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에 베이다
김이안
스윽-
종이 한 장이 스친 순간
손끝에서 가느다란 핏물이 비어져 나왔다
물고기 비늘처럼 돋아나는
비릿한 통증
오후 두 시의 나른한 날빛 속에
희끗, 그의 흰 등이 보이다
사라진다
뒤늦게 비어져 나오는 신음을 삼킨다
베인 줄도 모를 만큼 무뎠고,
무뎌야만 했을 것이다
나를 오랫동안 끌고 다닌 것은
모호한 실금들,
나는 혼자 질문하고 혼자 대답했다
그리고, 질문하지 않고
대답하지 않았다
스윽-
붉은 핏물을 닦아낸다
나는 하얀 종이처럼 스쳐 지나가기로 한다
- 김이안, 시 '종이에 베이다'
모르고 지나친 작은 상처들이 어느 순간 엄습해올 때가 있습니다.
스윽, 손가락 핏물을 닦듯 혹은 무딘 듯
나를 진정시키며 다시 지나가는 날들입니다.
첫댓글 초보시절 시험지등사하려고 철필로 긁어서 검은 기름 칠한 후 시험지를 세다가 많이도 베었제..종이질도 안 좋아서
힘도 없는 누런 시험지용지에 베이다니... 요즘이사 복사기에 기름 묻힐 일도 없고...벨 생각 다 나게 맹그는 그대...
벌주라도...ㅎㅎ 그래도 웃어지네...덕분에..오래간만에 컴앞에 앉는다.. 시간은 오래 걸려도 이렇게라도 옛 리듬은
살려야지..이 또한 욕심인데..
참 그땐 그랬지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