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추석전에(9월 25일) 누님면회를 한 후 1개월이 지나서야 다시 누님을 찾았다.
** 오늘의 시간상 일정표 : 06시 40분, 집 출발 ~ 영동고속도로 ~ 양지ic이탈, 17번국도로 ~ 8시, 동안성(죽산)휴게소 휴식 ~ 9시, 청주 첼로병원 도착 ~ 누님 로봇치료 관전 및 면회 ~ 10시, 누님과 이별 ~ 진천으로 ~ 10시 40분, 진천 남한강마트에서 시장보기(회장단모임 나드리 준비) ~ 11시 20분, 매형댁 방문 ~ 11시 40분, 근처 "이안통 갈비식당"에서 중식 ~ 12시 20분, 식당출발 고향으로 ~ 12시 40분, 고향산소 도착, 성묘 ~ 오후 1시 10분, 4째 지원이 아우댁 방문 ~ 2시, 귀로에 ~ 3시 40분, 의왕 "수 가정의원"에서 독감예방 주사 등 래방 ~ 4시 20분, 고천이발소 머리손질 ~ 5시, 이발소 나옴 ~ 걸어서 집으로 ~ 5시 30분, 집에 도착 ~ 6시, 집 근처 "닭이봉식당"에서 지영호회장과 저녁식사 ~ 7시 35분, 집에 도착, 오늘 일정완료.
** 참으로 바쁜 하루를 보낸다.
* 영동고속도로 용인ic를 지나면서 동편에 떠오르는 태양을 찍어본다.
뜨는 해를 감싸고 있는 운무가 방해를 놓지만 잠시후면 사라질 운명일 것이고...
누님을 만난다는 기대감이 더욱 우리들 마음을 들뜨게 한다는 것을 태양은 알고있을까?
17번 국도상의 휴게소, 아침해가 많이 올라왔다.
* 9시에 청주 첼로병원에 도착하니 막 누님도 로봇치료(재활운동)를 하기위해 현장에 도착한다.
오늘 매형은 오지않았다, 하루도 빠짐없이 오셨지만 나중에 매형께 직접들은 소리는 지난 추석명절에 누님이 집에서 만 이틀간 계셨는데 그 당시에 많은 일가친척들이 찾아왔고, 그 뒷바라지의 후유증에 몸살로 한 달 여 고생하고 요즘 겨우 컨디션이 조금 좋아졌다고 말씀하신다, 몸살이 날만도 하지요.
* 약 30여분 간 로봇치료하는 것을 지켜본 후 10시가지 누나와 함께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러나 오늘 누나는 우리들에게 빨리 올라가라고 한다.
** 진천 매형과는 통화로 긴밀히 연락하고 있고.
우리들 발걸음은 첼로병원을 떠나 진천으로 행한다.
* 진천 매형댁에 도착한 후 먼저 바로 맞은편의 마트로 들어간다.
오는 4일에 의왕시 충청향우회 가을나드리가 있는데 그 준비를 이곳에서 해 가자는 아내의 의견에 동조.
마트로 들어가서 술과 안주, 물등을 사서 차에 싣는다.
* 마트에서 나와 매형댁에 들려서 잠시 환담을 나눈 후 개천옆의 단골식당인 "이안 통 석갈비"로 향한다.
* 식당 앞 냇가는 진천읍내의 한 가운데를 질러 미호천으로 합류하는 백사천이다.
지금은 하천정비를 해 주차장으로 사용하지만(물줄기는 한 가운데로 흐른다) 내가 학창시절이었던 그 옛날에는 여름이면 고기잡고 겨울이면 스케이트 타던 얼음판이었다.
* 매형도 진천의 유지로 유명세가 있기에 매형이름을 찾으니 보이지 않는다.
식당밖에서 사진을 찍은 후 식당안으로 들어가니 매형께서 눈치를 채고 자신의 이름이 이태경으로 잘못적혔다고 말씀하신다(본래 이름은 이래경)
찾아보니 정말 그렇네(녹색 원안)
석갈비 정식으로 점심식사
* 점심식사를 마치고난 후 매형과 헤어져 곧바로 고향으로 향한다.
우리동네(진천군 이월면 삼용리 청용마을) 앞 냇가
* 진천에서 일부러 미호천 뚝방길을 택한다,
읍에서 우리동네 가는길은 약 십오리 정도이고 향하는 길도 남과 북으로 양쪽길이 있다.
북방길은 아스팔트 포장이 잘되어있지만 남방길은 미호천변 부분이 콘크리트 포장이라고 하지만 상태도 별로 좋지않은 길이다, 그러나 우리동네 앞 냇가인 미호천에 많은 추억이 있어 읍내에서 가는 길로 이 길을 자주 선택해서 그 당시의 추억과 낭만을 기억해 낸다.
* 오늘도 역시 낭만을 만들고 추억을 기억해 내면서 이 길을 간다.
앞 냇가 콘크리트 물막이 제방이 선명하게 보이는데 지금은 처음 물막이 제방을 만들었던 당시와 조금 변형이 있지만 이 댐은 우리 아버님의 마지막 작품이었다.
근동 주민들이 부친 사후 세운 공적비
* 아버님은 평생을 이곳에서 사셨고 또 마을을 위해 많은 일을 하셨다.
차가 다닐수 있는 도로도, 전기도 없었던 개발시대였던 당시에(1950년 대 ~ 70년 대)근동에 많은 업적을 남기셨고, 또 그런 희생정신 탓에 일찍 수명을 다했는지도 모른다(1979년 당시 66세의 일기로 하직하심)
* 공적비에도 기록돼 있지만 이 기록이 전부가 아니었다.
근처에 꽤나 많은 토지를 소유한 문중으로(경주 정씨 양경공파) 아주 먼 옛날에는 근동 20리 허가 문중 소유의 땅이었을 정도였다고 듣기도 했다.
* 이런 문중 땅이나 개인의 땅을 희사도 많이 했지만(지금과는 다르게 돈 한푼 받지않고 그냥 길을 내주거나 터로 내주었다, 지금도 많은 주민들이 우리 땅을 밟고 다니고, 또 집을짓고 농사를 짓는다) 명성만큼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으셨다.
* 그리고 마지막 작품이 바로 앞 냇가에 물막이 보를 막아 농토를 수리안전 답으로 만들고 가셨다.
오늘도 미호천 뚝방길을 가고, 물막이 보를 보면서 훌륭하신 부친을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 우리동네 바로 뒷산에 조상들을 모신 우리의 선영이 자리하고 있다.
50여m 정도 으로면 선영이 나타나고 산소에 재배로 인사를 드린 후 산소주변을 잠시 둘러본다.
그리고 다시 승용차가 있는 동구밖으로 오면서 그 옛날 동네 주민들의 젖줄이었던 우물가를 둘러보며 회상한다.
* 우리가 어렸을 당시에는 이런(사진) 검은 테를 두르지도 않은 그냥 땅에서 샘물이 항상 힘차고 줄기차게 올라오는 샘이었다, 깊이는 약 1.5m 넓이는 사방이 3 ~ 4m 정도로 우물벽을 돌로 튼튼하게 쌓고 윗 부분은 시멘트로 도배를 했고, 그 위에서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빨래도 하고 정담도 나누는 그런 샘가였다.
* 문명이 들어서면서 각자의 집에 펌프를 놓고(지금은 전동으로 바뀜) 공동우물가의 정담은 사라지고 공동체의 모습들도 하나 둘 사라진다, 그리고 사진에서 보듯이 인심만 메마른 것이 아니고 펄펄 솟아오르던 샘물도 메말라 삭막한 모습으로 변했다.
* 샘 머리에 있던 몇 백년 세월의 풍파도 이겨내고 이정목 노릇을 하던 향나무도 사람들의 인심이 떠난자리에 더 이상 살기싫다고 수명을 다한채 젊은 날의 추억만을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 짧은시간속에서 과거를 회상하고 난 후, 4째 아우집에 들리니 자식 떠나보낸 후 둘이 외롭게 살고있는 부부의 청승인지 둘이 이마를 맞대고 은행을 까고있다.
* 졸지에 고향지킴이가 되어 40여년이 지났고, 이제는 자신의 터를 잘 잡아 아들 딸 낳아 기르고 출가시켰으니 오죽 한가하랴, 더구나 요즘의 농촌생활은 예전과는 딴판이다.
* 농삿일은 거의 모두 기계에 맡기고 그저 소일거리 잡일이나 하면서 남는 시간에 도시와 마찬가지로 취미생활로 노년을 보낸다, 동생 취미생활은 키타치는 게 취미란다.
* 우리가 사전 연락도없이 들이닥치니 깜놀했겠지만 정이야 의좋은 형제의 정이니 금새 수습하고 이것저것 농사지은 산물들을 주고싶어 안달이다.
* 밤이고 고구마고, 또 화초에 이르기까지 마구잡이로 퍼주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들 간의 심사이니 어찌하랴.
형님이 달라고하면 금방 만들어서 라도 주고싶은 심정같으니...
* 이런 정겨운 시간들을 잠시 보낸 후 우리부부는 다시 우리들 아지트로 올라온다.
오늘 모처럼 만에 시간을 냈으니 나도 의왕에 가서 또 할일들을 해야한다.
* 오후 4시경에 의왕으로 돌아와서 아내에게 승용차를 보내고 나는 단골의원인 "수 가정의원"에 들려서 정기적 음용약도 수령하고, 또 독감 예방주사도 맞고, 약국에 들려서 처방받은 약을 수령한 후 다시 이발소로 향한다.
* 이발소에 들려서 아직은 짧은머리라 염색으로 잠시 머리를 정리한 후 집으로 향하는 시간은 5시 경.
동네 집앞의 식당에서 6시에 지영호회장과의 약속시간을 잡아놓았기에 늦지않게 도착해야 한다.
집으로 향하는 길, 황혼이 다가오네.
** 국도를 따라걷는 길에 내리비치는 석양의 아름다움이
오늘 집으로 가는 길에도 동무를 해준다.
생각해 보면 한없이 아름다운 것이 우리네 인생인 것을,
지는 석양에 한줌 추억이 실릴 때면 내 마음이 왜 이렇게 풍족해 지는 것일까?
길에서 딩구는 낙엽이 수명을 다했다고 누가 말할 것인가?
마지막 불꽃인지 내 눈에 담기는 저 아름다운 모습은 또 무엇이었던가?
석양에 어우러진 도시의 아름다운 풍경과
보신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는 시민들 모습에서 삶의 활력을 또 얻어본다.
이발 후 옆의 신발가게에 들려서 구두한 켤례를 산다
* 점포정리를 한다고 해 들어가서 구경하다 지금신고있는 구두가 낡아서 구두를 한켤레 산다.
나도 짱돌이라 지금신고있는 구두 연세가 30년은 된 듯싶다, 마르고 닳아 너덜대기 직전이니 잘된 듯 싶다.
아무리 점포정리를 한다해도 이런 신사구두 한켤레가 28.000원 밖에 안하다니...
아주 먼 옛날 198~90년대에도 구두 한 켤레 맞출려면 20여 만원이었는데 너무 싼 것이 신기할 정도 다.
** 약속시간인 저녁 6시에 맞춰 약속장소인 "닭이봉" 식당에 도착, 조금 후 지영호회장도 나타나고.
둘이 나눌 오늘의 대화는 주로 모레있을 충청향우회 회장단모임의 가을나드리에 대한 대화.
* 오늘도 아내와 함께 진천의 마트에서도 준비를 해 왔듯이 총무인 내가 할일은 하나하나 생각나는대로 하면되나 그래도 미비한 것이 있을 터, 그래서 회장과 총무가 함께 어깨를 맞대고 식사와 술 한잔씩 하고 또 의견을 나누면서 혹시 잘못된 부분이나 미비한 것을 찾아본다.
** 이런 모든 것이 내 생활의 일부.
오늘도 항상 최선을 다해 살아갈 뿐이다.
이 아름다운 삶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