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조성익 지음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주거 실험』
1인 가구에 문제의식
1인 가구의 비율이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그들을 위한 주거 형태가 새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각자의 방에서 생활하면서 주방 라운지 등의 시설을 공유하는 코리빙하우스가 그것이다. 국내 코리빙하우스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브랜드인 ‘맹그로브’는 매번 입주 펀딩을 빠르게 마감시키며 공유 주거에 관한 새로운 담론을 이끌어 내고 있다. 맹그로브가 빠르게 성장한 이유에는 다양한 커뮤니티와 콘텐츠, MZ세대를 공략한 마케팅등이 작용했지만, 그 뒤편에는 잠재적 거주자의 마음을 읽어내고 1인 가구만을 위한 공간을 설계한 건축가 조성익이 있었다.
저자는 주거 문제를 단순히 집값을 잡고 공급을 늘리는 문제라기보다 개인의 자아가 성장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 방법을 배우는 집을 내놓고 싶었다고 한다. ‘집’이 목적이 아니라 ‘삶’이 목적인 집을 짓는 일을 말이다.
그는 가장 먼저 1인 가구의 요구를 정리해 보았다. 비용은 저렴하되 공간은 편안해야 하고 방이 클 필요는 없지만 답답하면 곤란하고, 좋은 동네일 필요는 없지만 걸어서 5분 거리에 괜찮은 카페 하나는 있어야 하고, 여러 가지 요구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완벽하게 사생활이 보호되었으면 하지만, 그렇다고 혼자 고립되기는 싫다. 저자는 이 요구에서 맹그로브 설계의 가장 핵심이 되는 아이디어를 찾는다. 함께 사는 사람과 만남의 횟수를 늘리되 그 시간을 짧게 하는 공간을 만들어 ’짧지만 잦은 스침‘을 유도하기로 한 것이었다.
다른 누군가와 함께 살면 누군가와 끊임없이 마주친다는 긴장감이 생긴다. 이런 경우 사람과 마주칠 필요 없이 눈에 안 띄고 살짝 돌아가는 우회로를 하나 만든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딱 원하는 시간만큼만 커뮤니티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1인 가구의 마음을 읽어내 만든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맹그로브 주거 실험
맹그로브가 완공 되고 청년들의 입주가 시작되던 즈음, 저자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코리빙하우스를 위해 고안했던 설계 포인트가 정말 애초의 의도대로 작동할 것인가? 거주자들끼리의 스침을 의도했던 주방과 복도, 담장 공원, 거주자의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해 만들었던 우회로와 조망 포인트 등이 기대한 역할을 해주고 있을 것인가?
어찌 보면 이런 의문은 무언가를 완성하고 나면 당연히 생기는 것이다. 자동차도 출시를 하고 나면 승차감과 안전도 테스트를 하고, 토스터 하나를 팔아도 빵을 구워본 고객에 평가를 들어보는데, 건물처럼 복잡하고 거대한 물체에서 사는 사람들의 평가를 들어보지 않는 쪽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은가?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역사 속 위대한 건축가들조차 자기 마음에 드는 멋진 공간을 그리는 것에만 신경을 쓴 나머지, 거주자를 무시했다고 비난받아 왔다. 비용을 댄다는 이유로 자신의 취향을 거주자들의 경험보다 우선시하는 건축주들 또한 이런 비난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들에게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이 이것이다. “당신의 생각이 맞는지, 살아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가설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직접 살아보는 일뿐이었다. 저자는 맹그로브 설계에 참여했던 사무실의 젊은 직원 현수에게 그 임무를 맡기기로 했다. 현수는 월세를 지원 받는 대신 거주자의 행동과 감정을 꼼꼼히 살피며 맹그로브에서의 생활을 매일매일 기록했다. 사람들의 행동이 공간이 더해지자 설계 단계에서 했던 가정이 사실로 확인되기도 했고, 실패로 들어난 부분도 있었다. 저자는 공간에 만들어 놓은 장치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행동하며 살아가는지 또 거기엔 어떤 이야기가 생겨나는지 직업과 생각의 경계를 넘나들며 흥미로움을 갖고 관찰했다. 그 깨달음의 결과물로 저자는 그동안 건축가들이 쉽게 보여주지 않았던 ‘설계 이후의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
1인 가구 주거 실험에서 얻는 건축 인사이드
이 책에서 저자가 보여주는 사례들은 이 시대 우리가 마주한 보편적 문제, 즉 더불어 살면서도 건강하게 자신의 고독과 당당하게 마주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해답을 주고 있다. 대표적인 몇 가지 예를 들어 본다.
첫째, 거실의 변화. 텔레비전이 군림하던 거실의 풍경이 변했다. 스마트폰을 통해 사람들과 함께 있는 공간에서도 사적인 공간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따로 또 같이’ 공간을 사용하는 방법이 가능해졌다.
둘째, 우회로의 필요성. 누구와도 마주치기 싫은 날에는 우회로를 이용할 수 있다. 때로는 어울리고 싶고 때로는 혼자이고 싶은 인간의 본성을 위해 꼭 필요한 장치다.
셋째, 주방의 디테일. 서서 요리하는 사람의 눈높이와 앉아서 먹는 사람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주방 쪽의 바닥을 30센티미터 낮췄다. 작은 디테일의 차이가 대화의 확률을 높인다.
저자의 글은 평생 ‘집’이라는 화두에서 멀어질 수 없는 모든 이들에게 ‘주거’ 와 ‘공간’에 관한 새로운 미래를 심어준다. 그가 건축한 “맹그로브 숭인”은 2021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일반거주부문 대상을 수상하였다.
책 익는 마을 김성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