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전을 깨끗케 하심
마 21:12-22
12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13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14 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
15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하여
16 예수께 말하되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17 그들을 떠나 성 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
18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19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20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마 21:12-22) [성전 정화;막11:15-19,눅19:45-48,요2:13-22] 예수께서는 성전뜰 안으로 들어가셔서 그곳에 있던 장사꾼들을 다 쫓아내시고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다. 13) 그리고 그들을 큰소리로 꾸짖으셨다. ㄷ) `성경에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불리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어찌하여 이 집을 ㄹ) 강도의 소굴로 만들고 있느냐?' (ㄷ. 사56:7 하반절. ㄹ. 렘7:11) 14) 성전뜰 안에는 맹인들과 절름발이들도 있었는데 그들이 예수께로 나오자 예수께서는 그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15) 이런 이적을 놀라서 지켜 보던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어린아이들까지 성전 안에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구하소서' 하고 외치는 것을 보자 화가 나서 16) `이 아이들이 뭐라고 하는지 들립니까?' 하고 예수께 물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듣고 있다. 너희는 ㅁ) `어린이와 젖먹이까지도 주님의 권능을 찬송하오니'라고 한 성경말씀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ㅁ. 70인역 시8:2) 17) 예수께서는 그들을 떠나 예루살렘 성밖에 있는 베다니로 가셔서 거기서 밤을 보내셨다. 18) [저주받은 무화과나무;막11:12-14,20-24] 이튿날 아침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오시던 예수께서는 매우 시장하셨다. 19) 그때 마침 길가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것을 보시고 그리로 가까이 가보셨다. 그러나 잎사귀만 무성할 뿐 열매는 보이지 않자 `네가 다시는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무화과나무는 곧 말라 버렸다. 20) 제자들은 이것을 보고 놀라 `어떻게 무화과나무가 금방 말라버렸습니까?' 하고 물었다. 21) 그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만일 너희가 믿고 의심하지 않는다면 너희는 이와 같은 일뿐만 아니라 더 큰일도 할 수 있다. 너희가 이 산더러 `땅에서 들려 바다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될 것이다. 22) 너희가 믿고 기도하면 너희가 기도한 것은 무엇이나 다 얻을 수 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다음 날,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성전을 정결케 하신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12-13) 당시 성전은 반 세겔의 성전세를 내도록 했기 때문에 부득이 성전을 찾는 이들은 환전을 해야 했습니다. 외국에서 모여든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성전에 와서 성전세를 냈습니다. 성전에서 돈을 바꾸는 사람들은 환전을 해주는 일로 수수료를 받았고 이를 통해 부당한 이득을 취했습니다. 비둘기 파는 사람들은 더 악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바치는 제물이 비둘기였습니다. 비둘기는 성전 밖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검사관들은 성전 밖에서 가져온 동물들은 제물로서 불합격시키고 성전 안에 있는 곳에서 제물을 사도록 지시하였습니다. 이에 장사하는 자들은 과도한 가격을 제시하여 부당한 이득을 취했습니다. 이와 같이 성전은 물건을 매매하는 시장이 되어버렸고, 찬송과 기도 소리보다 장사하는 자들의 고함 소리로 강도의 소굴이 되어버렸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하여(14-17) 이렇게 정신없는 시장과 같은 성전에서 예수님은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14). 그 모습을 지켜본 어린 아이들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하며 예수님을 환호하였습니다. 이것은 메시야에 대한 당연한 반응입니다.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이런 어린 아이들을 보고 분노합니다(15). 이 모습을 지켜보신 예수님께서는 16절에 시편 8편 2절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구약의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말씀하십니다.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18-22) 성전 안에 있는 무화과나무는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이런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저주하시자 무화과나무가 말라버립니다(19). 나귀를 타고 입성하실 때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환호하던 이스라엘에게 정작 주님이 찾으시는 열매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야 할 열매는 믿음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구별된 제사장 나라로서의 믿음입니다. 그래서 21-22절에는 믿음을 말씀하시고, 특히 “산을 들려 바다에 던지는 믿음”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단순히 기도의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전이 있는 산, 예루살렘 성의 무너짐을 예언하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특히 “기도하면 다 받는다”는 것은 새롭게 성전을 재건하여, 성전을 다시 기도하는 집으로 되돌리는 것이 기도를 통하여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22).
적용: 예수님은 성전이 ‘기도하는 집’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에게 성전은 어떤 집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한 진리라는 것은 우리에게 사탄이나 인간의 어떠한 공격에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기쁨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합니다. 비록 천재지변이 있더라도 창조주 하나님에게 의지하는 믿음이 있다면 기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받는 고통은 아픔이 아니라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쁨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고유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쁨은 믿음과 같이 하기에 구원은 기뻐하는 자들 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 설 교 >
나를 새롭게 개혁합시다
마 21:12 / 이근수목사
서로 인사합시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은혜 많이 받으세요.”
오늘은 제 491 주년 종교개혁 주일입니다.
10월 31일 종교개혁일은 개혁교회가 태어난 생일날입니다.
그래서 천주교회와 개혁교회/개신교회로 나누어진 날입니다. 왜 나누어지게 되었나요?
그것은 당시 교회가 너무 잘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1517년 10월 31일 젊은 수도사요 교수였던 마틴 루터가 교회가 잘 못하는 것을 95개 조로 써서 비텐베르그 대학교회 대문에 게시하여 종교개혁이 시작되었습니다.
마틴 루터는 1483년 독일에서 태어났습니다. 1505년 22살 때 인문 학사 석사를 마치고, 1512년 29세 때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시편, 로마서, 갈라디아서, 히브리서를 수도원에서 강의 하였습니다. 루터는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독일어와 성경지식이 탁월한 교수였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성경에 없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루터가 문제를 제기하였지만 교회 책임자들은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대문에 대자보를 써 붙였습니다.
교회의 변질되고 잘못된 내용
1. 평신도는 성경책을 가질 수 없다.
루터 : 우리는 성경말씀을 가져야 하고 읽고 배우고 그대로 믿어야 한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말씀 대로 믿어야 한다.
2. 십자군 전쟁에 참여하면 구원 받는다.
루터: 이런 말은 성경에 없다.
오직 은혜로 [Sola gratia] - 신자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구원받는다.
3. 면죄부[면벌부]를 사면 죄용서 받는다.
루터 : 죄를 사해주실 분은 죄 없으신 하나님 뿐 이시다.
하나님 앞에서 [Coram deo] - 신자는 면죄부를 사야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회개하고 용서 받고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정직하게 살아야 구원받는다.
4. 죄 지은 자는 사제에게 죄를 고해야 사해진다.
루터: 죄를 용서해 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 이시다.
오직 믿음으로[Sola fide] - 죄인이 의롭게 되는 것은 사제에게 죄를 고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회개하여 용서받고 믿음으로 살아야 의롭게 된다.[요일1:9][롬1:17]
5. 마리아 무오설 - 예수님의 어머니로 죄가 없다. 하나님께 중보의 자격이 있으며 우리의 예배 대상이다.
루터 :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이며 원죄를 가지고 있어 중보 자격이 없고, 예배의 대상이 아니다.
6. 마리아 승천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승천했다.
루터: 성경에 그런 말씀이 없고 증인도 없다.
7. 교황무오설 - 교황은 죄가 없는 제사장이다.
루터: 예수님만이 죄가 없으신 제사장이시다.
만인제사장 [All gemeines Priestertum] - 모든 그리스도인은 왕 같은 제사장이다.[벧전2:9]
8. 연옥설 - 사람이 죽으면 연옥에 간다. 살아있는 가족이 속죄권을 사면 천국으로 옮겨 질 수 있다.
루터: 본인의 믿음으로 천국 간다.
9. 외경도 성경이다.
루터 : 성경 66 권 외에는 하나님 말씀이 아니다.
10. 종교회의 무오류성 - 종교회의는 오류가 없다. 종교회의를 부인하는 자는 이단이요 죄인이다.
루터: 종교회의도 오류가 있다. 성삼위 하나님과 성경만이 오류가 없다.
11. 성직매매
부란덴부르크의 제후인 Albrecht가 레오 10세 교황에게 많은 돈을 주고 성직을 사서 대주교가 되었다.
루터 : 교회직분 - 사제직을 돈 주고 사서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것은 죄다. 사제는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야 한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Soli deo gloria] - 신자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 [고전10:31]
.................................
루터는 교회가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게 행하는 것을 성경대로 바르게 고쳐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이것이 개혁입니다.
.................................................
저는 교회를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 날 중세교회가 성경에 어긋나게 행한 것을 루터가 시정하자고 한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의 천주교회는 어떻습니까? 루터가 지적한 것을 시정하였는가? 일부는 시정하였고 아직도 마리아 무오설, 마리아 승천설, 교황무오설, 연옥설, 외경을 믿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
종교개혁은 교회가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교회를 교회답게 회복시키는 운동입니다. 성경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며, 예수님을 닮자는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생명의 위협을 당하면서도 종교개혁을 한 것은 그의 가슴 속에 하나님의 열심이 불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종교개혁은 성경대로 믿음생활 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성경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따라합시다. 성경책을 가지고 다니겠습니다. 성경말씀을 읽겠습니다. / 성경말씀대로 믿겠습니다. / 성경말씀을 공부하겠습니다. / 성경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 / 성경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종교개혁은 신앙의 정상화입니다.
종교개혁은 진리에서 벗어난 것을 바르게 고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본질에서 이탈된 것을 바로 잡는 것입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성전정화 사건입니다. (마21:12-17- 22)
달리 표현하면 예수님의 성전개혁 사건입니다.
1. 성전 정화는 인간의 탐욕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명절 때가 되면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1) 성전에는 성전에서만 사용하는 돈이 따로 있었습니다.
각처에서 온 사람들은 이 돈으로 환전을 해야 합니다.
이 때 고환율 이익을 챙겼습니다.
2) 비싸게 바꾼 돈으로 짐승을 삽니다.
멀리서 걸어오다가 상처 입은 짐승을 제물로 받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은 이런 부패와 탐욕을 아시고 성전 안에 있는 환전소를 둘러엎으시고 동물을 쫓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이 왜 이런 일을 하셨을까요?
이 일은 단순히 성전에서 장사를 금하신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부정과 탐욕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2. 교회가 교회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너희가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책망하셨습니다.
강도의 소굴이 아닌 기도하는 교회[13]
교회는 기도하는 집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우리가 기도로 새 성전을 건축하였습니다.
우리가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믿었던 가난한 소년 류태영 어린이가 기도하여 응답받았던 것처럼 기도하여 응답받는 어린이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믿으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21]
산을 바다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어떤 복을 받습니까? [22]
믿고 구하면 다 응답 받습니다.
새벽과 금요 기도회에 나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강도의 소굴[13]
강도는 남의 것을 가로채는 자입니다.
오늘의 강도는 하나님의 것을 빼먹는 자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야 할 십일조나 교회행사비를 사사롭게 쓰는 자입니다. 이렇게 도둑질 하는 사람은 복을 받지 못합니다. 그가 하는 일이 다 안 됩니다.
사랑의 예수님[15] - 사랑하는 교회
예수님은 불의를 행하는 자는 성전에서 내 쫒으셨지만 환자들은 사랑으로 고쳐주셨습니다.
오늘도 믿고 기도하면 주님이 치료해 주십니다.
우리도 고난당하는 이웃을 주님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지난주 감사주일에 하나님께 바치신 사랑의 헌물을 이웃에 모두 전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19-21] - 열매 맺는 성도
시장하신 주님이 무화과 나무에게 가서 열매를 찾으셨으나 아무것도 얻지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나무를 저주 하셨습니다. 그러자 말라 죽었습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열매 없는 유대인을 말합니다.
오늘의 열매 없는 그리스도인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매를 맺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결 론
교회는 언제나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이어야 합니다.
성도는 도둑질 하지 말고, 기도하며, 주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아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종교개혁은 나부터 고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나부터 바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나를 새롭게 하고,
교회를 새롭게 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예수님의 예루살렘 성전 청결
마 21:12-17 / 사복음서를 보면 사복음서 전부가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성전을 청결하게 하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론 요한복음 2장에 나오는 사건은 공생애 초기에 성전을 청결하게 하신 사건이고, 나머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 기록된 성전 청결 사건은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에 행하신 사건입니다.
학자 간에는 예수님의 성전 청결 사건은 일회적인 사건으로서 공생애 끝에 한 번 있었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지만, 제가 볼 때는 요한복음 2장에 기록된 성전 청결 사건은 공생애 끝의 성전 청결 사건과는 다릅니다.
예를 들어, 채찍을 만들어 양이나 소를 전부 성전에서 내쫓으신 사건은 요한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성전을 청결하게 하시면서 바리새인들과 나눈 대화도 뚜렷하게 다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이 성전을 헐면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말한 후 그 말 때문에 말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즉, 46년에 걸쳐 지은 성전을 단 사흘만에 세운다고 하니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따진 것입니다.
하지만 공생애 끝에 행하신 성전 청결 사건 때에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너희가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말 때문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분노하게 되고 그 후 어떻게 예수님을 죽일 수 있을지 음모를 짭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음모에 의해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게 됩니다.
아무튼 우리는 예수님의 공생애는 성전 청결 사건으로 시작해서 성전 청결 사건으로 마치고 그 이후 십자가를 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성전 청결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시는지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전이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1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언급하십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임재하는 곳으로서 가장 거룩한 곳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따로 구별된 장소입니다. 그런데 성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만남입니다. 연합입니다.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요약하고 있습니다. 즉, 끊임없이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며 기도하는 곳이 성전입니다.
구약의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된 이유를 예루살렘 성전이 더럽혀진 것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그러므로 내가 예배를 받기 위해 예루살렘에 정한 성전을 멸망시키겠다. 너희는 내가 너희와 너희 조상에게 준 그 성전을 의지했지만, 내가 실로를 멸망시켰듯이 그 곳도 멸망시키겠다. 내가 너희의 형제인 에브라임 자손을 모두 쫓아 냈듯이 너희도 내 앞에서 쫓아 내고 말겠다”(렘 7:11, 14-15, 개정개역 및 쉬운 성경)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도 통분을 느끼십니다. 주님은 가슴이 파열하는 것처럼 괴로워하십니다. 예수님의 생애 가운데 이토록 분노하는 때는 없었습니다. 이토록 속상해하는 때도 없었습니다. 그분은 자비와 사랑이 끝이 없는 분입니다. 그분은 겸손하시며 오래 참으시는 우리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더럽혀진 성전에 거하실 수 없으셨습니다. 그분은 거룩하고 정결한 성전을 원하십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성전이 더럽혀진 것을 보시고는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시고 모든 짐승들을 몰아내십니다. 돈 바꾸는 환전상의 돈을 쏟으시고 상을 엎으십니다. 비둘기 파는 자에게 당장 성전에서 나가라고 호통치십니다. 주변의 의자들을 둘러 엎으시며 매매하는 자들을 쫓아내셨습니다. 성전 안에 있던 장사 물건들을 전부 밖으로 가져가게 하셨습니다.
성전을 청결하게 하시는 예수님의 거룩한 고통과 분노를 느끼십니까? 주님의 속상한 마음과 분한 마음을 느끼십니까?
그러면 주님은 왜 그렇게 분노하십니까?
13절을 보니 “너희는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고 있다”고 말씀하심으로 분노하신 이유를 대십니다. 즉, 성전을 탐욕의 장소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주께서 분노하신 이유는 구약에서 예레미야를 통해 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분노하신 것과 정확하게 같습니다. 성전을 통해 더러운 이윤을 보려는 것! 그것이 주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님의 분노의 원인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 장면에서 몇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다른 이방 신전에 가서 이렇게 분노하신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이방 신전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관심조차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의 관심은 주 하나님의 성전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의 격한 행동은 주 하나님의 소유인 성전이 더럽혀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건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신 때는 유월절이 가까온 때였습니다. 그때는 유대 지역 전역에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모든 유대인들이 며칠씩 여행하여 예루살렘 도시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성전세를 내고, 유월절 양을 준비합니다. 지금이 바로 그러한 준비를 하는 때였습니다.
따라서 전국에서 올라온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전세를 내고 있었습니다. 또한 유월절 양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오는 자들 중에는 그 먼 고향으로부터 직접 유월절 양을 가져오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장에 의해 흠이 없는지 점검을 받아야 합니다.
한편, 대제사장 가야바는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되던 해부터 성전 뜰에서 장사를 허락했습니다. 그러면서 막대한 이윤을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유대법에 따르면 20세 이상 성인 유대 남자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반드시 성전세를 내야 했습니다. 성전세를 내려면 성전 화폐 기준으로 반 세겔을 내야 합니다(출 30:13). 반 세겔은 로마 은전 두 데나리온 정도가 됩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한 데나리온은 일반 노동자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대략 이틀치 노동 품삯을 성전세로 내는 셈입니다. 그런데 성전은 로마 돈을 받지 않고 오직 성전 화폐를 받기 때문에 유대 백성들은 돈을 바꾸어야 했습니다. 또한 성전에서는 비둘기와 양과 염소, 황소 등 온갖 희생 제물로 쓸 수 있는 짐승들을 팔았는데 이 역시 성전 화폐인 세겔을 가져야만 살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제사장들과 상인들이 결탁을 하여 이윤을 남겨 나누기로 하였습니다. 환전상들이 성전 뜰에 들어와 앉아 폭리를 취하며 환전해 주었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세겔을 성전에 냅니다. 그러면 제사장들은 유대 백성이 세금으로 낸 세겔을 다시 환전상들에게 줍니다. 그러면 환전상은 또 폭리를 취하여 환전을 해 줍니다. 즉, 제사장들과 환전상들이 로마 돈을 끝없이 거두어들여 부를 쌓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편, 제사장들은 먼 고향에서 가져온 희생양들에 대해서는 불합격을 선포합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은 성전 뜰에서 파는 양들과 비둘기와 소와 염소를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때에도 폭리를 취하여 희생 동물들을 팔았습니다. 일반적으로 먼 곳에서 동물을 가져오는 순례자들은 힘없고 가난한 평민들이었습니다. 즉, 제사장들은 연약하고 취약한 순례자들의 무지와 약점을 이용하여 자기 배를 불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 드려질 예배를 수단으로 하여 인간의 탐욕을 채우는 기회로 삼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야 하는 성전이 더럽혀지는 것을 보고는 결코 용납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채찍을 들고 휘두르시며 상을 엎고 호통치시며 그들을 쫓아내심으로 성전을 정결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성전의 청결을 원하셨는지 제자들은 시편 69편 6절을 기억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요 2:17).
이 내용은 성전 정결을 추진하면 그로 인해 손해를 보는 자들로부터 많은 공격과 비방을 받게 될 줄을 알면서도 성전 정결을 추진했다는 뜻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초기와 말에 두번의 성전 청결을 하심으로써 처음부터 끝까지 성전의 대제사장들과 장사꾼들에게 철저한 미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성전에 종사하며 폭리와 특권을 누리던 자들과 장사꾼들이 예수님의 이러한 행위에 대해 지독한 증오와 미움을 갖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성전 청결 사건으로 인해 우리 주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히는 자리까기 이르게 됩니다.
우리 주님은 이러한 사실을 미리 다 아시면서도 성전의 거룩과 정결을 추진하셨습니다. 이는 주의 백성들에게 성전의 청결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생하게 증거하신 것입니다.
결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 나라의 의로는 성전이 정결하여질 수 없다는 것을 아시고 친히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자기 몸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이로써 그분이 이 땅에 오셨던 근본 목적인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목적을 이루셨습니다.
이에 요한복음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요 2:18-22).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로 오르사 하나님 보좌에 앉으심으로 성령을 보내십니다. 그 이후로 주의 보혈로 값주고 산 바 된자들은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면서 그들 몸이 성전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오순절 날에 이 땅에 오신 이후로는 복음을 통해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이 주의 성전입니다. 곧, 그들 마음에 주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임재하신 것입니다.
이에 바울이 선포합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내 자신이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라는 사실을 의식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 구원을 받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임하시며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거하기를 기뻐하시는 성전입니까?
하나님은 더러운 성전에 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들의 생명을 치르고 사신 성전을 결코 떠나지도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더럽혀진 성전을 향해 어떻게 하십니까? 네. 하나님은 성전을 청결하게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서 더럽혀진 성전을 향해 보이신 성전 청결 행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된 우리는 어떤 기능을 해야 합니까? 바울이 말합니다.
“너희는 성령의 전이라.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20).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보혈을 흘리셨습니다. 즉, 주의 보혈로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것입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특히 바울은 특히 우리의 ‘몸’이 성전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는 성령이 계시고, 따라서 우리 몸은 성령의 전인 것입니다. 네, 우리의 몸은 성전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모임은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인 여러분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까? 날마다 매 순간마다 내 자신이 성전인 사실을 의식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늘 이러한 질문을 해야합니다.
‘지금 내가 하려는 일이 과연 어린양 예수께서 그분의 보혈을 치를만한 가치있는 행동인가?’
지금 이 예배당 안에서 성인 등급을 받은 영화를 방영하고, 우리 모두가 이곳에서 그러한 영화를 본다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십니까? 아니면 분노하십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성전인 이 몸의 눈으로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지금 이 시대에 있어서 주의 백성들의 성전된 몸을 가장 더럽히는 것이 눈으로 더러운 것들을 보는데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귀는 어떠합니까? 여러분이 듣는 음악은 무엇입니까? 자녀들이 어떤 음악을 듣고 사는지 알고 있습니까? 과연 이 세상의 욕심에 빠져 떠드는 텔레비전, 스마트폰, 인터넷, SNS 내의 온갖 지저분하고 시끄러운 소리들과 장사꾼들의 소리와 귀신들의 거짓 음성을 들음으로 성전을 파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가 입으로 먹는 것은 성전된 내 몸을 더럽히지 않는 것들입니까? 우리 입으로 술을 마시는 것은 성전에서 술을 먹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담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몸에 담배 연기를 불어넣는 것은 주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을 담배 연기로 채우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발은 성전이 있어야 할 곳에 있습니까? 그 발로 성전이 결코 가지 말아야 하는 곳에 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도박장에 가거나 춤추는 곳에 가거나 향락의 자리에 가거나 이방 신전에 가거나 점쟁이들을 만난다면 성전을 더럽히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손은 어떠합니까? 그 손으로 더러운 돈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 손으로 타인의 여인의 몸을 만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 손으로 마귀가 만들어 놓은 쾌락을 위해 하루 종일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 손으로 아내를 구타하고 자녀들을 구타하는 것은 아닙니까? 그 손으로 사람의 피를 흘린 것은 아닙니까? 과연 그 손이 성전에 속한 것들을 붙들고 있습니까?
특히 고린도교회가 성령의 전을 더럽힌 경우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미움에 의해 성령의 전을 찢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음행으로 성령의 전을 더럽힌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고린도교회의 음행은 그 당시 이방 종교의 신전 창녀와의 육체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우상 숭배와 연관되어 육체적인 음행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따라서 미움과 앙심에 갇혀 성도들과 교제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면 그것이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고, 또한 세상의 마귀들에 의해 만들어진 더러운 문화나 악신의 세력에 물들어 우리 몸을 내어주어 음란 및 음행에 빠지면 그것이 성전을 더럽히는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역시, 우리 몸이 성령의 전인 사실을 선포하면서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고전 6:15-18)고 분명한 경고를 하였습니다.
이에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라” 경고하면서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고 분명한 입장을 알려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까? 그렇지 않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 예루살렘 성전을 청결하게 하신 것처럼, 채찍을 드시고 여러분을 때리실 것이며, 여러분의 삶의 상들과 의자들과 가구들을 무너뜨리실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에게 호통을 치실 것이며, 그럼에도 더러움을 고집한다면 여러분과 동행하지 않고 마귀에게 여러분의 삶을 내주실 것입니다. 이에 마귀들이 여러분의 삶을 맘껏 짓밟을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주 예수님의 성전 청결은 궁극적으로 우리를 위함이라는 사실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청결하게 한 것은 결국 주의 백성을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히브리서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을 징계하여 거룩하게 만드신다고 알려줍니다. 즉, 독생자의 생명을 치러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무에 우리에게 회초리를 드시는 것입니다.
5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9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
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히 12:5-11, 14)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 생명을 치러 사신 주의 백성이라면 우리가 우리 몸을 더럽힐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회초리로 때립니다. 징계하십니다. 힘들게 만드십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짓밟히도록 하십니다. 원수들 앞에서 수치를 당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만일 성전을 더럽히는대도 아무런 징계가 없다면 그 사람은 주께서 그분의 보혈로 값주고 산 사람이 아닙니다. 그냥 버려진 사람입니다. 구원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로마서 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내버려두신 인간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맘대로 죄를 짓고 그 몸을 더럽혀도 하나님께서 관여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보혈로 사신 구원 받은 사람이 주의 성전을 더럽히면 결코 그냥 놔두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분노와 징계는 우리에게 유익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몸으로 무엇을 해야 합니까?
13절을 보면,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마 21:13)고 말합니다. 성령의 전인 우리는 그 몸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주님을 만나는 것이며 주님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전으로서 끊임없이 기도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바르게 기도하려면 성경을 잘 알아야 쉬지 않고 올바르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뜻을 정확하게 알아야 쉬지 않고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눅 18:1).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이처럼 성전의 주요 목적은 기도입니다. 즉, 우리의 몸은 성전이기 때문에 우리는 제사장으로서 늘 기도해야 합니다. 특히 제사장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중보기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다른 사람들을 위해 중보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14절을 보니 “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셨습니다.” 즉, 성전은 복음의 능력을 나타내는 곳입니다. 여러분은 성령의 전으로서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쳐야 합니다. 눈먼 자들의 눈을 열어주고 걷지 못하는 자들이 걷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14절의 역사는 구세주이신 예수께서 사람들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한 것입니다. 즉, 성전은 죄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입니다. 만일 죄 문제가 해결되면 천국이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며 그리스도를 높일 때 우리의 삶에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러면 주변 사람들이 눈을 뜨고 걷게 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는 그들의 어두운 삶에 성전된 여러분의 삶이 빛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삶은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야 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는, 16절을 보니, 성전은 찬미를 하는 곳입니다. 주께서는 찬미를 가장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곳이 성전입니다. 이에 성전된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감사와 찬양입니다. 우리는 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감사하며 찬양해야 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시 34:1).
주님께 여러분의 삶과 몸을 드려 그 성전이 거룩하여지면 우리의 마음과 몸은 끝없는 기도하며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상태에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생명의 능력과 복음의 능력이 이웃들에게 흘러나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처럼 우리의 몸은 기도의 집이며 성도의 교제의 집이며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는 집이며 치유와 회복의 집이며 찬양의 집이며 지성소에 해당하는 예배의 집이어야 합니다. 즉, 우리 몸은 하나님과의 거룩한 연합이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성전의 역할이 온전할 때 나타나는 복을 선포합니다.
“또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를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사 56:6-7).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참된 부흥의 역사는 공동체가 함께 거룩하게 타오를 때 나타납니다. 즉, 각자의 성전이 거룩하여지면서 공동체 전체인 교회가 주 하나님께서 거하시기에 기쁜 곳이 되면 하나님께서 생명과 복을 충만하게 내리실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는 이러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달려갈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우리 모두가 각각 성전의 역할에 충실하기 바랍니다. 나아가 함께 거룩한 공동체로 세워지기 바랍니다. 만일 우리가 다 함께 그리스도의 몸인 이 교회를 거룩하게 세운다면 하나님께서 크게 기뻐하시며 한량없는 복을 우리 모두에게 베푸실 것입니다. 우리의 몸과 삶으로 주님의 참기쁨이 되는 여러분의 삶과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2의 종교개혁
마 21:12-13 / 오필재목사
요즘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사람들의 활동이 많이 축소되었고, 따라서 회사, 장사, 비지니스에 있어서도 많은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일본과 동경은 거리에 나가보면 예전처럼 다시 가게도 일도 활발해지고 점점 회복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침 일찍 전철을 타보니까 예전처럼 사람들이 빽빽하게 타고 출근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럽도 다시 감염자가 늘고 한국도 아직 조금씩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위기가운데서 우리는 배후에서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다시 인식해야 하고 주님의 경고가 내려지고 있는 것을 들을수 있어야한다.
세상에 종교가 많지만 세상의 종교는 모두 인간이 외롭고 걱정되고 두렵고 도움을 받고 싶고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고 위로 받고 싶어서 인간이 만들어서 섬기는 우상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제일로 중요한 활동이며 가장 중심되는 활동이며 누구나 하나님께로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셔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 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나갈 수 없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죽었다가 부활하시고 승천 하신 후에 이 땅에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들이 세상에서 나와서 교회로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며 구원의 삶을 이루어 나갔습니다.
그런데 1,500년 동안 기독교가 이어져 내려오면서 중세시대의교회가 많이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변질이라고 하는 말은 본래의 모습이 바뀌고 부패해졌다는 말이다.
신선한 식료품도 유통기한이 한달 지나고 나면 썪고 상하고 부패해서 변질되지요. 그래서 먹을수가 없어서 비싸도 아깝지만 버려야한다.
교회도 복음으로 살아야하는 본질에서 벗어났다. 1500년경 당시 로마 카톨릭 기독교는 전 세계가 로마 교황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로마카톨릭교회가 많이 세속화 되었다.
로마카톨릭교회 로마교황청에서 교황이 전세계 모든 교회를 다스리고 관리하고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교회가 부동산을 많이 소유하여 부자가 되고 왕실에도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러다가 큰 성당을 건축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였습니다. 로마 카톨릭교회는 면죄부라는 것을 만들어서 팔았습니다. 돈을 많이 모았습니다. 면제부라고 하는 말은 문자 그대로 죄를 사면해주는 표를 말합니다.
카톨릭교회는 죽어서 지옥에 가기전에 지옥과 천국의 중간에 있는 `연옥'에 잠시 머문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이 면죄부를 사면 이 기간을 단축시키거나 없앨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사랑하는 가족이 예수 믿지 않고 죽었다면 남아 있는 가족들이 죽어서 연옥에 가 있는 사람을 위해서 돈을 주고 면죄부를 사면 그 연옥에 가 있던 사람이 낙원으로 옯겨진다라고 가르쳤다. 이것은 성경에 없는 개념입니다.
이렇게 로마 카톨릭중세교회가 부패했을 때, 교회의 본질을 회복 하려는 종교개혁이 500년전에 용감한 마틴 루터 신부에 의해서 결행되었다.
종교개혁자들에 의해서 기독교 종교개혁이 단행된 이후에 기독교 교회는 성경 말씀대로 본질적으로 회복되고 발전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에 두고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예배가 자리 잡게 되었다.
성경이 각 나라 언어로 번역해져서 평신도들도 성경을 읽고 진리를 올바로 깨닫고 진리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그런데 종교개혁이 이루어진후 500년이 지난 지금에 정직하게 돌아보면 기독교 교회가 여러가지로 변질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기독교 교회가 회복되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전제 조건입니다. 세상 모든 교회가 진리에 바로 서 있지 못하면 하나님과의 관계도 바로 설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진리를 떠난 교회, 복음을 벗어난 교회에 임재하실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분의 사랑과 은총을 나타내실 수 없습니다. 그런 교회, 그런 성도들을 천국에서 받아들일수가 없습니다. 천국의 비전을 주실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진리에 올바로 서야 합니다. 교회가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되어야 합니다.
21세기에 들어와서 지금 우리는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컴퓨터, 인터넷, 디지털의 발전으로 삶이 바뀌고 문화가 변하고 사람들의 사고체계가 뒤 바뀌고 있다.
부모와 자녀들의 세대차이도 엄청나게 커지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변질될 수 없습니다.
이 진리를 예수님이 가르치신 사건이 나온다.
오늘 본문.
오늘 기록된 성전 청결 사건은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에 행하신 사건입니다.
당시에는 성전에서 제사드리기 위해서 제물인 비둘기를 팔고 성전세를 내기 위해 화폐를 성전에서 바꾸고 할 때 제사장들과 장사하는 사람들이 짜고 이익을 남겼다.
이렇게 성전이 상업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하여 세속화된 것을 책망하신 사건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채찍을 만들어 양이나 소를 전부 성전에서 내쫓으시면서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너희가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다”고 책망하셨다.
우리는 예수님이 사역을 성전 청결 사건으로 마치고 그 이후 십자가를 지시는 것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성전 청결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시는지 분명하게 깨닫게 되는것입니다.
교회는 거룩하고 성결해야하며 오직 진리에 바로 서야한다.
교회의 세속화를 회개하고 교회의 거룩성과 영성을 회복되어야한다.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복음이 변질되는 것은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의 말씀을 변질시켜서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떠나시고 즉시 심판을 받았습니다.
기독교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변질시킬때 교회는 본질을 잃어버립니다.
현대교회도 많이 세속화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진리에서 벗어나 있고 떠나 있는 교회와 지도자 성도들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1~2
사데 교회의 세속화 된 것을 주님이 책망하셧다.
"네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말만 살았지 실상은 죽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이것을 일컬어서 현대말로 '세속화'라고 이야기합니다. 교회와 크리스천의 세속화.
교회와 크리스천들이 세상을 따라가는 것.
성경은 교회가 세상에 영향을 주는 존재여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오히려 세상의 영향에 좌우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게 사실이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대신 세속화되어 세상과 교회가 구분이 없게 되어버린 교회들이 많습니다. 세상사람들이나 교인들이 별 차이가 없다.
세속화되어 가는 교회의 모습.
오늘 교회의 세속화는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 첫째 설교문제.
성경적인 진리를 그대로 전하지 않는다, 세속적인 목회자들은 일반사회의 주류에 따라가며, 교회를 찾는 이들이 귀를 즐겁게
성경가치를 바탕으로 설교를 하지 않는다.
우리 아야세교회는 오직 성경만을 진리로 전하고 가르치며 진리의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교훈하고 있습니다.
저의 사명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성경을 바로 가르치고 전해서 복음 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는 종교다원주의입니다.
영어로 WCC 세계기독교연합회,
전 세계기독교가 연합하자. 그래서 한국도 주요교단이 가입되어있다. 이 WCC 가 종교통합을 주장. 서로 다른 종교가 다투지 말고 연합하자라는 주장이다. 로마카톨릭교황이 주체가 되어서 함께 추진되어왔다.
종교다원주의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죄 용서받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종교를 통해서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론입니다.
불교나 힌두교 마호메트교 신자들도 자기들의 신앙을 통해서 절대자인 하나님께 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나중에는 다 같이 만난다고 주장, 그러니 앞으로는 교회는 극성맞게 전도하지 말아라는 것. 이런 엉터리 주장.
금년 6월 세계종교통합결의 예정. 코로나바이러스로 연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
-동성애 문제도 심각하다.
세계 여러교회들이 동성애를 받아들이고 있다. 동성애자에게 목사안수를 주는 주요교단 교회도 많다. 동성애자를 불쌍히 여기고 주님사랑으로 품고 기도해주고 회개하도록 인도 해야하지만 창조질서에 어긋난 것을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성경을 위반하는 심각한 죄악이다.
-또 놀라운 사실은 20년전부터 미국 가톨릭교회가 다시 `면죄부' 발급에 나서고 있어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고 한다.
종교개혁운동 가톨릭 교회는 면죄부 판매를 금지했었다.
당연한 일이지요.
그런데 2000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새천년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주교들에게 면죄부 발급 권한을 주었고, 베네딕토 16세 교황 체제가 들어서면서 전세계적으로 면죄부 발급이 보편화 되고 있다고 한다.
- 지금 이 세상은 기독교 교회가 이렇게 타락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슬퍼하십니다. 그래서 지금은 제2의 종교개혁이 이루어져야한다.
2000년전에 세워진 초대교회로 돌아가야한다.
사도핸전 2장에 기록.
그들은 네가지 일에 힘썼다. 이것은 후시대의 교회들이 본받아야 할 일들이다.
첫째로,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진리를 올바르게 가르치고 배워야한다. 세상은 타락했기때문에 교회에 와서 목사님으로부터 성경을 열심히 배워야한다.
가르침이 혼란하면 교회가 혼란해진다. 요즘 교회들은 가르침이 혼란하다.
둘째로, 그들은 서로 교제하기를 힘썼다. 그것은 주께서 명하신 대로 천국 가족으로서 서로를 돌아보고 사랑하는 교제이다.
교인들 사랑은 세상사람들이 하는 사랑과 다르다.
사람의 사랑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땅의 사랑이 아니라 하늘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서로 떡을 나누어 먹으면 식탁교제와 성찬식을 했다
그들은 또 성찬식을 행했고, 또 성도들 간에 서로 떡을 나누어 먹으며 식탁교제도 힘썼다. 우리교회도 예배후 사랑의 애찬을 나누지요.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못하지만요.
넷째로, 그들은 기도하는 일에 전적으로 힘썼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자신의 영적 성장 곧 성화를 위해, 영혼 구원을 위해, 참된 교회들의 건립을 위해, 또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을 잘 대처해 나가기 위해 기도에 힘써야 한다. 기도는 신앙생활의 힘의 통로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로 모여서 진리의 생활을 한다면 하나님은 교회와 그리스인들을 기뻐하실 것입니다. 복음으로 돌아가야합니다. 아멘.
무화과 나무를 보시고...!
마 21:18-19 / 고신일 목사
할렐루야!
오늘이 겨울잠 자던 동물들이 깨어나 꿈틀거리기 시작한다는‘경칩’입니다.
요즘 낮 기온이 많이 따뜻해졌는데, 이제 봄이 되었습니다. 봄을 맞이하게 된 것에 감사합니다.
주일을 뺀, 부활절 이전의 40일을 ‘사순절(四旬節, Lent)’이라 합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고난과 부활을 기억하며 사순절을 경건하고 구별되게 보냅니다.
부활절이 주일이기 때문에 사순절은 매년 ‘수요일’에 시작됩니다.(지난 1일, 수요일에 시작됨)
오래전 교회에서는 사순절이 시작되는 날 죄를 참회하는 뜻에서 머리에 재를 뿌렸기 때문에
사순절 첫날을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라고도 합니다.
< 김영순 외, 『축제와 문화콘텐츠』 (서울: 다할미디어, 2006), p.48 및 신동운,
『예수를 만나러 유럽에 간다』 (서울: 스타북스, 2008) p.262. 참조 >
사순절 기간 주일 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던 마지막 한주간의 행적을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 예수님의 마지막 행적과 가르침들을 통해 큰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모두 성경 높이 들고 … 믿음을 고백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고백한 대로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열매가 중요하다>
피조물인 인간에게는 <‘A’는 사실이고 진리다. ‘B’는 거짓이다.> 라는 명제를
‘완전/완벽하게’ 판단할 능력이 없습니다.
인간의 지식과 지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거짓으로 알고 있던 것이 진실로 밝혀지고 진실로 믿던 것이 거짓으로 밝혀질 때도 있습니다.
일상에서 듣는 뉴스만 봐도 헷갈리는 일이 많습니다.
- 어떤 날은 커피 한 잔도 매일 마시면 몸에 해롭다는 기사가 나오다가 며칠 후에는
하루에 커피 두, 세 잔 정도는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아침에 먹는 사과는 건강에 좋다고 하고 저녁에는 별로라고 해서 그동안 밤에 사과를 먹지 않았는데 얼마 전에 보니 상관없다고 합니다.
- 비타민, 오메가 3, 프로폴리스 등 건강을 위해 섭취하는 것들도
뉴스와 신문을 보면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 판단이 안됩니다.
살찌면 안 된다더니 … 약간 통통한 사람이 건강하게 오래 산다고 합니다.
요즘은 오래전 큰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오랜 기간 복역한 후에 누명을 벗은 사람들 소식이
자주 들립니다. (삼례 나라슈퍼 살인사건, 익산 약촌 오거리 살인사건 등)
이처럼 인간에게는 진리를, 사실을 명확하게 규정할만한 능력이 사실 없습니다.
다만 ‘합리적 비판’능력을 통해 사실에 가깝게 갈 수 있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자들은 적절한 비판과 의심이 인간의 진보를 돕는다고 말합니다.
< 이한구, 『역사학의 철학』 (서울; 민음사, 2007), p.199. 참조. >
그렇지만 우리가 ‘합리적 비판’이라 부르는 비판도 합리적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 믿는 한 사람의 태도를 보고 생활을 보고 교회에 환멸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그런 사람은 나쁜 사람입니다.
이 땅에 수많은 교회가 있는데, 수많은 예수 믿는 사람이 있는데 …
단 한 교회의 모습을 보고 전체 교회를 비판하고 … 단 한명의, 혹은 몇 사람의 모습을 보고
예수 믿는 사람 전체를 비난하는 사람이 있는데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교회와 교인들에 대한 얘기만이 아닙니다.
특정 지역 사람, 특정 학교 출신, 특정 일을 하는 사람, 어떤 것을 좋아하는 사람 … 등을
함부로 평가, 비판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신과 출신이 다른 사람을 알게 되었을 때 … 자신의 가치관과 맞지 않은 모임을 알게 되었을 때 …
다른 사람들이 자신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
사람들은 쉽게 그 단체 / 그 개인에 대해 결코 합리적이지 못한 비판을 쏟아냅니다.
어느 기관 / 어느 개인이든지 한쪽만 보면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거룩한 성자라도 찾으면 오점(汚點)이 있습니다.
잘 훈련된 성도가 모인 칭찬 받는 교회라 해도 부족함이 있고 잘못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전체로 확대해석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성경 많은 부분에 할애되어 소개되는 고린도 교회도 ‘문제가 많은’교회였습니다.
- 성도들 간에 싸움이 있었습니다. (고전 6:1)
- 하나 되지 못하고 파가 나뉘어 있었습니다. (고전 3:3~4)
- 간음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고전 5:1)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심각한 죄악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고린도교회를 향해
“…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 …”(고전 1:2) 이라 격찬했습니다.
오점(汚點)이 많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이었지만 바울은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들을 보았습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을 … 다른 모임을 … 하나님의 섭리 관점에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물론, 반대의 시각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나 한 사람이 전체 교회를 비판받게 할 수도 있고, 나 한 사람이 예수 믿는 모든 사람들을
비난받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각자 ‘어떻게 사는가’에 신경 써야 합니다.
<언제 맺을 것인가?>
우리가 ‘종려주일’로 지키는 부활절 1주일 전 날,
감람산 벳바게를 거쳐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신 예수님은 (마 21:1)
성전을 들리신 후 (마 12:17) 다시 성 밖으로 나가 ‘베다니’라는 곳에서 하룻밤을 보내셨습니다. (마 21:17)
그리고 다음날 베다니에서 다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시던 예수님은 …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마 21:18)
예수님이 머무셨던 베다니는 ‘예루살렘으로부터’3k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당시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벗어난 변두리였고 …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동네 이름 ‘베다니(베트 아이야, Beth‘aiyyah)’도 히브리어로 ‘가난한 자의 집’을 뜻했습니다.
< 『비전성경사전』 (서울; 두란노, 2011). p.501. 참조. >
성경에 소개된 베다니에 살던 사람들도
- 한센병(나병) 환자 시몬 (마 26:6)
- 나사로의 가족 등 (요 11:1)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 2005년 3월 21일 국민일보 29면 참조 >
그런 동네에서 하루를 묵으셨기 때문인지 예수님은 식사도 하지 못하셨던 것 같습니다.
배가 고프셨던 예수님은 길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다가가셨습니다.
그러나 잎사귀 외에는 아무 것도 찾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마 21:19)
그러자 무화과나무는 곧바로 말라버렸고 제자들은 갑자기 일어난 이 일을 이상히 여겼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던 이때는 3월 중순부터 4월 초 쯤 입니다.
무화과나무에 먹을 만한 열매가 열리는 계절은 보통 6월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열매를 찾으셨을 때는 열매가 열리는 계절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때가 아닌데 열매를 찾으셨던 예수님의 오늘 행적을 근거로 ‘예수님을 믿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열매가 열리는 때가 아닌데 열매가 없다고 저주하신 예수님은
윤리적으로 잘못된 것이라 여깁니다.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도 그가 지은 책 “Why I am not a Christian? 나는 왜 크리스챤이 아닌가?”
예수 믿지 않은 이유를 제시할 때 이 말씀을 예로 들기도 합니다.
<Bertrand Russel: 1872-1970): 영국의 정치가, 철학자, 수학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
그러나 연세대학교의 명예교수 민경배 박사는 그의 책에서 말했습니다.
“역사 안에서는 불가피라고 하는 것이 없다. 주님 앞에서는 준비가 아직 되지 아니하였다던가
아직 더 있어야 한다던가 하는 그런 말이 성립하지 않는다.
주님이 나타나시고 보시는 그 때 그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이다.”- 민경배
< 민경배, 『역사와 신앙』(서울; 연세대학교 출판부, 1998), p.67. 참조. >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눅 6:44)
어떤 열매를 맺느냐가 하나님 앞에 우리가 어떤 자녀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 기도의 열매를 맺기 원합니다.
- 전도의 열매를 맺고 싶어 합니다.
- 내가 봉사하는 일, 헌신하는 사역, 물질을 드리며 … 그 모두를 통해 열매가 생기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한 가지 우리가 간과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무슨 열매를 맺느냐도 중요하지만 ‘언제’ 열매를 맺어야 하는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필요로 하시는 때 … 하나님이 열매 맺기 원하시는 때에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금 쓰기 원하시는데 나는 아직 덜 익었다고 … 준비가 아직 안 되었다고 …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 잡아 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열 처녀 비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 25:1~13)
열 처녀가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등을 들고 준비 중이었습니다.
신랑이 오는 시간이 늦어지자 다들 졸다가 밤중에 신랑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열 처녀 중 다섯은 등과 기름을 다 가지고 있었기에 곧바로 신랑을 맞으러 갔지만
남은 다섯은 기름이 없어서 기름을 구하다가 신랑을 놓쳤습니다.
열 명 다 등을 들고 신랑을 기다렸습니다.
열매를 맺어야겠다는 마음은 열 명 모두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섯은 어느 때든지 신랑을 볼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다섯은 그 때 준비가 안 되어 있었습니다.
시간적으로 신랑이 온 때가 부적절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오는 신랑을 가로막거나 돌려보낼 수도 없었습니다.
또 자신들이 기름을 준비하지 않고 신랑보고 왜 하필 이 때 왔냐고 탓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달란트 비유도 있습니다. (마 25:14~30)
주인이 타국으로 가면서 세 명의 종에게 각기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한 달란트씩을 주었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다시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겼고, 두 달란트 받은 종 역시 두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받은 한 달란트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인이 돌아와 결산을 했습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았던 종들은 각각 두 배의 이윤을 남겼기에 칭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한 달란트를 그대로 간직했던 종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주인은‘언제쯤 돌아올 테니 그 때까지 이윤을 남기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두 종은 주인이 언제 올지 몰랐지만 불현 듯 주인이 왔을 때 이윤을 남겨두었습니다.
물론 한 달란트를 그대로 남겼던 종도 주인이 너무 빨리 돌아왔다며, 핑계를 댈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때는 늦었습니다. 열매 맺지 못한 종이었을 뿐입니다.
열 처녀 비유를 말씀하셨던 예수님은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마 25:13)
또 성경은 이렇게도 전합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 3:10)
종이라면, 주인이 필요할 때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군인이라면, 전쟁이 일어났을 때 싸워야 합니다.
한 밤 중이라 안 된다고 … 이른 아침이라 곤란하다고 …
지금은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 핑계를 댈 수 없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 할 일에 대해, 갈 곳, 가질 것, 내일 … 에 관심이 많지만
그러나 오늘 하나님께 들을 칭찬에는 무관심합니다.
- 앞으로‘넉넉한 물질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지만 오늘 의미 있게 돈 쓰는 데에는 무지합니다.
- 언젠가 영향력 있는 자리에 오르기를 바라지만 지금 당장 남을 돕는 일을 하지는 못합니다.
- 명예로운 한 평생 살기를 기대하면서 지금 스스로를 품위 있게 가꾸는 일은 외면합니다.
우리는 먼저 아니면 지금 내가 맺어야 할 것을(열매를) 위해 관심 가져야 합니다.
한 해를 품위 있게 살자고 목표를 정했지만 오늘 하루가 하나님 앞에, 사람들 앞에 품위 있지 못하면
한 해를 마무리 할 때 남는 것은 아쉬움과 후회뿐일 것입니다.
횃불은 들고 있는 사람의 2~3미터 주변밖에 비추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런 등불을 들고도 먼 길을 갈 수 있습니다.
한걸음 한 걸음 내딛으면 등불이 그 한 걸음 한 걸음의 바로 앞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코뿔소는 시력이 나빠서 전방 약 9m밖에 보지 못한답니다.
그런데도 시속 48km의 속도로 뜁니다.
순간순간 눈앞에 보이는 일들에 최선을 다하는 특성이 코끼리를 둔하고 육중한 존재가 아니라
날렵하고 매서운 동물로 만드는 것입니다.
< 어윈 맥머너스, 『코뿔소 교회가 온다.』(서울: 두란노, 2004), p.127. 참조. >
가정에서, 일터에서, 학교에서 … 여러분이 맺어야 할 열매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눈앞에 있는 것부터 성실하게 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10년 후를 위한 청사진도 가져야 하고 먼 미래를 위해 큰 꿈도 세워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 일지 모르지만 … 주님 다시 오실 그 때에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가정에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오래 참고, 시기하지 않으며, 무례히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전 13:4~5)
지금 일터에서 하나님 마음에 합하게 일해야 합니다.
땀 흘려 벌고, 최선을 다해 베풀며 하나님께도 자원하는 마음으로 넉넉히 드려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 … 오늘 편안하고 넉넉한 분이 있는 가하면 기가 막힌 일 앞에 탄식하는 이도 있고,
캄캄한 상황에 놓인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내가 당장 눈앞에 있는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행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 계획한 공부, 오늘 계획한 일들 … 미루지 말고
이 하루가 헛되지 않도록 성실히 사는 사람에게 미래가 보장되는 것입니다.
품위 있게 신앙생활 하는 것 … 품위 있는 사람이 되는 것 …
오늘 하루가 품위 있어야, 삶의 품위가 완성됩니다.
판단하고 평가하고 비판만 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못합니다.
기름을 준비하고 신랑을 맞았던 처녀들처럼 …
받은 달란트로 많은 이윤을 남겼던 종들처럼 …
지금 눈앞에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비록 9m 앞밖에 볼 수 없지만 열심히 뛰면서
그때 그때 상황판단을 하며 뛰어가는 코뿔소처럼 최선을 다해 달려가야 합니다.
요즘, 절망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주저앉아만 있습니까. 이웃 나라에서 우리를 자빠뜨리려고 애쓰고 있는데 …
그렇다고 우리가 그대로 당하고 있습니까.
물론 기막히지만 열심히 살아간다면 … 기도하는 사람이 있는 이 나라와 이 땅이
하나님의 은총의 날개 아래 있음을 믿습니다. 우리는 당당함을 가져야 합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이 열매를 찾으실 때 드릴 수 있도록
매일 매일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열매 맺는 삶을 산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런 삶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