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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지유(君子之儒)
군자는 학식이 높은 사람이다.
君 : 임금 군(口/4)
子 : 아들 자(子/0)
之 : 의 지(丿/3)
儒 : 선비 유(亻/14)
이 성어는 소설 삼국지에서 공명(孔明; 제갈량)이 오(吳)나라에 가서 동맹을 맺기 전에 오나라 선비들과 대담하는 가운데 나온 말로 그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엄준(嚴畯)이 고개를 숙이고 대답을 못한다. 또 한 사람이 소리 높여 한마디 한다. “공이 큰 소리는 치지만 제대로 된 학문이 없으니 선비들의 웃음거리나 되지 않을까 걱정이오.”
嚴畯低頭喪氣而不能對。忽又一人大聲曰 : 公好為大言, 未必真有實學, 恐適為儒者所笑耳。
공명이 보니, 여남 사람 정덕추(程德樞)다. 공명이 대답한다. “선비 중에도 군자와 소인배가 있소.
孔明視其人, 乃汝南程德樞也。孔明答曰 : 儒有君子小人之別。
군자 선비는 임금에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며, 바른 것을 지키고 사악한 것을 싫어하니, 일을 함에 있어 당대의 사람들에게 혜택을 미치니, 이름을 후세에 길이 남는 것이오.
君子之儒, 忠君愛國, 守正惡邪, 務使澤及當時, 名留後世。
소인 선비라면 그저 책벌레처럼 글줄이나 파고 문장을 다듬는 데만 교묘하여, 젊어서는 부를 짓고, 늙어서는 경전을 연구하며, 붓을 들면 천 자를 써 내지만 가슴속에는 한 가지 계책도 없는 법이오.
若夫小人之儒, 惟務雕蟲, 專工翰墨, 青春作賦, 皓首窮經, 筆下雖有千言, 胸中實無一策。
이를테면 양웅(揚雄; 한나라 전기 문장가)이 문장으로 이름을 날렸으나, 왕망에게 몸을 굽혀 섬기다가 마침내 누각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죽었으니, 이것이 바로 소인배 선비라는 것이오.
且如揚雄以文章名世, 而屈身事莽, 不免投閣而死, 此所謂小人之儒也。
하루에 만 자의 시(賦)를 짓는 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雖日賦萬言, 亦何取哉。
(三國演義/第043回)
군자(君子)는 어떤 사람인가?
군자의 사전적 의미는 ①학식과 덕이 높고 어진 사람, ②높은 벼슬에 있던 사람, ③아내가 자기 남편을 이르는 말 등으로 풀이되고 있지만, 군자와 소인이라고 할 때의 군자는 이상적인 사람이라는 뜻으로 소인과 대비되는 ‘큰 사람’을 이르는 말일 것이다.
군자와 소인은 한자로는 君子와 小人이지만, 영어로는 great man이나 short man같은 표현보다 보통 Gentleman과 Small Man으로 번역된다. 군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위대한 인격자가 아니라 수양에 따라 만들어지는 신사 Gentleman이며, 이에 따르지 못하면 다소 좀스러운 작은 사람 Small Man이 되는 것 같다. 인간은 조석으로 군자이다가 소인도 될 수 있으므로 스스로 자기성찰과 인격, 도덕성의 수준에 따라 군자와 소인이 구분될 것이다.
드라마에서 만나는 君子
얼마전, KBS 주말드라마 '정도전'이 인기리에 종영되었다. 이야기의 중심은 태조 이성계나 권력욕의 이방원이 아니라, 개국공신 삼봉 정도전의 민본(民本)이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방원이 정도전을 베기 전 재상중심정치를 거두면 대업을 이루게 해주겠다는 제의에 삼봉이 일갈한다. "이 나라의 성씨를 모두 합쳐 뭐라 하는지 아느냐? 백성이다. 왕은 하늘이 내리지만 재상은 백성이 내린다. 해서, 재상이 다스리는 나라는 왕이 다스리는 나라보다 백성에게 더 가깝고 더 이롭다. 이 나라의 주인은 백성이다." "더 이상 욕보이지 말고 베라"고 한다. 칼을 쥔 소인배와 군자의 당당함이 엿보인다. 정도전의 지향은 충(忠)과 백성(民本)이다. 삼봉은 방원에게 제거되지만 그의 정신은 왕조 내내 이어져왔다.
요즘 화제인 영화 '명량'에서도 이순신 장군이 "무릇 신하된 자 충을 따르고, 그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고 말한다. 조선 500년은 당파싸움만 하다 망한 것이 아니라, 그 장구한 왕조를 어떻게 유지해 왔는가하는 노하우를 여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중국은 300년 넘는 왕조가 없다.
君子와 小人의 차이
이 같은 당당한 군자의 기개는 언제보아도 감동이다. 군자는 요즘의 말로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바른 사람을 상징한다. 소인은 이와 반대이다. 흔히 군자는 절대 실수하지 않는 사람으로 생각하나, 바른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상징할 뿐이다. 아침에 착한마음을 먹었다면 당시는 군자지만 저녁에 그릇된 마음을 가지면 그 순간 소인이 된다고 하였다.
한번 군자는 영원한 군자가 아니다. 논어에서 군자와 소인에 대한 일목 요연한 설명은 없으나, 상황에 따라 언급한 부분이 자주 나온다. 공자의 제자 자공은 "소인은 잘못을 저지르면 반드시 까닭을 꾸며댄다(小人之過也 必文)"고 하였다. 그렇다면 잘못은 무엇인가? 공자는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잘못이다(過而不改 是謂過矣)"고 했다. 평범한 말 같지만 가슴 서늘한 말이다. 이처럼 공자는 잘못을 고치지 않는데 대하여 엄격했다. 잘못은 꾸밈없이 인정하고 고칠 수 있어야 군자이다.
和而不同과 同而不和
요즘에도 많이 인용되는 사자성어가 "군자는 화합하나 서로 다르고, 소인은 서로 같으면서 화합하지 못한다(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고 한 공자의 가르침이다. 군자는 다른 사람들과 화합하나 뇌동하지는 않으며, 소인은 뇌동할 뿐 화합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군자와 소인의 상반되는 성품을 한마디로 분별하였다. 군자는 순수한 인격으로 교류하나, 소인의 교제는 이해득실이며, 이해가 갈리면 반목한다.
그러나 군자는 부화뇌동하지 않고 열린 마음을 갖는다. 뇌동하기를 좋아하는 소인배는 오늘날 대중(大衆)의 관계와 유사하다. 사실 대중은 공허한 군상이며, 소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타인과 끊임없이 무리의 연대를 꾀한다. 숨어사는 익명의 인간처럼 대중과 떨어져 혼자는 견디지 못하며, 갈등을 유발하고 서로 부추기며 부화뇌동하면서 군중심리로 살아간다. 오늘의 사회 불란 자와 유사하다.
孔子가 말하는 現實
기원전의 공자가 오늘의 잘못된 현실을 간파한 듯한 말씀이 있어 찡한 느낌이다. "사람의 잘못은 각기 그의 무리(집단)을 따르게 되며, 잘못을 보면 그 사람됨(仁)을 알 수 있다(人之過也 各於其黨 觀過 斯知仁矣)"고 하였다. 잘못은 그가 어느 무리에 속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가 속한 정당이나, 계층, 집단에 따라 집단이기주의에 의하여 대부분의 잘못이 생기기 때문이다.
오늘의 정치권이나 노동조합 등 집단들도 각기 긍정적인 역할이 있지만, 스스로의 잘못은 눈감은 채 파당의 이익을 위한 이기주의가 정의를 빙자하며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모습에서 "사람의 잘못은 그의 무리를 따르게 된다"는 공자의 기원전 예리한 지적이 마치 오늘의 현실을 말함이 아닌가 싶다. 군자다운 기개와 삼봉 정도전이나 충무공 이순신의 '충과 백성'의 참뜻과 그 정신이 그립다.
군자(君子)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으니(君子有三樂), 천하에서 왕노릇하는 것은 여기에 들어있지 않다(而王天下不與存焉). 부모님이 다 살아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父母具存 兄弟無故 一樂也), 우러러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고 굽어보아 세상에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며(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그를 가르치고 기르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得天下英才 而敎育之 三樂也). 맹자(孟子) 진심편(盡心篇)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행실이 점잖고 어질며 덕과 학식이 높은 사람, 예전에 높은 벼슬에 있던 사람, 예전에 아내가 자기 남편을 군자(君子)라 하였다. 간단히 줄여서 말하자면 '예의바르고 덕이 충만한 지식인'을 유교의 공자가 이상적 인간상으로 제시하였다.
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
인부지이불온불역군자호?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으면, 그것은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논어(論語) 학이(學而)편
대인은 호랑이처럼 변하고(大人虎變),
군자는 표범처럼 변하고(君子豹變),
소인은 얼굴만 바꾼다(小人革面).
유교의 이상적 인간상은 궁극적으로 성인(聖人)이다. 성인은 유교의 이상적 인격일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는 왕이 된다. 이런 성인의 경지는 너무나 완벽하고 지고해서 현실의 일반적인 인간상과는 동떨어져 있다.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주장하는 맹자나 악하다고 주장하는 순자 모두 인간은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하지만 이것이 실제로 얼마나 실현 가능한 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그러나 군자라는 인격은 이와 다르다. 성인에 비해 볼 때 군자는 인간에 접근해있고 현실 속에 살아 숨 쉬는 인간상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어울리되 패거리를 짓지 않고, 소인은 패거리를 짓되 어울리지 않는다(子曰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 논어, 자로 제23장
공자는 성인을 최고의 이상적 인간상으로 꼽고 있지만 실상 논어에서 성인의 용례는 몇 차례 나오지 않는다. 성인이란 단어가 언급된 경우는 4회에 불과한 반면 군자란 개념은 총 106번 등장한다.
논어에서 이 군자라는 인격은 지고무상한 성인에 비해 한 단계 낮은 것으로 언급되고 있다. 군자는 성인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상태이지만 성인을 지향하고 있으며 자신의 이익밖에 챙길 줄 모르는 소인들을 지도하는 위치에 있는 존재이다. 이런 점에서 유교는 성인을 비롯해 현인, 인인 등 여러 가지 이상적 인격을 제시하였지만 가장 대표적이고 현실적은 것은 군자라는 인격이라고 할 수 있다.
성인은 태어나면서부터 완성된 인격을 갖고 있는 데 비해 군자는 스스로 노력하고 만들어가는 인격이다. 군자는 처음에는 성인에 비해 낮은 데서 출발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성인과 만나게 된다.
유교는 성인이란 절대적 인격을 통해 유교의 이상을 정립했고 군자라는 현실적인 인간상을 제시했다. 이후 군자란 인격은 유교 인간상의 전형이 되었다. 그리고 이 두 인격을 아울러서 성인군자라고 한다.
공자가 사숙을 열어 제자들에게 가르친 학문도 바로 군자학이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군자학을 가르치면서 군자가 될 것을 독려하였다. 논어의 내용도 군자론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군자라는 말은 공자 이전에는 ‘정치하는 귀족 계급 일반’을 지칭하는 지위 또는 신분을 나타냈었다. 즉 원래 군자는 ‘젊은 귀인, 귀공자, 양가의 자제’ 등의 의미였다가 ‘귀인, 신사, 중후한 남자’라는 의미가 되었고 얼마 후 군인귀족 일반을 가리키게 되었다.
고대 중국의 제국이나 제후국은 군인 국가였다. 군자도 본래 무인이며 수레를 몰고 활을 쏘는 사어(射御)의 무예를 기본으로 한다. 주나라 시대의 군자교육이 예, 악, 사, 서, 수, 어의 여섯 과목을 기초로 삼았던 것도 그것이 본래 군인교육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자는 덕치주의를 지향하였기 때문에 제자들을 우수한 무인으로 만들기 보다는 덕으로 교화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지도자로 양성하려 했다. 즉 원래 군자는 무인이었으나 공자는 덕을 갖춘 문약하지 않고 용맹한 문인의 모습의 군자를 양성하려고 한 것이다. 공자는 군자의 의미도 계급을 지칭하는 신분적 위계가 아닌 남을 교화할 수 있는 덕을 갖춘 지도자의 의미로 바꾸어 배움을 닦는 모든 이가 군자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공자의 가르침을 통해 살펴 본 군자는 현실세계에 머무르지 않고 이상을 추구하고 천명을 알고자 하는 자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추어진 천명을 자각하고 이를 발견하여 도덕의 수행을 통해 인격을 완성하여 천인합일의 경지를 추구하는 자이다.
군자는 끊임없는 내적 수양을 통해 인격 완성을 이루고자 하며 인격 완성을 이루기 위한 수기의 방법으로 성리학에서는 거경(居敬)과 궁리(窮理)를 제시하고 있다. 거경은 내면의 덕성을 함양하는 것이며(尊德性), 궁리는 외부 세계의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는 것(道問學)이다. 군자는 이런 학문적 방법을 통해 수양을 하며 길러진 덕을 통해 남을 다스리는 데 자신을 확장시켜 나간다. 곧 군자는 세상에 참여하여 사람과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자 노력한다.
군자의 규율로 군자삼계(君子三戒)와 군자삼외(君子三畏)가 있다. 삼계는 3가지의 경계해야 할 것으로, 젊어서 혈기가 바로잡히지 않았을 때 여색을 경계하고, 장성하여 혈기가 꽉 차고 강성해질 때 싸움을 경계하고, 늙어서 혈기가 쇠진하면 물욕을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삼외는 3가지의 경외해야 할 것인데, 하나는 천명(天命), 하나는 대인, 또 하나는 성인의 말씀이다. 이는 논어 계씨편에 수록된 내용이다.
시경에서는 '임'에 가까운 뜻으로 쓰였다. "아름다운 임이여, 끝내 잊지 못하겠네(有斐君子, 終不可諠兮)." 여성에게는 사용되지 않는 단어로 보인다.
중국사에서는 무도한 폭군에게 함께 충언을 올리다 목숨을 잃거나 유배, 좌천당한 충신이나 지사들을 기리는 미칭으로도 쓰이곤 한다.
예를 들어 무술변법에서 원세개가 광서제와 변법파를 배신하자 망명을 선택한 강유위, 양계초와 달리 임욱(林旭), 양예(楊銳), 담사동(譚嗣同), 강광인(康廣仁), 유광제(劉光第), 양심수(楊沈秀)는 청에 잔류하였다가 끝내 체포되어 목숨을 잃었는데, 이들을 두고 무술6군자라 기리곤 한다.
천안문 4군자로는 류샤오보와 허우더젠(侯德健), 저우둬(周舵), 가오신(高新)이 꼽히지만 천안문 4군자는 중국 대륙에서는 절대 그렇게 불리지 못하고 대만 등 타국에서만 쓰이는 미칭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거니와 오랜 박해 끝에 류샤오보를 제외한 3인은 신념을 끝까지 지켜내지 못하고 공산당에 굴복하고 말았다는 점에서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장난식으로 군자를 바리에이션한 것으로 오덕이 충만한 오덕군자가 있다. 원래 군자가 소인배의 반대말이다. 반대말로 알려진 '대인배'는 김성모 만화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인터넷 신조어이다. 표준어로는 대인(大人)이다.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이 따로 있나?
공자는 항상 군자와 소인을 대비시켜 이야기를 하시니, 대개 이런 식이다.
子曰 君子는 和而不同하고 小人은 同而不和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의견이 다른 사람과도 잘 어울리지만, 남의 의견에 쉽게 맞장구치거나 휩쓸리지 않고, 소인은 남의 의견에 쉽게 부화뇌동(附和雷同)하지만, 의견이 조금만 다르면 함께 하지 못한다."
자로편(子路篇) 23장이다. 살을 좀 붙여서 번역을 해보았다. 그리고 내친걸음에 용기를 내어, 군자는 훌륭한 조직인(組織人), 당인(黨人)에 다름 아니라는 나의 일관된 가설과도 연결이 되는 풀이를 달아본다.
군자는 남의 독립적인 인격을 존중하고, 나와 다른 의견을 존중한다. 군자는 수평적이고 독립적인 인간관계에 익숙하다. 반면에 소인은 반드시 형과 아우를 따져서 서열을 정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군자는 서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여 관계가 느슨한 것 같지만 쉽게 분열하지 않는다. 반면 소인들은 순간에 분위기에 휩쓸리기 좋아하고, 그래서 매우 가까운 것 같지만(단결이 잘 되는 것 같지만) 조그만 계기에도 쉽게 분열한다.
子曰 君子는 周而不比하고 小人은 比而不周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두루 사랑하고 편당(偏黨)하지 않으며, 소인은 편당(偏黨)하고 두루 사랑하지 않는다."
위정편(爲政篇) 14장이다. 자꾸 이런 이야기를 읽다보면 때론 엉뚱한 생각도 든다. 군자는 언제나 군자이고 소인은 항상 소인일 수 있겠는가? 같은 사람이 군자도 되었다가 소인도 되었다가 하는 게 진실 아닌가? 그래서 논어(論語)의 이런 구절들을 유학자들과 다르게, 좀 불경(不敬)스럽게 읽어본다.
논어(論語)에서 군자는 우리 편이고 소인은 경쟁 당파의 똘마니들이다. 그래서 공자 말씀은 선생님이 우리 편에게 자부심을 심어주면서 동시에 시시콜콜한 행동지침을 주는 것이다. '우린 군자니까 참아야 한다. 참을 수 있다.' 이런 식의 선생님 말씀은 지금도 흔히, 유치원에서부터 들을 수 있다. 그러니까 객관적인 기준으로 군자와 소인을 구분하거나 나눌 수 없다는 이야기다.
비근한 예를 들어, '군자가 도덕적이고, 소인은 부도덕하다'라는 명제를 보자. 조선시대 정치는 모두 유학자들이 했다. 그들은 논어(論語)를 비롯한 사서삼경(四書三經)을 거의 다 외운 사람들이다. 그들의 머리는 온통 군자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누가 그들 중의 한 사람에게 소인(小人)이라고 욕을 했다면 아마 평생의 원수로 삼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조선이란 나라는 관리들의 부패 때문에 항상 몸살을 앓았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朱元璋)은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여 부패한 관리들을 사형시키고 그 가죽을 벗겨서 방석을 만들고, 그 자리에 임명한 새로운 관리로 하여금 그 방석을 깔고 앉아서 업무를 보게 하였다는 끔찍한 이야기도 들었다.
그렇게 하여 부패를 근절할 수 있었을까? 명나라가 망하기 직전의 모습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소수의 야만인, 여진족에게 나라를 빼앗겼다. 물론 명나라의 그 관리들도 모두 사서삼경을 읽고 과거시험에 합격한,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군자(君子) 들이었다.
중세 베네치아 사람들은 사람을 믿지 않았다. 누구에게 특별히 군자가 되기를 요구하거나 기대하거나, 그럴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권력을 한 사람에게 집중시키지 않고,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서 상호 견제하게 하였다. 이런 사람에 대한 불신을 기초로 한 베네치아의 훌륭한 정치제도는 오늘날 삼권분립(三權分立)과 다당제(多黨制)와 언론의 자유로 발전하여 현대 정치에서 효과를 입증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이며, 인류 문명의 훌륭한 유산이다.
군자의 독재보다 소인의 민주주의가 낫다
우리는 지난 역사로부터 배운다. 군자로 하여금 독재하기보다는 소인으로 하여금 서로 견제하게 하는 편이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특히 지난 60여 년 동안 한반도에서 이루어진 실험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신문이나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 '개판'이란 인상을 주는 대한민국보다, 북한이나 중국의 부패가 훨씬 심각하다. 중국 태자당(太子黨)의 치부(致富)와 호화로운 생활, 당 간부들의 부패, 북한 관리와 군인들의 부정부패는 우리나라에서는 비슷한 것을 찾을 수 없다.
그런데 일설(一說)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친일파, 기회주의자, 소인배들이 만든 나라다. 반면에 북한이나 중국은 그야말로 살신성인(殺身成仁)한 공산주의자들과 독립운동가들, 즉 군자(君子)들이 만들고 그의 후손들이 지배하는 나라다. 어찌된 일인가?
냉정한 결론은 '도덕군자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군자는 누구인가? 군자는 '우리 편'이다. 소인은 반대 당파, 경쟁 당파 소속원이다. 군자와 소인을 가르는 객관적 기준은 없다. 공자는 자하(子夏)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옹야편(雍也篇) 11장이다.
子謂子夏曰 女爲君子儒요 無爲小人儒하라
공자께서 자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군자의 학자가 되고, 소인의 학자가 되지 말라."
후대의 유학자들이 여러 가지 해설을 달고 있지만,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나는 추측한다. 글도 잘 쓰고 똑똑한 자하(子夏)가 한때 출세를 위해서 다른 당파 사람들과 어울린 것은 아닐까? 당적(黨籍)을 옮기면 밀어주겠다는 그들의 유혹을 받고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눈치 챈 선생님이 훈계를 한 것은 아닐까?
근거가 희박하지만, 이 구절을 ‘군자는 우리 편, 소인은 경쟁 당파의 똘마니들’이라는 나의 가설을 입증하는 구절로 읽어 본다. 그리고 상상의 날개를 펼쳐본다.
나의 젊은 시절에 '혁명가'라는 자부심으로 만난(萬難)과 신고(辛苦)를 견뎌내었던 경험으로 미루어보면, '우리는 혁명가, 우리를 적대하는 놈들은 모두가 나쁜 놈들'이라는 (주관적인) 도덕적 우월감이 공자 집단에게도 필요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그러면 군자와 소인의 구분은 아무 소용이 없었던가? 아니다.
어릴 적부터 선비들의 마음에 주입된 강박관념은 권력을 쥐게 되었을 때, 욕망의 폭발을 제어하는 내면적 장치가 되었을 것이다. 그 덕분에 권력을 쥔 관리들의 부패와 전횡이 그리 심하지 않은 시절도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동아시아의 지식인 관료제에 기초한 독재정치가 2천년 동안 유지되게 한 도덕적 힘이 되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에 대한 색다른 해석
子貢이 問 師與商也孰賢이니잇고 子曰 師也는 過하고 商也는 不及이니라 曰 然則師愈與잇가 子曰 過猶不及이니라
자공(子貢)이 "師(子張)와 商(子夏) 중에서 누가 낫습니까?"라고 묻자, 공자께서 "師는 지나치고 商은 미치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자공(子貢)이 되물었다. "그러면 師가 낫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선진편(先進篇) 15장이다. 참으로 간명하면서도 유명한 문답이다.
주자를 비롯한 유학자들은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중용(中庸)을 가르치는 말씀으로 읽는다. 그러나 나는 달리 읽는다. 아니 이 말씀을 곧바로 중용(中庸)으로 연결짓는 것은 맞지 않다는 생각이다. 여기서 과(過)와 불급(不及)은 판단과 행동의 지나침과 모자람이 아니라, 타고난 자질(資質)과 천품(天稟)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이야기다.
타고난 사람의 재주와 개성을 어찌 마음대로 할 수 있으리. 과연 공자께서 제자들이 이런 저런 개성(個性)을 가졌다고 불평했을까? 결코 그럴 분이 아니다. 다만 냉정하게 자장(子張)이란 제자와 자하(子夏)란 제자를 가르치면서 관찰하여 그들의 장단점을 파악하여 한 마디로 말씀하셨다.
우리 역시 친구들과 선후배들이 두 종류의 사람들도 나뉘어짐을 본다. 모두 지나치지 않으면 모자란다. 하지만 모두 스스로 잘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 각자 생긴 대로 사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고 스스로 경계하면서, 공부하고 수양하여 판단과 행동에서 중용을 얻는 것이다. 물론 지나친 사람과 미치지 못한 사람은 노력하고 경계하는 방향이 다를 수는 있겠다.
또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공자 선생님이 여기서 말씀하고 싶은 것이 "지나친 것이 모자람보다 낫지 않다"는 것이다. 용기든 재주든 지나친 사람들은 특출하게 두각을 드러낸다. 바로 그 사람들을 경계하는 것이 공자의 말씀이다.
자공(子貢)의 질문에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 들어있다. 남들보다 뛰어나서 지나친 것이 모자란 것보다 낫지 않을까? 머리 회전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면 천재(天才)라고 불린다. 지식이 지나치게 많으면 박사(博士)로 불린다. 당연히 지나친 것이 모자란 것보다 낫지 않나?
그런데 공자 선생님은 지나치게 머리가 좋고, 똑똑하고, 행동이 지나치게 민첩한 제자를 칭찬하지 않고 오히려 경계하셨다. 그러나 표현을 너무나 점잖게 하셨다.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
하지만 이 말이 여러 가지 사물과 사건, 경우에 널리 쓰이면서, 글자의 뜻과는 달리, '지나침이 모자람보다 못하다'는 뜻으로 쓰이고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오늘 논어(論語)의 이 구절을 자세히 읽어보니, 원래부터 이 말에 그런 뜻이 내포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말을 보다 직설적으로 표현해 보았다. '과즉과야(過則過也)' 즉 '지나치면 곧 잘못이 된다.' 하지만 한자(漢字)에 자신이 없으니 말이 되는지는 모르겠다.
청결한 것도, 부지런한 것도, 친절한 것도, 자식을 사랑하는 것도, 악(惡)을 미워하는 것도, 심지어 조국(祖國)을 사랑하는 것도 지나치면 나쁘다. 백화점 점원들이 "그 옷은 요즘 철에 입기에는 조금 두꺼우시고요, 색깔도 조금 어두우시고.."라고 물건에다 경어체를 쓰는 것이 듣기 불편하다. 이런 경우는 과공비례(過恭非禮)라는 말에 해당되고, 과즉과야(過則過也)에 해당하는 경우가 아닌가?
현대를 사는 우리는 도처에서 과(過)를 본다. 당분과 지방과 소금, 구석기 사람들에게는 항상 부족했던 것들이 너무나 흔해지고 값싸지면서 몸에 과(過)하게 공급되어 온갖 질병을 일으키고 있다. 남한의 식당에서 과(過)하게 차려졌다가 쓰레기로 변하는 음식은 북한 동포들을 배불리 먹이고도 남을 만큼 많은 양(量)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과(過)를 경계하는 것이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씀의 진정한 뜻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잔에 술을 채울 때는 조심조심 어느 불급(不及)의 지점에서 그쳐야 한다. 과(過)하면 넘치게 된다.
季文子三思而後에 行하더니 子聞之하시고 曰 再斯可矣니라
계문자(季文子)가 세 번 생각하고 행동하였는데, 공자께서 이를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두 번이면 가(可)하다."
공야장편(公冶長篇) 19장이다. 심사숙고 역시 적당한 것이 좋다. 지나치면 오히려 사사로운 뜻이 일어나서 틀린 판단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니, 계문자라는 사람이 잔머리를 굴리는 사람이거나 우유부단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래도 제자들이 이 말씀을 기록하여 남기고 있는 것을 보면, 두루 사람들에게 적용할만한 뜻으로 하신 말씀이 아닐까?
흔히 우리가 처음 생각하는 것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고, 두 번째 생각하는 것은 현실가능한가 여부라면 세 번째 생각하는 것은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고 좌고우면(左顧右眄)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공자 선생은 두 번만 생각하라고 하신 것은 아닐까?
子曰 中庸之爲德也 其至矣乎인저 民鮮久矣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중용(中庸)의 덕(德)이 지극하구나. 하지만 중용에 오래 머무는 자가 드물다."
옹야편(雍也篇) 27장이다. 주자(朱子)는 '民鮮久矣'를 '사람들이 이 덕을 소유한 이가 적은 지 오래이다'라고 해석하였다. 하지만 중용이란 오래 머물기 힘든 하나의 상태이고, 누구나 찰나의 순간에는 중용(中庸)을 이를 수도 있지만, 대개 사람들이 거기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여 나는 달리 해석하였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바뀌는 것이 사람 마음 아니던가?
▶️ 君(임금 군)은 ❶형성문자이나 회의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뜻을 나타내는 입 구(口; 입, 먹다, 말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尹(윤, 군)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음(音)을 나타내는 尹(윤, 군)은 손에 무엇인가를 갖는 모양으로 천하를 다스리다는 뜻과, 口(구)는 입으로 말, 기도하다의 뜻의 합(合)으로, 君(군)은 하늘에 기도하여 하늘의 뜻을 이어받아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을 말한다. ❷회의문자로 君자는 '임금'이나 '영주', '군자'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君자는 尹(다스릴 윤)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尹자는 권력을 상징하던 지휘봉을 들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다스리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직책이 높은 사람을 뜻하는 尹자에 口자가 결합한 君자는 군주가 명령을 내리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君(군)은 (1)친구나 손아랫사람을 친근하게 부를 때에 그 성이나 이름 아래에 붙여 쓰는 말 (2)조선시대, 고려 때, 서자(庶子) 출신인 왕자나 가까운 종친이나 공로가 있는 산하(傘下)에게 주던 작위(爵位). 고려 때는 종1품(從一品), 조선시대 때는 정1품(正一品)에서 종2품(從二品)까지였으며, 왕위(王位)에 있다가도 쫓겨나게 되면 군으로 강칭(降稱)되었음. 이를테면, 연산군(燕山君), 광해군(光海君) 등이다. 이와같은 뜻으로 ①임금, 영주(領主) ②남편(男便) ③부모(父母) ④아내 ⑤군자(君子) ⑥어진 이, 현자(賢者) ⑦조상(祖上)의 경칭(敬稱) ⑧그대, 자네 ⑨봉작(封爵) ⑩군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백성 민(民), 신하 신(臣)이다. 용례로는 세습적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최고 지위에 있는 사람을 군주(君主), 군주가 다스리는 나라를 군국(君國), 임금의 명령을 군령(君令), 임금의 자리를 군위(君位), 학식과 덕행이 높은 사람을 군자(君子), 처방에 가장 주되는 약을 군제(君劑), 임금의 총애를 군총(君寵), 임금의 덕을 군덕(君德), 임금으로써 지켜야 할 도리를 군도(君道), 임금으로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군림(君臨), 임금과 신하를 군신(君臣), 남에게 대하여 자기의 아버지를 이르는 말을 가군(家君), 엄하게 길러 주는 어버이라는 뜻으로 남에게 자기의 아버지를 일컫는 말을 엄군(嚴君), 남의 남편의 높임말을 부군(夫君), 남의 부인의 높임말을 내군(內君), 거룩한 임금을 성군(聖君), 어진 임금을 인군(仁君), 재상을 달리 일컫는 말을 상군(相君), 임금께 충성을 다함을 충군(忠君), 포악한 군주를 폭군(暴君), 임금의 신임을 얻게 됨을 득군(得君), 덕행을 베푸는 어진 임금을 현군(賢君),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이라는 뜻으로 첫째는 부모가 다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 둘째는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러워할 것이 없는 것 셋째는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군자삼락(君子三樂), 임금과 신하와 물과 물고기란 뜻으로 떨어질 수 없는 친밀한 관계를 일컫는 말을 군신수어(君臣水魚), 임금은 그 신하의 벼리가 되어야 함을 이르는 말을 군위신강(君爲臣綱), 임금과 신하 사이에 의리가 있어야 함을 이르는 말을 군신유의(君臣有義),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의 은혜는 똑같다는 말을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임금과 신하 사이에 지켜야 할 큰 의리를 일컫는 말을 군신대의(君臣大義), 군자는 근본에 힘쓴다는 말을 군자무본(君子務本), 군자는 큰길을 택해서 간다는 뜻으로 군자는 숨어서 일을 도모하거나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고 옳고 바르게 행동한다는 말을 군자대로행(君子大路行), 군자는 일정한 용도로 쓰이는 그릇과 같은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군자는 한 가지 재능에만 얽매이지 않고 두루 살피고 원만하다는 말을 군자불기(君子不器), 군자는 표범처럼 변한다는 뜻으로 가을에 새로 나는 표범의 털이 아름답듯이 군자는 허물을 고쳐 올바로 행함이 아주 빠르고 뚜렷하며 선으로 옮겨가는 행위가 빛난다는 군자표변(君子豹變),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아서 백성은 모두 그 풍화를 입는다는 뜻으로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말을 군자지덕풍(君子之德風), 임금이 치욕을 당하면 신하가 죽는다는 뜻으로 임금과 신하는 생사고락을 함께 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을 군욕신사(君辱臣死) 등에 쓰인다.
▶️ 子(아들 자)는 ❶상형문자로 어린 아이가 두 팔을 벌리고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 아들을 뜻한다. 지금의 子(자)라는 글자는 여러 가지 글자가 합쳐져 하나가 된 듯하다. 지지(地支)의 첫째인 子와 지지(地支)의 여섯째인 巳(사)와 자손의 뜻이나 사람의 신분이나 호칭 따위에 쓰인 子가 합침이다. 음(音)을 빌어 십이지(十二支)의 첫째 글자로 쓴다. ❷상형문자로 子자는 '아들'이나 '자식'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子자는 포대기에 싸여있는 아이를 그린 것이기 때문에 양팔과 머리만이 그려져 있다. 고대에는 子자가 '아이'나 '자식'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중국이 부계사회로 전환된 이후부터는 '남자 아이'를 뜻하게 되었고 후에 '자식'이나 '사람', '당신'과 같은 뜻이 파생되었다. 그래서 子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아이'나 '사람'이라는 뜻을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子(자)는 (1)아주 작은 것을 나타내는 접미어 (2)신문(新聞), 잡지(雜誌) 따위 간행물(刊行物)의 어느 난을 맡은 기자(記者)가 자칭(自稱)할 때 쓰는 말 (3)십이지(十二支)의 첫째 쥐를 상징함 (4)자방(子方) (5)자시(子時) (6)글체에서, 그대의 뜻으로 쓰이는 구투(舊套) (7)글체에서, 아들의 뜻으로 쓰이는 말 (8)민법상에 있어서는 적출자(嫡出子), 서자(庶子), 사생자, 양자(養子)의 통틀어 일컬음 (9)공자(孔子)의 높임말 (10)성도(聖道)를 전하는 사람이나 또는 일가(一家)의 학설을 세운 사람의 높임말, 또는 그 사람들이 자기의 학설을 말한 책 (11)자작(子爵) 등의 뜻으로 ①아들 ②자식(子息) ③첫째 지지(地支) ④남자(男子) ⑤사람 ⑥당신(當身) ⑦경칭(敬稱) ⑧스승 ⑨열매 ⑩이자(利子) ⑪작위(爵位)의 이름 ⑫접미사(接尾辭) ⑬어조사(語助辭) ⑭번식하다 ⑮양자로 삼다 ⑯어리다 ⑰사랑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여자 녀/여(女), 어머니 모(母), 아버지 부(父)이다. 용례로는 아들과 딸의 높임말을 자녀(子女), 며느리 또는 아들의 아내를 자부(子婦), 아들과 사위를 자서(子壻), 아들과 손자 또는 후손을 자손(子孫), 아들과 딸의 총칭을 자식(子息), 남의 아들의 높임말을 자제(子弟), 십이시의 첫째 시를 자시(子時), 밤 12시를 자정(子正), 새끼 고양이를 자묘(子猫), 다른 나라의 법률을 이어받거나 본떠서 만든 법률을 자법(子法), 모선에 딸린 배를 자선(子船), 자손의 여러 대나 자손의 끝까지 또는 대대 손손을 일컫는 말을 자자손손(子子孫孫), 자자손손의 썩 많은 세대를 자손만대(子孫萬代), 자식은 아비를 위해 아비의 나쁜 것을 숨긴다는 뜻으로 부자지간의 천륜을 이르는 말을 자위부은(子爲父隱), 융통성이 없고 임기응변할 줄 모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자막집중(子莫執中), 자애로운 어머니의 마음을 일컫는 말을 자모지심(子母之心), 듣고 본 것이 아주 좁고 고루한 사람을 일컫는 말을 자성제인(子誠齊人), 자식은 아비를 위해 아비의 나쁜 것을 숨긴다는 말을 자위부은(子爲父隱), 공자가 구슬을 꿴다는 뜻으로 어진 사람도 남에게 배울 점이 있다는 말을 공자천주(孔子穿珠), 묵자가 실을 보고 울었다는 뜻으로 사람은 습관이나 환경에 따라 그 성품이 착해지기도 악해지기도 함을 이르는 말을 죽은 자식 나이 세기라는 뜻으로 이미 지나간 쓸데없는 일을 생각하며 애석하게 여김을 일컫는 말을 망자계치(亡子計齒), 부모는 자녀에게 자애로워야 하고 자녀는 부모에게 효성스러워야 함을 이르는 말을 부자자효(父慈子孝) 등에 쓰인다.
▶️ 之(갈 지/어조사 지)는 ❶상형문자로 㞢(지)는 고자(古字)이다. 대지에서 풀이 자라는 모양으로 전(轉)하여 간다는 뜻이 되었다. 음(音)을 빌어 대명사(代名詞)나 어조사(語助辭)로 차용(借用)한다. ❷상형문자로 之자는 ‘가다’나 ‘~의’, ‘~에’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之자는 사람의 발을 그린 것이다. 之자의 갑골문을 보면 발을 뜻하는 止(발 지)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는데, 이것은 발이 움직이는 지점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之자의 본래 의미는 ‘가다’나 ‘도착하다’였다. 다만 지금은 止자나 去(갈 거)자가 ‘가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之자는 주로 문장을 연결하는 어조사 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래서 之(지)는 ①가다 ②영향을 끼치다 ③쓰다, 사용하다 ④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⑤어조사 ⑥가, 이(是) ⑦~의 ⑧에, ~에 있어서 ⑨와, ~과 ⑩이에, 이곳에⑪을 ⑫그리고 ⑬만일, 만약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이 아이라는 지자(之子), 之자 모양으로 꼬불꼬불한 치받잇 길을 지자로(之字路), 다음이나 버금을 지차(之次), 풍수 지리에서 내룡이 입수하려는 데서 꾸불거리는 현상을 지현(之玄), 딸이 시집가는 일을 지자우귀(之子于歸), 남쪽으로도 가고 북쪽으로도 간다 즉, 어떤 일에 주견이 없이 갈팡질팡 함을 이르는 지남지북(之南之北) 등에 쓰인다.
▶️ 儒(선비 유)는 ❶형성문자로 伩(유)의 본자(本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사람인변(亻=人; 사람)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은덕(恩德)을 베풀다의 뜻을 가지는 需(수, 유)로 이루어졌다. 덕(德)을 가지고 사람에게 은덕(恩德)을 베푸는 사람, 학자(學者), 특히 공자(孔子)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儒자는 ‘선비’나 ‘유교’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儒자는 人(사람 인)자와 需(구할 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선비란 학식이 있는 학자를 일컫는 말이다. 조선이 유교를 이념적 기반에 둔 이후 유교나 선비는 조선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 됐었다. 儒자에는 그러한 의미가 잘 담겨있다. 儒자에 쓰인 需자는 ‘필요하다’나 ‘구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이렇게 '필요하다'라는 뜻을 가진 需자에 人자가 더해진 儒자는 그 시대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儒(유)는 ①선비(학식은 있으나 벼슬하지 않은 사람을 이르던 말), 학자(學者) ②유교(儒敎), 유가(儒家) ③난쟁이 ④억지로 웃는 모양 ⑤나약(懦弱)하다, 유약(柔弱)하다 ⑥너그럽다, 부드럽다 ⑦어색(語塞)하다 ⑧짧다, 키가 작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선비 사(士), 선비 언(彦)이다. 용례로는 유도의 도를 닦는 선비를 유생(儒生), 검은 베로 만든 유생의 예관을 유건(儒巾), 유생들이 쓰던 관을 유관(儒冠), 유교와 불교를 유불(儒佛), 선비 출신인 장수를 유장(儒將), 유학에 통달한 권위 있는 학자를 유종(儒宗), 공자의 도를 배우는 전통적인 선비 공부로서의 동양 철학을 유학(儒學), 유도를 닦는 학자들을 유림(儒林), 유생들이 정한 벌칙을 유벌(儒罰), 유생들이 입는 의복을 유복(儒服), 유가에서 쓰는 책을 유서(儒書), 유생이 연명하여 올리는 상소를 유소(儒疏), 유교식으로 거행하는 제사를 유제(儒祭), 유적에 든 유생으로 편성된 패를 유패(儒牌), 유생의 모임을 유회(儒會), 이름난 유학자를 거유(巨儒), 늙고 덕이 있는 선비를 숙유(宿儒), 이름난 선비를 명유(名儒), 세상 물정에 어두운 선비를 우유(迂儒), 세상일에 통달하고 실행력이 있는 유학자를 통유(通儒), 언행이 일치하지 아니하는 유학자를 도유(盜儒), 견식이 좁고 마음이 간사한 선비를 벽유(僻儒), 부지런하고 정성스러운 선비를 돈유(惇儒), 생각이 낡아 완고하고 쓸모 없는 선비를 부유(腐儒), 책을 불태우고 선비를 생매장하여 죽인다는 분서갱유(焚書坑儒), 나이가 많고 학식이 풍부한 선비를 노사숙유(老士宿儒),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숭상하는 일을 배불숭유(排佛崇儒) 등에 쓰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