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가 둘로 갈라져있다는 건 알았지만 일단 제가 속했던 시위대는 명동을 지나 동대문을 통해 대학로로 이동한 팀이었습니다. 대학로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조금 전이었구요. 6시간 정도를 계속 서서 걸어다녔더니 더이상 버틸수가 없어서 죄송하지만 저는 거기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제가 오기 전까지 이제 신촌으로 이동해서 다른 팀과 합류한다는 얘기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돌아와서 보니.. 신촌에서 지금 큰일이 벌어지고 있군요.
오늘 집회는 각오를 했던 바이기는 했습니다만 직접 참여해본 느낌은 정말 달랐습니다.
무서웠습니다. 네 정말 무섭더군요.
5시 반쯤에 청계광장에 도착했을때부터 심상치가 않았습니다.
이전에는 전경들이 통로를 터두고 있었는데 오늘은 버스로 빽빽하게 길을 막고 프레스센터 앞으로 한 1m 정도만을 열어두고 있더군요. 집회는 동아일보 앞쪽에 서 있는 사람들과 소라기둥 앞으로 앉아있는 두 패로 갈려 있었습니다. 평화시위를 계속하자는 쪽과 청와대로 가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언성을 높이기도 했구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몇몇의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프레스센터 앞의 뚫린 곳으로 뛰어 나갔습니다.
전경들이 뒤늦게 부랴부랴 막았지만 누군가가 뚫렸다 하는 소리를 지르자 더 많은 사람들이 뛰어 나가서 이내 도로를 막았습니다.
그리고 청계천 소라기둥에서 경복궁 역까지 죽어라 뛰었습니다.
전경들이 방패를 들고 위협적으로 길을 막았지만 매번 방비가 허술한 쪽으로 사람들이 몰려 순식간에 세종문화회관과 광화문을 지나 경복궁 역 앞까지 이를 수 있었습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전경들은 정말 빨랐습니다. 분명히 시민들이 앞에서 뛰고 있었는데 전경들이 옆쪽으로 돌아나와 번번히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남자분들이 앞을 가로막으며 여자들은 건들지 말라고 막으면서 막히지 않은 길을 알려주더군요.
세종문화회관 앞에서는 행렬이 끊기면서 전경들이 순식간에 제 앞을 가로막게 되었었습니다.
건장한 전경들이 방패를 바닥에 쿵쿵 찍으면서 금방이라도 달려들 태세를 취하는데.. 정면돌파는 포기하고 건물 화단쪽으로 돌아서 뛰어 나갔습니다. 주위에 여자분들도 정말 많으셨고 전경들이 여자들 앞을 가로막으면 금방 남자분들이 달려와서 막아주셨기 때문에 계속해서 뛰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전경들의 구두발 소리를 들으면서 정말 죽어라 뛰었습니다.
하지만 경복궁 역 앞에는 이미 전경들이 완전 진을 쳐버린터라 더이상 올라갈수가 없더군요.
거기서 다시 광화문 앞에서부터 시청을 거쳐 남대문까지 가두행진을 했습니다.
다들 아시사시피 이번 가두행진에는 따로 주최를 하거나 지휘를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덕분에 몇번이나 우왕좌왕을 하며 다시 광화문쪽으로 올라가려고 했으나 청계광장 앞에서부터 진입을 철저하게 막는 바람에 다시 방향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전경들과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었습니다.
행진을 조금 하다보면 뒤쪽에서부터 전경들이 달려들었고, 뛰어!! 조심해!! 빨리!!! 라는 말이 들리면 그대로 죽어라 뛰었습니다. 대열은 몇번이나 흩어졌고 사람들은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했습니다.
거기에서부터 다시 명동으로, 이어서는 동대문으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위를 지나치던 수많은 차들, 사람들, 건물안에서 쇼윈도로 밖을 바라보던 사람들.. 정말 많았습니다만 정말 무관심하기도 했습니다. 도로를 막고 시위를 한다고 항의하는 운전자분들과 싸움이 날뻔한 적도 여러번이었습니다.
후발대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번번히 접선은 실패했구요.
결국 대학로까지 가서 조금 쉬던 중에 저는 더이상 버틸수가 없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명동에 가기 전까지는 몇번 전경한테 쫓겨가며 겨우겨우 길을 만들어 올 수 있었는데, 신세계 백화점을 지나서부터는 전경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상하다 했던차인데 신촌에서 집결을 했나 보군요.
대학로에 멈춰있을 때에 분명히 신촌으로 간다는 얘기를 들었었는데.. 시위대의 경로가 누설이 된걸까요. 아니면 정말 시위대가 토끼몰이를 당한 것이었을까요.
어느쪽으로 정말 착잡하고 걱정이 됩니다.
전경들이 쫓아오지만 않았다면 시위대는 언제까지고 평화적인 가두행진을 벌일 수 있었을 겁니다. 실제로 이대동대문 병원을 지나오는 길에서는 앰뷸런스가 지나간다고 얼른 길을 비켜주기도 했고, 차선 1개는 늘상 비워두고 차들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일차적으로 가두시위를 시작한 일행은 처음에는 천명정도였는데 중간에 계속 흩어진 나머지 대학로에 도착했을때에는 2, 300분에 불과했습니다.
중간중간 물도 사서 돌리시고 빵과 사탕을 돌리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정말 힘들고 지쳤지만 힘내자 힘내자 하며 서로 격려를 하며 대학로까지 이른 길이었습니다.
일면식 하나 없는 분들이었지만 신촌에 가신 분들이 부디 별 탈이 없으셨으면 합니다.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하고 먼저 돌아와서 정말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그리고 시청앞에서 있었던 일이 유독 생생합니다.
가두시위를 하던 중에 갑자기 들이닥친 전경들에 쫓겨 많은 시민들이 인도로 올라섰습니다. 그때 지하철 출구 옆쪽으로 전경들이 누군가를 빙 둘러싸고서는 소리를 지르며 위협을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때 몇몇 사람이 전경들이 만든 원 안에 포위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상황을 눈치챈 다른 시민들이 도와주세요!! 전경을 둘러쌉시다!!! 도와주세요 하면서 사람들을 불러모았습니다.
바로 코앞에 있었지만.. 저는 할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무서웠습니다. 전경들을 피해서 도망다니는 것도 무서웠지만 그 전경들하고 마주서서 대치를 한다는게 더 무서웠습니다.
사진을 찍으려고 했는데 손이 벌벌 떨려서 못 찍었습니다. 대치상태는 곧 풀리고 다시 행진이 시작되었지만.. 그때 못 도와드려서 죄송했습니다.
짜투리지만 서울시청 근처에선가 전경들에게 쫓겨 엉겁결에 인도로 올라섰을 때, 대열을 맞춰 서 있던 전경과 살짝 부딪혔는데 그 전경이 얼른 죄송합니다, 라고 하더군요.
전경들을 피해 올라선 길이었는데 인도에서 부딪힌 전경은 사과를 하다니.. 정말 아이러니하달까 묘한 기분이었습니다.
첫댓글 어느 분이, 그 자리에 같이 있던 동생이 들으셨댑니다............. 어느 사복 입은 사람이 전경한테 가서 경로 다 까발렸고, 전경은 무전기로 장소 이야기했다고, 글 올라왔었는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군들 속에 염탐꾼이 있습니다..ㄷㄷ 수고 많으셨어요..ㅜㅜ
후발이였군요 님아마 중간에 짤리신분들 걱정하고있었는데 많이 안다치셨다니 다행이네요ㅠㅠ 앞에서는 천천히갔다고 갔는데 너무 컨트롤이안되서 그랬나봐요 ㅠㅅㅠ 전경은 저희 그후로도 세번정도는 더 뛴것같아요 미친듯이 뛰었죠 전경들이 앞에 못가게하려고 진자 무서웠어요 하지만 무서운것보다 너무 서럽더라구요
어제 회색인가 아이보리인가 쟈켓입은 건장한 남자분이 무전기 두개 들고 저희 뒤를 따라오시더군요 결국 나중에 그분이 경찰인거 알고 쫓아냈지만요..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