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전쟁은 항상 피아간의 싸움이고, 전쟁이 벌어지면 반드시 죽는 사람은 나오기 마련입니다. 싸우면서 죽이고 죽어가는 것 자체가 전쟁의 본질이기 때문에 전쟁 자체가 하나의 야만행위이죠. 따라서, 기본적으로 "예의바른 전쟁"이란 것은 좀 어폐가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하시려는지는 이해가 가는데, "예의차리는 전쟁"이라기 보다는 전쟁 양상의 변화로 인한 비인간화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그럴듯 한 것 같군요.
즉, 상대에게 예의를 차리거나, 시시콜콜 복잡한 약속을 하거나 조약을 맺는 등 행위는 결국, 전쟁하는 상대방을 일단 자신과 동일한 인간으로 인정한다는 뜻이 됩니다. 반면, 포로를 두지 않는 무차별 섬멸전,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학살, 무차별 공격, 대규모 폭격, 소이탄, 네이팜, 집속탄, 핵폭탄 등등.. 이러한 것이 주가 되는 전투와 전쟁은 왠지 중세시대 전투보다 더 "깨끗"한 것 같으면서도 아주 사람 기분나쁘게 만드는 차가운 면이 있죠.
이것은 분명히 서로 다른 전쟁의 양상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아마 "십자군 이야기"라는 책에서 "벨룸 로마눔"과 "벨룸 호스틸레"라는 개념을 들어보신 분들 있을겁니다. 또, 거기서 인용하는 원전인 "폭격의 역사"도 읽어보신 분들도 있을 거에요.
라틴어로 "벨라(bella)"는 "전쟁"을 뜻합니다. "벨룸 로마눔(Romanum)"이라고 하면 "로마인의 전쟁" 혹은 "로마식 전쟁"이라는 뜻이 되겠죠. "벨룸 호스틸레(bellum hostille)"는 직역하면 "적대자들의 전투"가 되는데, "호스틸레"는 오늘날 외국어 단어인 "호스트(host)", 혹은 "호스테스(hostess)"의 어원인 단어입니다. 또, "적대, 적대행위"라는 뜻의 "호스타일, 호스틸리티(hostile, hostility)의 어원이기도 해요.
이 "호스트" 개념에 대응하는 것이 동양에는 없기 때문에(사실, 서양에서도 오늘날에는 사라졌죠) 정확하게 설명하기가 좀 힘든데요, 오늘날의 "호스트"라고 하면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행사의 '호스트'라고 하면 그 행사를 진행하는 '주인되는 사람'이라는 뜻이 있고요. 뭐, 술집의 호스트, 호스테스도 일단은, 술집에 온 손님을 접대하는, 즉, 그 술집의 '주인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죠. 실제 술집주인은 아니지만, 일반 가정에 놀러가면 손님을 접대하는 것이 그 집 주인인 것 처럼 말이죠.
즉, 고대의 "호스트"라는 개념은, "서로에 예속되지 않으면서 적대하며 싸우는, 그러나 어느 누가 우월한 존재가 아니라, 양쪽 모두 스스로의 '주인'인 사람들"이라는 복잡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즉, "벨룸 호스틸레"라고 한다면 서로 적대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동등한 사람들 끼리의 싸움이라는 말이 됩니다.
이 얘기를 왜 하냐면, "십자군 얘기"에 나온 것을 좀 더 부연설명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흔히 게르만족이나 갈리아인들, 브리튼인들이 '야만인'이라고 배웁니다. 북구의 데인인이나 바이킹인들도 '야만적'으로 보이는 무시무시한 폭력행위와 꼭 연관이 되죠. 그리고, 그것은 분명 어느정도 사실입니다. 일상적으로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는 행위를 자주 하는 것으로 친다면 분명히 게르만인들이나 갈리아인들, 바이킹 같은 사람들이 분명 로마인들과 같은 '문명인'들 보다는 심하죠.
그러나, 이러한 고대부족들은 오늘날 근현대사회에서와 같은 진정한 "전쟁"의 개념이 없었습니다. 게르만이나 갈리아인들에게 있어서 폭력행위는 단순한 것이 아니라 개인이 무용을 떨치고 명예를 얻는 방법이었고, 그 숱한 약탈과 폭력도 (잔인하기는 하지만) 정상적인 삶의 일부분이었습니다. 각 부족들은 서로 통합되지 않고 떨어져 살았고, 모두들 가난했죠. 헐벗고 배고파지면 먹고 마실 것을 얻기 위해 싸웁니다. 족장에게 대드는 놈이 있으면 상하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싸우고요. 즉, 엄청나게 폭력적인 행위라고 해도 일단 직접적으로 눈에 띄는 구체적인 이득을 위해 싸우는, 굉장히 "생존적인" 폭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시를 약탈하고 마을을 불태우고 사람을 학살한다고 해도, 일단 점령한 후에 자기 신민으로 받아들이면 내부의 엄정한 규율에 따라 지극히 잘 대접을 해주곤 했습니다. 노예도, 하층민도 마을의 일부분이었고, "폭력적인 민족"이라는 이미지와 매치가 잘 안 될 정도로 정중하게 대우를 해주었죠. 이것은 다른 부족 끼리의 싸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개념적으로 이들 사이의 전쟁은 생존적이고 실질적인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전쟁이라는 잔학행위가 끝난 후에는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것이기에 어느 정도 "규칙"과 "예의"를 준수하는 모습이 나오게 됩니다. 전쟁동안에는 상대방을 무지막지하게 죽인다고 해도, 그래도 상대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는 이상, 그 두 사회가 갖고 있는 공통점에 기인하여 "비겁하다"는 행위는 피하게 되고, 피점령자라고 해도 유력자들은 보살펴주고 우대를 하는 등의 행위가 나오게 되죠. 이것은 고상한 철학이라기 보다는, 일단 얼굴을 알게되면 끝없이 잔인한 맘을 먹기 힘들어지는 인간적인 속성이라고 볼 수 있겠죠.
이들 부족사회는 그런 수준에서 (아무리 잔인하다고 해도) "전쟁"이라는 것을 봤습니다. 그런데, 로마인들의 전쟁행위는 전혀 달랐습니다. 이것은 "문명화"되었다고 하는 다른 국가들에서도 이해하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로마군이 내세우는 전쟁의 목표는 게르만이나 갈리아 부족인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잘먹고 잘사는 남방사람들이 왜 자기들 땅으로 쳐들어오는지 이해가 안되니 당연히, 이것은 그들 입장에서는 이유가 불분명한 폭력/도발행위로 간주되었죠. 그렇기 때문에 갈리아인도 게르만인도 "이유없는 폭력에 대항하여 싸운다"는 명분 - "자유"라는 명분을 그렇게나 항상 외친 것입니다.
로마인들의 전쟁은 눈앞에 당장 보이는 "생존"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뭔가 단순하게 납득하기 힘든,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추상적인 "정치적인 목표"를 위해 잘 조직된 살인기계처럼 쳐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이미 저항이 끝난 마을을 그냥 "점령"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 사회조직을 밑둥이 부터 뿌리채 뽑아 흔들었고, 자신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무지막지할 정도로 파괴합니다. 로마인들에게 있어서 자신들이 "친구"로 인정하지 않은 존재는 대등한 존재가 아니었고, 구체적인 이유도 없이 단순히 "필요에 따라서" 사령관/황제가 명령을 내리면 도시 하나가 통째로 사라져 버리는, 그런 종류의 가공할 힘이었더랬죠. 아마 이런 것에 직면한 갈리아/게르만인들은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무섭기만한 그런 무지막지한 힘을 무차별로 행사하는 로마인들에게 엄청난 공포를 느꼈을겁니다.
침공, 점령, 학살, 파괴 - 이런 모든 행위가 철저하게 감정을 배제한 채 추상적인 목표와 필요에 따라 행해지는 것이 로마군이었고, 수십만 단위의 군대를 통합적으로 운용하여 모든 목표물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뿌리채 뽑아 그 존재마저 없애버리는 그런 것이 "로마의 전쟁"이었던 것이죠.
학살이나 강간, 파괴 등이 차라리 감정적이었다면 오히려 그런 것에 공감을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 같은 것을 볼 때, 사랑하는 여자가 그런 꼴을 당한다면 당연히 복수심과 적개심에 불타올라 포로라고 해도 학살해버리고 싶겠죠. 이런 것은 심정적으로 이해가 갑니다. 또, 차별을 벗어나기 위해 서자로 태어난 부족장의 아들이 충성스러운 전사들을 이끌고 타국에 쳐들어가서 최초로 승리를 얻었을 때 - 이런 승리에 흥분하여 약탈과 파괴를 저지른다면 이것도, 그 입장에서는 이해가 가죠.
그런데, 그런 모든 감정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규율과 명령을 따르는 기계병정 같은 군단병들이 수만리 먼길에서 오는 종이 쪼가리 적힌 훈령을 받고, 그것을 그대로 따르면서 정치적 이유를 위해 학살과 파괴를 눈하나 깜짝않고 자행한다면 이것은 당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공포 그 자체였을겁니다. 이런 로마의 전쟁이 "벨룸 로마눔"이었습니다.
1차 십자군 파견을 논의하기 위해 개최된 공의회에서 귀족들은, 서로 간에 예의를 지키는 국내의 전쟁(벨룸 호스틸레)와는 달리, 예루살렘을 '해방'하기 위한 전쟁을 '벨룸 로마눔'으로 할 것을 결의합니다. 즉, 꼭 중세 뿐만도 아니고, 동양이나 서양뿐만도 아니라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이든간에 전쟁행위를 벌이는 사람들은 전쟁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어느 '규칙'과 '예의'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땅을 더 얻어 경작지를 늘린다든지, 공격을 하여 유리한 강화를 맺어 조공을 받는다든지.. 등등 구체적인 목표를 걸고 싸웠지, 민족, 영토, 국가가 통째로 사라져버리는 규모로 서로를 완전히 말살하겠다는 "총력전" 개념은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를 동등하게 인정을 했던 것이죠. 중세 귀족들에게 일상사였던 전쟁에서 고귀한 포로들을 학살해버리면, 혹시 불행히 내가 포로가 되는 경우에 내 목숨도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당연히 동등하다고 인정되는 상대들을 존중해주게 되죠. 또, 그 사람 세력을 말살했다고 해서 당장 내 땅이 되는 것도 아니고, 윗대가리 영주들의 허락도 받아야 하고, 교회에 뇌물도 바쳐야 하고 절차가 복잡하죠. 어차피 무작정 다 학살하고 파괴하여 내 땅으로 만들 수도 없는데 왜 굳이 오명을 뒤집어써가며 그럴 필요가 있겠느냐.. 라는 거죠. (물론, 당연히 "동등하다"고 인정되지 않는 하층민들이야 귀족 맘대로 처리했지만요).
동양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의 큰 대제국이 변방의 국가들을 일일이 모두 직할지로 만들 수도 없는 일이고(요즘도 힘든데 말이죠..), 속출하는 반란은 어떻게 처리하며, 내부의 경쟁자들도 있을텐데 이들 신경도 써야 하고.. 그 땅 모조리 파괴하여 다시 중국인들을 보내 경작시키기도 귀찮고.. 그러느니, 그냥 대충 공격하는 시늉하고, 상대방도 대충 복속하는 척 쇼부를 본 뒤에 서로 인정해주고 명목 상의 조공관계나 만들면 그만이죠.
즉, 기본적으로 상대방이 나와 같은 인간이고, 좋든 싫든 서로 관계하며 살아나가야 한다는 것을 인식할 때 기본적인 "규율"과 "규칙"이 나옵니다. 중세 기사들이 멍청하고 명예심만 탐닉하는 우둔한 사람들이라 예의차린 것이 아닙니다. 주어진 한계와 생각하는 "전쟁"의 개념 내에서 서로의 피해를 최소화 하고 제한적인 무력을 사용하자는 공통된 합의가 어느정도 상대방과 나 사이에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상대방과 어떤 대화도, 협상도 없고, 상대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무차별 전쟁이라는 개념은 공화정/제정 로마 이후로는 1차세계대전 이후에야 비로소 다시 등장하게 됩니다. 비인간화된 전쟁의 복귀라고도 하죠. "무조건 항복"이라는 것은 고대나 중세에는 있을 수 없는 개념입니다. 물론 부분적으로 그런 "무조건 항복"을 내건 행위는 있었겠지만, 모든 싸움은 주어진 한계 내에서 전투원들끼리만 벌이는 것이고, 싸움에 졌으면 조건을 내걸고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 하는 것이 당연지사였죠. 상대방의 비전투원 국민을 무차별로 폭격하고, 생산시설 전체를 박살내고, 나라 자체를 지도에서 없애버리는 그런 총력전이 1차세계대전에 와서 부활한 것입니다. 1차세계대전 후에 유럽 면적의 50% 가까이 차지하던 나라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갈기갈기 쪼개지고 멸망하여 뿔뿔이 흩어진 소국들이 되버렸죠. 이런 식으로 승전국이 지도를 마음대로 통째로 바꾸는 것은 로마인들 이후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행동이었습니다.
-_-;
뭐, 간단한 얘기를 너무 길게 말했는데, 요는 전쟁의 당사자들 끼리 서로를 인간으로 인정하냐 마느냐의 문제입니다. 상대를 인간으로 보지 않고, 기계적인 목적을 위해 명령에 따라 "처리"해야 하는 "물품"으로 간주될 때 전쟁에서 모든 "규칙"과 "예의"가 사라져버리는 것이죠. 그럴 때 폭격에 의한 수많은 억울한 민간인들의 목숨이 "집계할 필요성을 못느끼는" "부수적 피해(콜래터럴 대미지)"로 취급되는 것이죠.
ps)
그리스인들이 약속장소 잡고 싸운 이유는, 큰 규모의 군대가 서로 붙을만한 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언덕과 바위투성이라서요. 게다가, 무차별로 아무데서나 공격하는 공격당하는 전쟁은 승자없이 오래 끌게 마련이죠. 그리스인들이 서로 싸울 때 데리고 나온 병사들은, 그 곳에 땅이 있고 집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정해진 시간 동안 전쟁하고, 가을겨울 되면 돌아가서 일해야 하는 사람이죠. 이런 사람들을 데리고 엄청 처절해질지 모르는 무차별 싸움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약속 한 곳에 만나 회전을 벌이고, 그 결과에 승복하는 형태를 갖춘 것입니다.
고대 전사들이 투사무기에 난색을 표한 것은, 치사하다기 보다는 앞서 말한 "벨룸 호스틸레"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사들끼리 접전을 펼치면 한창 싸우다가 승패가 결정되고, 패주 과정에 사람들 죽게 되지만 그래도 나머지는 불리하면 항복하거나 해서 인간대우를 받고 살 수 있죠. 활이라는 무기는 일단 비싼 것은 물론이고, 실력에 관계없이 무차별로 상대를 학살하는 무기라는 것에 고대인들은 경멸감을 느낀 것입니다. 싸우다 불리하면 항복하고 뭐고도 없이, 싸우기도 전에 상대를 통째로 모조리 죽여버릴 수 있는 그런 무기를 쓰는 것이니까요. 큰 도시 하나면 인구가 백만 넘어가는 동양에서야 그런 무기라도 안쓰면 수십만 규모의 군대를 처리할 방법이 없지만요. 예의를 차리기 보다는, 현실적인 필요에 따라 싫고 좋고를 정한 것입니다. 나중에 그런 관행이 오래되다보면 "예의"라고 느껴질 뿐이죠. 어쨌거나, 이 경우에도 자기 땅에서 생업에 종사해야 하는 "민간인 군인(?)" 들이 싸움터에 나왔기 때문에 내 처지도 급하고 상대 처지도 급하다는 것을 서로 인정하는 경우입니다.
그런 것을 인정할 필요가 없는 경우에는 예의고 뭐고 다 집어던지는 '막싸움'이 되는 것이죠. 그 스케일을 유럽규모로 넓히면 그게 로마군이 되는 것이고, 더 넓혀 세계규모로 하면 세계대전이 된느 것이구요.
로마만이 독특하게 이것에 관게없이 '비인간적 전쟁'을 한것 같은데, 그레잇 워 부터 전쟁이 한나라의 사람, 물자가 총 동원되는 총력전쟁 (그야말로 토탈 워..군요) 형식이 되면서 왜 갑지기 비인간화 됬는지 아직 잘 이해 못하겠네요. 망할 문명이란게 발달하면 일정수준에서는 거꾸로 흐르기 시작하나?
첫댓글 '적을 자신과 동급으로 봐야 예 고 뭐고 있다'<- 전혀 생각 않하고 있었던거라 충격이 오네요. 근본적인것 까지 생각은 않하고 있었던지라.
로마만이 독특하게 이것에 관게없이 '비인간적 전쟁'을 한것 같은데, 그레잇 워 부터 전쟁이 한나라의 사람, 물자가 총 동원되는 총력전쟁 (그야말로 토탈 워..군요) 형식이 되면서 왜 갑지기 비인간화 됬는지 아직 잘 이해 못하겠네요. 망할 문명이란게 발달하면 일정수준에서는 거꾸로 흐르기 시작하나?
휴~ 글은 쓸수 있겠습니다. 억지가 들어가 있는것을 알긴 했는데 ㅎㅎ 생각이 마음에 들어서 걍 밀어 붙이고 있져. 문제를 낸 과목이 영어라서 역사같이 정확한 소스에의해 뒷받침되는 글을 요구 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그러니까 억지주장도 할수 있는것이고.
읔.. 역시 전 역사 공부하면 않될듯.
전쟁이야기일때 부터 카페생각했었는데, 이건 기대를 넘어 버리시는군요. 이런 억지에 깊은생각을 말씀 해주셔서 ㅜㅡ 정말감사합니다.
좋은글입니다^^ 전부터 생각은 해왔지만 정리는 못하고 있건 내용인데.. 참 정리가 잘되었네요.
멋진 글이에요..^^*~
추천 한방 쌔웁니다 -_-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