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계시는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확증하거나 해석하는 역할을 합니다. 복음서는 확증하는 면을, 바울서신은 해석하는 면을 강조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구속역사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완성된 것으로 설명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결코 분리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죽으심이 없으면 부활이 있을 수 없고 부활이 없으면 십자가의 죽으심은 무의미하게 됩니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 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그러나 서구신학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속죄의 완성으로 강조하는 십자가 중심의 신학이었습니다(속죄의 완전성과 영원성). 그러나 바울서신을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구속의 완성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고전 15:17).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과 성도들의 부활과의 연합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 부활의 첫 열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골 1:18). 사도 바울은 이 연합 개념을 근거로 미래에 있을 성도의 부활을 말합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2:4~6, 골로새서 2:11~12; 3:1, 로마서 6:3~5 등에서 과거에 발생한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부활과 성도의 현재적 부활과의 관계, 즉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실존적인 관계를 설명합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4~6).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 2:11~12).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골 3:1).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롬 6:3~5).
이처럼 사도 바울은 오늘 우리가 역사적으로 과거 이천 년 전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부활을 믿음으로 예수님과 연합하여 함께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과 연합하여 함께 부활하여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함을 말합니다. 이것을 현재적 부활이라고 하며, 현재적 부활의 삶에서 또한 장차 우리 몸이 부활할 미래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을 복음서는 능동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마 16:2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마 17:22~23).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마 20:19).
그런데 복음서와는 달리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을 수동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1).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 10:9).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그 하나님을 믿는다면, 예수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의 영, 곧 성령께서 믿는 자 안에 계시면, 믿는 자의 부활은 확실하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의 영이 우리 죽을 몸도 살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죽기까지 순종하는 십자가의 고난에 참여하면, 예수님과 연합하여 부활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롬 6:5). 내가 실존적으로 죽고 실존적으로 부활의 삶을 살아야, 즉 현재적 부활의 삶을 살아야만 미래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료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롬 8:10).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 8:13).
다시 말하면 미래의 부활을 위해서는 지금 여기 일상의 삶 속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신 주님을 따르는 제자도의 삶(마 16:24), 곧 현재적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자아(自我)가 죽어야 합니다. 나의 자아가 죽어야 성령이 내 안에 거하시고(內住), 내가 죽어야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내가 죽어야 내 죄가 용서받으며, 내가 죽어야 무너진 관계가 회복되며(하나님과의 관계, 부부와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내가 죽어야 시기와 미움과 원망과 다툼이 그칩니다. 문제는 ‘나’입니다. ‘자아’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행하고,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입니다. 제자는 스승이 가는 길을 걷는 자요, 스승의 가르침대로 사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십자가 구속의 은혜에 감사하며 십자가의 정신으로, 십자가의 사랑의 방식으로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며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걷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준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삶의 기준이요 모델입니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히 5:8~9).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 겸손히 은혜와 긍휼을 구하며 주님의 형상을 닮아가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속의 십자가로만 알고 있습니다. 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죄 용서받고 구원받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의 신학이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만 강조하다 보니, 믿기만 하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구원 얻었다고 믿게 된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의 가치관이나 인격이나 성품이나 삶에는 아무 변화가 없이 살면서도 구원을 얻었다는 착시 현상에 빠져서 열심히 종교 생활만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는 대속의 십자가뿐만 아니라, 온 인류를 대표해서 죄를 대속하신 대표적 대속적 십자가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주로 고백하고 세례를 받는 순간부터 예수와 함께 나도 죽어야 합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이 로마서 6장 전체에 걸쳐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이천 년 전에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지만, 내가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고 세례를 받는 순간 그 예수님의 죽으심과 함께 연합이 되어 나의 옛 자아가 죽고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연합하여 새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롬 6:3~4).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갈 2:20).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내가 죽어야, 자아가 죽어야, 부활합니다. 현재에 영혼이 부활해야 미래에 몸의 부활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 신앙은 오늘 여기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면서 장차 임할 영광의 나라에서 부활의 몸으로 참여할 것을 소망하면서 사는 삶입니다. 이 땅에서 하루의 삶을 중요하게 여기며 오늘의 삶이 영원으로 이어질 것을 믿고 영원한 가치관으로 오늘을 사는 신앙이 부활 신앙입니다.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는(고전 15:44) 부활인 미래 부활이 있기 전에 현재 영이 부활하여 지금 여기서 천국의 백성으로 새 창조된 새 피조물로서, 새 생명으로서 새로운 세계관과 새로운 하늘의 영원한 가치관으로 인격이 변하고 성품이 변하고 삶이 변하는 현재적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부활 신앙이란 우리가 죽으면 몸이 부활하여 산다는 신앙만이 아닙니다. 오늘 여기서,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면서 거룩한 하나님 나라 시민으로 사는 것입니다. 부활 신앙은 머리로 아는 객관적인 진리나 역사적인 사실을 인정하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고 나의 삶과 인격과 세계관과 가치관과 삶의 목표가 변화하여, 곧 전 인격적으로 새롭게 되어 새롭게 사는 사건입니다.
오늘 여기서 내가 주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 되어 주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 때,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광 중에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이 낮은 몸이 주님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할 것이며, 흙에 속한 형상을 벗고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을 것입니다(고전 15:49). 이것이 구원의 최종 목표요 완성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우리는 이 소망을 기다리며 바라보며 오늘, 지금, 여기서, 현재적 부활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 본고는 예수께서 우리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과 우리의 몸이 부활할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는 믿음을 전제하고 현재적 부활에 중점을 둔 글이다._글쓴이 주.
황정길
서울반석교회 원로목사, 예장합동
출처 : 크리스천인사이드 108호 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