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년 전, 너무나도 추웠던 서울의 겨울. 1964년 포장마차 골목에서, 20대 구청직원인 나는 25세 대학원생인 안 씨와 함께 술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허름한 옷차림의 남자를 우연히 만나게 되죠. 갑자기 이 남자가 자신이 오늘 저녁을 살 테니 먹자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녁 살 돈이 과연 있을는지… 믿을 수 없어 가장 비싼 것을 시켜봅니다. 남자는 흔쾌히 비싼 통닭을 시켜주었습니다. 어느덧 이렇게 셋이 함께 밤새 술자리를 갖게 되었습니다.
김승옥 작가의 <서울, 1964년 겨울>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남자의 돈은 병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판돈이라는 것을 알게 되죠. 남자는 이 돈을 기어코 오늘 밤 다써버리겠다고 말합니다. 세 사람은 밤에서 새벽까지, 서로 무심히 만나고 헤어집니다. 밤새 많은 대화를 주고받지만, 각자 다름을 확인할 뿐 아무런 사회적 연대감이나 동질감도 느끼지 못합니다. 함께 있지만 쓸쓸하고 춥기만 한 겨울의 밤이었던 것이죠.
혼자 있기 싫다고 하던 30대의 남자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사내들은 모텔에서 각자의 방으로 들어갑니다. 다음날, 30대 남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되고 나머지 둘은 각각 헤어져 자신의 길로 돌아갑니다. 두 사람은 크게 놀라지도, 슬퍼하지도 않습니다.
누가 이 시대의 청춘을 의미 없게 만들었을까요? <서울, 1964년 겨울>에서는 산업화와 근대화의 물결이 몰아치는 1960년대 서울에 사는 젊은이들의 방황을 엿볼 수 있습니다. 공동체 의식이 무너지고 고향을 상실한 그 시절의 젊은이들. 이들은 근대 자본주의의 이념에 선뜻 동조하지도 못하고 무너지는 전통에 대한 미련도 갖지 못합니다. 이들이 개인화되면서 겪는 방황은, 회의주의자인 안과 냉소적인 나의 쓸데없는 대화 속에 드러납니다. 그러나 소외되고 방황하는 이들의 활동무대는 겨울 밤, 여관이나 술집, 밤거리일 뿐이죠.
하지만 진정 그들이 정말 그 죽음에 무심할 수 있었을까요? 서울거리의 소시민인 세 사람의 대화와 마지막 행적은 자신의 삶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겨우 20대인 두 사내는 ‘우리가 너무 늙어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 라고 자조하는데요. 냉소적이고 회의적인 생각으로 가득한 그들의 이면에 들끓는 ‘진지한 삶에 대한 갈망’이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판돈으로 밤거리에서 떠돌다 돈을 불구경하는 화재 현장에 던져버리고 여관에서 자살하는 가난한 30대 중반의 서적 외판원, 주인공인 구청 직원이나 부잣집 대학원생이 느끼는 것은 너무 일찍 나이 먹어버린 한국 시민사회의 쓸쓸한 자화상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소설은 1965년에 발표되어 많은 화제를 낳았습니다. 여기에서는 김승옥 작가 특유의 개체와 개체와의 관계, 즉 ‘인간관계’가 중요한 주제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함께 있지만, 함께 있지 않는 듯한 쓸쓸하고 차가운 겨울의 느낌이 물씬 풍깁니다.
1960년대 젊은이들의 소외의식과 방황을 감각적 필체로 담은 <서울, 1964년 겨울>. 비록 무려 59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까지도 사회에 만연하는 군중 속의 소외와 허무를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2023년에 던지는 김승옥 작가의 메시지에 한번 귀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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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1964년.. 초등4학년 시절 기억나는 담임 "우"선생님.
요즘 같아서는 상상도 못할 겁니다. 직전 시험 성적보다 떨어진 만큼씩,, 교단에 꿇어앉아 발바닥에 매를 맞았었다. 그아픔은 공포!
발바닥 안맞으려고 무지하게 애썼던 추억의 우돼지(?) 선생님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