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제자중 의심많은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않았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나서는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나이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신앙고백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도마는 진정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사도였다고 합니다. 도마는 가는 곳곳마다 예수님의 흔적을 남겼다고 합니다. 도마는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려고 인도를 왔다가 한국을 알게 되어 실크로드를 통해 서기42~47년까지 가야에 왔습니다. 약 6년간 머무르며 김수로왕에게 세례를 주고 AD47년에 인도 여인 허황옥을 김수로왕에게 중매를 해 줍니다. 김병모박사, 조국현 정학봉, 이장식박사 등이 고증을 통해 밝힌 사실입니다. 경북 영주시 평은면 강동2리 왕유동(속칭 왕머리) 분처 바위에 새겨진 히브리 글씨로 도마가 다녀간 흔적이 있습니다. 도마 사도는 목수와 석공, 쟁기와 낫을 만드는 철 기술자, 배 만들기, 왕궁 건축 기술자였습니다. 가야에 철 만드는 기술을 전수해 주기도 했습니다. 전도 인생40년, 전반기 20년은 한국까지 왔다가, 예루살렘에 선교 보고차 간 기간이 20년, 마지막 20년은 인도에 잡혀가서 결국 순교를 당합니다. 순교하는 그 순간까지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사도였습니다. 이 당시 인도 역시 로마의 동쪽 끝 속국이었습니다.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되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받들어 인도까지 왔었는데 막상 인도에 와서 보니 인도와 교역하는 더 땅끝인 한국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가야와 인도는 무역을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도마는 실크로드를 통해 가야에 왔다가 배를 타고 인도까지 가서, 초대예루살렘교회에 선교 보고차 갔다가 다시는 인도에 가지 않으려 했습니다. 인도인들은 도마가 가진 복음에 매력을 느낀 것이 아닙니다, 도마가 가진 기술에 매력을 느껴 강제로 도마를 죄수처럼 인도로 압송하여, 20년간 감시와 감금을 반복하며 써먹을 대로 다 써먹고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려는 도마를 결국 죽이고 맙니다. 죽는 순간까지 부활의 주님을 생각하며 기도의 인생을 살다가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인도에 가면 그 흔적이 그대로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도마 사도가 쓴 성경에 편입되지 못한 외경들이 많이 있습니다. 첫째, 경쟁자와 도마서, 둘째, 도마복음서, 셋째, 도마의 육아복음서, 넷째, 도마묵시록, 다섯째, 도마행전, 여섯째, 람반의 찬송,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