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禍)와 복(福)의 문이 없기에 모든 사람들은 화와 복을 스스로 만들어 가지만
악연(惡緣)과 인연(因緣)은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도 아니며 억지로 만들려고 해도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늙어갈수록 깨닫고 있다.
그래서 화의 문은 아예 만들지 않아 화가 출입하는 것 자체를 없애 버리고
화가 다가와도 빙혼 곁을 스쳐지나가도록 하고 있고
복은 빙혼 팔자에도 죽었다가 깨어나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악연과 인연 또한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貪慾과 執着에 따라 생성되고 소멸되기에
가능한 貪慾과 執着애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을 치며 살고 있지만 명예나 부를 걸머쥐기 위한
貪慾과 執着이 아닌 오로지 생존 그 자체에 대한 貪慾과 執着은 포기할 수 없어 힘겹게 산다.
왜 고승들이 자꾸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나 했더니 緣이라는 것은 사람을 만나는 순간에
이미 악연 또는 인연으로 엮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 緣 그 자체를 본인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
모두가 사람을 만나면 좋은 인연을 생각하지만 대부분은 거의 다 악연으로 결말을 맺는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자기의 위치가 강자의 자리에 있으면 인연이 많이 생기겠지만
약자의 자리에 있다면 이리저리 꼬임과 위협에 시달리는 악연만 생길 뿐이라는 것이 서글프다.
악연과 인연도 자기에게 힘의 보유 유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악연과 인연도 눈치가 빨라 힘의 균형에 따라 쉽게 변하는 오묘한 특성이 있다.
힘이 있으면 악연도 인연으로 변하지만 힘이 없으면 인연도 악연으로 변하기 쉬운 것이다.
힘이 강한 자들에게는 악연을 맺으러 온 사람들도 오히려 무서워 도망을 가거나 후다닥
인연으로 위장 또는 변신을 하며, 인연을 맺고자 하는 자들이 밤낮으로 귀찮게 하고 있다.
반면에 힘이 약한 자들은 수시로 악연이 찾아오지만 인연이 스스로 알아서 오는 경우는
절대로 으며 스스로 인연을 맺어보고자 쫓아 다녀보아도 대부분은 악연으로 끝을 맺는다.
일상생활에서 자기가 힘이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살펴보는 방법이 있다.
소위 자기 주체를 잘 파악해야만 인연과 악연을 구별할 수가 있기에 한 번쯤 고찰해 보자.
전화를 하는 경우가 많은가? 전화를 받는 경우가 많은가?
전화를 하는 경우가 더 많다면 힘이 없다는 의미이다.
힘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먼저 전화를 하는 경우가 많다.
소위 아쉬운 사람이 목이 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삽을 잡는 사람
즉 전화를 먼저 하는 사람이 아쉬운 사람이고 힘이 없는 사람인 것이다.
만일 힘이 있는 자가 먼저 힘이 없는 자들에게 전화를 하는 경우라면
필경 십중팔구는 힘이 없는 자들에게 위협의 전화이지 결코 구원의 전화가 아닌 것이다.
설령 구원의 전화라고 하여도 그것은 양파 껍질에만 발라 놓은 꿀처럼 달콤하게 보일뿐이지
한꺼풀 벗기고 들어가 보면 죽는 그 날까지 눈물만 빼는 일인 경우가 99.99%인 것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전화가 오면 그리 좋은 내용은 거의 없는 법이다.
좋은 것들은 전화로 떠들지 않으며 아예 찾아오지를 않는 법이다.
자식들은 부모가 죽는 그 날까지 뼈골을 빼기 위하여 손을 내미는 존재인 것처럼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항상 악연이 겹겹이 들러 쌓여 살아가는 삶만 있을 뿐이고
인연은 오고 싶어도 악연을 뚫고 다가오지를 못하거나 멀리서 조용하게 바라볼 분이다.
자기가 힘이 강한 사람이라면 인연과 악연에 대한 구분도 필요가 없다.
인연과 악연은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 구분이 될 뿐이다.
99.97% 악연 속에서 인연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 것인지는 늙어서 알았다.
부모가 학교를 보내줄 때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들은 인연을 만드는 법을 알았던 것이고
그래서 공부 열심히 하여 일류대 나와 돈 많고 예쁜 여자를 만나 평생을 강한 자가 되어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는 것이고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은 스스로 악연의 울타리를 세우고 그 안에서 이리저리 짓밟히면서
죽는 그 날까지 찾아오지도 않을 인연만을 짝사랑하다가 씁쓸하게 뒈진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
그나마 악연조차도 좀 친한 척 하면서 사귀어 두면 그냥 이럭저럭 살아간다는 요령은 배워
항상 황당한 악연들이었지만 적당한 눈치로 아직까지 생존할 수 있는 저력은 만들 수 있었다.
첫댓글 일견 이해를 하면서도 가슴 한 편에선 뭔지 모를 이질감이 듭니다.
사람이 살아온 삶을 반추하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아예 인연은 힘과 비례하고,
악연은 약자에게 필연이라고 하시는 말씀에 동의하긴 어렵습니다.
언젠가
친한 스님에게 인연에 대해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스님! 불가에서 말하기를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했는데,
하루에 수십명씩 지하철에서도 스치고, 악수할때도 스치고, 또 스치는데,
이게 다 인연이란 말입니까?"
스님 왈
"처사님! 불가에서 말하는 옷깃은 소매 깃이 아니고 목선을 감싸고 있는 소위 애리 부분입니다.
이게 스치기가 어디 쉽나요? 서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지요...."
주제넘어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