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자년 추석
경자년 추석은 코로나 역병이 수그러들지 않아 귀성 발걸음을 나서지 못했다. 형제들은 전화로 안부를 나누고 차례는 고향 큰형님과 조카가 조촐하게 지내게 되었다. 새벽녘 잠을 깨어 어디로 길을 나설까 생각했다. 이른 아침밥을 해결하고 날이 덜 밝은데도 현관을 나섰다. 105번 시내버스로 동정동으로 나가 창원역을 출발해 낙동강 강변마을 신전으로 가는 마을버스 1번을 탔다.
평소 그 시간대는 강변 들녘 비닐하우스로 일을 나가는 아주머니나 외국인 노동자 청년들을 볼 수 있었는데 버스는 텅 비었다. 용강고개를 넘어 용잠삼거리에서 동읍사무소 앞을 지났다. 주남저수지를 둘러 들녘을 지나니 추수를 앞둔 벼들은 누렇게 익어 고개를 숙여 있었다. 대산일반산업단지 공장들은 추석 휴무라 문을 닫았다. 가술에서 송등과 모산을 지난 제1수산교에서 내렸다.
동녘에서 해가 솟으면서 햇살이 퍼지니 엷게 낀 안개가 걷혀갔다. 4대강 사업으로 생긴 강둑 자전거 길 따라 본포를 거쳐 북면까지 걸을 셈이었다. 신성마을로는 강변 따라 60번 지방도가 시원스레 뚫렸다. 북면에서 한림까지인데 김해 일부 구간은 아직 공사가 진행 중이다. 강 건너는 밀양 수산이었다. 그 위쪽이 곡강마을인데 강변 언덕에 형성된 마을이 처마 밑 제비집처럼 보였다.
일동에는 상수도사업소가 있다. 드넓은 둔치는 창원시민 상수원 취수장이다. 곳곳에 강변여과수를 뽑아 올리는 취수공이 있어 4대강 사업 때 모래를 퍼내지 않은 유일한 데다. 갈대와 물억새는 이삭이 나와 가을 운치를 더했다. 절로 자란 뽕나무나 팽나무들이 무성해 원시림 같았다. 사계절 사람들이 접근하지 않은 강변 숲이라 고라니나 꿩들이 몸을 숨기고 사는 녀석들만의 세상이다.
자전거길에는 라이딩을 나선 이들이 간간이 지났다. 둑에서 전방에 바라보인 백월산이나 천마산은 들판과 강가라선지 제법 높아 보였다. 내가 여러 차례 올랐던 산이다. 강 건너는 밀양 초동으로 덕대산이 우뚝했다. 덕대산도 몇 차례 올라 종남산까지 갔다. 둔치와 맞닿은 강줄기는 수위가 낮아져 유장하게 흘러갔다. 반월이 가까워지자 본포에서 창녕 학포로 건너는 본포교가 보였다.
상옥정마을을 지나니 본포수변공원이 나왔다. 정자에 올라 배낭에 넣어간 곡차를 한 병 비웠다. 아까 지나온 상옥정까지는 대산면이고 본포는 동읍이었다. 둔치 공원은 오토캠핑장이 아닌데도 자동차를 몰아와 텐트를 치고 야영하는 이들이 더러 있었다. 나루에는 민물고기를 잡는 배들이 몇 척 묶여 있었다. 본포는 4대강 사업 이전부터 내수면 어업 하가를 받은 전업어부들이 있다.
창녕함안보를 빠져나온 강물은 본포 벼랑에 부딪혀 암반이 드러났다. 그곳은 창원 시내 생활용수와 공업용수를 공급하는 취수장이다. 본포다리 밑에서 취수장을 돌아가는 생태 보도교를 건너니 샛강이 나왔다. 샛강은 신천으로 천주산 꼭뒤 달천계곡에서 발원 낙동강에 합류했다. 샛강을 건너니 북면 수변공원이었다. 강마을 명촌까지 길게 이어진 공원은 여러 체육시설이 들어섰다.
바깥신천에서 마금산 온천장으로 향했다. 북면 들판을 바라보면서 신기와 신목마을을 지나 온천장에 닿았다. 노점 할머니가 생수병에 담아 파는 북면 막걸리를 한 병 사 배낭에 넣었다.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타고 화천리까지 갔다. 화천리에서 들길을 걸어 야트막한 산마루를 넘었다. 교직에서 은퇴 후 전업농부가 된 지인 농장을 찾아갔다. 근래 틈을 내지 못해 모처럼 방문이었다.
지인 자제와 며느리가 손녀를 데리고 와 있었다. 농막에서 명태포전과 생선으로 곡차를 비우면서 그간 밀린 안부를 나누었다. 여름에 딴 포도는 담금주를 가득 담아 놓았다. 텃밭에는 가을 푸성귀들이 싱그럽게 자랐다. 대봉 감은 작황이 시원찮았다. 지인이 얼갈이로 심어 놓은 배추를 속아가라기에 몇 줌 뽑아 봉지에 담았다. 갈전마을 앞으로 나가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20.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