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떨어진 곳, 그곳에서 길을 묻다…
■여정
양근성지-물안개공원-6·25 양민학살 현양비(신앙선조 순교터)-읍사무소(권철신 형제 생가터)-갈산-남한강 바라보며 걷기(약 7km, 3시간 소요)
한반도에서 처음 신앙의 겨자씨가 떨어진 땅, 양평. 비록 지금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회자되는 ‘양평’이지만, 이곳은 오래 전 한국교회의 창설주역인 권철신과 권일신의 생가가 있는 ‘신앙의 땅’이었다. 양평의 길은 오늘도 우리에게 ‘어서 오라’ 손짓하고 있다.
▶ 신앙이 숨 쉬는 양근성지
양근성지(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오빈리 173-2번지, www.yanggeun.org)는 이곳 신앙의 땅, ‘양평’에 위치해 있다. 성지는 마치 남한강과 사랑에 빠질 요량이라는 듯 호반과 꼭 안고 떨어질 줄을 모른다.
양평의 신앙길은 이곳 ‘양근성지’가 시작이다. 인적이 드물어 한산한 이곳에서 순례객을 가장 먼저 반갑게 맞이하는 이는 십자가의 두 예수다. 성지 전담 권일수 신부가 직접 구해온 나무 십자가에 매달린 두 예수의 눈은 각각 남한강과 성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성지를 나와 오른쪽으로 돌면 ‘떠드렁산’(섬)을 만난다. ‘산이 떠내려 왔다’고 해서 떠드렁산으로 부르는데, 정말 조그마한 동산 하나가 강물을 타고 떠내려 온 듯하다. 봄이라는 계절을 말해주는 것일까. ‘떠드렁’ 산처녀는 진달래와 개나리를 머리에 꽂았다.
떠드렁산에서 약 2km 하류지점에는 최근 새롭게 발견된 감호암이 있다. 권철신과 권일신을 비롯한 양반들이 학문을 토론했다는 ‘감호암’에는 鑑湖岩(감호암)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거울 감’자에 ‘호수 호’자를 쓸 만큼 남한강은 수면이 거울같이 빛난다. 양근성지의 수상보트를 이용한 성지순례를 통하면 감호암을 가까이서 자세히 볼 수 있다.
떠드렁산 건너편에는 ‘물안개 공원’이 있다. 기와로 된 돌담길과 인공폭포, 폭포 곁에는 가수 김종환의 노래비가 세워져있다. 양평 남한강변의 물안개를 보고 작사했다는 김종환의 히트곡 ‘사랑을 위하여’가 노래비의 버튼을 누르면 울려 퍼진다. 폭포소리와 함께 듣는 노래는 제법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물안개공원을 보고 난 후, 다시 떠드렁산 옆을 지나는 길로 돌아와 직진한다. 산수유와 개나리, 진달래 등이 만발해있다. 길의 끝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인라인과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잘 정비된 길을 만난다. 붉은색 보도다. 양평역 방향으로 한참 가다보면 양근대교와 만나는데 대교를 건너지 말고 오른쪽 밑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내려가면 다리 밑으로 들어가게 된다.
▶ 길에 얽힌 이야기들
버들 양’자를 쓰는 ‘양평’인 만큼 길에는 버드나무가 무성하다. 통나무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틀면 양근대교와 나란히 걷게 되는 꼴이다. 걷다보면 6·25전쟁 당시 학살된 양민을 현양하는 비석을 만나게 된다. 비석에는 ‘통곡의 그날’이라고 적힌 글을 볼 수 있다.
양민이 학살된 이곳은 우리 신앙선조의 순교터이기도 하다. 팔당댐이 건설되기 이전, 이곳 지역은 강과 백사장으로 이뤄져 있었다.
백사장은 오래 전부터 많은 이들의 처형이 이뤄진 곳으로 많은 순교자들이 이곳에서 목숨을 다했다.
파란색 다리인 양평교 쪽으로 계속해서 걷는다. 오른쪽으로는 한강이, 왼쪽으로는 경기도 양평교육청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환희의 신비부터 빛의 신비까지 묵주기도를 바치면 꼭 맞을 시간이다.
한참을 걷다보면 왼쪽 위에 은색 간판으로 ‘양평성당 200m’라고 적힌 표지를 볼 수 있다. 성당에 들르기 위해 계단으로 올라가 길을 건너 ‘양평 예수성심성당’을 찾는다. 예수상과 마리아상이 웃으며 순례객을 맞이한다. 시골성당 분위기가 나는 나무의자에 걸터 앉아 성체조배를 할 수 있다.
성당에서 다시 나와 계단으로 내려가 계속해서 걷는다. 길의 끝에는 ‘갈산’이 있다. 갈산은 권철신 형제가 살았다는 곳으로 추정되는 지역이다. 갈산으로 올라가지 말고, 왼쪽편으로 가다보면 길 건너편에는 양평 배수펌프장이 있고, 노란색 보도를 만난다.
계속 걷다보면 양평소방서를 만나고 조금 더 가다보면 양평읍사무소를 만나게 되는데, 이곳 읍사무소 마당의 지하수를 이용한 작은 연못이 예전 권철신 형제의 생가 근처 우물터로 추정되는 곳이다.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가 갈산의 오른쪽 길을 걸어간다. 갈산 입구에는 두 개의 길이 있는데 오른쪽 길은 양근 나루터가 있던 곳으로 가는 길이고, 왼쪽 길은 우리가 계속해서 걸어야 할 길이다. 양근 나루터를 들르고 다시 올라와도 좋다.
길을 걸어가면 나무로 된 길이 펼쳐진다. 왼쪽 바위에는 반딧불이 전구가 빛나고 있다. 6월에는 이 길에 피어있는 아카시아 향기가 그윽하게 펼쳐진다고 한다. 길은 다시 초록색으로 변하고, 걷기에 좋은 폭신한 길이다.
길을 걸으면 악보 전망대를 만날 수 있다. 낙서판에 적힌,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의 메시지를 보면 웃음이 난다. 전망대는 문화관광부가 주최한 2009 마을 미술 프로젝트, 강둑에서 쓰는 편지라는 작품이다.
길을 계속해서 걷는다. 오른쪽으로는 계속해서 남한강이 흐른다. 오래 전 우리의 신앙선조들은 배를 이용해 이곳을 건너다녔다고 한다. 이 강을 건너 걸으면 주어사를, 그리고 천진암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길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남한강을 바라보며, 신앙선조들을 생각하며 남아 있는 약 3km를 걸으면 이 길의 끝이다. 다시 되돌아온다.
■ 양근관아터와 조상덕 토마스
양평 양일중·고등학교 인근은 예전의 ‘양근관아터’로 지목되는 곳이다. 굵은 고목(느티나무)이 뿌리 내리고 있는 한 집(양근5리 151번지)은 예전의 ‘관아’이며, 순교자들은 이곳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현재의 양평시장 길을 통해 남한강 백사장으로 향했다고 추정된다.
현재는 이 길의 중간에 ‘양평역’이 자리하고 있어 길이 복잡하지만, 오래 전에는 이 모든 길이 남한강으로 뚫려있었다. 1801년 조동섬(유스티노)의 아들인 순교자 조상덕(토마스)이 양근관아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시장 길을 통해 걸어가 남한강 백사장에서 참수됐다고 전해진다. 당시 처형이 백사장에서 행해진 것은 순교자의 피를 강물에 흘려보내기 쉽고, 시신을 덮을 모래가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