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하라’ 그리고 ‘분쟁하라’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재가 무엇을 원하리요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비가 아들과 아들이 아비와 어미가 딸과 딸이 어미와 시어미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눅12:49-53)
1.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ⅰ. 주님은 눅12:49-53에서 ‘분쟁’이란 말을 3번이나 강조함. 대상은 넓게는 세상이고, 좁게는 한 집안 내임.
ⅱ. 우리는 성경을 이해할 때 항상 성경의 다른 데 말씀과 조화를 이루어야 함.
ⅲ. 주님은 성경의 다른 곳에서 “왼편 뺨을 때리면 오른 편 뺨을 돌려대라, 겉옷을 달라 하면 속옷까지 주어라, 오리를 가자 하면 십리를 가라,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며 ‘분쟁하라’는 말씀과는 정반대의 말씀을 많이 하심. 어떤 말씀이 옳은가? 사실 두 곳의 말씀은 다 옳음. 다만 경우가 다른 뿐임.
2. “화평하라”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12:14)
ⅰ. 이 말씀은 믿는 자들이 개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가급적 양보하고 싸우지 말라는 뜻임. 화평함은 믿는 자의 삶의 의무이자 특성임.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마5:9)
ⅱ. 예컨대 아브라함의 목자들과 조카 롯의 목자들이 서로 다투었음. 서로 가축이 많아지니까 “누가 풀밭을 차지하느냐” 하는 문제가 생김. 그러자 아브라함이 “네가 좌로 가면 나는 우로 가겠고, 네가 우로 가면 나는 좌로 가겠다” 하고 선택권을 조카에게 먼저 줌. 롯이 기름진 들판을 차지하자 아브라함은 자연히 반대편의 척박한 땅으로 갈 수밖에 없었음. 아브라함이 재산상으로 손해를 봤지만 보다 소중한 조카와의 화평은 유지할 수 있었음.
3.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
(1) 이 말씀은 우리가 ‘믿음’의 문제에서는 양보하면 안 된다는 뜻임.
ⅰ. 십계명의 제 1계명은 “너는 나 외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출20:3)고 말씀함.
ⅱ.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해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 것이니라”(왕상18:21)며 신앙의 결단을 촉구함.
ⅲ. 만일 우리가 좋은 게 좋다고 ‘믿음’을 양보하면 어찌 되는가? “불교도 좋고, 유교도 좋고, 이슬람교도 좋고, 어느 종교든지 열심히 믿으면 되지요.”라고 말한다면 예수께서 구태여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실 이유가 없고, 또 과거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서 선교하고 교회를 세운 것도 괜히 한 짓이고, 지금 한국교회가 외국에 선교사를 보내는 것도 괜히 하는 짓이고, 그리고 하나님의 죄 용서와 인간 구원의 계획은 다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임. 결국 모든 인류는 죄 가운데 있게 되고 영생에 대한 소망을 갖지 못하게 되고 멸망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임. 이것은 사단의 노림수임.
ⅳ. 그래서 ‘믿음’ 문제는 부모자식 간에도 양보할 수 없음. 그것이 진정한 부모 사랑이요, 자녀 사랑이요, 형제 사랑이요, 민족 사랑이요, 인류를 사랑하는 것임. 내가 중심을 확실히 지켜야 주변 사람들에게도 구원의 기회가 오게 됨.
(2) 이 말씀은 ‘의(義)’에 문제에 대해서는 양보하면 안 된다는 뜻임.
① 오늘날 우리 시대의 최고의 악(惡)은 북한의 인권 문제임.
주민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와 공포, 재판 없는 살인, 불충성파 및 가족의 공개 처형(고사총과 화염방사기 동원), 고문, 강간, 강제 낙태, 정권의 돈벌이를 위한 해외 강제 노동, 죽음의 수용소, 성경(聖經) 읽었다고 짓이겨져 죽임, 한류 동영상 봤다고 관리소로 끌려감, 빈곤과 굶주림으로 인한 탈북 행렬, 그리고 중국에서 인신매매 당하는 북한 여성들 등 북한 정권은 존속 자체가 악(惡)이며 속히 붕괴되어 없어져야 할 반인륜적이며 엽기적이며 잔혹한 체제임.
② 반국제 인권 단체 휴먼라이트 워치의 북한 인권보고서(2016)
“북한은 반(反)국가 사범으로 몰린 사람들과, 어린이를 포함하는 그 가족을 수용소로 보낸다. 경비병은 수감자에게 성적 폭력, 구타, 고문을 자행한다. 아사(餓死), 척추가 휘는 강제 노역, 공개 처형이 일상화돼 있다. 의료 시책은 전무(全無)하다. 유엔 당국자는 8만~12만 명이 정치범 수용소에 있다고 말한다."
③ 탈북자 망명을 돕는 독일인 의사 폴러첸의 호소.
그는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히틀러의 유대인 수용소에 대해 침묵한 독일의 역사를 안다. 나는 내 눈으로 북한의 참상을 보았다. 그건 자연 재앙이 아니라 한 독재자가 만든 것이다. 나는 같은 ‘인간’으로서 간섭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또 인도주의를 실천해야 하는 의사로서 굶어 죽어 가는 북한 주민을 구해야 할 의무가 있다. 만약 그러나 실상을 알고도 방관한다면 나는 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함. 이럴 경우 우리의 침묵이나 방관은 죄악임.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눅19:40)
④ 제1회 ‘기독교 대북NGO대회’에서 손봉호 교수의 설교.
ⅰ. “일반인들은 동일 민족, 경제적 이익, 동북아 안정과 평화를 내세우지만, 기독교인들은 ‘복음전파’와 ‘인권회복’을 우선순위에 둬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일반인들과 다른 통일 관점을 가지고 기도해 나가야 한다”며, 동일한 민족이라는 것과 경제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조건 등은 성경적으로 정당화하기 어려운 이유라고 말함.
ⅱ. 걸프전의 영웅 슈워츠코프 장군은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예스맨 무리’들이다”라고 말함. 불의(不義)에 대해 분노할 줄 모르는 사람은 선하게 살줄도 모름.
⑤ 교회의 직무유기.
ⅰ. 오늘날 상당수 교회들은 우리 자신의 평화를 우려해서, 혹은 실익이 없다는 이유로 북한 주민의 인권 상황에 대해 침묵하거나 외면하는 양심불감증과 이기주의적 태도를 취함.
ⅱ. 주님은 제자들에게 화평할 일과 분쟁할 일에 대해 명확히 구별하며 행할 것을 명하심.
⑥ 성경의 경고.ⅰ. 성경은 ‘화평’과 ‘분쟁’에 대한 말씀을 적당히 얼버무리며 가르치는 교사들에 대해 경고함.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후11:13-15)
ⅱ. 악과의 화평은 '페인트칠한 평화'로서 속임수이며 이 땅에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일임.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났나니”(롬1:18)
ⅱ. 악과의 화평은 '페인트칠한 평화'로서 속임수이며 이 땅에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일임.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났나니”(롬1:18)
ⅲ.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이 땅의 악(惡)의 무게를 측정하고 심판하심.
“기록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단5:25)
“그 뜻을 해석하건데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데겔은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 함이요,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단5:26-28)
첫댓글 주님께서 "분쟁케 하시겠다"는 말씀에 대한 해석이 뛰어납니다.
부부싸움할 때 싸우는 며느리보다 싸움 말리는 며느리가 더 밉다고 하던데 싸움붙이고 평화를 주시는 예수님께는 어찌해야하나요?
병주고 약주는 예수님인가요?
ㅋㅋㅋ
한국인의 기질과 유대인의 기질이 다름.
한국문화로 해석하면 안됩니다. ^^
주님 말씀대로 하면 별 문제 될 게 없은 것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