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맞은 날 / 정성려
주인을 닮아 욕심이 많은 걸까? 처마 밑에 한 뼘의 둥지를 짓고 사는 우리 집 제비는 햇빛이 화사하게 퍼지는 봄날, 강남에서 돌아왔다. 무더운 여름까지 욕심스럽게 두 번씩이나 알을 낳아 새끼를 부화시켰다. 봄에 태어난 새끼들은 별 일없이 순조롭게 잘 커서 언제 떠난지도 모르게 작별 인사도 없이 훌쩍 그렇게 떠났다.
뒤이어 수컷으로 보이는 한 마리가 둥지를 떠나지 않고 주변에서 배회하며 지키고 있었다. 어미 제비가 또 알을 낳아 품고 있었던 것이다. 2주 정도가 지났을 쯤에 둥지를 나온 어미 제비가 먹이를 물고 분주하게 둥지를 들락거리더니 며칠 뒤 새끼 5형제가 둥지 위로 노란 부리를 내밀고 올라왔다.
여름에 태어난 새끼들은 강한 햇볕에 달궈진 지붕의 열기와 한낮 이글거리는 콘크리트 마당의 지열로 좁은 둥지에서 부대끼며 무척이나 더웠을 것이다. 그래서 둥지를 박차고 세상 밖으로 훨훨 날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 걸까? 여물지 않은 노란 부리를 내밀고 어미가 나르는 먹이를 받아먹는 귀여운 모습을 보며 며칠은 더 지나야 날 수 있겠지 싶었다.
짧은 장마가 지나고 유난히 극심하고 기록적인 폭염에 새끼 제비들이 견디지 못하고 둥지 탈출을 시도한 모양이다. 4형제는 다행히 높이 날아 전깃줄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런데 5형제 중에서 제일 못난이로 보이는 한 마리가 높이 날지 못하고 마당에 주저앉고 말았다.
염소 뿔도 녹는다는 대서, 전주지방의 최고 기온은 36.3도까지 치솟았다. 푹푹 찌는 더위에 지쳐가는 것은 사람뿐이 아니다. 불볕더위 속에서 식물이나 작은 생명들도 사투를 벌이고 있다.
목줄에 묶여 사는 우리 집 지킴이 세월이가 여느 때와 다르게 갑자기 앙칼지게 컹컹 짖어댄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발생했다는 걸 짐작하고 얼른 베란다로 나가 보았다. 마당에서 새끼 제비와 길고양이가 대치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마당에 주저앉아 힘겹게 날개짓을 하며 날아보려고 애쓰는 새끼 제비와 어디선가 나타난 길고양이가 맞닥뜨린 것이다. 순식간에 천적을 만난 새끼 제비는 얼마나 무섭고 당황했을지 짐작이 간다.
위험에 처한 광경을 본 어미 제비는 큰 소리를 내며 구조요청을 하는 건지, 아니면 힘내라고 새끼 제비를 응원하는 건지 요란하게 마당을 쏜살같이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어미 제비인들 길고양이를 이길 수는 없다. 물론 날지 못하는 새끼 제비도 길고양이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먹거리를 발견한 길고양이는 새끼 제비를 날름 잡아 도망갈 찰나에 나에게 발견되어 고함소리에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내가 집에 없었더라면 길고양이는 도랑 치고 가재를 잡듯, 쉽게 목적을 달성했을 것이다. 날지 못하는 새끼 제비는 길고양이와 맞닥뜨린 순간 살기 위해 퍼덕이며, 있는 힘을 다해보았지만 날지 못했다. 어쩜 허무하게 길고양이의 먹잇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위험을 모면했지만 놀란 새끼 제비는 계속 날개짓을 하며 날아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둥지에 다시 넣어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새끼 제비가 있는 쪽으로 다가가는 순간 힘차게 날아 4형제가 앉아 있는 전깃줄에 안전하게 앉았다. 5형제가 다시 모였다. 구사일생으로 길고양이의 먹잇감이 되지 않고 살아서 다행이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새끼 제비를 보호하기 위해 찍찍거리며 새끼 주변을 빙빙 돌던 어미 제비의 모성애에 한편 놀랐다. 아마 내년에 금은보화가 들어있는 박씨는 아니어도 향긋한 봄소식을 입에 물고 분명히 다시 찾아올 것이다. 마침 토요일이라 집에 있었기에 다행히 새끼 제비를 잃지 않았다. 정말 오늘은 수지맞은 날이다.
[정성려] 수필가. 2011년 《대한문학》 등단.
* 2018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전국편지쓰기대회 은상, 행촌수필 문학상, 완산벌 문학상, 전북수필문학상, 올해의 수필인상(2022).
* 전북문인협회, 전북수필문학회, 영호남수필문학회, 행촌수필문학회, 대한문학작가회의 회원.
* 수필집 『엄마는 거짓말쟁이』, 『커피와 숭늉』, 『가을여자』
어미 제비의 모성애가 감동적입니다. 어디 제비뿐이겠어요. 모든 어미 맘이 같은 마음이죠
어린 시절에는 처마 밑 제비가 한식구로 살았었는데요, 요즘은 참 보기 드문 광경이죠. 저도 용산리로 이사를 하고 보니, 거실 유리가 2층까지 통유리라 자꾸 새들이 유리에 부딪혀 하루에도 몇 마리씩 죽어나가던데요, 새들이 불쌍하고 그들에게 참 미안했어요. 방법을 찾아 커튼을 친 후부터 그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어요. 날짐승도 귀한 생명이죠.
마음 좋은 주인을 만나 제비도 행복하고 새소리 들으며 더불어 사는 선생님 댁도 즐거울 테고요.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삼월삼짓날이 음력으로 3월 3일, 삼짓날이 일주일 남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