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이 이렇게 많이 나오는 영화를 보기 쉽지 않다. 서부극 무대를 핀란드 북부 라틀란드 평원으로 옮겨놓은 느낌마저 준다. 그런데 주인공 아타미 코르피(요르마 톰밀라)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영화는 일곱 장으로 이뤄지는데 첫 장은 그야말로 시처럼 연출된다.
코르피는 딱 한 번, 맨마지막 장에서 입을 뗀다.
러닝 타임 91분의 핀란드 영화 '시수'(Sisu)를 보는 느낌은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 썰렁하다는 핀란드식 유머가 곳곳에서 터진다. 그냥 허접한 킬링 타임용 B급 영화, 총기와 탱크 고증에 실패한 '국뽕 영화' 같기도 하다.
넷플릭스에서 9월 11일까지만 볼 수 있고 BTV 해피 시니어 채널에서 무료로 볼 수 있는 '시수'는 여러 면에서 흥미로운 작품이다. 얄마리 헬렌더 감독이 극본을 쓰고 연출해 2022년 공개했다. 국내에는 이듬해 10월 개봉했다. 국내 관객 1만명이 관람한 것으로 집계돼 있다. 그런데 유튜브 등을 검색하면 이 영화를 재미있게 요약한 클립들이 여럿 있었다.
개인적으로 라플란드 황무지를 훔쳐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더욱이 말 없는 주인공이 온몸으로 행동하는 액션 영화라 개인적으로 구미가 확 당겼다. 코르피는 겨울전쟁 베테랑 전투요원이었다.
자연스럽게 핀란드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돌아보게 만든다. 105일 동안 옛소련과 용감하게 싸워 국토의 10분의 1을 할양해주고 전쟁을 끝냈다. 그 전쟁 때 코르피는 '불사신'이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감투 정신을 뽐냈다.
영화 제목 'Sisu'를 우리 말로 가장 가깝게 옮긴다면 '감투 정신'이 될 것 같다. 속된 우리 말 표현으로 '깡다구'가 어떨까 싶다. 끈질기게, 쉬 굴복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정신을 의미하는 듯하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그는 강인한 생존력을 뽐낸다. 관객 입장에서는 왜 이렇게 합리적인 설명을 아예 무시하는 듯한 태도로 영화를 찍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코르피는 숱한 죽을 고비를 말도 안 되게 넘기고, 인간의 체력과 정신력을 뛰어넘어 신이 할 법한 재주를 보여준다.
핀란드는 겨울전쟁의 패배와 굴욕을 만회하려고 침공해 온 나치 독일과 힘을 합쳐 옛소련에 총부리를 들이댄다. 그러다 나치에 패색이 짙어지자 총부리를 나치에 돌렸다. 나치는 마을과 도시를 불사르는 초토화 작전을 감행한다. 영화의 첫 장은 이 시기를 그리며 시작한다. 핀란드란 국가가 생존을 위해 몸부림을 치는 이 시기, 나치와 손 잡았다가 등을 돌리는 이 시기에 코르피는 금맥 찾는 데 열중한다.
그에게 전쟁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그는 오직 생존만을 위해 무기를 든다. 오로지 개인의 생존을 위해 열심이며 내 것을 빼앗아 간 나치 놈들을 박살내는 것이지, 민족이니 국가니 애국이니 하는 것으로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 금만, 내 돈만 중요하다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뭐 딱히 설명하는 것도 없다. 옛소련이든 독일이든 내 것을 훔쳐가는 놈들을 박살내는 것이 그의 모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점이 아주 좋았다.
독일군이 영어로 의사 소통하는 것도 웃기고, 말도 안 되는 설정이 너무 많다. 일일이 열거할 필요도 없다. 앞에 언급한 대로 고증도 엉망이다.
그런데 전쟁이란 무엇인가? 궁극적으로 내 것을 빼앗아가는 이들과 싸우는 것이란 점을 얘기하려 하는 것은 아닐까? 패망하면서 조국이니 제3제국이니 하는 허튼 것말고 금이 최고라며 끈질기게 코르피를 추적하는 나치 장교 브루노 헬도르프(악셀 헤니), 브루노의 오른팔이며 저격수로 핀란드 소녀들을 상대로 성적 욕구 푸는 데 열심인 울프(잭 돌란), 별 대사도 없다가 뜬금없이 코르피를 목 매달 때 모자를 벗고 예의를 갖춰 브루노와 울프를 당황하게 만들고 따라 하게 만든 전차 조종수 숏츠(온니 톰밀라, 요르마의 실제 아들)까지 하나같이 개인의 전쟁을 치른다.
전쟁을 철저히 개인의 것으로 그려낸 이 영화가 진심 흥미로웠다.
흥행에 자신감을 얻어서인지 속편 '시수, 로드 투 리벤지'가 오는 11월 개봉한다며 예고편이 공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