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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태풍이 오는 청도 옹강산을 인연들 따라
단풍이 운무 널린 환상 같은 산길을 오래만에
찻아 다녀왔다.
세상에서 자신에게 가장 무서운 도적이 무엇일까? 도적이 생기는 이유는 타자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몰래 이동하는 것이다.
도적 盜賊 은 남의 재물을 빼앗거나 훔치는 사람이라 한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은 스스로 다를수가 있지만 무엇이든 잃어버리면 마음이 아프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니까 마음을 잃어버리는 것이 빼앗겨 버리는 것이 가장 무서운 것이다. 마음은 각자가 가지는 것이라 누구도 훔치고 어떻게 할수도 없다. 마음의 결정은 항상 본인이 가지는 생각을 하여 정하는 유일한 사고의 결정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훔치는 타인은 없는 것인지 모른다.
자기의 소중한 것을 가지고 잃어버리는 것은 스스로 만든 것에 일비일희 하는 공空인지 모른다. 달마조사가 하시는 말씀도 그런것이다. 제자가 마음이 아프다 하니 마음을 내어 놓아보아라. 하는 것은 자신이 만든 허공속의 가상에 젖어 있는 것을 버려라 하는 것이다. 인간들은 불필요하고 거치장 스럽고 괴로운 것은 좋아하지도 않는데 어찌 마음을 괴롭히는 것은 노심초사하여 혹시 잃어버릴까 시간이 날때마다 불현듯이
괴로워 하는 중생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마음의 고통과 잡념들을 누군가가 도적에게 주고 싶지만 오랫동안 지니고 있는 것은 자신이 만든 것에 당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마음에 지나가는 경험의 자욱을 담는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버리는 것에 익숙해 져야 한다. 어차피 때가 되면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는 곳으로 빈손으로 가는 것 뿐이다.
자신이 자신의 가장 크나큰 도적이라는 것을 알때쯤 헛 웃음으로 보내는 세월을 즐길지 모른다.
감각이 얼마나 복잡하고 이해하고,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감각들도 있음을 알아야한다. 감각이란 정확히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의학적, 생리학적 관점에서 신체가 자극을 인식하는 능력이다.
감각이란 신체 외부로 부터의 자극에 의해 활성화되는 외수용감각과 내부로 부터의 자극에 의해 활성화되는 내수용감각으로 구분된다. 외수용감각은 감각을 통해 외부세계를 인식하는 것이며, 우리가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해주는 중요한 과정이다. 다른 내수용감각은 신체의 작용에 대한 신호로 보내는 광범위한 내부감각들을 아우르는 용어이다. 우리는 인식하지 못하는 동안에도 내부적으로 많은 일들이 끊임없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뇌에 중요한 메세지를 전달하는 것도 있다. 우리는 의식적으로는 인식하지 못하는 더 많은 감각이 있다. 우리는 산을 다니는 산꾼들인 까닭에 균형감각이라는 것은 머리회전, 수직움직임, 수평 움직임을 감지하는 몸안의 다양한 수용체에 영향을 받는다. 균형감각은 신체의 건강과 건강한 노화에 큰 역활을 하기 때문에 관심이 필요한 중요한 감각이다. 몸전체에 퍼져있는 수용체들은 끊임없이 심박수와 혈압, 혈액 속 이산화탄소와 산소의 양, 숨을 조절하는 페 신장의 정도, 혈액내의 이산화탄소 와 산소 농도 조절등 모든 기관의 감각은 무의식적으로 조절한다. 산을 훔치는 것도 아니지만 산에게 무한한 은혜를 입는 것은 신꾼의 특권이고 도벽이다. 산을 하루나 시간이 나면 즐기는 것은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보답해야 한다. 자연을 훔치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다.
불안을 일으키는 이유는 간단하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에서 오는 걱장과 근심이다. 미래를 안다든지 몰라도 천진난만 하게 무식하면 걱정이나 근심이 일어날 일은 없다. 산을 다니는 산꾼을 오래하면 늘 가는 산이라 새로운 산길도 그냥 다니는 산과 같다는 안일한 생각에 마냥 기대로 가는 것이다. 일종의 무식하면 용감하다. 불안이 사라지는 것 중에 연륜이나 경험 만 한것이 제일이다. 그런데, 지나간 역사는 항상 되풀이 하기에 인생의 가장 좋은 길은 고전에 있다고 한다. 그 따분하고 지루하고 실제적이지 못한 것을 굳이 힘들게 읽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에 멀리한다. 그러나, 수많은 일들이나
어려운 일이 닥치면서 찻는 것은 미리 갔다온 경험자나 흔한 숙달된 변호사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이든 분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다. 고전이란 마치 길가에 놓인 이정표와 같다. 인간의 삶이란 늘 때가 되면 찻아오는 끼니와 같다. 근심이나 걱정은 살아있는 동안은 늘 함께한다. 마치 그림자처럼 붙어다니지만 그것이 뗄려고 하거나 멀리 할수록 시간의 도독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알아지는 것은 늘 반복되는 일이 많다는 것과 지나간 역사의 일부분 처럼 같은 일이 계속되고 바람처럼 지나가는 것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러괴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까이 하는 것은 고전에서 길을 찻아 인생의 이정표를 가지는 것도 좋은 일이다. 인생은 항상 당하면 도독에게 털리는 기분이지만 미리 아는 것은 방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고전을 읽어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미리 길잡이를 알고가는 길은 근심과 걱정이 사라질지 모른다.
불가에서나 기독교나 모든 종교에는 기도가 있고 격식이 있고 대상을 만들어 예불을 드린다는 것이다. 불가에서는 예불이라한다.
부처님에게 하루에 세번기도를 드리는 것이나
하느님에게 시간을 만들어 드리는 기도나 모두 하나의 대상을 만들어 놓고 예의격식을 드리는 것이다. 이는 하나의 가상을 만들어 하는 격식이다. 또 다른 대상은 참불이라는 개념이다. 하느님을 직접 만나는 성령이나 마음의 빛이라는 개념이다. 끝없이 찻는 것도 참불이고, 기도하면서 언젠가는 이룰려는 것도 참된 것이다. 종교에서 우상을 내세우지 말라하는 것은 예불을 형상화 하지마라는 것이다. 언젠가 간절하면 마음속이나 눈앞에 나타니는 것을 기다리는 것은 참불이라는 개념이다. 붓다도 전전 생에 연등부처님 인 참불을 뵙고 거룩한 가르침을 얻는 공덕으로 석가모니 라는 붓다로 태어났다. 우리의 인생도 참된인연과 하나의 헛된 허울뿐인 인연들을 만나 마음에 희노애락을 만드는 종생이 되는 윤회의 수레바퀴에 갇혀산다.
인연이 곧 중생이라는 것이다. 인연은 오고 갈뿐인데 마음에는 가득 담고 번뇌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참된 것이라는 것도 내가 만드는 것인지 존재하는 것인지 깨닫는 것도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참되고 안되고 하는 것은 마음에 담지 않는 끊임없는 가르침이나 보시가 아닌가 한다. 도적에게 빼앗긴 마음을 모르고 살고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옛부터 작온 도적은 처벌을 받지만 큰 도적은 영웅이 된다. 살인은 크나큰 죄이지만
나라 간의 전장에서는 구국의 영웅이 된다.
옛부터 나라가 시끄럽고 힘들면 백성들은 나라 도독을 기다린다. 나라를 업고 새로운 도독이 나타나서 나라를 도독질 하기를 바란다. 옛부터 영웅 호걸이니 새로운 군주가 태어나길 바라지만 큰 도독은 또 다른 백성들의 재산을 관리하는 됴독이 나타난 것 뿐이다. 세금이란 무엇인가? 합법적으로 갈취하는 것이 될수도 있고, 거두어서 나라 를 대표하는 도독이 자기 재산을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현대는 다르다 하지만 법을 만들면 어쩔수 없다. 백성들 전부에게 똑같이 적용한다는 명분은 거역 할 수는 없다. 그 나라라는 곳에서 살아갈려면 어쩔수 없다. 그래서 불가에서 가장 큰 복이 좋은 나라에 타어나고, 좋은 부모밑에서 태어나는 복이 대단하다 는 것이다. 오죽 했어면 금수저니 은수저니 하겠는가? 세계의 각 나라마다 거두는 세금의 종류나 차이는 다 다른다. 그러나, 국민들에게서 받는 세금은 똑 같다. 단, 세금을 받지않고 나누어 주는 곳도 가끔은 존재한다. 나라 재산이 개인의 것으로 변해버린 곳이 많은 곳도 있다. 산유국이나 공산주의에서는 체제유지를 위해 백성들의 재산인 나라돈을 선심쓰는 것이다. 마치 의적이나 홍길동 같은 착긱으로 백성들은 좋아하는 척한다. 자기 재산을 가지고 선심쓰는 도독놈들을 대표자로 어쩔수 없이 모시고 사는 것이 나라 잘못 태어난 죄뿐이다.
"군자가 부유하면 덕을 즐겨 실천하고, 소인이 부유하면 자기 능력에 닿는 일을 한다. 못은 깊어야 고기가 있고, 산은 깊어야 짐승이 오가며, 사림은 부유해야 인의를 따른다. 창고가 가득해야 예절을 알고, 먹고 입을 것이 넉넉해야 영예와 치욕을 안다. 천금을 가진 부잣집 아들은 저잣거리에서 죽지 않는다." 사기열전에 부에 대하여 논한 글이다. 사마천은 재물에는 정해진 주인이 없으며, 부를 얻는 길에는 고정된 직업이 없다고 했다. 부를 모으는데는 능력을 발휘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재화를 모으는것이라 했다. 지금이나 2천년전이나 이치는 다같은 것이다. 장자편에 나오는 도척은 공자의 친구 유하계의 동생이 있는데 공자가 가서 도척을 훈계하러 갔다가 무안을 당하고 돌아온 이야기가 있다. "인생이 길어야 백년이고, 짧으면 육십년인데, 그나마 아프고 근심하는 시간은 빼면 일생이 얼마나 된다고 주제넘게 훈계하러 다니느냐? 어서 돌아가 자신이나 돌보시오!" 라고 하고 "도적질에도 도道가 있다고 했다. 저안에 값진 물건이 있는지 아는 것이 성聖의 경지요,
이번에 도독질이 성공할 지 실패할 지 아는것이 지知의 경지이요, 먼저 담을 넘에가는 일이 용勇의 경지이요, 맨 나중 나오는 일이 의義의 경지이요, 장물을 고루 나누는 일이 인仁의 경지이다. 그러니, 어찌 도적에게 도가 없다고 하느냐? 나는 아직까지 이 다섯가지 도를 가진 도적은 본적이 없다. "
장자 재유 도척편에 나오는 글이다. 도적도 지키는 것이 있는데 요즈음은 도적들은 도리가 없이 무조건 부만 빼앗는 시대이다.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세상에 의해 생각을 도독맞는다. 또한 자신의 의지로 선택할 수 없는 사람은 돈만 추구하는 것들에게 희생양이 되고, 사람을 속이며 돈을 버는 이들에게 도독을 당하는 신세가 된다. 안목이 없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첫째로, 자신을 포기한 사람들 처럼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는다.일상을 불신으로 가득 메운다. 둘째로, 항상 감정의 변화가 심하여 바람만 불어도 불길한 부정적인 감정을 너무 오래 가지고 다닌다. 셋째로, 자기분야에 어느정도 실력을 갖추지만 경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감각이 무딘 사람들이 있다. 넷째로, 항상 과거에 메달려 현실의 존재를 잊고 사는 사람들은 사라진 거품을 찻고 있다는 것이다. 다섯째로,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미지 집착에 메달려서 말과 행동이 다르게 행동 하는 것을 반복하는 사람들이다. 여섯째로, 항상 세상의 구조를 먼저 지적하고, 자신의 삶은 항상 피해보는 쪽으로 자기에게 기회는 주지 않는다는 착각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일곱째로, 기회가 와도 항상 끝없이 의심이나 비교로 시간을 닝비하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안목이란 사물과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부정하면 할수록 멀어지고, 긍정하면 할수록 가까워지는 것이다. 도독을 당하는 것은 안목의 치이일 수도 있다.
이세상에 복잡한 현대사회의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마음이 쓰이는 문제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 존재할 수는 없다. 누구에게나 인간관계가 쉬운 사람이 있을수 있을까? 마음이 통하고 일심동체의 마음에 갈등과 대립이 없을 수 없는 것은 생각이 따르고 행동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고는 다르고 삶의 가치는 각각의 몫이다. 그러기에 아름다운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잉태하는 순간부터 관계를 배운다. 가장 진솔한 부모에게서 얻는 모든 것을 받는 것으로 무상의 관계를 배우는 것이다. 사실은 인간은 자연의 상태에 당하는 처지에서 살아남으려는 본능이 지금의 문화속으로 도피하여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모든 관계의 기초는 유전자의 전달에서 얻는 인격의 기초는 태아기부터, 유아기, 어동기를 거쳐 청소년기로 성인이 되어도 자연의 상태에서 주는 행운의 가치를 모르고 살아간다. 공기, 물, 햇빛, 자연의 모습등은 일순간도 끊을수 없는 관계이다. 흔히 행복을 찻고, 행운을 기다리는 것이 인생의 가장 좋은 이상인 것 같은 착각에 산다. 그러나, 가장 소중한 것들이 주는 것을 잊고만 사는 도독들이다.
부모의 사랑, 자연이 주는 무한한 것들, 무심한 전경들 모두 아무 생각이 없는 빈 마음을 가지는 순간이다. 도독이 되지 않으려면 환희의 순간처럼 비우는 것 뿐이다.
늘 곁에있는 것들이 주는 멈춤에 감시하고 비울줄 알고 멈추면 보이는 것들을 도독맞지 않고 사는 법을 배워야한다.
인생에 가징 큰 도독은 외로움이다. 35년간 외로움의 논문은 70여개를 비교한 끝에, 외로움이 사망 위험율을 30프로 높인다한다.
건강한 사회관계를 맺는 사람보다 약50프로 더 높다고 한다. 하루에 담배 15개피씩 피우는 것과 같다고 한다. 외로움은 직접적으로도 사람을 죽인다. 또한 외로움은 알코올 중독ㆍ비만ㆍ영양부족ㆍ등을 유발하고, 이로인해 조기사망한다. 우리사회는 모든 시스템이 직접대면이 사라지고, 여가시간도 모두 온라인으로 비대면 상대로 살아가고, 소비패턴도 익명소비로 대처하고, 대화상대도 AI 의 챗봇으로 홀로 지낸다는 것이다. 특히 젊은 세대는 가상의 인물에서 느끼는 좋아요에 의존하는 극한 외로움에 빠져헤어 나온지 못하는 지경이라 한다. 우리 인간은 끝임없이 사회적 공감 능력과 사교성은 사람들과의 실제 괸계를 통해서 커지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은 영화나 책처럼 다른 세계를 데려가지만
다시 현실의세계로 돌려준다는 것이다. 지금은 소설미디어나 광고 문귀나 구글이나 콘텐츠 처럼 가상세계와 현실을 구분하지 않는 문화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금융사회에서도 일하여 버는 것보다 정보나 기술투자 분야에 의존하는 수치에 메달린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현실 세계에서 발을 빼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집 안에 고립시키고 당연히 움직이는 일은 줄어든다.
세계보건기구는 운동부족 으로 매년 320 망명이 조기사망 한다고 한다. 우리는 움직이지 얂기에 다른 사람에게 가지 못한다.
인간은 무관심한 체, 익명성을 끊어내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과 일상적으로 함께하는
일에 실패할 때, 우리는 인류 재앙의 공범자가 된다. 병이 들면 의사에게 가지만 외로우면 홀로 무엇을 기다리는 중인지 모른다.
우리는 하나의 신념에 갇혀 살아가는 안일함을 택한다. 인간은 자신의 신념이 옳다는 근거, 자기 생각을 정당화하는 이유에 집중한다. 반대 증거에 부딪히면 타당성이나 관련성이 부족하다는 착각으로 무시하고 오히려 내 신념이 옳다고 확신만 내세운다. 보수와 진보 막론하고 상대방을 정직하지 않으며 모자라는 측으로 몰아가는 것처럼 서로 배척하는 신념만 내세우는 것이다. 누군가를 흑백논리로 보는 것은 분열이라 부른다. 분열은 '기본적 귀인 오류' 에 잡혀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행동을 평가할 때는 그 사람의 성격을 바탕으로 설명을 하면서, 자기 행동에 대해서는 상황적 요인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보편적 심리 현상을 나타낸다. 다른 사람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행동을 하면 성격 탓으로 돌리면서 정작 자신이 같은 행동을 하면 어쩔수 없는 상황이라고 합리화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판단하는 수고를 들이기보다 선한 사람인지 악한 사람인지 단정하는 편한 신념을 택할 뿐이다. 상대적인 것이 나은 것이나 괜찮은 것일지라도 신념에 도독맞는 것도 모르고 살아간다. 친절한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친절한지 잘 말하지 않는다. 정말 바쁜사람은 바쁘다 말할 여유가 없다. 그러나, 신념에 갇힌 사람은 늘 신념에 갇혀사는 것을 자랑처럼 내세운다.
신념이란 명제나 생각, 진실을 참이거나 실제라고 인지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내 삶과 주변세상이 실제로 어떤 모습인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다양한 신념을 가진다. 정치, 종교, 경제 문제 등 다른 일부인 자녀문제나 하다못해 평소에 즐겨먹는 닭발이나 생선회나 야구경기에 관한 의견이나
작게는 지역적인 편향까지도 신념 즉, 가치를 도덕적, 윤리적 판단과 지성유무까지 결부시킨다. 우리는 종종 타인의 신념과 오해를 가지고 그 근거가 거짓이거나 빈약하거나 단순한 소문이라도 극단적으로 상대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가진 신념이라는 것도 작은 지식이나 지역편향이나 어설픈 동기의식이라도 하나의 신념으로 자리 잡는다는 것이다. 하나의 신념에 사로잡히면
상대는 낮은 수준으로 보다 뒤 떨어진 의식으로 몰이간다는 것이다. 어떠한 대화나 무엇이 진실이라는 사실존재보다 다르다는 하나의 신념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서로의 신념은 다를수 밖에 없다. 고정된 신념의 가치나 진실을 스스로 내세울 정리를 자주 사유하고 자신의 신념도 세상의 어느 한 부분
일뿐 절대적 인것은 있을 수 없다는 신념을 만들어야 한다. 단순한 종교의 신념도 자신의 진리를 비판하고 깨닫지도 못하는 맹목적인 믿음으로 타자들을 비판하고 다른 것은 죄악으로 취급하는 광신적인 자세는 버려야 한다. 나의 신념이 소중한 만큼 다른 것들도 모두 귀중한 것들 뿐이다. 자신의 생각이 하나의 신념에 갇힌다면 얼마나 부족한 존재가 되는지 스스로 알수가 없다. 자주가는 단골집이 맛있다는 것은 다른 집들것을 먹어보지 안하고는 알수가 없다. 내 신념이 있을수 있게 만드는 것은 다른 신념 이 존재하지 않어면 무용지물 이다. 신념이 도독맞지 않을려면 다른 신념 을 배워야한다.
가을에 오는 태풍은 산길에 환상적인 운무를
이리 널어놓은 선물인가?
산길이란 안제나 나쁜조건이 항상 즐거움을
주는 환상에 빠져 나오지 못하는 산꾼
비에 씻긴 야생 단풍은 저리 회사한 마음을
선물하는 산야의 고마움에 가슴저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