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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참여는 시민의 권리요 의무다
김우종
1. 정권의 명당자리는 없다
엄동설한 동장군이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기어코 온 누리는 진달래 개나리 세상이 된다. 정치적 권력도 그렇다. 영원한 겨울이 없고 봄이 없듯이 어떤 정권이 어떤 명당자리에 앉아도 영원하지 못하다. 그런데 사계절이 아무리 바뀌어도 똑같은 궤도를 돌지만, 정권은 다르다. 무너지고 또 무너지면서 그래도 가는 길은 한하운 문둥이 시인이 소록도로 가던 황톳길이 아니라 가끔 휴게소에서 물도 마시고 밥도 먹고 가는 아스팔트 길로 바뀌니 희망이 있다.
정권을 잡으면 막강한 군대 최고 사령관은 대통령이다. 그 점에서는 흉기를 지닌 살인강도와 외형이 같다. 이때부터 정적과 싸움은 맨손잡이와 불공정 게임이지만 맨손도 때때로 만만치 않다. 그래서 밀리면 총칼이 봐주리라 믿는다.
그 병력의 본거지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용산이다.
일본제국 조선총독부는 삼각산 아래였지만, 그들은 용산에 주둔한 군병력이 지켜주었다. 그곳에서는 매일 새벽 동이 틀 때마다 조선반도 전역을 향한 돌격대 나팔 소리를 울리고 말발굽 소리가 땅바닥을 흔들었다. 그다음에는 미군도 그곳에 자리 잡았다.
이처럼 한반도에서 가장 막강한 힘이 그곳에 둥지를 틀고 있었으니 어떤 풍수장이는 그곳이 당신이 머물 영원한 명당자리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밥 먹고 뒤보던 걸쭉한 땅이니까 삼각산 맑은 물의 청와대보다 명당일 것이다.
무소불위 막강한 권력을 보면 그 권력은 영원할 것 같다. 그래서 <태평천하>의 윤 직원은 자식들을 군수로 만들고 경찰 서장으로 만들어 가며 식민지 천하를 태평천하라 했다.
그 같은 권력의 영원성을 누구보다도 확신해서 ‘나는 일본이 망할 줄 몰랐다’라고 말한 시인도 있었다. 항복 전야인 1944년 마지막 무렵, 남들은 슬금슬금 눈치 보며 빠지기 시작하는데 최고 악랄한 악마주의 시를 발표하며 갑판에서 이글이글 통닭구이가 되고 있는 젊은이들을 찬미하고 자식들을 더 그곳으로 보내라고 선동했다, 권력의 영원성을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해방 뒤에도 친일 시를 쓰고 교과서에 실었으니 권력의 영원성에 대한 믿음이 그보다 더 뜨거울 수 없다.
그렇지만 정권에는 삼일천하도 있고 흔히 화무십일홍이라는 말도 있듯이 영원한 정권은 없다. 3대 세습의 희한한 정권도 필연적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는 모순을 지닌다.
우리 대한민국의 이승만 정권도 문인들 다수가 만송족(晩松族)이라는 야유까지 들어가며 부통령 만송의 찬미가를 부르고 정권의 영원성을 빌어줬지만, 만송 찬미가는 일가족 죽음의 만가(輓歌)가 되고 이승만은 해외로 달아났다. 박정희는 그야말로 영원한 정권을 위한 순교자였다. 아내가 유신정권 때문에 희생되었는데도 멈추지 않다가 마침내 제 목숨까지 바쳤으니 순교자다. 너무도 무모한 순교지만, 그리고 다음 정권도 무너지고 또 무너지며 오늘에 이르렀다.
2. 영원한 방향과 촛불 문화
그래도 이처럼 뒤뚱거리고 엎어지고 밟히고 뒤처졌다가도 걸어가는 역사의 방향은 하나다. 고달픈 걸음이지만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한 2보 전진 1보 후퇴로 방향은 일정하다. 쑥과 마늘만으로 컴컴한 동굴에 살던 단군 시대보다 오늘이 훨씬 좋은 세상인 것이 확실하니까 정권이 수백 번 무너져도 결국 역사의 방향은 변하지 않는다. 다 같이 잘 사는 세상이다.
그런데 이 같은 방향으로 굴러가는 수레바퀴는 자동이 아니다. 아무리 많은 우연이 있었다 해도 수레바퀴는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지 않으면 굴러가지 않는다. 다 같이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인류의 소망이며 이의 성취를 위한 밝은 지혜와 실천적 의지다. 그것은 공자의 인(仁)에서 한 걸음 더 나가 의(義)를 더한 맹자의 철학에 비유해도 좋다.
통치자가 백성을 괴롭히면 백성들이 정의의 정신으로 갈아치워야 한다는 것이 맹자의 철학이다. 요즘 말로 하면 진보 세력의 원조가 2400년 전 아득한 옛날의 맹자인 셈이며 진보의 동음이의어는 친북 빨갱이다. 현 정권의 국어사전에 그렇게 씌어 있다.
그런데 맹자 사상은 영국의 존 로크에게도 전해지고 프랑스 혁명으로 이어져서 우리보다 빨리 서구사회가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민주 제도를 만들게 했다는 주장이 있다.
그리고 그 변화 과정이 그렇듯이 한국의 오늘의 4.19는 186명이 희생되고 6천여 명 부상자를 냈으며 또 5.18 광주 광장에서도 그랬듯이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것이라면 이 슬픔은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 윤동주 죽음도 너무 아름답지만, 그런 피의 제단은 다시 마련되어서는 안 된다. 남의 피로 내가 잘살기 전에 슬기와 평화로운 방법으로 나가야 한다. 그것이 촛불의 문화다.
광화문 남대문 큰 거리 군중 속에서는 아기 엄마가 한 손으로 유모차를 밀고 한 손에 촛불을 들고 있는 모습도 있었다. ‘백옥같은 눈물과 피를 흘려 / 불살라 버린다’라는 윤동주의 <초 한 대>(1934년)다. 이 초 한 대가 막강한 무력을 지닌 정권을 무너뜨리고 말 때 한국은 세계 최고 민주적 문화 선진국의 위상을 보였었다.
군중은 하나로부터 시작된다. 행동이 아니라 말 한마디라도 백만 군중의 목소리가 된다. 서울 시민 반만 한 목소리로 외쳐도 정권은 무너지고 새 정권으로 바뀐다. 그것은 최초에 한 사람의 목소리다. 기상학자 로렌츠의 나비 효과다. 멕시코의 나비 한 마리 날갯짓이 뉴욕으로 가서 토네이도가 되다니 그것은 말도 안 되는 것 같아도 과학적 진실이다.
군사반란으로 잡은 이성계 정권이 개성에서 한양으로 천도한 것도 그런 것이었다.
부엌에서 조랭이떡을 만들던 아주머니들은 가래떡을 나무칼로 썰며 이성계 ‘모가지 잘라라’를 반복했다. 이것이 마침내 이성계를 한양으로 쫓아냈던 것이 역사적 진실이다.
부엌 아주머니까지 그랬다면 그것은 시민 전체 저항의 목소리다. 거기서는 반란 정권이 살아남을 수 없다. 민주 국가는 그렇게 시위문화가 만들고 유지해 나간다.
3. 민주 시민이 되는 조건
ㄱ. 속지 말고 믿지 말고 생각의 주체가 되는 것.
그렇다면 시민이 현명해야 한다. 현명한 선택으로 자르고 깎고 필요하면 무너뜨려 다시 지어야 한다.
불의의 정권은 국민을 바보로 만들며 속인다. 대한민국은 첫 정권 때부터 국민을 기만하고 바보로 만드는 것이 정권 유지를 위한 숙명적 과제였다. 친일파와 손잡고 창출한 정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품에 안겨 대통령이 되었지만, 이것은 끊임없이 감추다가 학살도 마다하지 않았다.
박 정권도 그가 남로당 당원이었고, 만주 군관학교에 혈서로 충성을 맹세하며 일본군 장교가 되었으니 미국 눈치를 보기 위해서라면 생사람이라도 빨갱이로 조작하며 반공주의를 입증해야 하고, 협박해야 유지되는 독재 정권이어서 그 짓을 반복하고 국민을 색깔 구별 못 하는 색맹으로 만들었다.
미국도 그렇다.
미국은 백여 년 전부터 우리를 속였다. 일본과 짜고 일제 침략을 도왔다. 가쓰라 태프트 밀약이 그것이다. 일본은 조선을 먹고 미국은 필리핀을 먹으며 서로 존중하고 간섭하지 않기로 짜고 치는 노름판을 벌였다. 고종이 옥새를 틀어쥐고 이준 이상설을 만국평화회의에 보내서 진실을 호소하려 했어도 문간에서 쫓겨나고 자결해버린 것은 그 때문이다.
제주도 4.3 사건도 엄청난 양민학살 주최자가 미국인 것이 그들 문서로 드러나고 있다. 소련을 향한 새로운 냉전체제 선포식을 그런 피의 잔치로 전개하며 우리를 벌레처럼 가지고 논 것 같다.
6.25 전쟁도 그렇다. 북한이 소련제 탱크로 남침 준비 다 해놓고 기회만 기다리고 있는데 미군은 카빈총 M1 소총 따위만 남겨놓고 철수하며 애치슨 라인으로 미국은 한국을 방위하지 않겠다는 뜻의 지도를 공표했다. 그래서 즉각 미끼를 물자 미국은 사흘 만에 뛰어들어 낚싯줄을 당겼다. 이것도 미국의 계략 아니면 설명이 불가능하다. 2차대전이 종식되어 막강한 무기들은 녹이 슬고 세계 최고 무기산업이 휴업계를 내야 할 지경이 되자 셰익스피어의 유대인 <베니스의 상인>이 나서서 사업계획을 짜준 것 같다.
우크라이나 전쟁만 봐도 미국은 믿을 수 없다. 남들만 끌어들이며 미국은 자기 나라 국민 한 명도 안 보내고 핵무기는 어림도 없다. 그래도 일본까지 끌어들인 그들을 믿어야 하나?
거기서 일감이 끝나면 다음은 어디일까? 남과 북 다 같이 불바다가 될 때 미국은 무기산업이 흥청망청하고 일본은 6·25 때와 똑같이 왕창 특수호황으로 그동안 20년 불황의 슬픔을 달래게 될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 여당 야당 어느 정권이든 밥 먹고 똥 싸며 구린내 안 나는 정권은 없다. 칠촌 팔촌이 어릴 적 기저귀에 똥 싼 것까지 물고 늘어지는 체질이다.
지금은 인터넷 첨단기기가 대중적으로 확산하고 얼마든지 가짜 뉴스가 휘젓고 언론매체들이 정권과 유착되는 세상에는 무엇이 진실인지 가리기 어렵다. 문인 몇 명이 보안사령부 서빙고 대공분실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을 때는 취조관 옆에 시나리오 작가가 앉아 있기도 했다. 간첩영화를 감동적으로 리얼하게 만들기 위해 모신 선생님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 정권도 무너지고 그 시절을 전하는 동판만 땅바닥에 박혀 있기에 필자도 기념사진을 찍었다.
모든 거짓은 음지의 공작부 기술자들 작품이니까 허구와 진실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제주에서 그때 그 일이 왜 일어났는지는 미국이 몇십 년 뒤에 비밀문서를 해체하기 전에는 아무도 진실은 알기 어려웠고 지금도 모든 정치적 상황은 무대 위 드라마다. 그러므로 속는 바보가 되지 말아야 한다. 시민 자신들이 모든 사물 판단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ㄴ. 공부해야 한다
민주 국가는 스스로 만들어야 하므로 공부하지 않는 국민은 투표할 자격이 없다. 부지런히 스스로 학습해야 한다.
ㄷ. 참여해야 한다.
자기 세상은 자기가 만들지 않으면 망가지고 빼앗긴다. 부모님과 후손을 위해서도 그렇다. 하기 싫은 민주시민은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백성이 맡긴 권리인데 주인으로 군림하는 자들은 개소리 쇳소리로 욕이라도 하는 것이 바른 세상을 위한 정치 참여다. 그래도 알아듣지 못하면 거리에 나가서 더 명석한 논리로 뜨거운 감정을 실어서 외쳐야 한다. 꼭 필요할 때마다 규칙을 지켜가며 집단으로 의사표시 하는 것은 민주시민의 권리이며 의무다.
4.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
한반도는 부모와 자식까지 갈라놓은 땅이니까 잃어버린 한 짝을 찾기 위한 흡인력 밀착력이 가장 강하고 피 튀기는 정치적 권력의 음모와 계략도 이 구조가 만들어 낸다.
이런 분단국이 서로 막강한 군사력으로 대치하고 있는 이상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도 어느 정권이 국민을 기만하며 이를 구실로 죽여도 좋은 적을 날조하기 때문에 한국의 정쟁(政爭)은 목숨을 거는 전쟁이 되기 쉽다. 분단 만이 아니라 해방 후 역사가 남긴 두 가지 위험이 남아 있다.
하나는 분단으로 파생된 분화구다.
이 나라는 해방 후부터 이념을 구실로 한 많은 학살과 고문의 역사가 남아 있다. 그것은 지나간 역사가 아니다. 가해자와 피해자들이 살아 있다. 그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 앞서는 대립구도자. 그것은 시간이 흘러도 유족들에게 이어지기 쉽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 어떻게 폭발할지 모르는 분화구다.
다른 하나는 친일 사호유산이다. 그것은 진실과 화해의 역사적 청산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물려받아 온 기득권을 그대로 틀어쥐고 있는 이상 그것도 분화구로 남아 있다. 이런 나라니까 이성적 판단보다 감정적 판단이 우선이 되는 국민이 되기 쉽다. 그래서 한국의 민주시민은 어느 나라보다 냉철하고 맑은 지성이 필요하다.
5. 사랑과 평화로 가는 열차
정권이 수없이 바뀌어도 우리가 가야 할 절대적 방향은 사랑과 평화 세상이다. 남북이 사랑해서 평화를 찾고 평화 속에서 사랑하며 행복해야 한다. 경제 선진국 전에 이 나라는 전쟁 없이 살아남는 것이 급선 문제다. 침략과 배반의 역사 속에서 성장해온 외세가 손잡아 준다고 믿고 누워 자빠져 있는 바보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적 권력은 원래 탐욕이 만드는 제품이기 때문에 끊임없는 쟁탈전으로 무너지지만, 그것은 꼭 사랑과 평화로 가는 열차라야 되고 그 운전은 시민이 해야 한다. 대통령이나 그 신하들은 피고용인이다. 시민이 주인이므로 누구도 방관하지 말고 목소리를 내며 문인도 마찬가지다.
* 창작산맥, 2023 가을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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