ 바울의 2차 전도여행
예루살렘 공회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안디옥을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행 15:36).
바울은 두 번째 전도여행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은 복음의 씨앗이 처음으로 유럽 땅에 심겨졌다는 것이다.
마가를 데리고 가는 문제로 바울과 바나바의 의견 대립이 생겼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바울은 실라는 데리고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떠났다.
□바울의 3차 전도여행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얼마 있다가 떠나”(행 18:22, 23)라는 표현으로 볼 때 2차 전도여행과 3차 전도여행 간의 시간 간격은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세 번째 전도여행에서 가장 중요하게 언급된 내용은 에베소서의 사역이다. 세례 요한의 세례만을 받은 제자들에게 안수하자 성령이 임했다(행 19:1~7).
드로아에서 강론할 때 유두라는 청년이 졸다가 3층에서 떨어져 죽자 다시 살려줬다(행 20:7~12).
□ 로마에서의 바울과 그의 죽음
바울은 예루살렘엣 유대인들의 고소로 체포되어 가이사랴 빌립보에 이송되어 2년간 감금 생활을 했다(행 22~26장).
이때 바울이 교회의 지도자라는 점을 이용해 뇌물을 받으려 했던 벨릭스 총독에 의해 재판이 연기되다가 결국 로마로 소환을 받게 된 바울은 그의 후임자 보르기오 베스도에게 넘겨진다(행 24:27).
베스도는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들로 하여금 바울을 재판하게 하려 했으나, 바울은 로마시민으로서 가이사에게 호소했다(행 25:9, 10). 로마로 이송되는 도중에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 난파하게 되고 멜리데 섬에서 겨울을 났다.
누가는 바울이 봄에 로마로 압송된 후 “이태를 자기 셋집에서 머물면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시더라”(행 28:30,31)고 기록하면서 사도행전을 마감했다.
로마에 거주한 지 2년 후에는 바울이 무엇을 했는지, 또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교회의 전승에 의하면, 바울은 AD 63년경에 석방되었고, 그리고 다시 체포되어 로마 네로 황제의 손에 죽임을 당하기 전에 ‘서바나(스페인)’와 ‘에게 해’ 지역을 방문했을 것으로 본다(AD 67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