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 향기 풍부한 집
김민자
짙푸른 6월의 신록이 오랜 가뭄에 윤기를 잃고 타들어 가던
날, 오랜만에 내 고향 보은 땅을 밟았다. 산세가 빼어난 그 곳은
인심도 좋아 선한 사람들의 끈끈한 정이 넘쳐나는 고장이다. 유
년의 가슴속에 살포시 피어오르는 고운 감성을 키워주었던 내
유년의 보금자리.
그 시절 그 곳에 아흔 아홉 칸의 큰 기와집이 있다는 소문을
어른들로부터 자주 들었던 터라 오늘은 모처럼 시간을 내어 찾
아보기로 했다. 서원계곡을 따라 차를 달리는 기분은 가뭄만 아
니라면 옥구슬처럼 맑은 물결의 일렁임을 즐겼을 텐데 오랜 가
뭄으로 바닥에 드러난 둥그런 돌들이 하늘을 원망하며 하얗게
누워있어 아쉬움이 일었다.
그 계곡 둔덕에 소나무 숲이 아늑하게 둘러쳐져 있고 그 안쪽
으로는 구한말에 지는 선병국(宣病國) 가옥이 장엄하게 자리잡
고 있다. 보은군 외속리면 하개리 154번지에 자리한 선병국고
가(宣病國古家)는 그의 선천(先親)인 정훈씨가 전남 보성에서
보은으로 이주 연꽃이 물위에 떠 있는 명당 터에 자리를 잡고
살다가 99칸의 양반 가옥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건물
을 지은 고 선정훈 씨는 큰 부호가의 호걸로 보은과 회인에 서
당을 짓게 하고 운영 자금을 지원 많은 인재를 양성하였고 또
한 굶주리는 주민들에게 곡식을 무상으로 지급하면서 후덕한
삶을 살아온 분이셨다고 한다.
그 집은 속리산 천왕봉에서 시작된 삼가천(三川)의 맑은
물이 서원계곡을 따라 큰 개울을 이루고 그 중간에 돌과 흙이
모인 삼각주는 그 모습이 배의 형상 같았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숲을 이룬 중앙 바로 이곳 연화부수형(蓮
花浮水形)의 명당 터에 큰 기와집을 지은 것이다. 1910년에서
1921년에 걸쳐 완성된 이 집은 당대 제일가는 갑부가 전국에
서 내로라 하는 목수들을 가려 뽑아 후한 대접을 하면서 이상형
으로 집을 지었다 한다.
이 시기에는 개화의 물결을 타고 개량식 한옥의 구조가 태동
되던 시기인데 재래식 한옥으로 질박하게 짓기보다는 진취적인
기상을 바탕으로 새로운 한옥을 시도했던 것이다. 그런 시대에
걸맞게 특징적으로 지어졌으므로 학술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
니고 있어 현재 중요 민속자료 134호로 지정되어 있다.
집의 구조는 사랑채와 안채, 사랑채의 세 공간으로 나뉘어 있
어 우아한 자태와 처마의 곡선은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여
유로움을 안겨준다. 사당채 일곽은 뚝 떨어져 낮은 담장을 두르
고 삼문을 거쳐 출입하게 되어 있었다. 사당은 삼 칸이고 옆에
재실 삼칸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그 집은 공간 하나 하나마다 안담을 두르고 전체를 다시 바깥
담으로 둘러싸고 있으며 남쪽 정면으로 길게 뻗은 담 한가운데
에 솟을대문이 있고, 그 안에 넓은 바깥마당을 지나면 중문에 이
른다. 그 대문에 들어오면 사랑채가 나오는데 이 사랑채는 남향
으로 무사석 같이 다듬은 세벌대 위에 자리잡고 있다 퇴기둥의
주초는 화강암을 다듬은 팔각으로 보통의 사랑채에서 보기 드
문 형식을 취했고 처마는 홑 처마로서 서까래가 길어서 처마 깊
이는 상당히 깊었다.
또 담장밖에 떨어져 있는 효열문 안에는 열녀비와 효자비가
세워져 대가(大家)댁의 품격을 더해주고 있다. 그 앞에 조그만
비석이 세워져 있어 한 자 한 자 찬찬히 읽어보니 이곳이 많은
학자들을 길러낸 교육의 요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유학사상을 바탕으로 많은 인재를 길러내 이곳에서 배출된
한학자들이 우리나라 곳곳에 배치되어 교육을 담당했던 사실들
이 적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일제시대에는 민족의식을 일깨워
나라의 주권함양을 목표로 지금까지 그 맥이 이어져 장학사업
을 하고 있어 이를 기념하기 위해 뜻 있는 후손들이 그 비를 세
워 기념하고 있다.
역시 우리 고장 충북 옥천에서 출생한 큰 학자로 존경을 받던
임창순(任昌淳) 선생도 이곳 출신이라고 하니 더 감회가 깊었
다.
안 대문을 지난 중문 왼쪽에 이르면 고즈넉이 하늘을 이고 있
는 오래된 노송 한 그루가 멋과 기풍을 과시하며 우뚝 서 있다.
그 곳 사당채 마당이 마치 하나의 화단이라면 그 안에 심겨진
한 그루의 거대한 분재를 보는 듯했다. 곧은 나무가 되어 하늘
로 솟아오르게 하기보다는 줄기를 자라지 못하게 구불구불 곡
선을 만들어 나지막한 그늘을 이루어 사시사철 푸른 선비의 기
개를 소나무로 통해 느끼고 싶었음일까.
도솔천 찻집에 올라 통나무로 된 찻상을 앞에 두고 솟을대문
을 향해 앉았다. 문설주를 지나 남쪽을 향해 탁 트인 시야에 대
문을 통해 보이는 앞 배경이 한유로운 정경에 젖게 한다. 처마
를 따라 길게 뻗은 나무의 목 문이 하나하나 모두 달라 너무나
아름다워 보인다.
옛 선비들이 모여 시문을 읽었음직한 사랑채엔 지금은 '도솔
천'이란 찻집을 차려 그 집의 둘째 증손부인 홍영희 여사가 우
리 고유의 전통차를 준비해 운영하고 있었다. 나무로 된 찻잔받
침에 차를 내온 여인은 고전미가 아늑히 배어 기품이 흘렀다.
이 집에 어울리게 곱게 빗어 쪽을 진 머리에 꽂힌 비녀도 신비
스럽지만 화장기 없는 얼굴에 은은한 솔향이 배어 있어 시대를
한참이나 거슬러 간 느낌을 주었다.
집이란 우리들의 삶의 둥지이다. 그러나 선씨(宣氏) 문중의
자손들이 장학사업을 하면서 이 큰집만큼이나 덕을 베풀어 온
삶을 돌아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집의 선친인 정훈
(正薰)씨는 17세 어린 나이에 이미 아흔 아홉 칸의 큰집을 지
을 구상을 직접 하였다 한다. 만석군 부자는 하늘에서 내린다고
하는데 그는 이처럼 큰복을 담아놓을 마음의 그릇이 준비된 사
람은 아니었을까.
물소리, 바람소리, 솔 향기 풍부한 내 고향에 이런 값진 문화
재가 있다는 것에 자긍심을 갖는다. 아파트문화에 익숙해 가는
내 감성에 오랜만에 한가한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복잡한 일
상사에 숨이 가쁜 때면 가끔 이곳 선병국 가옥을 찾아와 도솔천
의 차맛을 즐기며 내 마음 한 자락에 쉼을 얻으리라.
2003 16집
첫댓글 옛 선비들이 모여 시문을 읽었음직한 사랑채엔 지금은 '도솔천'이란 찻집을 차려 그 집의 둘째 증손부인 홍영희 여사가 우리 고유의 전통차를 준비해 운영하고 있었다. 나무로 된 찻잔받침에 차를 내온 여인은 고전미가 아늑히 배어 기품이 흘렀다.
이 집에 어울리게 곱게 빗어 쪽을 진 머리에 꽂힌 비녀도 신비스럽지만 화장기 없는 얼굴에 은은한 솔향이 배어 있어 시대를 한참이나 거슬러 간 느낌을 주었다.
들국화 향기 속에 서리치는 가을밤을 깨어 피 칠한 듯 붉은 단풍을
가슴에 담아 울어보고 싶다. 삶이 결국엔 제 길을 따라가야 하는 자
연의 순리인 것처럼 인생도 사랑도 더욱 순리를 따라가야 하지 않을
까? 저 높은 나뭇가지에 제 둥지를 만든 까치집을 바라볼 때 들려오
는 까치소리가 정겹다. 만남이 헤어짐의 이름으로 바뀌어 모두가 떠
나 버린다. 해도 이 가을 속의 나는 영원히 남고 싶다
내고향은 보은 속리산.. . 글과 더불어 솔향기가 풍부해집니다.